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2주차 후기- 정리37 세미나?

세븐
2023-08-04 14:57
427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의 표지                          (스피노자)

 

 

   "문제의 정리 37만 얘기하게 생겼넴..."(가마솥샘)
   " ㅋㅋㅋㅋ 장난 아니죠, 그냥 정리37 세미납니다."(정군샘)
   "4페이지 중 거의 3페이지군요 ㅋ"(호수샘)
   "(정리) 37만 읽고 들어가겠습니다."(아렘샘)

 

 

   스피노자 읽기 세미나 튜터인 정군샘이 2주차(세미나 범위: 정리 32~정리 58)  질문을 게시판에 올린 직후 카톡방에 쏟아진 말들입니다.
   전체 질문 15개 중 무려 9개(점유율 60%)가 정리 37의 정리와 증명, 주석에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두 페이지 분량의 주석 1, 2에 스피노자의 국가 형성 이론이 녹아있는 데다 논쟁적 단락이 포함된 게 질문이 몰린 이유인 듯합니다.

 

   세미나가 시작됐지만 정리 37로 본격 진입하기 전 관문 통과가 녹록지 않았습니다.
   모두 첫 질문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징크스'를 피하려는 욕망이 강했지만, 말랑말랑하게 여겼던 본성(nature)과 본질(essence) 차이에 대한 토론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본성과 본질은 진달래샘이 예시로 든 "어떤 실재는 우리의 '본성'과 합치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좋다"(4부 정리31)와 신(神)의 정의인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로 이뤄진 실체"(1부 정의6) 예시처럼 구분돼 사용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정군샘은 "(이성주의 철학자들과 달리) 스피노자는 본성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1부 정의1(자기원인)에선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 곧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인간 본성'에 특이한 뭔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선도 경계했습니다.
   어떤 때는 '운동과 정지의 비율'로 설명되는가 하면 '자기 보존을 위한 노력'(코나투스)으로 정의되기도 합니다. 즉 본성은 '형상이 이렇다'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정군샘의 다음 질문은 더욱 무겁고 뜨거웠습니다.
  유한양태로서 인간은 언제나 논리적으로라도 '실체를 매개해야만 한다'는 것과 이성주의자들의 금욕주의적인 '정념 통제 모델'이 스피노자에게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요요샘은 "정군샘이 스피노자를 왜곡하고 있다"고 직격한 뒤 "정념 통제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체를 매개로 하는 게 아니라 정서를 매개로 정념에서 출발한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호수샘도 "실체를 벗어나는 건 스피노자적인 게 아니다"라며 요요샘을 거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군샘은 "데카르트의 인격신은 아니더라도 스피노자는 이성의 자족감에 도달하는 건 신적 인식"이라면서 "신이 보증자는 아니어도 이성의 극한에 신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고 재반박했습니다.

 

  아렘샘도 "이성적으로 정념을 통제하는 건 맞다"면서 "실체를 매개로 하는 건 (그) 시대의 필연이었다. 인격신을 격파하기 위해 신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은 걸 시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정군샘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정군샘은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귀환>의 어느 장에서 '모든 문구에서 스피노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면서도 왜 니체와 흄이 필요했나? (신.실체의) 초월적 뉘앙스가 니체의 힘으로 사라진다. 스피노자 구조 안에선 인간의 반성적 능력이 해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논의가 스피노자를 넘어 들뢰즈, 니체로까지 확대되니 제 이해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초반 열기 때문에 50여분이 흐른 뒤에야 문제의 정리37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제 질문은 스피노자가 짐승에 대한 인간의 '권리 우위'를 말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짐승들이 인간들에 대해 갖는 '권리'보다 더 커다란 권리를 짐승들에 대해 갖고 있다"에서 언급된 권리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정군샘은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위계의 차원이 아니라 "역량이 크면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도덕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단순한 것이라고 바로잡았습니다.

 

   정리37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자연상태와 사회상태의 구분, 이것과 관련한 스피노자와 토마스 홉스간 시각차였습니다.
저와 요요샘, 스르륵샘, 호수샘, 여울아샘, 가마솥샘 등 6명이 '정리37 세미나'에 관련 질문을 내놨습니다.
   정리37 주석1은 국가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등 발생적 차원을, 주석2는 어떻게 통치하는가의 국가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준다는 게 정군샘의 설명.
   자연상태는 홉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회상태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본다는 게 스피노자의 독특함이라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을 쓴 뒤 다시 <윤리학>을 완성하려고 돌아왔을 때 정치와 관련된 홉스의 책 <리바이어던> 네덜란드 번역(1667)과 라틴어 번역(1668)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의 자연상태가 홉스의 그것과 흡사한 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홉스 따라하기'에 그치지 않고 사회상태와 관련해선 더 멀리 밀고 나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요요샘이 질문한 '자연의 최고 권리'와 여울아샘의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거창할 것 같던 '정리37 세미나'가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치'로 차분하게 마무리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밖에 정리45 주석에 등장한 '현명한 남자'(viri.남자)의 남녀 구분(스르륵샘)과 정리54 주석에 언급된 '우중(愚衆.vulgus)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질문(요요샘)도 있었습니다.
   현명한 남자와 정리66 주석에서 처음 출현하는 자유인(homo liber)에 모두 남성형(viri 및 homo)을 쓴 건 당시 시대적 인식과 성(姓)을 구분하는 라틴어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우중은 정념에 휩싸인 '어리석은 군중'으로 대중 또는 다중으로 번역되는 물티투도(multitudo)와 다르지만, 이성의 인도에 따를 여지가 있는 '양가적 존재'인 것 같습니다.

