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후기

봄날
2023-08-15 20:14
378

스압 주의! 

어떻게 후기를 써야 할지 난감해서 그랬습니다~ㅠㅠ

 

4부 정리60이후는 5부의 내용이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을 암시 또는 예고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븐샘이 정리 59에서 갑자기 이성의 역할이 갑자기 튀어나온 부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다. 이성에 의해 인도될 수 있다면 수동적 정서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냐? 여기에 대해 요요샘은 정리 60부터 우리가 왜 맹목에 빠지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이성의 역량이 크므로 수동적 정서도 이성으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히면 그렇게 느닷없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이야기합니다. 암튼 우리 모두는 정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이성과 함께 예속상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접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60의 증명에서 부분신체의 정서와 욕망이 전체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말을 통해 정신, 정서, 욕망이 우리가 흔히 상정하는 통일된 주체나 자아의 정신, 정서, 욕망이 아니라는 점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성의 인도란 어떤 것이냐는 요요샘의 질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요. 이때 이성의 인도란 부분신체들 사이에서 혹은 신체의 부분과 외부실재 사이에서 공통관념이 형성되는 2종인식에 이르게 되는 계기 같은 것인데, 이성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오직 정신에서의 공통관념의 형성 여부로만 설명될 것이라고 요요샘은 말했어요. 그런데 독특한 실재들의 합치에 대한 적합한 관념인 이성은 정서나 욕망과 무관할 수 없으므로, 이성의 인도란 욕망과 정서를 떼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이성을 말하는 순간 인간을 거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2부에서는 동물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3부와 4부는 분명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성의 발생은 신체의 합치를 말한다. 그런 한에서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은 전체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말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전체를 고려하는 욕망은 기쁨이 되겠네...하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정군샘은 스피노자의 논리가 일관되기는 하지만 정념과 이성의 발생에는 반성적 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한데 어찌된 일인지 스피노자는 이것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데카르트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렘샘이 거들어서 스피노자는 이성이 내부에서 생겨야 되고 그것이 적합한 인식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성적이다’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도달해햐 할 궁극의 목표가 된다. 그럼 우리는 우리 행위가 이성적이라는 근거를 매일 밝혀야 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히려 데카르트는 현상이 명백하다면 그냥 이성이라고 말해버리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호수샘은 스피노자가 이성에 관한 입장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딴지를 겁니다. 특히 공통관념에 대해서는 2부에서 잠깐 나왔을 뿐 실제적으로 논의를 발전시키지 않았고 실상은 이성적 인식이 3종 인식으로 도달해가는 과정으로만 말하고 있다, 2부에서 말했던 공통관념으로 말하면 닭이나 소, 말이 모두 다 이성적 인식을 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면서 3부에 오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고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뭐, 저로서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정리62의 증명과 2부 정리44의 따름정리2를 엮은 요요샘의 질문, 즉 실재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과 공통적인 것을 설명하는 차이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이야기에서 저는 우리가 (혹은 내가) 아직 2종인식과 3종인식의 구분에서 헤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는 2종인식이 보편통념이라면 실재의 본질은 3종인식일까, 혹은 본질은 실재와 관계가 있지 지속과 관계없다. 지속이라는 의미의 유무가 인식의 종류를 구분한다, 아니다, 또 누구는 보편통념은 3종인식이고 독특한 실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2종인식이다, 또 누구는 보편통념을 완전화하는 것이 3종인식이다, 혹은 실재들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모두 반드시 3종인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등등...2종인식과 3종인식이 완전 헷갈렸습니다. 결론은? 일단 5부까지 가봐야 알겠다입니다.^^

 

세븐샘은 정리66에 처음 등장하는 ‘자유인’에 대해 물었습니다. 초반에 언급된 ‘인간본성의 모형’과 같은 거 아닌가 하는 물음에 정군샘은 그렇게 곧바로 동격으로 말하면 안될 것 같고 ‘인간본성의 모형’은 도구적으로 사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죠. 같은 개념이기는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요요샘은 인간본성의 모형이 자유인이 아니라 결국 자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간본성의 모형을 떠올리게 된다는 구도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합니다. 아렘샘은 아무리 봐도 자유인은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잘라 말해버렸습니다.

