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에서 실뜨기를! / 윤경

문탁
2023-12-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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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사는 삶이란?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쭉 가난한 달동네에서 보낸 나에게 잘사는 삶이란 가난하지 않게 사는 삶이었다. 돈을 벌어 무조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그러나 수많은 투자의 실패로 부자가 되는 것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돈 벌기 위해 꾹꾹 참고 다녔던 권위적인 직장을 때려치웠다. 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잘살아보고 싶었다. 단순하게 살아보자 생각했다.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그때 살고 있던 은평마을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은평은 소위 시민 모임으로 ‘핫(hot)한 동네’였기에 나의 첫 백수 생활은 풍성했다. 이 단체, 저 단체 얼굴을 비치며 활동하다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백수인 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하니만큼 의욕적으로 잘하고 싶었고, 또 일도 꽤 잘 해내 조합을 안착시키며 1기, 2기 태양광발전소 건설도 착착 진행하였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1인 실무자와 무보수의 다인 이사 구조는 나에게 큰 중압감을 주었다. 유토피아주의자 같은 이사들은 매번 새로운 꿈에 부푼 사업들을 제안하며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이사들과의 의견 차이로 점점 늘어난 마찰에 겁이 났다. 그래서 서둘러 도망치듯 은평마을을 떠나 다시 예전의 임금노동을 하는 직업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도망쳐온 나는 월급 많이 받는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이상한 증상이 나에게 일어났다. 한동안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른 체 아픈 몸으로 일하며 지냈다. 그러다 얼마 후 ‘류머티스 관절염’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게 되었다. 병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나는 감이당 대중지성 1년 과정에 과감히 등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4년 동안 인문학을 공부했고 또 백수를 도전하였다. 공부를 통해 잘사는 삶이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 모두 좋은 삶’이라고 새롭게 정의 내렸다. 앞으로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금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나는 다 같이 잘살아보려고 마을로 들어갔다. 은평만큼 마을 활동이 핫(hot)한 금천이어서 다양한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은평에서 ‘인턴’활동을 했기에 금천 마을 활동은 더욱 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노랑식탁’이라는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노랑식탁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동네 이모’ 세 명이 장보고 요리하여 최대한 ‘집밥’처럼 밥상을 차려주는 컨셉이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화력이 약한 화기, 집구류의 부족, 익숙하지 않은 장소 등 요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서로 다른 세 명이 합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문제들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풀어나갈 수 있었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사업을 제안하신 분의 관료적으로 일하는 방식이었다. 이 사업을 제안하신 분과의 갈등으로 나는 다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은평에서도 사람들과의 마찰에 도망갔고, 지금 금천에서 만난 새로운 갈등에도 도망가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트러블이 없는 곳으로 도망만 치려 하는 나를 보며, 2학기에 읽은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말하는 트러블은 과연 무엇이고,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가능한 것인가 알고 싶어졌다.

 

 

 

 

2. 트러블과 함께 하기란?

 

해러웨이가 말하는 트러블은 ‘불러일으키다’,‘애매하게 하다’,‘방해하다’를 의미하는 13세기 프랑스어 동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트러블은 이 뒤죽박죽인 시대의 거친 파도를 잠재우고, 고요한 장소를 다시 구축할 방법들을 ‘불러 일으키는’ 꼭 필요한 부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나 절망을 말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이 땅에서 수많은 장소와 시간, 수많은 문제가 무한히 얽혀 있는 지금현재를 사는 크리터로서 진실로 현재에 응답하기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트러블을, 갈등이나 마찰처럼 엮이면 괴롭고 귀찮아지는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러웨이는 지금현재 부활과 관련된 응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꼭 필요한 부활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의 차이를 가로질러 완전할 수 없는 번역으로 곤란해진 반려종들이 더 이상 늦기 전에 아직은 가능한 회복을 위해 이야기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복수종(multispecies)들의 협력이 필수이다. 협력은 파트너들이 어떻게 유능하게 되는가의 문제이다. 즉 이질적인 파트너들이 바로 지금 자신의 모습으로 누군가가 되고 무엇인가가 되는 감염의 문제인 것이다.

