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질문들

정군
2023-08-16 20:02
356

여기에 정오까지 댓글 본문으로 올려주셔요!

댓글 13
  • 2023-08-16 20:23

    1. 5부 서문(206p) "이 부에서는 '이성'이 정서들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다음 정신의 자유 또는 지복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이성'의 역량에 대해 다룰 것인데, 이로부터 현자가 무지자보다 얼마나 더 강한지 보게 될 것이다. '지성'이 완전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길을 통해야 하며...."

    질문 1) 5부 서문에서는 이성(reason.ratio)과 지성(intellect.intellectus)을 구분하는 느낌입니다. 이성은 '이성의 명령', '이성의 인도에 따라'에 주로 쓰는 반면 지성은 '지성의 질서' '지성의 완전화', <지성교정론>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2. 정리 20 주석(220p) "이로써 나는 '현세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끝마쳤다...(중략)...그러므로 이제 신체의 실존과 관계없는 정신의 지속에 속하는 것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정리 23(220p) "인간 정신은 신체와 함께 절대적으로 파괴될 수 없으며, 그중에서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

    질문 2) 스피노자는 정리 20 주석에서 '현세의 삶'과 관련된 것을 마무리하고 신체의 실존과 관계없는 정신의 지속으로 넘어가겠다면서 정리 23에서 인간 정신이 '영원하게 남는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정신의 영원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3. 정리 42 주석 "현자(wise man.sapiens)는 마음의 번뇌가 없고,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자기 자신과 신, 실재를 의식하기 때문에 결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항상 진정한 마음의 만족을 지닌다."

    질문 3) 스피노자는 4부의 핵심 단어였던 '자유인(free man.homo liber)' 대신 5부에선 '현자'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현자는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사는 자유인과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자유인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3종 인식에 근접한 존재로 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 2023-08-17 01:38

    지금까지 <윤리학>에서 스피노자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은 두 종류만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유인과 노예가 그것이죠.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예'인 것으로 읽히고요. 그러다보니, 마지막 부분의 '드물고도 귀하다'에 이르면 어쩐지 절망적인 기분 마저도 듭니다. 세미나 중에 종종 '인간은 덜 떨어진 게 디폴트'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속'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통과하면서는 어딘지 모를 위화감 같은 게 들기도 했습니다. '긍정의 철학자'라는 평소 이미지와 다른 이 절망적 인간 묘사가 잘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거기서 벗어나려면 오직 '자유인'이 되어야만 하는 데 그건 또 그렇게 '드물고 귀'하다니... 그런데 5부를 마저 읽으니 스피노자의 이야기가 꼭 그렇게 막막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4부 서문의 '인간 본성의 모델' 이야기나 4부 후반부의 '종교'의 유익함에 관한 이야기나, 5부 정리 10의 주석에서 언급되는 '올바른 삶의 규칙 또는 삶의 어떤 준칙들' 같은 것을 보면, 생각보다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인간은 어쨌든 예속될 수밖에 없고, 예속상태가 훨씬 일반적인 것은 맞지만, 동시에 인간은 자유로 향하는 길을 발명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준칙들'과 '종교', '본성의 모델' 등이 그 발명의 결과물이고요. (약간 비약이 필요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윤리학'은 '정치학'과 도저히 뗄 수 없는 논리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준칙', '종교', '모델' 등, 인간의 삶을 예속에서 자유로 이행시키는 여타 장치들이 모두 모종의 '사회적 관계'를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자유인'은 고독한 상태일 수 없는 셈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가서 2종 인식과 3종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면, 2종 인식이 개체들 간의 공동성을 확대하는 운동 속에서, 상상을 인식으로, 수동적 정서를 능동적 정서로 바꿔감으로써 '자유'를 ‘무한히’ 진행하는 방향을 갖는다면, 3종 인식-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순서상 반대, 즉 개체들의 공동적 관계 자체가 사실의 '신의 사랑 자체(5부 정리36)'임을 깨닫고 모든 개체적 관계를 ’영원한 신적 사랑‘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2종 인식의 양이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3종 인식이 생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영 2종 인식의 확대 운동 속에 머물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 같아요. 그런 이유에서 '모델', '준칙', '종교'와 같이 개체들을 서로 관계맺게끔 하는 '정치'가 스피노자의 전체 사상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023-08-17 07:41