 

아렘샘은 자기 본성의 필연성과 자유를 양립시키는 스피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자기 본성의 필연성이 곧 자유의 토대가 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양태로서 필연적이고 제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적합한 관념을 하게 된다,, 필연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적합한 관념의 시작 쯤 될 것이라는 샘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본성의 필연성과 자유는 향하는 곳은 같지만 정도의 차이가 보이는 듯 하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리67로 세븐/여울아가 함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스피노자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피노자는 그 이전과 당대의 철학자들이 집요하게 물었던 죽음에 초연하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누었죠. 제가 정리를 잘했는지 모르지만 스피노자의 주요 개념인 코나투스는 존재의 지속(삶)을 말하므로 죽음 또한 삶의 고찰의 지평에서 생각할 뿐이다...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적 삶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양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양태의 소멸은 특이한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여기서 정리72의 주석에 대한 해석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자살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성에 따라 살라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했습니다.

 

가끔 정중동샘은 동양고전의 구절에 스피노자의 말을 얹는데, 이번에도 불교와 공맹이 변주하는 것을 느꼈나봅니다. 늘 우리는 전제를 신경써야 합니다. 정리62에서도 “정신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실재들을 인식하는 한에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성의 항구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데, 인간이 과연 갖출 수 있을까(가마솥샘) 등의 자괴심이 솟습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으니까 낙담할 필요는 없죠. 논리상으로 그렇다는 거죠. 너무 거창하지 않게 생각하면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도 며칠 빵구내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성의 인도아래 매일 출근한다는 아렘샘의 저렴한 해석이 도움이 됐습니다.

 

4부 정리37만큼은 아니지만 정리68에 질문이 좀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자유롭게 태어난다면 자유로운 한에서’의 기본 전제를 생각하면 제가 늘 쓰는 표현인 ‘밥 먹으면 배부르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자유로운 한에서라는 전제는 우리가 늘 신의 관념인 한에서, 적합한 인식만 하는 한에서는 100% 좋음만 있으니까 나쁨에 대한 개념은 형성할래야 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저는 주석의 창세기를 그냥 읽어 넘겨버렸는데, 스피노자가 이 일화를 통해 하려는 바를 세미나 속에서 깨닫게 됐습니다. 즉 에덴동산의 남녀는 자유로운 인간이었는데 어떤 계기를 통해 짐승들의 정서를 모방하면서 자유를 상실하게 됐고, 후에 성령에 의해 위대한 족장들에 의해 자유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는, 지금 스피노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가 자유를 찾는 노정에 있다는 거죠. 약간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자유롭지 않다. 자유롭기도 하고 자유롭지 않기도 한 분열적 인간의 조건이 여기에 있군요.

 

호수샘의 질문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건 2종 인식의 최고치인 자족감 정도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는데요, 정중동샘도 동질감을 느끼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말했지만, 곧바로 정중동샘을 배신하며 3종인식은 신의 관념 자체이므로 자족감은 지복의 상태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끌어당겨주는 매개나 경유과정을 통해 지복을 이룰 수 있지 않나 하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르륵샘은 건전한 이성에 근거한 법률은 둔 국가를 이야기하는 스피노자를 보며 그가 오히려 윤리학보다 정치학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죠. 재선샘도 이 국가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궁금했다고 했죠. 당대의 맥락을 따져 보더라도 궁극의 이론은 정치론이 맞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때 스피노자가 말하는 국가는 통치성이 없는 국가, 권력자가 없는 국가, 민주정이지 오늘날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스피노자에게 국가는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체의 궁극의 모습으로서, 큰 규모의 연합체로서 더 큰 이성적 역량을 가진 체제로서의 국가를 사고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정군샘이 말했습니다. 노자의 무위지치(無爲之治)나 맹자의 왕도정치(王道政治)와도 맥이 닿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합한 인식을 하는 자유로운 개인이 모인 공동체로서의 국가, 이거야말로 지나친 이상 아닐까요.

 

후기를 쓰면서 세미나를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그런 질문들을 만드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많이 배웁니다. 다음 시간은 대망의 5부를 한번에 읽어옵니다. 5부를 마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나 에티카 읽은 뇨자야!”^^

 

