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목의 문학처방전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겸목
2020.09.13 | 조회 428
문탁의 간병블루스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월 13일 :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월 15일 :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월 23일 :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월 13일 :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월 15일 :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월 23일 :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문탁
2020.08.31 | 조회 1235
겸목의 문학처방전
장르를 바꿔보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년)을 처방합니다       워킹맘의 만성피로, SF 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장르를 바꿔보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년)을 처방합니다       워킹맘의 만성피로, SF 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겸목
2020.08.17 | 조회 536
겸목의 문학처방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겸목
2020.07.09 | 조회 459
문탁의 간병블루스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관리자
2020.06.09 | 조회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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