 

반려종들은 항상 서로를 감염시킨다. 반려종들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더 많은 것을 나른다. 트러블과 함께하기라는 꼭 필요한 부활에 관련된 협력은 (파트너들이 나르는 감염이 좋든 싫든) 서로에게 감염되어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며 함께-되는근본적인 실천들이다. 함께-되기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해 서로의 능력을 향상시키며 호기심 어린 실천을 발명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예기치 않게 협력하고 결합하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런 광범위한 협력으로 복수종들의 살기와 죽기의 방식들은 다시 만들어진다. 다시 만들어진 이야기가 더 많은 크리터들을 응답-가능하게 만든다.

 

해러웨이는 함께-되어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며 응답-능력 키우기의 안내자로 캘리포니아 경주용 비둘기와 비둘기 애호가들을 소개한다. 2006년 8월 실시된 피전블로그 프로젝트는 적절한 통신 장비를 갖춘 경주용 비둘기들이 캘리포니아의 공기 질을 파악해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 대중에게 제공하는 풀뿌리 과학 프로젝트이다. 측정을 위한 장비, 비둘기‘백팩’을 개발하는 데 1년이 소요됐다. 이 백팩을 비둘기에게 적합하도록 작고 편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비둘기와 기술, 사람을 결합하는 ‘복수종의 신뢰와 지식’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예술가-연구자들과 비둘기들은 비둘기 애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상호작용하고 훈련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공동생산자이고, 모든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능력을 키워주었다. 이 데이터들은 공기 오염에 관한 여러 실천 영역에서 더욱더 창의적이고 빈틈없는 행동을 끌어낼 것이다.

 

내가 트러블과 함께하지 못하고 도망치려 한 것은 아마도 감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감염으로 인해 나의 면역체제가 망가질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 세계를 나와 남,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이분법적으로 나눠 바라보았다. 이분법적 틀 속에서 나만 옳다고 여기며 트러블을 일으키는 건 그들의 잘못이니 나는 도망쳐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정치적 올바름이 제일이라 여겨 다른 반려종들의 실천 패턴에 대한 응답-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트러블이 없는 곳을 원했던 것 같다. 나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나란 유기체가 단일체(the only one)라고 생각한데서 비롯되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3. 무구하지 않은 함께-세계 만들기

 

그러나 지구 생명체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것이 공-산(共-産,sympoiesis)의 근본적인 함의이다. 공-산은 단순한 낱말이다. ‘함께-만들기’라는 뜻이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크리터들은 서로 깊숙이 침투하고, 서로를 빙 돌아 관통해서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서로를 먹고, 소화불량이 되고, 서로를 부분적으로 소화하고 부분적으로 동화시켜서 서로를 만든다. 린 마굴리스는 이 기본적이고 죽어야 할 운명의 생명 만들기 과정을 공생발생(symbiogenesis)이라고 불렀다. 박테리아와 고세균이 맨 처음 공생발생을 했다. 그 둘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서로 융합함으로써 오늘날의 복잡한 세포를 발명했다. 생명은 주로 낯선 것들 사이에서 오래 지속되는 친밀성-대립하기보다 생성적 마찰 혹은 생성적 껴안기-을 통해 진화했다. 이것이 함께-세계 만들기(worlding-with)이다.

 

활기 넘치는 크리터들의 ‘복수종의 함께 만들기’에 맞춰진 접근법으로 우리는 땅 위에서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생은 ‘상호 이득이 되는’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결국에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 모두 좋’을 수만은 없다. 질서와 무질서의 세계-만들기 속에 있는 땅의 크리터들에게 무구한 관계란 없다. 공생발생은 선(善)과 동의어가 아니라, 응답-능력 안에서의 서로 ‘함께-되기’와 동의어인 것이다. 이런 발명에는 어떠한 보증도 없이, 자기 자신이 아닌 자들과의 조화에 대한 기대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난소가 제거된 노령의 반려견 카옌과 폐경기를 맞이한 자신의 새어 나오는 오줌을 제어하려고 프레마린을 복용했다. 프레마린의 무구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함께-세계 만들기 안의 책임에 대해 말한다. 암말의 반복된 임신과 장기간의 구금 그리고 그런 임신한 암말의 오줌에서 농축물을 얻어 합성한 에스트로겐 프레마린은 무구하지 않다. 프레마린을 먹었던 일은 먹지 않았을 때보다, 프레마린 생산과 관련된 반려종에 대해 더 책임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개에게 약을 주는 일은 역사들과 진행 중인(ongoingness) 가능성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만들고, 어쩌면 그녀의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응답-능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이다. 이런 디테일들이 현실의 존재를 현실의 응답-능력과 연결시킨다. 우리는 모두 끔찍한 역사에, 때로는 즐거운 역사에 직면하여 복수종의 번영을 위한 조건을 형성하는데 책임이 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 함께-되어 유능하게 되기, 복수종의 함께-세계 만들기, 응답-능력 안에서 서로 함께-되기는 복수종의 번영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이야기이고, 무구하지 않은 실천이며 책임감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실천들이다. 도망가지 않고 트러블과 함께하기, 반려종들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감염되어 가기, 또 낯선자들과 오래 지속하는 친밀성으로 생성적 마찰 혹은 생성적 껴안기를 실천하기. 내가 다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발명해내야 할 것 같다. 혼자가 아닌 같이, 또 꾸준히.

