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입문] 9회차 질문

토용
2023-08-26 00:46
126

이번 주는 지난 주와 너무나 다른 신인류의 탄생을 본 듯합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말이죠 ㅠㅠ

 

p.735

부제가 '실존과 아이러니'이다. p.741 한 페이지에서만 '아이러니한 열정' '아이러니의 사용' '아이러니한 거리두기'라는 말이 나온다.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아이러니는 어떤 의미였나? 또 '이중성찰'은 어떤 의미인지?

 

p.744

키르케고르의 '내향성'이라고 하는 도덕적 의지를 기반으로 한 윤리는 칸트의 윤리처럼 내 행위가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즉 좋은 시민이 아닌 윤리적 인간을 말한다는데, 삶에 대한 태도와 실존적 열정이 다른 윤리적 인간의 도덕적 의지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열정과 성실한 내향성'?

 

p.777

니체는 형이상학이 가변적인 감각 세계와 정적인 초월적 세계의 이원론으로 보았다. 니체는 생성과 참된 존재간의 이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니체는 가변적 감각 세계를 생성으로, 정적인 초월적 세계를 참된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니체의 생성과 여기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의 생성은 다른 의미인 것 같은데 같은 용어를 써서 헷갈린다. 내가 잘못 독해한 것인가?

댓글 6
  • 2023-08-26 10:12

    p 740. 키르케고르의 이중성찰은 무엇인가요?

    p 750. 주관성이 진리다 저에겐 문장자체로도 애매하며 설명도 어렵습니다 설명부탁합니다.

    p 778. 니체가 신과 기독교와 함께 거부하는것은 존재론을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도덕을 존재론적으로 만드느것 이라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 2023-08-26 10:30

    키르케고르는 세 단계(심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의 질적 도약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그리스도의 실존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p.749 “역사적 신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다. ~ 그리스도는 주체이자 관계인 것이다. 인간적 관계는 신앙 속에서 영원한 열정으로 신적인 관계와 관계 맺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진리 속에 존재함”이다.” p.750 “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신과의 관계”이다. 인간의 실존을 신앙 안에서 설명하는데요. 그렇다면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일말의 상대도 안 된다는 건 아니겠지요? ~^^ 세 단계 중 윤리적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건지...
    p.751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문제에서 요점은 바로 삶과 살아 있는 신에 대한 우리의 실존적 관계의 성질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주관적 진리”를 중심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 ~ “주관적 진리”라는 표현은 오직 인간적 관계,~ 즉 주관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결정적이다. 첫째, 문제 해결에 사용될 수 있는 어떠한 객관적인 사태나 논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삶에 대한 열정적이고 내향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p.752 “키르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이 단지 “주관적 진리”의 문제, 즉 내향적이고 열정적인 신앙의 관계의 문제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키르케고르는 그리스도가 “객관적 진리”로서 살고 죽었다고 믿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 파악된 역사적 사건이다.”, “키르케고르의 주목적은 ~ “주관적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이는 것이었다.” p.753 “역사적 신에 대한 열정적 신앙은 모든 역설과 도약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역설이자 도약이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을 찾아가는? 실존을 마주하는? 자기 본질을 찾는?(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ㅠ)과정으로 이런 역설을 얘기하는 건가요?
    음...이러다 책을 다 인용하게 생겼네요. 주절주절 길어지는 요지는 얼추 3단계의 과정(도약?) 까지는 따라가는 것 같은데요... 음... 다음은 잘 모르겠다는 고백입니다 ㅎㅎㅎ
    p.789 “이 세 개의 사유 동기들(위버멘쉬 이론과 영원회귀 이론 그리고 힘에의 의지 개념)이 서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 2023-08-26 11:55