    정리 39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aptum)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 최대의 부분이 영원한 정신을 갖고 있다."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스파노자다우면서도 여전히 헷깔립니다. 문자 그대로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아는 만능인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행동거지가 모두 이성에 부합하여 정념에 따른 구속이 없으며 신의 완전성에 가까운 상태라고 읽힙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왜 '아주 많은 것'이라는 양적인 표현을 표현을 썼으며, 이에 따른 효과는 무엇일까요?

  • 2023-08-17 07:52

    정리 9. 정신이 정서 자체와 함께 바라보는 다수의 상이한 원인들과 관련된 정서는 오직 하나의 원인 또는 더 적은 수의 원인과 관련되는 똑같은 크기의 다른 정서에 비해 덜 해로우며,(생략)
    정리 11.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것들과 관련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많이 출현하게 된다. 또는 더 자주 생생하게 되고, 정신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질문) 두 정리가 다소 상충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리 9가 다소 의심됩니다. 적은 수의 원인이 이성적 문제해결에 쉽지 않나요?

    정리 38. 정신이 2종과 3종 인식에 따라 더 많은 실재들을 이해할수록, 정신은 나쁜 정서들을점점 덜 겪게 되며, 죽음을 점점 덜 두려워 하게 된다.
    주석: (생략) 정신의 명석판명한 인식이 커질수록, (중략) 죽음은 덜 해로운 것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생략)

    (질문) 정리 21.에서 ‘정신은 신체가 지속하는 동안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고 과거 실재를 회상할 수도 없다.’하였으나, 영원과 신에 대한 관념을 기반으로 하는 3종인식의 정신에서는 신체를 넘어, 정리 38에서 와서는 죽음의 중요성이 덜 중요하게 된다(229). 이 것은 4부에서 정서들을 설명할 때 근거하였던 코나투스를 버리는 것인가? 아님, 더 중요하게 하는 것인가요?

  • 2023-08-17 08:11

    1.5부 서문에서 이성의 역량을 다룰 것이라면서 스피노자는 지성의 완전화와 관련된 부분은 논리학의 문제라고 자신은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4부 부록 4항에 보면 '따라서 삶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지성 또는 이성을 완전화하는 것이 각별히 중요하며, 인간의 지고한 행복, 지복이 이 한가지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질문) 5부 서문에서의 '지성의 완전화'와 4부에서 말하는 '지성과 이성을 완전화'하는 것은 맥락이 상충되게 느껴지는데 같은 단어 다른 의미 일까요?

    2. 정리 10 주석에서 '우리는 정서들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올바른 삶의 규칙이나 준칙을 인식하고 기억에 심어두고, 삶에서 활용하라'고 합니다. 아직 능동적이지 못한 우리는 주어지는 올바른 준칙에 따르며 지성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일텐데, 그렇다면 결국 계속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4부에서도 지적된 자유인을 자유인답게 살아가게 만들, 그리고 아직 자유인이 못된 서민(?)들과 노예들을 이끌 공동의 올바른 법령을 제시할 훌륭한 정치제제인 것 같습니다.
    (질문)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커녕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3. 정리 36에서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무한한 한에서의 신이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 고찰된 인간 정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한에서의 신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신의 사랑 자체다.' 라고 하며 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같은 것이라 말합니다. 단, 이는 영원의 관점에서 고찰된 인간 정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한에서의 신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무한한 한에서의 신'과' 영원의 관점에서 고찰된 신'을 구분한 의미는 뭘까요?

