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 모로

문탁
2023-12-31 10:03
102

 

 

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어려운 경우, 체중의 부적합함의 문제 등까지 포함한다면 어떨까. 장애는 각종 기관의 내부 규정에 따라 달라짐으로 사회적 요인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러므로 장애는 의료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건물을 출입하거나 거리의 낮은 보도블럭을 넘지 못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장애를 만든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비장애중심주의로 설계되어 장애인들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비장애중심주의적 관점은 우리가 동물을 대할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되고, 효용성이 없어졌다고 생각되면 도축된다.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폐기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변형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생각에서 나온 결과다. 특히 지능은 인간이 만든 지표다. 하지만 이를 이용해 동물을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든다. 동물은 말하고 싶은 것을 ‘언어’로 말하지 않을 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는 장애의 경우에서도 비슷하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돌보거나 변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는 고통이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너머에는 다양한 세상이 있는데, 인간중심적인 세계관 탓에 그 너머의 것들을 놓친다. 저자는 계속해서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배우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불구의 시간(crip time)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고 우리의 시간 감각이 경험과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중략) 옷을 입거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우리에게 시간이 온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 극심한 지적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나 매우 다양한 동물들의 시간은 어떻게 다시 개념화될 수 있을까? (중략) 싱어의 시간 개념은 진보와 미래 지향적인 목적이라는 서구의 통념에 기초하는 반면, 불구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이란 가변적이며 실제로 우리의 신체 형태와 함께 바뀌고 있다고 문제제기 하도록 한다. (『짐을 끄는 짐승들』, 232p)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 철학자로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동물 해방』이다. 그는 동물 권리문제를 철학의 주요 담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을 ‘문제적인 방식’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의 비판도 받는다.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비극으로, 결여로 생각한다. 이는 미국은 물론 다른 많은 곳의 지배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리주의 관점에서 왜 장애가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테일러는 2012년 버클리를 방문했을 때 피터 싱어를 직접 만났다. 둘은 서로 만나 장애가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소통의 한계에 부딪힌다. 테일러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보기에는 우리가 그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가요? 우리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가요?” 싱어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사람들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물어요. 모든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는 알약을 준다면, 그 알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알약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테일러는 대부분의 장애인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자기가 가진 창조성에 대해 언급한다. “장애는 이 세계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줍니다.”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 아니라는 것, 반드시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추구한다고.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신나는 일일 수도,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고 답한다. 대게 장애는 장애인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 일부가 된다. 이것이 장애를 항상 꼭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장애는 삶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며, 단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익숙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나는 내 형상 속에서 동물을 느낀다. 이 느낌은 교감의 일종이지 수치심이 아니다. 나의 동물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비규범적이고 상처 입기 쉬운 몸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를 움직이고, 보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동물화된 부위와 움직임에 대한 주장이고, 내 동물성이 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우리가 동물 같다거나 동물이라는 관념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두 주장 모두 맞지만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바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루할 정도로 당연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짐을 끄는 짐승들』, 208p)

 

 

 

 

 

테일러의 작품 중 ‘해우로서의 자화상’이 있다. 뭉툭한 두 손과 굽은 관절을 가진 여성이 바다 동물과 함께 허공에 떠 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듯한 두 생명체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바다인 듯 보이나 물결도 거품도 없이 잔잔하다. 불편하기보다는 편안한 모습이다. 테일러에게 있어 ‘불구’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자신을 동물로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상상력을 부여한다. 또 다른 작품을 보면 굽은 손이 그려져 있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어디인지가 낯선 이 손은 이상하기보다는 단단해 보인다. 테일러의 작품은 익숙한 우리들의 사고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언제 어디쯤에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언제나 인간으로만 식별되고 싶은가.”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에게 모든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알약을 먹일 것인가. 아이의 장애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까. 수도 없이 학교 적응에 문제가 있었던 나날들, 익숙한 발달 단계에서 벗어난 아이를 키우는 일, 아직도 친구와의 생활이 매끄럽지 않은 아이다. 하지만 종종, 아니 자주 나는 아이의 번뜩임과 사랑스러움에 빠졌다. 늘 ‘왜’라고 묻는 말 속에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상들에 틈을 내고 잠시 생각하게 했다. 여행을 가더라도 아이는 풍경 대신 그 나라의 신호등이나 표지판의 차이점부터 본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자, 기호체계를 신기해하고 관찰한다. 새로운 가전제품이나 장난감을 사더라도 설정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그리곤 만든 사람 빼고 아무도 모를 거 같은 정말로 낯선 기능들을 찾아낸다. 또한 언어가 가진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제는 뉴스에서 폐렴이 유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걸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폐렴은 왜 폐염이 아니고 폐렴이에요? 다른 건 다 간염, 피부염 다 ‘염’인데요. 두음법칙의 파괴라면 폐암도 폐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폐렴이라는 단어를 40년간 들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인, 사회성을 생각해본다.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소통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므로 아이의 케이스마다 개개별로 다른 소통의 창구를 찾아내야 한다. 장애를 다른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엄마들을 아이의 장애를 인지한 순간부터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위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했던 욕망 아니었을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겨우 다른 아이들이 평범하게 해 나가는 것 (젓가락질하기, 학교 책상에 잘 앉아있기,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습득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인가. 아니다. 이건 아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 그렇게라도 타인과의 소통을 배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테일러의 말대로 우리가 문제시해야 하는 것은 장애를 치료하나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얽혀있는 존재

 

테일러는 활동 보조견이자 반려견으로 보호소의 개를 입양한다. 입양한 개 베일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보조견이 아니다. 신체를 보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일리는 함께 세상 속을 헤쳐갈 때 사회적 윤활 작용을 해준다. 불편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시선을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베일리는 곧 짧은 다리와 긴 몸통 탓에 신체적 장애를 가지게 된다. 베일리는 소중한 존재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삶을 편안하게 해줄 개를 원했지만 결국에는 장애견과 함께 있게 된 것이다. 테일러 역시 가끔은 베일리의 척추 몇 마디를 제거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치료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효율적이고 능력 없는 인간이 비효율적이고 불구인 개를 돕고 서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우리 가족도 반려묘와 함께 산다. 아름답고도 비싼 품종묘인 이 고양이는 러시아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동안 펫샵에 전시돼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주인에게 팔린 뒤 새끼를 낳아 팔고자 했던 욕망이 좌절되자 버려졌다. 그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주인을 거쳐 우리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은 ‘쓸모’가 있는 일일까. 반짝이는 금빛 눈과 풍성한 털을 가진 이 고양이도 내년에는 10살이 된다. 이제는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가고 늙고 병드는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한가. 고양이에게는 과거도, 미래의 관념도 없다고 한다. 단지 현재만을 사는 동물. 나는 고양이의 나른한 그루밍을 보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산책을 하지도, 새로운 곳을 가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즐긴다. 그리곤 집의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바쁜 남편과 아스퍼거 아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반갑게 뒤집어져서 반기고, 털을 뿜으며 존재를 각인시키고, 잠자는 내 옆구리를 파고들기 위해 번번이 잠을 깨운다. 늦게 일어나면 ‘앙앙’거리면서 잔소리하고, 화장실이 더러우면 똥 한 덩이를 내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다. 우리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도 우리를 길들였다. 함께 지내면서 천천히 ‘언어’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우리 가족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데는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그건 서로 다른 방식으로라도 소통하고 싶어하는 관심이 아닐까 싶다.

댓글 1
  • 2024-01-19 10:08

    글이 너무 좋아요 모로샘 🙂
    삶을 대하는 독창적인 방식의 예술
    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27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460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303
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37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2024.02.05 | 조회 29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