    787쪽 니체는 이 사상을 하나의 가설로, 하나의 “사유 실험”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모든 것이 어길 수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일어난다는 생각을 토대로 한다. …… 이것은 우주가 유한하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위에 글에 대한 각주 19)에서 ‘이것은 문제가 많은 재구성이다. 아마도 니체는 동일한 인물들이 다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유형의 인물들이 회귀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는데요. ‘개념-뿌리들’에서 잠깐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므로 들뢰즈가 말한 ‘차이와 반복’을 만든다고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왜 ‘동일한 인물’이 아닌 ‘동일한 유형의 인물’인지가 이해가 안됩니다. ‘동일’한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인가요? 그렇지만 788쪽에서 보면 저자들은 다시 “종말인을 극복하고 ‘위버멘쉬’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그들이 단지 영원한 주기 속에서 반복되는 인물들일 뿐이라면—과연 의미 있는 것인가?” 즉 ‘동일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매번 해석이 다른 이유는 니체가 명확하게 ‘영원회귀’에 대한 개념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나요?

  • 2023-08-26 13:24

    749쪽)앞서 헤겔을 비판하면서 키르케고르는 우리 각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기의식과 같이 매우 개인적인 것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이 형성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나의 죽음이나 나의 의식은 어디까지나 나의 것임을 그는 주장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도덕과 종교가 보존하고 있는데, 헤겔에게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라는 사실, ‘독특한/고유한 개별자’라는 의미의 ‘힌 엥켈테’를 실존으로 키르케고르는 제시한다. 그런데 이것이 종교적 단계로 도약하여 종교적인 인간이 되었을 때, 이것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리스도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했는데, “역사적 신에 대하여 내향적이며 강렬한 신앙의 관계를 갖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프로테스탄트적인 것과 그렇게 많이 다른가? 역사적 신이라고 쓴 데도 있지만, 살아있는 신이라고 쓴 데도 있는데, 신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774쪽)키르케고르도 읽고 니체도 이어서 읽어서 그런지, 이들을 혹은 그들 시대의 키워드로 진리/가치/신과 같은 개념들을 두고 씨름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가 다 죽어가던 신을 개인의 내면에서 도덕과 종교의 영역에서 겨우 한 자리 마련해 살려두었다면, 니체는 아예 그 신이야말로 금욕주의적 이상의 최고봉이라면서 뒤집는 것 같다. ‘신은 죽었다’고. 심미적 인간을 허무주의로 봤던 키르케고르, 이것은 “실존이 목적, 통일성, 목표 그리고 진리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무가치함의 감정이 생긴다”고 본 니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비슷한 입장, 서로 다른 해결의 길? 키르케고르의 주관성의 진리와 니체의 관점주의는?

    782쪽)<도덕의 계보학> 인용문 아래, 저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인용문의 내용(이수영샘의 맥락에 내가 경도되어서 그런가)과 맞아떨어지는 질문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들이 니체에 대해서는 대놓고 공부를 하지 않았거나 업데이트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리언이어서 그런가? 혹은 니체를 나치와 관련해서 읽는 독법도 있고 그래서 저어기하는 걸까? 뒤의 위버멘쉬/힘에의 의지=권력의지/영원회귀는 좀 더 그렇다. 설명을 해도 모자랄 판에 질문만 하고 있다.
    게다가 니체를 ‘실용주의’라는 말과 엮는 것도 좀 그렇다. 791쪽에 의하면, 니체를 ‘삶에 도움이 된다’ 즉 “그 해석들은 삶과 삶에 대한 긍정에 유용한 것들이다”라는 언급과 연결하면서, 니체가 가진 진리 개념을 ‘실용주의적 진리 개념’이라고 봤다. 다른 말은 없나?

  • 2023-08-26 13:30

    740p.
    키르케고르가 실존에 대한 통찰을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가 직접 의사소통을 넘어 수사와 문학적 표현을 통해 ‘이중 성찰적 의사소통’을 제시한 맥락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다른 방법인 ‘아이러니한’ 태도랑은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요? 수사나 문학적 표현 속에 아이러니한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될까요?

    782p.
    니체가 과연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지배적이었던 형이상학과 기독교적 사상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으나, 인간 모두가 위버멘쉬가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고, 위버멘쉬로 나아갈 필요는 있지만, <니체강의>나 과거에 읽은 <차라투스트라..>에서는 인간 모두가 그럴 수 있다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뉘앙스로 들리진 않았거든요. 이 지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 2023-08-26 21:53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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