  • 2023-08-17 10:30

    1. 정리23에서 말하는 ‘인간정신의 영원한 어떤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 2부 정리8에 의하면 신의 속성들 안에는 형상적 본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상적 본질들은 신 안에서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체의 실존과 지속을 조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신안에 있는 인간정신의 형상적 본질은 영원의 관점에서 신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정신의 영원성을 우리가 태어나기 전이나 사후에도 정신이 존속한다(정리34)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리23과 주석은 인간정신을 지속의 관점이 아니라 사유속성 그 자체로만 볼 때, 인간 정신은 신의 무한지성의 일부(양태)이기 때문에 영원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스피노자는 2부에서 우리는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리 39에서는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 최대의 부분이 영원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기어서 전철을 타려고 싸우는 장애인의 형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많은 점에서 무능한 제 신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버섯, 새, 문어, 지렁이 등 다른 신체를 가진 생명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또 이것이 단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3. 5부는 정신의 능동성이 갖는 힘을 보여줍니다. 윤리학은 존재론으로 시작하여 신체와 정서를 거쳐 신 관념, 신의 지적 사랑에 도달합니다. 지속의 관점에서 기쁨이 영원의 관점에서 지복으로 변모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지속의 관점은 기쁨, 자족감, 신관념에 이르는 과정을 발생적으로 설명하지만, 영원의 관점은 그것이 이미 여기에 있다고 말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속의 관점에서 영원의 관점으로의 도약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정리14 ‘정신은 신체의 모든 변용 또는 실재들의 이미지가 신의 관념과 관련되게 만들 수 있다.’를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신체의 모든 변용을 신의 관념과 관련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신의 지적 사랑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종 인식의 목표가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의 총체로서 신 관념에 이르는 것이고, 독특한 실재의 본질을 직관하는 3종 인식은 그 자체가 신 관념이 아닐까요? 그래서 정리14을 읽으면서 어떻게 신 관념에 도달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3부~4부에서 정서로부터 이성으로 진행되어 온 전개와 달리, 5부 정리 31의 주석, 정리33의 주석에서 마치 정신 속에 신의 지적 사랑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간주해왔다고 합니다. 즉 우리 정신은 이미 그 안에 신 관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신 관념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는 거죠. 스리노자에게는 여러 평행론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 2023-08-17 12:00

    정리 23에서 인간 정신은 신체와 함께 절대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체가 파괴된 후에 남는 어떤 것은 신 안에서 영원의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인간 신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관념이라고 합니다.(정리22) 신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관념은 사유양태이며, 정신의 본질에 속하고 필연적으로 영원하다고 합니다. 과연 영원히 나는 어떤 것은 무엇일까요?

  • 2023-08-17 12:19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뽑은 제 질문은 기하학적 순서에 따라 증명된다고 했던 내용의 강박적 총결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5부 정리42 증명
    지복은 신을 향한 사랑에 있는 것이며, 이 사랑은 3종의 인식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사랑은 능동적인 한에서의 정신과 관련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사랑은 덕 그 자체다. 이것이 첫 번째 논점이었다. 그 다음, 정신이 이러한 신의 사랑 또는 지복을 더 많이 누릴수록, 정신은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정신이 정서들에 대해 갖는 역량은 더 커지고 나쁜 정서를 더 적게 겪게 된다.

    책의 순서는 전반적으로 역량에서 지복으로 향하면서 인식을 거쳐 그 경지가 같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인용은 정확히 지복에서 역량으로 책의 순서와 반대 방향입니다. 같은 경지임을 논했으니 이는 문제될 게 없는 문장입니다. 이를테면 압축적이지만 친절한 요약이지만 수미쌍관에 사로잡힌 자기도취로 읽히기도 합니다. 어때? 기가막히지,? 스피노자의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가막히게 느껴지시는지요? 저는 좀 징글징글합니다.
    그렇다면 주석에서는 어떤 수미쌍관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 2023-08-17 12:33

    질문들입니다.
    세미나 전에 다른 질문들 취합해서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

  • 2023-08-17 12:40

    아, 올리고 다시 읽어보니 첫번쨰 질문이 너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좀 더 정리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첫 댓글을 바로 지운 거 같은데 그새 정군샘이 번개처럼 복사해다 붙이셨군요...)

    -----------------------------------------------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질문이 많네요. 다른 분들과 겹치겠지 하며 일단 다 올립니다.

