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후기-복잔치에서 치지와 존양을 생각하다

게으르니
2017-06-05 21:30
265

동양 고전을 공부하다보면 읽을 때는 하나도 걸리지 않다가

 막상 그것이 뭐냐고 물으면 막막한 경우가 종종 있다.

걸리지 않는다는 말은 다 옳은 말이겠거니 하며 읽는다는 것이다.

2분기에 읽고 있는 근사록집해도 그럴 수 있는 징조가 농후한 텍스트이다.

더구나 맞는 말만하는 말씀의 숲에서 개념을 찾아 길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이번 주에 공부한 치지(致知)와 존양(存養)도 마찬가지였다.

앎을 이룬다는 것과 보존하여 이룬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질문 앞에 명쾌한 정리를 내놓을 수 없는 발제자는 진땀이 났다.

 

 

우선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보자면 는 끝까지 미루어 나간다는 것이며,

는 인식능력이다. , 자신의 인식능력을 끝까지 미루어나가는 것을 앎을 이룬다고 한다.

끝까지 미루어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알아야 행할 수 있다. 만약 알지 못한다면

이는 요임금을 얼핏 보고 그의 행동을 배우기만 하는 것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자득해야 한다.”

알지 못하면 행동만 배우는 것? 자연스럽게 자득하는 것이 앎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앎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날까?

 

지난 5월 문탁에서는 복잔치가 있었다.

작업장을 만들고 화폐경제와는 다른 경제를 실험하자고 복을 주고받은 지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복작연구소에서 기존의 교환 가치가 아닌 다른 교환의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을 옆에서 지켜 본 나로서는 그 날의 복잔치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문탁에서 복은 우정, 믿음, 감사등의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 정리했다.

뒤이어 복펀딩을 했는데 앞의 설명과 연이은 활동이 딱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 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다른 친구도 이제 복이 뭔지 좀 알겠다는 소감을 들었을 때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 날의 복잔치에서 벌어진 일이 곧 치지가 드러난 예가 아닐까?

복이 쓰이기 시작한 후 늘 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잘 쓰고 있는지 관심을 끈을 놓지 않았던 복작 연구소 친구들과

주변 친구들은 모두 복이라는 것에 대한 앎을 계속 밀고 나갔다.

이렇게 보면 되는가? 그러다 이렇게 쓰는 것은 아닌가?

 이러 저러한 실험과 시행착오가 쌓이면서도 그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 올해 복잔치에서 복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드러났고

잔치에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이 그 앎을 공유한 순간이었다.

이제 문탁에서 쓰는 복은 좀 더 명료해졌고 복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풍성해졌다.

그런 가능성을 볼 때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자득함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존양(存養)은 마음의 상태를 경()에 머물게 하는데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본체로서의 을 보존하고 기르는 것이다.

본체로서의 심은 유가에서는 본성의 선함을 가리키며, 이것을 잘 보존하고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은 착하다는 의미로는 너무 협소하며 잘 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사사물물에 응해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존양에서는 그 마음을 잘 기르는데 을 유지하면서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주된 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앎을 이루는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거기가 끝이 아니다.

복잔치에서 복이 이런 것이구나 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의미이다.

복을 쓰는 순간마다 그것의 가치가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우정을 더 돈독히 하고 믿음을 쌓는 의미와 적중하는가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 의미에 적중하도록 복을 쓸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중해서 적중하게 되는 순간이 곧 하나다.

그러므로 경은 그 마음의 집중이 지속되도록 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하나로 움직이고

하나가 되면 저절로 잘못되고 치우지는 것이 간섭함이 없게 된다.

이러한 뜻을 오래 함양하면 천리는 저절로 밝아질 것이다.”

천하가 운용되는 이치를 담지한 자신을 밝히니 천지와 내가 일체임이 저절로 터득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치지와 존양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 복을 탐구한 오랜 시간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급박하게 서둘러 구하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이라고 했다.

배우는 것과 일상에서 행하기 사이의 간극에서 힘들어하기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고전에서 배운 것을 일상에 적용하면서

이것이 치지인가? 존양이구나 라면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것에서 공부가 쌓인다.

그러다보면 익숙()’해져서 저절로 그만둘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성리학자들이 꿈꾸는 성인(聖人)의 경지이며 공부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우리의 공부도 그 길을 내고 있는 것 맞겠지? ㅋㅋ

 

댓글 1
  • 2017-06-12 08:22

    思와 熟...

    요즘 이 두 글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게으르니가 내게 또 깨달음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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