 

 

4. 진득하고 호들갑스러운 실뜨기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의 10주년 기념 문자가 왔다. 조합원 탈퇴는 안 했기에 그동안의 소식은 문자와 소식집으로 받고 있었다. 10주년이니만큼 초창기 사무국장이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전화도 받았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유토피아주의자라고 고개를 흔들던 사람들은 트러블과 함께하며 새로운 실뜨기를 계속해 그 자리를 지키며 10기, 15기 태양광발전소를 공-산했다. 내가 겁나서 도망쳤던 그 자리에서 10년의 시간 동안 트러블과 함께해온 사람들을 보며 정작 갈등과 마찰을 피해 도망친 나야말로 어딘가에 있을 트러블 없는 무구한 유토피아를 꿈꾼 유토피아주의자였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SF는 이 책 곳곳에서 모습을 보인다. 해러웨이는 다양한 뜻의 SF를 책 전반에 걸쳐 되풀이하며 고리를 만들고, 독자들을 위기에 처한 존재자들과 패턴들 속으로 실뜨기해 넣는다. 그러면서 복수종의 번영을 위한 n-차원의 틈새 공간을 공-산하자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실뜨기 게임은 패턴을 주고받는 것이고, 실을 떨어뜨리고 실패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유효하게 작동하는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다. 실뜨기에서는 받고 건네주기 위해 가만히 들고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내민 손이 보내는 신뢰에 대한 대답을 할 때, 특정 종류의 성실한 대답이 요구될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반려종이 보내는 신호에 새롭게 엮을 성실한 SF를. 엮고, 다시 엮고, 다르게 엮고.

 

1학기 에세이에서 나는 ‘시민적 돌봄’과 ‘난잡한 돌봄’을 계속하기 위해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답으로 찾았고 그 답으로 ‘샤랄라’한 돌봄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해러웨이도 숨 막힐 듯한 무기력에 저항할 필요성을 “호들갑 떨기”라고 표현하며 그런 호들갑은 필요하다고 했으니 조증적 열광적 샤랄라한 에너지로 일을 시작하고 펼치는 것은 나의 장점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펼쳐진 나의 현장을 오래 지속시키는 진득함이 부족했던 게 아니었을까. 파트너들에게 감염되어 트러블과 함께하는 것은 귀찮고 괴로운 마찰·갈등과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랄랄한 사랑에 힘을 받아 부활과 관련된 응답을 해야 하고 그런 응답을 불러일으킬 활동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샤랄라한 사랑으로만 가득찬 곳이 아니다.

 

에세이 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노랑식탁 시즌1도 끝났다. 그동안 노랑식탁에 참여한 친구들과 가진 뒷풀이 자리에서 노랑식탁같은 모임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독서 모임을 제안했고, ‘금천 사랑방’이라는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이자고 결정했다. 과연 나는 새로운 응답에 호들갑 떨기와 머물면서 진득하게, 성실하게 사유하기를 함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무구하지 않은 세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러로서 SF적 가능성을 실뜨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 2
  • 2023-12-19 09:30

    우왕~~~
    직접 찾아보시공 로고ci도 퍼오시공
    편집자님 영광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2023-12-22 08:50

    '조증적 열광적 샤랄랄라'한 사랑? 이게 뭔지 무척 궁금하네요.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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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27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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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4.02.17 | 조회 460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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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37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2024.02.05 | 조회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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