댓글 5
  • 2023-08-16 07:30

    봄날샘의 후기를 통해 '스압'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됩니다.
    '스크롤 압박'(스압): 글이 너무 길어서 마우스로 스크롤을 상하좌우로 움직이기를 많이 해야 하니 감안하라는 것으로 긴 글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스압 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 시간 세미나를 물이 흐르듯 중계하는 것 같아 술술 잘 읽혔습니다.
    세미나 때 2, 3종 인식에 대해 의견 차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진태원샘 책에선 이렇게 구분하고 있네요.
    "2종의 인식이 실재들간의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라면, 3종의 인식은 실재의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다.
    2종 인식과 3종 인식의 차이는 인식의 대상의 차이에서 찾아선 안되며, 인식의 절차 및 함축하는 주체화의 양식의 차이에서 찾아야 한다."(진태원샘 책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321p)
    2부 정리40 주석 2(72p)에서 2종 인식(이성 및 두 번째 종류의 인식)에 대해 "실재의 특성들에 대해 공통통념들 및 적합한 관념들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보편 통념들이 형성된다].
    그리고 3종 인식(직관적 지식)에 대해 "이런 종류의 인식은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간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2종과 3종 두 종류의 인식의 차이점은 인식 절차의 차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3종 인식은 '신의 어떤 속성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 나아가는' 반면 2종 인식은 3종 인식처럼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서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인식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개별 실재들의 이미지들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서 출발해 매우 많은 실재들을 지각할 수 있는 정신의 적성을 바탕으로 공통통념을 형성함으로써 얻는 인식입니다. 따라서 2종의 인식과 3종의 인식은 상반된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진태원샘 책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324p 인용)

    이제 다음 세미나에서 5부를 한번에 통과하면 <에티카>를 마치네요. "저도 에티카 읽은 남자예요!" ㅎㅎ. ^ ^

  • 2023-08-16 09:48

    봄날샘, 스압주의라는 경고에서부터 후기작성의 고단함이 마치 제 일처럼 와닿습니다.
    이런 제 감정은 우리가 유사한 존재라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비록 1종인식이라할지라도 우리를 이어주는 바로 그 상상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저는 4부가 정서의 예속을 말하면서도 우리를 그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서가 가진 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 같습니다.
    바로 그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성의 인도를 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점이 금욕과 이성을 결합시키는 스토아주의와 다른 점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성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스토아가 말하는 것과 다르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결과가 같다고 해도 과정은 다르니까요.
    호수샘이 스피노자적 접근의 이중성 혹은 복합성에 대해 주목했는데, 선형적 구조가 아닌 다층적 접근도 스피노자의 독특함인것 같고요.

    쟁점이 되었던 문제인데요.
    세븐샘이 정리해 주신 것처럼 2종인식이 공통적인 것(관계)의 인식이라면 3종인식은 독특한 실재들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2종인식도 3종인식도 영원의 관점 하에서의 인식이고 적합한 관념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구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식과정에서 2종인식과 3종인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진태원샘은 그것을 절차가 다르다고 설명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바로 이 점, 두 인식의 발생적 과정을 좀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비록 대부분 상상적 관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라 할지라도 2종인식을 경험하며 살고, 또 알든 모르든 3종인식의 은혜를 입을 때도 종종 있을테니 말입니다.

  • 2023-08-16 10:12

    하드코어 댓글이 자제되는 현상이 후기의 꼼꼼함으로 전이된것 같습니다. 이제는 후기도 녹화본을 다시 듣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올라가 있네요. 보는 사람이야 좋지만 쓰는 사람은 참 고역이겠습니다. 꼼꼼하게 순서대로 복기된 후기 아주 잘 읽었습니다. 이성은 고차원적인 것에도 저렴한 것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복기해 주신 봄날샘 감사합니다.

  • 2023-08-16 15:42

    급기야 후기에서 '스압주의'를 보는군요 ㅎㅎㅎ 고생하셨습니다.

    4부까지 오는 동안 세부 사항들에서 흥미롭고 헷갈리는 지점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에티카>가 대단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단선적으로, 간명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성의 인도에 따라', '신의 관점에 따라' 같은 말들을 보면 헷갈립니다. 요컨대 그 내용의 세부를 파악하려고 하면, 어느 지점에선가 제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스피노자의 '이성'보다 왜소해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약간은 신비로운 '신적 직관', '부처의 시야' 같은, 세계와 관계맺는 특정한 감각방식 같은 것으로 떠올려야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성'과 외연이 비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이 '이성' 또는 '인식'은 통상적인 '계산 가능성'과는 다른 종류인 것이죠. 그건 베르그손식으로 말하면 '직관'과 비슷한 듯 합니다. 환원불가능한 '통찰' 같은 것이죠. 그런 점에서 '모든 철학자는 스피노자주의자'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과학적 인식과는 다른 종류의 인식, 이를테면 '지혜'의 영역을 근대적 관점 속에서 구현해내고 있으니까요. 그는 근대에 다시 출현한 소크라테스일지도 모르겠네요. ^^

  • 2023-08-16 17:51

    자세한 내용정리 감사합니다~ 목요일 저녁에 내가 들었던 세미나가 맞나 싶네요. 저는 여전히 인간본성, 보편통념과 같은 용어들이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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