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모로
2024-02-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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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절개도 없이 그냥 아이를 낳은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다. 아이가 빨리 나오지 않아도 촉진제를 놓지 않아, 종일 진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엄마라면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산원에서 진행하는 엄마 교육도 듣고, 준비하던 중. 아뿔싸. 내가 딱 출산 예정인 그 주에 조산사가 스위스에 학회 출장을 가신다는 게 아닌가. 어머나! 왜!! 하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병원은 자연주의 출산법이라고 부르는, 르미에르 분만을 한다는 병원이었다. 대기실이 따로 없이 원룸처럼 생긴 공간에 침대 하나와 의자 등이 간단하게 꾸며져 있었고, 거기서 출산까지 같이 진행했다. 엄마 집에 있을 법한 친근한 이불이 있고, 베개도 같이 놓여있었는데, 출산할 때 조도를 낮춰주고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점점 진통이 강해지자 무서웠지만, 그 순간에 네팔 안나푸르나에 올랐던 기억이 났다. 내가 무모하게 히말라야산맥을 장비도 없이 올랐을 때 느낀 건, 아름다운 자연도, 밤이 되면 쏟아지듯 떨어지는 별도 아니었다. ‘모든 고통은 끝난다.’라는 진리. 다리가 터질 듯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그 날의 등산이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자, 간호사가 와서 무통 주사를 맞겠냐고 물어봤다. ‘당연하죠!’ 나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까지 했으면서도, 그 순간에는 진통을 쌩으로 감당할만한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척추로 약이 스르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온몸에 약 기운이 돌았다. 아! 이게 바로 무통 천국이구나.

 

 “선생님! 이제 정말 나올 거 같아요. 아파요!”

 

  무통을 맞았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약을 한 번 더 넣었다. 나는 이 순간을 내내 후회했다. 조금만 더 참을걸…. 약이 너무 세서 하반신이 얼얼해진 탓에 내가 출산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아이가 언제 나오는지 느낄 새도 없이 간호사가 위에서 배를 눌러대고, 힘을 주라는 박자에 맞춰 온 힘을 다할 뿐이었다. 자다가 불려 나와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멍한 얼굴로 아이를 받은 의사 선생님이 내 배 위에 아이를 올려주었다. 시커멓고 쭈글쭈글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 너무 못생겼잖아? 내가 다른 것도 아닌 사람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실감이 안 갔다. 정말 내 배에서 나온 게 맞아? 옆에서 남편이 손을 떨며 탯줄을 자르는 모습이 보였다. 걱정과는 달리 나는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어리둥절할 속도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만났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다. 이번에는 출산이 아닌 자폐 검사를 위해서 말이다. 어릴 때부터 몇 번의 검사를 받았고, 개인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큰 병원에도 가봐야지 싶어서 몇 달을 기다려서 온 대학병원이었다. 기본적인 풀베터리 검사에는 웩슬러 지능검사와 사회 성숙도 검사 등이 포함되어있었고, 거기에 K-CARS라는 자폐 평정척도 검사를 추가했다. 아이가 임상심리사와 풀베터리 검사를 받고 있을 때, 나 역시도 대기실에 앉아 기나긴 설문지를 작성했다. 몇십 장은 될 거 같은 길고 긴 문항들은 언제 옹알이를 시작했는지, 언제 걷기 시작했는지부터 시작해서 공을 던지는지, 젓가락질하는지 등 수많은 물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거 같았다.

 

  나는 길고 긴 문항에 답을 하면서 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떠올렸다. 내가 수만 번 되새겨본 순간이었다. 그 생생한 기억, 나는 많은 날 동안 기억을 조각조각 잘라서 떠올렸다.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을까 하고.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챈 부모들은 대부분 원인을 자기에게서 먼저 찾는다. 내가 임신 기간에 뭘 잘못 먹지는 않았을까, 엽산이나 철분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아니면 유전의 문제일까 등 답이 없는 수만 가지 문제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계획 임신을 했기 때문에 음주나 약물을 한 적은 없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하려고 노력했다. 약간 우울하긴 했지만 ‘그런 거로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출산할 때 무통 주사를 맞지 말 걸 그랬나? 아니 출산하는 날 수간호사가 너무 불친절했어. 아이가 나오는데 기다려주지 않고 위에서 배를 막 눌렀다고. 아니야 근데 제일 큰 문제는 태어나자마자 내 동의도 없이 B형 간염 주사를 맞힌 거였어. 태어난 당일에 예방주사라니…. 조금 더 자연적으로 아기를 낳을 걸 그랬어. 아니 조산사에게 아이를 낳으려고 했는데, 마침 그 주에 그 조산사가 스위스로 학회 발표를 갔잖아.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생각. 한동안은 그랬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잠을 못 잤다. 어디에서 문제였을까 하고.

 

 

  아이가 다른 걸 처음 안 순간 같은 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는 정말 까다로웠다. 많이 울었고, 아침에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 자기 직전까지 울었다. 엄마 껌딱지라 내 품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고, 잠들기를 어려워 했으며, 배변을 너무 할 정도로 늦게 가렸다. 거기에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클 정도로 키가 큰 우량아였다.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거웠지만, 꼭 그게 나만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드니까.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늘 일반적인 사람들과 주파수가 달랐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쉽게 하는데, 아주 쉬운 일들을 못 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너 살이 되자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지만, 대화가 잘 안 되었다. 그때 빠져있던 퍼즐은 기가 막히게 맞추는데 젓가락질은 지금까지도 잘하지 못한다. 수학을 공부한다 쳐도 분수의 개념이나 도형 문제 같은 건 단번에 이해했다. 하지만 연산을 시작하고 짝꿍 수의 개념을 가르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3+7, 4+6 같이 더해서 10이 되는 개념을 이해해야 받아 올림이 가능한데 이게 정말 안되는 거다.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엄마가 키덜트라 아이랑 같이 로봇 놀이도 하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아이는 책만 봤다. 책도 도저히 읽고 있는지 아닌지 모를, 사전류를 좋아해서 매일매일 똑같은 과학사전이나 국어사전을 봤다. 정말 이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각종 발달 검사와 지능 검사 등을 하게 되었다.

