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백기왕전열전) - 후기

가마솥
2023-06-1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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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정치력-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백기(白起)>

 

     1.  명장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무장. 전국책(戰國策)에서는 이름이 공손기(公孫起)로 기록되이어 있다. 백기는 상앙의 변법 이후, 장의의 연횡책과 범수의 원교근공책을 받아들인 진나라가 삼진(三晉)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때 두각을 나타낸 장군이다.

 

그는 당시 진나라의 왕이었던 소양왕 대신 권력을 휘두르던 소양왕의 숙부, 위염의 천거로 장군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훗날 진나라의 재상인 범수가 그를 견제했다고 한다. 외국인 범수는 내부 귀족파인 위염과 그 일파를 쳐내며 재상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백기는 6국을 상대로 73번 이상의 공성전을 치렀으나, 그동안 단 한 번도 패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받았다. 백기의 칭호인 무안군(武安君)의 의미부터 "싸우면 지지 않고, 병사를 잘 길러 나라를 평안하게 하였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칭호인데, 즉 불패의 명장이었다는 뜻이다.

 

역사적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기록상 종군한 30여 년 동안(소양왕13년~46년) 대략 165만명을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의 인구가 2,000 ~ 3,000만 남짓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싸울 수 있는 장정의 20% 가량을 몰살시켰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아직 국가제도가 제대로 완비되려면 한참 남았을 시기라 사실 정확한 기록이라고 볼 수는 없다[위키피디아] .

 

     2. 대학살(장평대전)

 

기원전 260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면서 조군 40만 명과 진군 수십만 명이 전투를 벌이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백기가 아닌 왕흘이 대장이 되어 승상 범수의 명을 받아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를 공략했는데, 왕흘도 진나라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었으나 조의 명장 염파의 지구전에 말려들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범수는 반간계를 써 염파를 모함해 실각시키고 젊고 병볍을 줄줄 꿰고 있으나 실전경험이 없는 조괄을 조나라 대장으로 세우게 만들었고, 동시에 조나라 몰래 백기를 진나라 대장으로 임명한다.

 

백기는 불리한 전황과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나라군을 도발하여 진지에서 끌어내었고, 진나라군을 후퇴시켜 도망치는 것처럼 꾸며 조나라군을 유인하는 한편 조나라군의 뒤쪽에 매복시켰던 별동대로 조나라군을 진지로부터 갈라놓아 대승을 거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병력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던 조나라군은 그 자리에 요새를 만들었는데, 백기는 이것도 포위하고 사마근의 기병을 이용해 조군의 후방 보급로 차단하였다. 결국 46일 동안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진 조군 40만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서 싸우다가 패해 항복하며, 조괄은 이 과정에서 전사하니 이것이 바로 장평대전이다.

 

전후 백기는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년병 240명을 제외한 "모든 적병을 구덩이에 파묻고 전후로 포로 45만을 참수했다."(前後斬首虜四十五萬人) 열전에 기록된 바로는 백기는 다음의 이유를 들어 학살을 저질렀다고 한다.

「前秦已拔上黨,上黨民不樂為秦而歸趙。趙卒反覆。非盡殺之,恐為亂」

「예전에 진나라가 상당 땅을 점령했을 때, 상당의 백성은 진나라에 속하는 것을 싫어하여 조나라에 의탁했다. 조나라 병사는 줏대가 없어 언행을 이랬다저랬다 한다. 모두 죽여버리지 않으면 난을 일으킬까 두렵다.」 또한 진나라의 군공수작제에 따르면 죽인 적의 머리를 갖고 가야 신분 상승이 되는데, 잡은 포로들을 풀어주는 순간 진나라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전부 죽였다는 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기의 포로 학살은 흔히들 생각하는 피에 굶주린 학살자들과 달리,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저지른 전략적 학살이었다 볼 수 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이 포로 45만명을 학살한 사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상 흔치 않은 수준의 인류에 대한 범죄를 옹호하는 정당한 논리가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나치 독일이 자기들 나름 정당한 정치, 문화, 인류, 역사학적 근거와 철학의 바탕에서 유대인 학살 등을 저질렀지만 그래봐야 용서 못 할 학살 범죄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3.  단기적 이득과 장기적 이득(포로 학살)

 

태사공은 “자(尺)가 비록 긴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긴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짧고, 치(寸)가 비록 짧은 것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짧은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길다‘는 속담을 백기의 평가 전문(前文)에 인용한다. 나는 태사공의 의도는 아니지만, 장평대전이 긴 역사 속에서 보면 딱 맞는 비유로 보인다.

