<14회> 마포난지생명길에서 만난 숲

기린
2024-02-05 17:48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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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천변의 산책로에 대형 할인점까지 들어서서 예전을 짐작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코스를 따라 차도를 걸어가다가 하늘공원입구로 접어들었다. 길을 나서기 전에 책을 사서 훑어보고 왔기 때문에,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면에 저절로 눈이 갔다. 쓰레기 매립을 끝내고 공사를 시작할 때 침출수나 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쓰레기 산 위를 반영구 특수필름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 위로 꼭대기에는 120센티미터, 경사지에는 50센티미터의 흙을 쌓아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공사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경사지에 쌓았던 흙들이 빗물 등에 쓸려 내려가면서 썩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대로 드러난 곳에, 시민모임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1년이라고 했다.

 

 

 

2. 고맙다, 꾸지나무야

 

경사로를 오르다보니 나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마운 나무 숲’ 이라는 숲 표지목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표지목이라 반가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 숲 사이로 드문드문 비닐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했다. 공원의 경사면 중에서도 비닐 쓰레기가 가장 심한 곳에 꾸지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꾸지나무는 가장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선구식물로 알려진 아까시나무 조차도 자라지 못하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나무란다. 그래서 모임의 사람들은 이 나무를 ‘고마운 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무를 심던 초창기 닥나무를 주문했는데 실제로 공급받은 나무가 꾸지나무였다는 것을 여러해 심고 키운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 그루 섞여왔던 닥나무는 거의 죽었는데 꾸지나무는 꿋꿋하게 쓰레기더미의 흙에서 뿌리를 내려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간직한 나무다. 한 겨울이라 여름에 빨갛게 열린다는 열매를 보지는 못했지만, 쓰레기산을 터전으로 삼은 생명력을 떠올리니 표지목 근처에 오래 눈길이 갔다.

 

 

 

공원의 경사면에 자라는 어린 나무들을 살펴보며 걷다보니 하늘공원 정상에 이르렀다. 가을이면 잘 가꾸어진 억새밭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억새들은 모두 베어지고 둘러쳐진 밧줄과 버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로 난방공사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보였다. 특수 필름으로 덮여 있는 쓰레기산에서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분출되는 가스를 공원 곳곳에 연결된 난방공사의 가스관을 통해서 재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공원 정상에 서니 한강의 다리들이 보였고, 흐리긴 했지만 북한산과 관악산까지 보여서 시야가 탁 트이는 맛이 있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오니 노을공원으로 이어졌다. 노을공원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나무자람터까지 올라가니, 나무를 가꾸는 묘판이나 여러 도구들이 모여 있는 터가 보였다. 여기서 2011년부터 공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했나보다. 전체 공원의 절반 가까이의 경사면에 나무를 심고 빗물을 모아 물을 주면서 보살폈던 이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파란색 대형 물통에 써진 글씨나, 한쪽에 세워진 표지목 더미를 보니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가늘게 흩뿌리는 비는 여전했지만 텅 빈 장소 주변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계절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았다.

 

 

3.  생명의 씨앗을 싹 틔우는 이야기

 

 노을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와 마포난지생명길의 나머지 구간을 걸었다. 노을공원의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쓰레기와 함께 묻힌 흙속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을 보았다. 십 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이 척박한 곳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손길을 생각했다. 그 손길을 “이 땅의 생명이 품은 변화의 힘에 운 좋게 동승한 것”(위의 책 207쪽) 이라 여기는 마음도 떠올랐다. 저자가 책에서 거듭 밝혔던 자연의 순리, 공존을 지향하는 자연이 모든 존재를 살리는 방향을 향해 멈춤 없이 변화해가는 그 이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장(場)이 거기 있었다.

 

쓰레기산을 숲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시작한 후 첫 활동은 1만 그루의 백두산미인송 어린나무 심기였다. 백두산에서 받아온 씨앗으로 키운 나무로 다시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이곳으로 보내진 나무였다. 이 나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토양이 맞지 않았을 수도 또는 옮겨 심는 과정에서 어린 나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살리지 못했지만 심고 가꾸는 내내 드나들던 곳에서 어린나무들을 발견하면서, 이들의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위해식물이라고 터부시하는 식물들이 먼저 뿌리를 내리고 그것들이 죽어서 분해가 되면서 땅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러면 또 다른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는 사이 황무지는 점점 숲이 되어 갔다. 인간들이 위해식물이라고 분류했을 뿐, 자연에게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율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라니까지 깃들어 사는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가 쓰레기를 만들고 버릴 때 그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노을 공원에는 그 결과의 일부가 있다. 그 곳에서 자연과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협력하여 함께 살기를 바라는 노력이 이루어낸 숲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지나간 곳에 남겨진 폐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수 있다. 애나 칭이 『세계 끝의 버섯』에서 송이버섯의 이야기를 찾아 벌목으로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갔다면, 우리는 쓰레기산을 감싸고 있는 숲의 이야기를 찾아 노을공원으로 가보자. 공원을 걷다보면, 숲이 전하는 생명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함께 가요, 우리^^

 

댓글 5
  • 2024-02-05 21:08

    네!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 2024-02-06 09:20

    책을 읽고 싶네요

  • 2024-02-06 19:23

    책도 읽고 싶고 노을공원도 가보고 싶네요^^

  • 2024-02-08 10:30

    한동안 환경호르몬이 나온다고... 꺼려하기도 했었는데, 자연은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 2024-02-19 10:44

    애들 어려서 하늘공원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요. 억새를 보러 갔던 것 같은데...
    어마어마하던 난지도 쓰레기의 흔적은 없고 잘 관리되어진 공원에 놀라웠죠. 그 많던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간 거야? 라며. 밟고 선 줄도 모르고.

    꾸지나무(꾸지뽕) 열매는 과거의 쌤이 보고 드셨을 텐데요...ㅎㅎ
    담쟁이 작업장 시절에 밀양에서 꾸지뽕 열매를 선물로 주셔서
    그걸로 잼을 만들었던 추억이 방울방울~^^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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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4.02.17 | 조회 47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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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2.16 | 조회 309
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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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2.05 | 조회 31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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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4.01.30 | 조회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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