 

 

  세미나 범위 착오로 선행 학습(?)으로 한참 뒤쪽의 정리 68에서 질문을 뽑은 여울아샘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순발력을 보였고, 정리66 주석을 인용한 아렘샘은 '상이(相異)한'으로 번역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로 '질문 할당분'을 채우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세미나는 2시간 30분 만인 정각 10시에 종료됐고, 정군샘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히려 까다로웠던 것 같다"며 이날의 세미나를 총평했습니다.

 

   한편 이번 세미나 준비 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호수샘이 세미나 전 질문에서 정리37의 주석1 "살생하는 것을 금지하는 율법은 헛된 미신 및 여인의 동정심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이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의 오역을 주장했습니다.
   영어판(에드윈 컬리) 원문에는 "law against killing animals is based more on empty superstition and unmanly compassion than sound reason"여서 반대로 해석한 게 분명했습니다.
   진태원샘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문의한 결과, "중요한 실수 하나를 바로 잡게 돼 감사하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호수샘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궤도에 안착'시킨 것 같아 저도 보람이 있습니다.

 

   휴가철이 겹쳐 결석자가 있었지만, 우리들의 세미나는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주차는 4부 정리 59부터 4부 끝까지 읽기로 했고, 후기는 봄날샘이 쓰기로 했습니다.

댓글 8
  • 2023-08-04 19:52

    세미나가 생생하게 보입니다. 어쨌든 어려워요.

  • 2023-08-05 09:38

    세미나의 흐름이 생생하게 잡히는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정리 37 주석에서 밝혀진 바, 자연권이 사회상태에서도 그대로 보존된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통해 <정치론>을 읽을 때 세심히 살펴야 할 포인트 하나를 얻은 것 같습니다. 더불어 스피노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도 지난 주 세미나로부터 이어지는 흥미로운 문제제기였습니다.ㅎ
    뒤늦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리 37에서 진태원샘의 번역이 문제가 된 부분인데요, '짐승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율법'이 유대나 기독교 율법에 있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인데, 그걸 물어보지 못했네요. 유대교나 기독교 모두 짐승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금지도 없지 않나요?

    • 2023-08-05 10:54

      한 살 미만의 동물이나 임신을 한 동물을 잡는 걸 금지하는 율법이 유대교에 있다고 어디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 코셔(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동물만 먹어라) 관련 율법과도 관련이 있을 듯 하녜요.

    • 2023-08-05 11:00

      찾아보니 위키에 참고할만한 게 있네요. 613계명 위키링크 입니다.
      https://ko.m.wikipedia.org/wiki/613_계명

  • 2023-08-05 18:52

    오역을 주장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라틴어 원문을 직접 해석할 재주도 없고 그저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샘들과 같이 스피노자의 생각을 헤아려보자는 것이었는데 정군샘이 원문을 갖다 붙이신 걸 나중에 보고 좀 놀랐어요. 전에 역덕과 밀덕 분들의 관심을 받는 책을 동료들과 함께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독자 문의가 감사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괴로운 순간도 꽤 많았어요. 진태원 샘께 그날 곧장 연락이 갈 줄은.. 허허. 암튼 진태원 샘께서 책을 내시기 전에 하나를 고쳐서 내실 수 있게 되었네요. 저는 늘 흉내만 내볼 뿐이었던 진태원 샘의 대인배적 풍모가 멋졌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정군샘이 꼭 읽어보라고 하신 서신이 어떤 것인가요? 43번이 맞나요? 어젯밤에 서간집을 펼쳐본 김에 더 둘러보다 앞쪽의 서신 19번도 읽어보는데 "제가 혼자서 할 수 없는 모든 것 가운데 진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우정 관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제게 없습니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 2023-08-06 07:45

    후기의 정석입니다 세븐샘!
    재밌고 빠르고 꼼꼼하고~~^^

  • 2023-08-09 11:37

    [호수쌤과 세븐쌤의 협업(?)!]의 과정과 결과에 짜릿한 즐거움의 정서를 겪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휴가로 세미나를 결석했지만 텍스트는 충실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세미나 영상과 후기를 보며 역시 왜 세미나가 필요한지 여여하게 알겠습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저는 또 한 차례 변용을 겪었는데요,,(저도 죽은 건가요?! :0)___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에 대한 인식'에 대한 꽂힘이-> 스피노자의 '자살과 죽음에 대한 정리'에 대한 강한 간지러움으로 진정되고 억제 될 수 있었습니다.

    세븐쌤의 유쾌하고 세심한 후기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2023-08-09 12:17

    이제서야 그리고 세븐샘 덕분에 지난 시간 복습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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