    1. 스피노자는 정리 23에서 “인간 정신은 신체와 함께 절대적으로 파괴될 수 없으며 그중에서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고 말합니다. 신체가 파괴될 때 같이 파괴되지 않는 정신의 어느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평행론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인간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신체의 현행적 실존을 표현하는 동안이 아닐 때(이상하지만 달리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나다)의 인간 정신, 그 중에서 영원히 남는 어떤 것은 정리 31에 등장하는 ‘형상적 원인으로서의 정신’일까요?

    2. 스피노자는 정리 36의 주석에서 2종 인식과 3종 인식을 비교합니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2종 인식과 3종 인식에 관해 지금까지 해온 설명과 이 주석의 설명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여기서 이 사례(이것부터.....‘이 사례’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를 통해 내가 직관적 인식 또는 제3종의 인식이라고 부른 독특한 실재들에 대한 인식의 힘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이것이 내가 2종의 인식이라고 부른 보편적 인식보다 얼마나 더 선호할 만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 스피노자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결과적으로 인간 정신도)은 본질과 실존의 측면에서 신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쓰는 데 이것은 2종의 방식으로 보이고, “우리가 신에게 의존한다고 말하는 어떤 독특한 실재의 본질 자체에서 도출될 때”가 3종의 방식으로 보입니다. 스피노자가 앞서 2부 정리 40의 주석 2에서 설명한 2종과 3종 인식을 돌이켜보면, 2종 인식은 독특한 실재들에게 공통적인 것에 대한 관념에서 시작했고, 3종 인식은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인식에서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갔으니 오히려 2종 인식이 독특한 실재들에 대한 인식이고 3종 인식이 일반적이고 보편적 인식으로 보이거든요. 저는 이것이 정리 36의 주석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샘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3. 정리 35에서 스피노자는 “신은 자기 자신을 무한한 지적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앞서 정리 17 따름정리에서 신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리 35를 신은 정념은 갖지 않지만 능동 정서는 가질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고 해도 이미 정서는 3부 정의3에 따라 수동이든 능동이든 신체 행위 역량을 증대나 감소, 촉진, 억제하는 신체의 변용들이자 이러한 변용들의 관념들이고, 신의 역량에는 증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 2023-08-17 13:29

    정리 23의 정신에 대한 질문 - 호수샘이 질문과 같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하던 정신과 좀 다른 것 같은 느낌입니다.

  • 2023-08-17 16:21

    (너무 늦은 질문에 스압주의까지 죄송합니다!!! )

    지난주 유투브에서 진태원 선생님의 에티카 강연을 보았습니다.(6년전, 플라톤아카데미tv)
    (아래 텍스트는 2개의 영상 중 1부 말미(1시간28분 강연중 1시26분쯤부터)의 기록입니다.)
    1부 강연의 마지막에 진태원쌤은 “데카르트는 영혼과 신체사이에 반비례관계,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하는데,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고_정신이 능동적일 때 신체도 능동적이고, 신체가 수동적일 때 정신도 수동적이다"_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신체와 영혼의 반비례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례적인 관계[A], 이게 이제 상당히 중요한 문제죠.”라고 맺습니다. 이 내용은 지난 시즌2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제가 맨붕에 빠지게 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인데요, 제가 바로 이렇게 이해하고 에티카를 읽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멘붕에 빠지게 했던 정군쌤의 말씀이 또한 정확히 부록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p.240) "다음으로 인간이라는 통일적 양태의 두 측면을 이루는 정신과 신체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B], 각자 자율적으로 이 통일체를 표현한다. 따라서 신체의 능동성은 정신의 수동성을 함축하거나 또는 그 역인 것이 아니라, 신체의 능동성과 수동성, 정신의 능동성과 수동성은 서로 평행적으로 일치한다.”

