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연대기 #6 - 다시, 새롭게 접속하다

문탁
2023-12-21 10:55
237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난 유부남(有婦男)이 아닌 유부남(有夫男)이 되었다. 당시 4년 째 만나고 있었던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그 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덕분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결혼은 인생의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다. 동성혼이 언제 현실화될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된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베프가 되어주고 있는 파트너와의 합법적인 결혼으로 나는 (물질적 성공으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셈이다. 동네에서, 직장에서 우리를 법적 커플로 존중해 주었다. 세금 감면, 의료 보험의 배우자 등록, 병원에서의 보호자 역할 등 이성애 커플과 똑같은 혜택들도 받게 되었다. 결혼 후 난 공공 영역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 길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의 성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몇 달 전,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불면증이 지속 되었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여러 모로 볼 때 삶의 통상적 지표들은 우상향하고 있는 중이 었다. 번아웃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일어났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로 인해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생활이 12년 째였지만 난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침엔 반드시 쌀밥에 나물 반찬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내 혀와 위장은 어릴 적 먹고 자란 전라도 시골 음식들을 여전히 갈망했다.  미국 대통령의 혐오적 선동과 그칠 줄 모르는 거짓말에 혈압이 올라갔지만, 이보다는 차별 금지법 통과에 무관심한 한국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을 볼 때 나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높아졌다. 저녁마다 즐겨 보는  넷플릭스의 Watch list엔 미드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로 채워졌다. 

 

 

 

 

‘한국’은 내게 모순 그 자체였다. 일 년 정도 휴직하고 한국 살이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파트너의 법적 지위 문제와 혹시라도 그가 겪을 차별이 염려되어 금세 마음을 접었다. 자발적으로 한국을 탈주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사회에 의해 유배 당했다는 억울함이 자주 올라왔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들과 관계가 멀어진 데 대해 아쉬움도 컸다. 이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대부분 내가 한국을 떠났는지 잘 알지 못하는데, 원거리에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들과 거리를 둔 건 나였지만,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가슴이 아려올 떄가 많았다. 가장 큰 모순은 내가 수치의 땅으로 기억되는 (그리고 가까이 하게 되면 이를 다시 경험하게 될) 한국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해석되지 않은 채 두려움과 상처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의 경험들과 ‘한국’과 점점 멀어지면서 느끼는 상실감이 번아웃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공부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와 노자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인 모임을 찾았다. 돌이켜 볼 때 당시 나에게 공부만큼 중요했던 것은 한국인들과의 연결이었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에서 신뢰할만한 몇몇의 이성애자들에게만 커밍 아웃을 했었다. 미국에서도 나처럼 한국에서 탈주한 게이 친구들 이외의 다른 한국인들과 연결되기 쉽지 않았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정교하게 이뤄지는 공동체였다.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게 되면 차별과 소외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묻어두고 살았다.  

 

 

마침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의 몇몇 인문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개설 되었다. 불교와 주역의 기초적인 것을 훑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나를 드러내기가 망설여졌다. 한국인 공부 모임에서의 커밍 아웃은  미국 생활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던 한국 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이 고정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난 약간의 용기를 내어 내가 퀴어라는 것과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진 최초의 커밍 아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보다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몇 선생님들과는 학기가 끝난 이후에도 모임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나에겐 자신을 오픈한 상태에서 ‘한국’과 다시, 새롭게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었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2022년 “나이듦과 자기 서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수자 작가들이 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하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험과 복잡하게 응어리진 감정들을 하나씩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텍스트를 재해석하여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글쓰기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해야하는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심을 갖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발심을 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난 소수자로서의 위치로 인해 세상에 대해, 권력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나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삶의 경험들을 한쪽 구석에 계속 쌓아 두었다. 이를 곱씹거나 드러내면 자책만 늘어날 것 같아서였다. 세미나에서 미니 자서전을 쓰면서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불확실함을 무릅 쓰고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여러 번 탈주를 했다.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저항이었다. 이로 인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법을 배웠고 삶의 기예들을 익혔다.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두려움이 나의 취약함만은 아니었다. 이는 내 삶의 추동력으로 작동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대한 재해석은 자신을 긍정하게 된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 ‘몸의 일기’ 연재를 권유받았을 때 망설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초보적 글쓰기 수준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덥썩 받아들였다. 나름 많은 공을 들여 글을 썼지만 거칠고 성근 서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글을 연재하면서 개인의 서사는 유동적이고 모순적이며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사가 내게 생명력을 주는 삶의 비전으로 변용되기 위해선 꾸준한 공부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끝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을 마련해 주신 문탁샘과 매 회의 글에 꼼꼼한 피드백을 주신 겸목샘에게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전 편을 다시 읽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5&category1=%EB%AA%B8%EC%9D%98+%EC%9D%BC%EA%B8%B0&mod=list&pageid=1

댓글 1
  • 2023-12-22 09:32

    해야님 연재 무한 잘읽었습니다.
    회가 넘어갈수록 편안하게 읽어지네요.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27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460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303
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37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2024.02.05 | 조회 29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