 

고대 ~ 중세에도 장평대전의 학살은 계속해서 비판받아왔다. 삼국지로 유명한 하안도《백기론》이라는 저서에서 백기의 학살을 대놓고 비판할 정도였는데, 논지는 "이렇게 학살을 하면 대체 누가 항복을 하냐?"라는 것. 또한 진나라는 호랑지국(虎狼之國)이라 불리며 강대국인 것은 둘째치고 다른 국가들에게 힘만 센 오랑캐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자국민을 법가 사상으로 가혹히 통치하는 것과 더불어 장평대전과 같은 잔혹한 전쟁 때문이었다.

 

특이한 점은 학살에 대해서는 왕과 범수도 문책하지 않았으며, 사서에서는 "진나라 사람들이 백기는 죄가 없었다고 여기며 제사를 지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진나라 사람들은 백기의 행동에 문제가 없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당대 진나라 지도부와 사람들의 마인드는 전선 지휘관이 포로 수십만 명을 학살해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진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학살들이 단기적으로 진나라에게 이득을 가져왔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백기가 죽은 뒤 50년 후) 초한쟁패기와 신안대학살의 단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나라 병사 20만이 항복한 뒤 결국 신안(新安)에서 초나라의 무장인 항우에 의해 불시에 습격을 받아 태반이 죽고 살아 남은 자들도 모조리 생매장을 당한 신안대학살을 당한다. 진나라가 해왔던 학살이 항우의 증오심을 키웠다는 것이며 또한 초나라군에서 이러한 학살에 반발한 자들이 극히 적었으며 지시를 군말없이 따랐다는 것을 보면, 항우가 유독 그러한 학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에게 당한만큼 갚아주자!!!"는 심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평대전과 같은 전쟁들이 과연 전국칠웅의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그리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도 타국의 국민들을 어떻게 보았을지, 이것을 생각한다면 진나라가 통일을 하고 나서도 빠르게 멸망한 이유를 이 전쟁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4.  백기의 정치력(몰락)

 

그러나 장평대전 이후로 백기는 몰락한다.

 

장평대전 직후 백기는 바로 조나라 수도인 한단으로 쳐들어가 멸망시키자고 주장했지만, 범수는 정적인 백기가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게되어 장차 있게 될 정치적 보복을 염려했고, 결국 조나라의 세객인 소대(蘇代)의 설득에 넘어가 백기가 공을 쌓지 못하게 소양왕을 설득해 몇 달 이후 한단을 공격할 것으로 결정했다.

 

무안군이 이를 듣고 이 일 때문에 응후 범수와 사이가 나빠졌다. 범수의 모함 이후 한단 공성전이 실패로 끝나고, 진왕은 다시 백기에게 지휘를 맡기려고 하였으나 백기는 계속 병을 핑계로 전쟁에 나가질 않았다. 이 와중에 백기는 "진나라가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지금 이렇게 되었구나!"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분노한 진왕은 그를 귀양 보내고 자결을 명한다.

「我何罪于天而至此哉?」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良久,曰: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我固當死。長平之戰,趙卒降者數十萬人,我詐而盡阬之,是足以死。」

「나는 죽어 마땅하구나. 장평 땅의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내가 속이고 모두 구덩이에 파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야 한다.」고 유언을 남긴다.

 

이 유언을 "그런 공을 세웠는데 나를 죽이냐?"는 힐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학살을 저지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찜찜함이나 죄책감이 남았을 수도 있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해왔겠지만, 막상 그 나라에 버림받으니 후회의 감정이 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결국 백기는 중국사를 넘어 세계사에 길이 남을 학살자이자 전쟁 영웅으로 남았다. 태사공은 전쟁에서는 적정을 헤아려 능란한 인기응변과 기계를 무궁무진하게 내어 이름이 천하를 진동시켰으나, 응후(범수)와의 틈에서 생긴 자기 환란을 구제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난 그것을 백기같은 장군들에게 부족한 정치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왕전(王翦) >

 

    1. 명장.

 

진(秦)나라의 무장으로 빈양 동향 사람이다. 당시 남아 있던 진나라의 주변국을 모두 멸망시켜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킨 명장이다. 왕전과 그의 아들 왕분(王賁)이 멸망시킨 국가는 연나라,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 제나라를 비롯한 다섯 국가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백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게다가 또 다른 진나라의 명장인 백기와 달리 학살자의 이미지는 없으며, 처세술도 능통하여 의심많고 성격도 안 좋았던 진시황 휘하에서 진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대의 지휘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렸다. 또한 초나라를 상대로 지구전에 들어갔을 때 왕전은 매일 병사를 쉬게 하고 목욕시키며 잘 먹이고 정성껏 어루만지며 친히 병사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병사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2.  왕전의 처세

 

진왕은 교만하며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을 지녔으며, 신하에 대해 종종 가혹한 처벌을 했다. 왕전은 뛰어난 전과를 올린 장군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진왕도 그를 점점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진왕은 초나라 정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왕전은 적어도 60만은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신은 20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진왕은 이신의 안을 택했고,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 왕전은 하직하고 빈양으로 물러났다. 이신과 부장 몽염의 20만 대군은 초반에는 승승장구했으나, 초의 명장 항연의 책략에 대패하고 말았다.