 

 

  다시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던 그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삼성서울병원은 소란하고, 예약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진료가 길어져서 대기하는 인파로 북적였다.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아이를 앉히기 위해 핸드폰을 쥐여주었다. 뭐라고 이야기하실까. 사실 검사 전 상담에서 “누가 봐도 아스퍼거로 보여 검사할 필요가 없지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진단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예상대로 아이는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 아스퍼거, ADHD를 진단받았다. 그러면서 지능이 아주 높은데, 의외로 전문직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앞으로는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게 될까를 생각했다. 통통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퍼서 말랑거리는 볼로 밀어 넣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본다. 괜찮다가도 이런 날이면 마음이 또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의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얼마 전에 사주를 보러 갔거든.”

“응 그래? 뭐라고 하든?”

“첫마디가 지안이가 자폐냐고 하더라?”

“응? 그런 거도 나와?”

“애가 좀 아프네…. 하면서 그러더라고. 그런데 18살이 되면 다 좋아진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별로 티 안 나게 잘 클거래. 애가 똑똑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네.”

 

  나도 사주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은 어느 정도의 틀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주의 어떤 부분에서 장애를 볼 수 있을지 그런 것을 배운 적은 없다. 나는 엄마에게 나도 그분에게 사주를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나이가 많아서 더 사주를 보지 않는데, 아는 사람 소개를 겨우 한 번 본 거란다. 우리 가족의 사주는 좋으니 다시 볼 필요도 없다고 했다며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왠지 예전에 “아이에게 복이 많네.” 같은 이야기를 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던 스님 같은 느낌으로 한 할머니의 위로를 들었다. 18살이 되면 괜찮아진대. 어느 근거인지도 모를. 도달하기 전까지 확인할 길도 없는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게 없을지도 몰라. 모든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그 위치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라. 아이를 키우는 고비고비마다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단순하게도 나는 이런 작은 위로들을 모아서 살고 있다.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4
  • 2024-02-25 09:10

    아, 모로..
    이 짧은 글에 여러 번 미소지었다 울컥했다 했네유.
    점점 기다려지는 연재에요.

  • 2024-02-25 16:34

    우리는 어떤일의 결과에 자신을 먼저 탓하게 되죠.
    근디 이번에 신유물론 세미나를 해보니 그런 생각패턴은 아주 인간중심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요.
    우리 인간종 말고 수많은 생명종, 사물들이 얽혀 들어가며 각자가 행위성을 가지고 일이 벌어지는것이라 우린 어떤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 수 없죠.
    그런점에서 신유물론이 참 매력적인것 같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더 더더 많다는 사실이..ㅎ
    그리고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을 만드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존경합니다.
    글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2024-02-26 16:10

    이렇게 지안이가 왔구나! 모로에게도 우리에게도!

  • 2024-02-26 17:28

    암만 생각해도 쌤이 잘 한 것만 있는 것 같은데요? ^^
    신생아 지안의 통통한 손가락 넘 귀엽!

  • 2024-02-26 17:35

    모로님. 글 잘 읽었습니다!
    밝은 모로님께 한 수 배웁니다.

  • 2024-02-26 17:37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웃게 하는 작고 큰 기쁨과 위로를 함께 나누어가요.

  • 2024-02-26 17:59

    어린 지안이를 보니 새롭네요. 저렇게 꼬물이였는데… 지금은 훌쩍 커서 저의 키는 진즉에 따라잡아서 ㅋ 꼬물이가 이렇게 클 동안 모로의 시간들이 느껴집니다. 🥹

  • 2024-02-27 08:51

    나처럼 김치를 좋아하고, 계후를 좋아하는 지안이~~^^
    저도 다음 글이 벌써 기다려져요. 잘 읽었어요 모로샘.

  • 2024-02-27 09:06

    저도 천천히 지안이의 세계와 만나는 중이네요.
    모로님, 글 고맙습니다

  • 2024-02-27 22:21

    모로님~ 글을 읽는 동안 수많은, 빛나는 순간들이 지나가네요잘 읽었어요 ^^

  • 2024-02-27 23:04

    너무 너무 귀한 이야기, 모로샘 이 연재 대박 예감...(이미 대박인듯^^)
    매달 미리 엿볼 수 있어서, 좋아유... 작은 위로들 같이 모아나가요!!

  • 2024-02-28 15:38

    글이 단숨에 읽히네요.
    찡하고, 웃기고, 공감 되는 글.
    잘 읽었어요.

  • 2024-03-03 14:05

    임신과 출산... 자연주의출산에 대해 요즘 이것저것 찾아보며 고민하고 있었는데 모로님께 물어봐야겠네요^^
    지안이는 참 좋겠어요. 이렇게 따뜻하고 반짝이는 엄마라니!

  • 2024-03-05 11:01

    지안아 반가와!!
    탁월한 지안에게 번번히 놀라는 중인데, 여기서 다시 만나네 ㅎㅎ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43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6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90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387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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