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정치 열한번째후기

지원
2017-06-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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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필랩과 인테리어 일 때문에 후기 두 번을 빠트렸네요..^^;(따라서 열한번째라는 건 저의 기준입니다~) 이번 후기는 세미나 시간에도 헷갈리던 사회성, 복종과 교통의 문제를 4장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   *   *

스피노자의 사회성이란 자연상태가 극복된 이성의 순수한 구현태도, 거꾸로 루소적 자연으로의 귀환을 근거 짓는 만악의 도가니도 아니다. 그에게 사회성이란 개체성과, 개체성이라 불리는 활동 역량, 즉 능력의 발휘를 최대한 보장하는 집합적 관계양식을 의미한다. 그에게 자연과 사회를 가르는 본질적인 구획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적 이성이라고 할 때조차 그것은 실천에 앞선 어떤 초월적 본질로 고정 될 수 없다. 그에게 자연이란 개체적 존속의 필연성, 코나투스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해야 할 필연성, 이에 요구되는 선-개체적 관계 존속의 필연성(“그들의 본성에 대립하는 외부의 원인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같은 본성을 지닌 다른 개인들과 함께 더 역량있는 하나의 개체[혹은 신체]를 구성해야 할 필연성”)의 이중적 연쇄가 이뤄지는 삶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이러한 자연사회관을 통해 개인주의와 사회성을 각각 비도덕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으로 대립시키려 한 이론들의 불합리성을 이끌어낸다”. 이 때 로빈슨 크루소적인 개인 관념그리고 이의 논리적 귀결점인 계약론적 사회 관념은 기껏해야 사고의 사실이거나, 실재성을 부여받는다 해도 정념으로 뒤엉킨 갈등을 항상적으로 잠재하는 자해적인 시한폭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스피노자기 증명하고자 하는 이 같은 이중적 필연의 타당성은 자연에 존재하는 무한히 많은 다른 독특한 사물들처럼인간들이 제한된 역량을 지닌 자연적이고 독특한 사물이자 개체라는 사실에서 확보된다. 이는 스피노자에게 있어 사회적 관계의 구축이 자연적 섭리에 따라 미리 상정된 특정 질서의 구현 내지 균형 상태로의 이행과 무관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제한된 역량을 가진 개인들이 실존 역량의 증대와 이를 위한 신체의 조성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혹은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실천과정의 산물이다.

이 같은 사회성의 실현에는 강력하고 원초적인 다음의 세 가지 관념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동일한 본성을 가진 개인들이라 해도 공통적인 것을 통해서만이 하나의 신체를 조성할 수 있다고 하는 동일화 관념, 이에 따라 기쁨-사랑과 슬픔-증오로의 정서적 분기가 이뤄진다는 양가성 관념, 그리고 차이들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기질에 맞춰 살아가게 만들기 위한, 또는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기질에 맞춰 살아가려는 각자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동요하기 마련인 탓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국가-도시-사회란 이 같은 동요를 극복하고 인간 개인들의 자연적 독특성이 표현되는, 상상적이면서 합리적인 유일한 관계를 구성하는 정치적 신체로서 정의된다.

 

*   *   *

발리바르는 <에티카>의 정리 37의 두 번째 주석에서 이뤄지는 복종/불복종 논의가 ““자발적 예속의 우회적인 변호론으로 둔갑할 위험은 없는지 스스로 물음을 던진다. “사회는 국가, 곧 복종이지만, 자유는 오직 사회의 경계 안에서만 실현된다는 것을 동시에 긍정하는 어떤 철학[내지 사유]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 신체의 이러저러한 활동은 신체에 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정신에서 유래한다고 이야기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며, 자신들의 무지를 허풍스레 고백하는 데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신과 신체는 구분되는 두 실체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때론 관념들의 복합체로, 때론 물질적 복합체로 인식되는 하나의 동일한 사물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신체의 관념이라거나, 정념에 대한 정신들의 역량 증대가 육체의 역량 증대와 조응한다고 파악한 스피노자의 언술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정신/신체의 이원적 대립이 아니라,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하는 능동성과 수동성을 사고해야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논의 위에 발리바르는 <신학정치론>에서 복종이 하나의 습속이나 삶의 유형으로, 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실천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면서, <윤리학>이 이와 같은 분석을 보다 심화된 형태로 진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복종은 집단적 규율에 따른 신체의 훈육과 더불어 이뤄지는 계시적 진리의 기억에 대한 상상이 동일한 시나리오의 두 가지 면모를 이루며 수행되는데, 복종이 항구적이려면 그에게 명령하는 주체의 역량이 가능한 한 거대하게상상되어야 한다. 이때 명령 주체의 전능성을 비인격적인 자연 전체로서 명령받는 주체의 역량과 대칭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복종(혹은 복종의 지속)은 어디까지나 명령받는 주체들의 안전과 내부의 평화를 보장하고, 환원 불가능한 최소의 개체성을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만 타당성을 갖는다. 이때의 복종과 자유는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조건적이다. 스피노자에게 국가와 시민사회, 혹은 도시란 이 같은 원리에 의해 집합적으로 구성되는 정치체이다. 이처럼 복종 및 복종의 지양에 관한 스피노자의 명제는 동떨어진 개인들 수준에서는 의미를 갖지못하며, 따라서 국가-사회에 의해 실현되는 개인성의 형태 자체는 교통의 일정한 양상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스피노자는 정념과 이성의 문제를 신체들 사이의, 그리고 신체들의 관념들 간에 이뤄지는 교통의 양상들의 문제로 파악한다. 정치체제란 이 같은 교통의 양상을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교통 형태를 가리킨다. 이는 야만적 공동체와 이성적 공동체라는 양상으로 유형화되는데, 야만적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교통이란 그저 명목적으로만 자연 상태와 구별될 뿐 실질적으로 교류되는 것은 최소한에 그친다. 그런데 여기서 교통을 정치체의 소극적 보존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선 안 된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사회적 관계의 현실적-상상적 복합성운동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국가, 종교, 도덕이 제도화하는 복종 그 자체는 불변의 기정사실이 아니라 진행 중인 이행의 축으로”, 거기엔 교통양식 자체의 변혁을 결정적 계기로 삼는 어떤 실천의 쟁점이내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정치론은 단순한 권력의 물리학도, 대중적 복종의 심리학이나 법질서의 형식화를 위한 수단도 아니라, 가능한 최대 다수가 가능한 최대한 인식하기를 구호로 내건 집단적 해방의 전략에 대한 탐구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때 말하는 최대한의 인식이 좁은 의미(혹은 인식론적 수준)에서의 합리적 인식으로 제한될 때, 그것은 그것이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신정체제에 대한 지식-권력 분석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주술화 된 진리체계에 그치고 말 것이란 점 역시 스피노자 정치론의 중요한 함축이다.

댓글 1
  • 2017-06-08 23:17

    지원아! 내가 너한테 뭔가를 요구(?!)할 때 그게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필연적이라는거..그래서 우정을 발휘해야 한다는거..인제 아는 거쥐? 크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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