 

다급해진 진왕은 왕전을 직접 찾아가 다시 복귀할 것을 청했다. 재차 60만 대군을 요구해서 진왕의 승낙을 받은 왕전은 몽무를 부장으로 삼아 초나라를 정벌하러 출전했다. 이 60만 대군은 당시 진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이어서 진왕은 내심 반역을 걱정했다. 이를 간파한 왕전은 출전하기 전에 자신은 진나라를 위해 싸웠음에도 아직까지 제후에 임명되지 못했다고 호소하며 보상을 얻고 싶다고 말했고, 초나라군과 대치하는 동안에도 수차례 사자를 보내서 자손 대대로 먹고 살 수 있는 많은 토지와 저택을 보장해 달라고 재촉했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고 왕전에게 묻자, 왕전은 반란을 걱정하는 진왕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라를 통째로 먹을 생각이라면 굳이 왕에게 보상을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역으로 지속적으로 이런 하찮은(?) 재물들을 요구한 것이다. 자신은 나라를 집어삼킬 위험 분자가 아니라, 수당이나 보채는 한낱 늙은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다.

 

왕전의 보신책은 단지 본인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전국시대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변한 전쟁의 속성을 파악한 왕전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장기전을 계획했다. 그는 이전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초나라군을 약화시키고 쉴새없이 전쟁에 동원되어 지친 진나라군을 쉬게 하다가, 단번에 승기를 잡아 전세를 기울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장기전은 군주에게 의심을 받아 틀어질 위험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전 세대에는 멀쩡한 지휘관이 교체(염파->조괄)되는 바람에 허무하게 결판이 난 장평대전이라는 전례가 있었다. 더군다나 왕전은 이미 진왕의 눈 밖에 난 전적이 있었다. 염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왕전은 진왕을 안심시켜야 했을 것이다.

 

원래 최고위층은 외롭다. 그 만큼 의심이 커지는 법이니, 현대에도 비선라인의 귀뜸 한방에 훅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왕전의 보신책은 적중했다. 진왕은 왕전이 사소한 욕심을 부리며 자신에게 졸라대는 모습에 크게 안심하며 그를 교체하지 않았고, 왕전은 초나라군을 상대로 1년 동안 장기전을 벌일 수 있었다. 대치하는 과정에서 진나라의 병사들은 투석, 멀리뛰기 시합을 할 정도로 체력이 쌓였고, 이를 들은 왕전은 이제야 싸울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초군은 수차례 싸움을 걸어도 진군이 응하지 않자 결국 후퇴했고, 기회를 잡은 왕전은 단 한 번의 전투로 초군을 대대적으로 격파했다. 이후에는 최후의 저항을 하던 항연과 창평군을 몽무와 함께 출진하여 죽였고 수도까지 점령하여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왕전은 이 기세를 앞세워 장강을 건너 남진해 백월(百越)까지 공략했다.

 

이 대공을 인정받아 왕전은 무성후(武成侯)에 봉해졌고, 아들 왕분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나라의 잔당은 물론이고, 위나라와 제나라도 멸망시켰다. 부자가 여섯 나라 중 다섯을 멸망시킨 것이다. 덕분에 왕씨 가문은 몽오, 몽무, 몽염으로 이어지는 몽씨 가문과 함께 진나라 군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 되었다.

 

      3. 평가

 

태사공은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의 폭정을 막지 않고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하였다며 왕전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나아가 중국의 전제 군주제를 생각해 보면, 쿠데타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왕전이 진시황의 폭정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태사공의 비판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백기, 염파와 달리 굉장히 처신을 잘했고 정치력이 뛰어났다고 생각된다, 왕전은 의심 많기로 유명한 진시황 밑에서도, 재치를 발휘하여 받아낼 수 있는 인적/물적 지원을 전부 받아낸뒤, 자신의 작전까지 최고 권력자의 승인을 받아내 결국은 대국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왕전만큼 큰 공을 세운 백기는 장평대전 이후 입안한 작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각하여 유배당하는 수모를 겪다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염파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밀려나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 다니다 결국 쓸쓸히 죽었다. 장수는 전투만이 아니라 윗선과의 소통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전근대의 장군에게 왕과 밀고 당기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치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산을 잘 타내는 것은 모양새가 좀 없어보여서 그렇지 현대 국방장관들에게도 정말 중요한 능력이지 않은가.