    ---------------------------------------------------------------------------
    데카르트는 영혼과 신체사이에 반비례관계,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하는데,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고 “정신이 능동적일 때 신체도 능동적이고, 신체가 수동적일 때 정신도 수동적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왜 이렇게 얘기하냐면, 3부정리9에서 봤듯이 욕구는 코나투스가 정신과 신체에서 동시에 관계할 때, 그때 욕구라고 했듯이, 인간이 가지는 욕구는 정신이나 신체를 통해서 똑같이 표현되는게 욕구입니다. 정신으로만 표현 되는 것도 아니고 신체로만 표현되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 신체에 똑같이 표현되는게 욕구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윤지라학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의 능동성을 위해서 신체를 될수 있으면 순종하고 수동적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정신과 신체의 능동성, 정신과 신체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수동성에서 어떻게 하며 우리가 능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역량이 작은 상태에서 역량이 큰 상태로 이행할 수 있는가_이것이 스피노자 윤리학 3부에서 5부까지 지속적인 관심입니다. 어떻게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나갈 수 있는가? 그러니까 신체와 영혼의 반비례적인 관계가아니라 비례적인 관계, 이게 이제 상당히 중요한 문제죠.

    [출처]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 심화·확산 프로젝트, 인문학 세미나「PAN+ 열린 인문학술 세미나」의 강연 영상_ 중에서
    강연명: 스피노자, "에티카" 욕망과 정서의 철학 / 강연일시: 2016.11.11(금)
    ---------------------------------------------------------------------------

    질문1.
    [A]와 [B]는 분명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요? 진태원 쌤은 지금 같은 얘기를 하시는 걸까요?
    6년전의 진태원쌤과 1,2년 전의 진태원쌤의 해석이 달라진걸까요?

    질문2.
    5부 정리17에서_신은 정념을 갖지 않으며, 어떠한 기쁨과 슬픔의 정서도 그를 변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따름정리에서는 신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리35에서_신은 자기 자신을 무한한 지적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리35 따름정리에서_이로부터 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한에서 인간들을 사랑하며, 결과적으로 인간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신을 향한..._이라고 합니다. 정리17의 “누구도”에는 정리 35에서의 조건 즉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누구도”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즉, 대상의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정념”의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서 이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질문3.
    지난 세미나에서 “신즉자연”이라는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개념이 “그리스도의 성령”(4부 정리68 주석) 이라는 단어의 쓰임에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었는데요, 5부에서는 더 어지럽습니다. 5부 정리20의 주석에서 “현세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끝마쳤고, 이제 정신의 지속에 속하는 것으로 올겨갈 때라고 합니다. 정리 23의 주석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고 합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선생님들은 어떠신가요? 영원하다고 느끼고 경험하시나요??

    =================================================

    제 세가지 질문들은 어쩌면 비슷한 차원의 문제로 발생하였습니다. 비슷한 차원이라는 것은 [에티카] 도처에서, 위의 질문1의 [A]로 이해할수도 [B]로 이해할수도 있는 내용들이 촘촘히 흩어져,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제 각각 고유한 번호의 정리, 따름정리, 주석을 달고 있다는 차원에서 그러합니다.

    [에티카]를 통해 스피노자가 들려주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감했고, 그렇기에 더욱 목마른 마음으로 인내(?)하며 겨우 한차례 통과했습니다. 겨우 통과(?)한 이 시점에서, 위의 저 질문들과 저 질문들이 발생된 차원의 아쉬움에도(물론 개인적 소견으로~) 불구하고 충분히 감사히 목을 축인 것 같습니다(물론 나름대로!). 선생님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불가능했을 겁니다.(2023계묘년 안에, 그리고 어쩜 이후 수년간에도!)

  • 2023-08-17 18:14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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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시즌3] 에세이를 올려주세요! (11)
정군 | 2023.09.18 | 조회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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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철학학교 시즌4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읽기 모집 (15)
정군 | 2023.09.18 | 조회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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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3 후기 - 스피노자는 남자다 (6)
진달래 | 2023.09.11 | 조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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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3.09.06 | 조회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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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후기 - '다중'과 '주권자의 죄' (8)
가마솥 | 2023.09.01 | 조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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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질문들 (11)
정군 | 2023.08.30 | 조회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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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1,2장 후기 (5)
아렘 | 2023.08.25 | 조회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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