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유학점검기

현민
2024-02-16 09:11
311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 하지만 낯선 타지.

한국에 돌아가 비자 받기를 기다리면서 4년간 일하던 서점을 정리했다. 떠난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같은 해의 초겨울, 독일에 다시 똑 떨어졌다. 한국보다 시원하고 오후 10시까지 해가 짱짱한 여름만 알았던 나는 물론 독일의 겨울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지 몰랐다. 독일 겨울 날씨에 대한 충격과 함께 집도 없었던 나는 척박한 겨울 3개월간 홈리스 생활을 했다. 사이비 교회에서 3주, 그 후로는 텅 빈 아파트에서 2달간 지냈다. 꽤나 유명한 사이비였는데 편견이 너무 없었던 건지 교회 안에 즐비한 힌트에도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두 달 간 지냈던 아파트는 곧 독일로 이민 올 한국 가족이 미리 계약해놓은 집이었다. 전에 지내던 교회보다는 나았지만, 가구 하나 없는 곳에서 가끔 혼자 말을 하면 메아리가 울려서 공허함이 크게 느껴졌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열심히 밥을 차려 먹는 일이 빈 시간들을 견뎌내는 데 중요했다.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게 그닥 나와 맞는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쯤,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 간절해졌다.

 

독일은 어디를 가도 집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국에서 자취 집 구할 때는 그나마 고를 수라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감각이 필요했다. 집 구하는 앱을 통해 몇백 통 넘는 메세지를 보내야 한두 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그러다 지금 사는 셰어하우스에 오게 되었다. 2월에 입주해 11명의 친구이자 가족을 얻고, 그들과 두텁게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서 독일에서의 삶이 견딜 만 해졌다.

집을 찾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어학원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고, 저녁엔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 하루가 금방 갔다. 혼자일 땐 이 겨울을 보내야 봄이 온다는 게 막막했는데, 겨울은 함께보내야 하는거구나 싶어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맨몸으로

 

한국이 지겨웠다. 조그만 동네에도 문제가 너무 많았고, 가족도 나의 삶을 자꾸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거창한 명분을 위해 거리로 나갔고 어느 날은 숨이라도 쉬어보려고 친구들을 찾아갔다. 무언가 바꿔보려고 애를 쓰다가 두 권의 책도 만들어버렸다. 변화라는 게 금방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소진됐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사실 상담을 해야 할 사람은 현민씨가 아니에요. 위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화가 났다. 그럼 내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좁아지고, 슬퍼지고,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사람을 만나도 새롭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이들과 친구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나를 그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소개하는 설명들이 가치가 없어지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삶을 결핍이 아니라 풍족함으로 감각 할 수 있을까? 오랜 질문이었다.

 

독일에서의 3개월 이후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셰어하우스였다. 이사한 직후에는 밉보이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친절하게 행동했다. 누군가 청소를 안 해서 다른 플랫메이트들이 화가 나면 대신 청소를 한다던지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플랫메이트들의 생활방식은 예의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은 묻지 않고 서로의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었고, 제때 집 청소를 하지 않았고, 가끔은 싸가지 없어 보일 만큼 자기주장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 짜증은 나지만 왜 그랬는지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했고, 그러다 서로의 습관이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친절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이사 온 뒤 어떤 일에도 굳이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던 나에게 플랫메이트들은 나의 의견을 계속 물으며 이곳은 너의 집이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느새 나도 배고프고 요리하기 싫을 때는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빌붙어 먹었고, 가끔은 집을 더럽힌 뒤 치우는 것을 잊어버렸고, 누가 청소를 제때 하지 않을 때는 문제제기를 했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신뢰가 생겼다. 잘못을 했다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좋은 게 있으면 그들이 생각났고, 나누는 기쁨에 몰두했다. 12명이 모두 너무나 다른데,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그들이 나와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 1월 1일 우리 중 몇은 함께, 몇은 따로 새해를 맞았다. 모두들 새해가 되자마자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받는지 너희로부터 배웠다고. 보내고 곱씹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느낀만큼 표현하고 받은 걸 느끼면 되었다. 그걸 이들로부터 배웠다.

 

집 계단에 걸려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T의 그림

 

최근엔 첫 면접을 봤다. 나는 출판사에서 원고부터 책 홍보까지 전반적인 일을 경험하는 직종 Medienkauffrau Medien und Print(영어나 한국어로는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는 모르겠다)에 지원하고 있다. 독일어로 하는 첫 면접에 지나치게 긴장한 데다가 도움을 청하는 일도 어색해하는 나를 친구들이 잡아 앉혔다. 헝가리인이지만 독일에서 자란 티는 나와 면접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말을 하다가 막히면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해주었고, 말이 막힐 때는 물을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뼛속까지 독일인이자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는 니키는 전날 함께 침대에 앉아 나와 책의 역사를 다시 재점검하면서 내게 어떤 경험과 강점이 있는지 되짚어주었다. 긴장감에 질린 나는 내가 너무 부족한 것만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척하는 거 너무 싫다고 징징댔다. 니키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억지로 척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네가 이미 해낸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고.

그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나의 서점와 내가 만든 책들이 더 좋아졌다. 혼자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도 내가 없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일이다. 정상규범에 맞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해받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면서 시도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처음 학교를 다녀온 아이처럼 경험담을 떠들었다. 그들은 내가 독일에서의 첫 인터뷰를 마쳤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함께 살지 않았던 시간이 무수한데도 그들이 오늘의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창문에 해가 들면 보이는 필름

 

지난 한 해의 기억이 선명하다. 일년 동안 새롭고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종종 겪었다. 요새는 숨쉬기가 편하다. 가끔 살아서 좋다고 말하고 놀란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길을 갈 수 있고, 먼 곳에 갔다 돌아오면 집 앞 대로에서부터 익숙함에 마음이 놓인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껄끄럽지 않아졌고, 어느 날은 잠깐 내가 동양인 여자애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배낭 메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보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나의 공간의 이름을 부여하고 섬세하게 가꾸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을 탐험하면서 작년과는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최근에 했던 모험

댓글 5
  • 2024-02-16 20:35

    저의 첫 해외여행지가 독일이었어요.
    독일에 도착했을 때, 여기서 살고 싶다. 딱 5년만.. 이런 생각을 했는데 ㅋㅋㅋㅋ
    익숙했던 곳을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저의 오랜 꿈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저도 언젠간...!!!

  • 2024-02-16 20:36

    현민이에게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안심이 됩니다.
    아마 현민이가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2024년, 독일에서, 또 한국에서 우정을 쌓고 지지받고 지지하고 연대하며 함께 잘 살아 봅시다!!

  • 2024-02-17 08:22

    글에서 뭔가 변화의 바람이~~ 현민의 바람을 응원합니다 ~

  • 2024-02-17 10:50

    살짝 울컥한 느낌은 뭘까?
    늙은게구나...쩝!

    멋있다, 현민아.
    올해는 꼬박꼬박 글쓰자^^

  • 2024-02-18 07:21

    더 설명이 잘 되는 느낌! 그래서 읽기 좋았음^^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6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476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311
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40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2024.02.05 | 조회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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