댓글 3
  • 2023-06-12 13:18

    “자(尺)가 비록 긴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긴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짧고,
    치(寸)가 비록 짧은 것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짧은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길다‘는
    속담을 저는 '백기는 밖으로 전쟁에서 천하를 호령하였으나,
    안으로 자국내에서는 자기 환란을 구제하지 못했다' 라고 읽었습니다.
    후기글에서 "나는 태사공의 의도는 아니지만, 장평대전이 긴 역사 속에서 보면 딱 맞는 비유로 보인다" 라고
    하신 가마솥선생님의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논문같은 후기글입니다.
    여러번 정독(精讀)합니다.
    저희만 읽기가 아깝습니다~

    신안대학살의 단초가 장평대전의 지옥같은 학살이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국시대의 다툼과 승리가, 잃은 것인지 얻은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한때의 이익은 후일의 해악이 되고,인과를 찾자니 상상과 추측만 하게하는 열전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흘렀고 그 무수한 사람들은 없어졌다는 게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나, 죽인 자는 바른말을 안할거고, 죽은 자는 말을 할수 없고,살아남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겠지요.
    이 열전은 읽고 나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하라 야스히사의 '킹덤'에 나오는 장평대전의 장면이 작가의 상상이 아닌 현실이란게
    확 와닿았습니다.
    좋은 후기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까지 마저 읽어야, 마무리가 된다는 곰곰선생님의 말씀이 더욱더 이해가 갑니다.
    후기는 여러모로 축복이네요~~ 

    長平弔古 명나라 시인 복여량의 시

    趙兵四十萬 生聚自何年 조나라 병사 사십만, 언제부터 모였던가?
    朝爲秦坑 是孰驅之前 하루아침에 진나라에게 생매장당하니, 누가 그 앞에서 말 몰아 지휘했나?
    陰雲慘白日 西風號九泉 음산한 구름이 환한 해 가리고, 서방에서 부는 바람 구천에 울부짖네.
    林林億兆衆 竪子頭可縣 하고 많은 억조 군중이니, 더벅머리 아이의 머리 정도는 매달 수도 있었으리.
    甘心受大戮 白骨深谷填 널리 죽임당함을 달게 받아서, 백골이 깊은 골짜기 가득 메웠네.
    磷火夜夜明 難消萬劫冤 도깨비불 밤마다 일어나 비추니, 만겁의 원한은 풀기도 어려워라.
    快哉杜郵劍 庶幾稍有天 통쾌하도다 두우의 검이여, 아마도 하늘은 있었나 보구나.
    丹河流不盡 此恨終綿綿 단하의 흐름은 다하지 않으니, 이 원한 마침내 면면히 이어지리.

    (杜郵劍:두우杜郵로 쫓겨난 뒤 연이어 자결을 명받은 백기와, 결국 받아들이고 자결용으로 하사받은 칼 및 그것으로 자결한 백기의 죽음을 가리킨다.)

    복여량도 '백기가 잘 죽었다'고 쓴 거 맞지요~~~

    • 2023-06-12 15:57

      그러니까요.
      전쟁이라는 것이 위정자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포로 40만의 죽임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 죄를 물은 것이니
      후대에 길이길이 자신(백기)의 죄를 묻는 일을사 벌였으니,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실패인지는
      도척의 길이는 대어 보아야 알수 있듯이 역사가 알려 주겠지요.

      해서, 사마현님이 속상해 하는
      현재의 권력, 윤가와 한가는 칼부림은 길어야 10년이고
      길이길이 그 실정이 회자될 것이니
      넘 속상해 하지 마세요....ㅎㅎ

  • 2023-06-12 22:18

    아니, 좀더 연구를 해보시겠다고는 하셨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우와~ 쵝오!! (연달아 후기를 양보(?)했지만 매번 뿌듯한 일인입니다 ㅋㅋ)

    저는 이번 열전에 나왔던 그 많은 전쟁 관련 한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쟁 양상이 얼마나 다양해지고 험악해졌는지가 보여서 씁쓸...
    장평대전은... 참.... 얽힌 사람과 정치도 너무 많고 희생된 사람도 너무 많아서 여러모로 얘기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평대전에서 백기의 작전이 애초에 성과 영토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들은 죽일 것까지 계획하고 치렀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네요. 그럼 백기는... 휴머니즘적으로는 너무 나쁜 사람인데...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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