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터뷰하다 / 앙코르석공

문탁
2023-12-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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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1 -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2 - 네.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1 - 저는 나이듦연구소의 일일기자 앙코르석공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주제로 에세이쓰기 시즌3를 진행하고 있으며, 앙코르석공님의 에세이쓰기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앙코르석공님과 나이듦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대해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이제부터는 앙코르석공님을 그냥 석공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냥 석공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석공님, 거짓이나 왜곡만 없다면 과장이나 미화 정도는 인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석공2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아무리 거짓이 없이 말하려고 하여도 본의 아니게 좋게만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었는데, 이제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석공1 - 우선 석공님께서는 언제쯤부터 나이듦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나요?

석공2 - 내가 그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쉰아홉 살 때부터 나이듦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순 살이 되는 게 싫어서, 우스갯소리로 6학년이 되는 게 싫어서 그해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도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나이를 모르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몇 년간 계속 쉰아홉이라고 대답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플러스알파라고 덧붙였습니다. 아, 이제는 그것도 낯간지러워서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곳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에 관해 특히 인문학을 중심으로 많이 사유하게 됩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석공2 - 저는 살아오는 동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양 수준 이상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습니다.그런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기를 쓰고 나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 내가 글을 좀 잘 쓰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년쯤 전 우연히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인문학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문학의 재미를 느끼고, 또 늦바람이 난 듯 과할 정도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도 적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더더욱 적지만 공부하는 재미만큼은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지금 내가 지금 늙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더’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줍니다

 

 

 

 

 

석공1 - 석공님,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듦을 대체로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나요.

석공2 - 늙어감을 글이나 책에서 볼 때 더 자주 쓰이는 한자어 ‘노화’라고 표현하면, 노화는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노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육체적 노화는 지금도 크게 느끼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스포츠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육체를 크게 쓸 일이 없어 육체적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이듦에서 육체적 노화는 당연하다고 생각되기에, 노화에 서서히 적응하여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1년에 두세번 하게 되는 트레킹에서는, 젊을 때부터 스스로 인정하는 국민저질체력이라서 트레킹 시작할 때 처음부터 정신승리를 외치면서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어 트레킹을 하기에,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육체에 대해 느끼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정신적 노화는 달라요. 정신적 노화는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크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정신적 노화를 계속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신적 노화말고도, 지금 이후의 정신적 노화의 빠른 진행까지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석공1 - 정신적 노화, 알 듯 말 듯합니다. 석공님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석공2 - 예. 정신적 노화, 또는 정신기능의 저하로는 주의력 저하를 예로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누구나가 얘기합니다. 주의력 저하는 치매 등과 달리 질환이라고 얘기할 수 없고,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아니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고 있는 노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도 이제 나이가 조금 드셨으니, 방금 말씀하신 주의력 저하를 직접 겪기도 하셨고 또 지금도 겪고 계실텐데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주의력 저하는 누구라도 겪는 일입니다만은, 제가 의료인이다보니 주의력저하는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아! 주의력이 떨어져 버렸구나 싶은 아찔한 순간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해결책은 반복검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퇴근 30분 전부터 그날 치료했던 환자들의 챠트(의료기록부)를 전부 앞에 놓고서 오늘 하였던 진료 내용을 복기하고서 특별히 놓친 점이 없는 지 검토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치료하여야 할 환자들의 챠트도 전부 앞에 놓고서 내일 할 진료의 내용에 대해 미리 검토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 준비해야 할 내용 등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둡니다.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출근은 무조건 진료 시작 한 시간 전입니다. 그날 치료해야 할 환자의 치료내용을 미리 시물레이션(모의실험)하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주의력 결핍에 대비할 수 있고, 또 마음이 여유로와지는 효과 또한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절대 어기는 않는 삶의 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매일 하던 출근 시간 전 하루 1시간 걷기를 할 수가 없어서 육체적 노화(배가 나오는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 일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석공1 - 석공님, 이제 나이듦에서 특히 정신적 노화에서 노인성우울증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우울증 때문에 고생하셨거나 지금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석공2 - 자, 제 자신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울증, 특히 노인성우울증에 대해 의학적 설명을 조금 해야할 것 같습니다. 노인성우울증이란 노인기에 발생하는 우울감,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말하며, 불안, 기억력 손상, 신체증상, 초조감, 체중감소, 변비, 건강염려증적 증상, 히스테리성 행동, 망상 등이 노인성우울증의 주된 증세입니다. 이러한 노인성우울증의 유병율은 4~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이러한 질병으로서의 노인성우울증과 나이들어 누구나 겪는다고 얘기하는 단순 우울증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우울증을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그냥 우울해서 또는 우울증 때문에 고생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그 증세가 심하다고 느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의학적 치료를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대해 뒤늦게 의학적으로 혼자 공부해 보고, 아울러 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조금 얕게 그리고 폭넓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이라는 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이 책에 의하면 우울한 감정은 우울증보다는 우울이라고 표현해야 하고, 우울이란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에 의해 앞으로 계속 부정적인 사건이 되풀이될 것으로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되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심화된,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즉 우울이란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에게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나이듦에 따라 누구라도 삶에서 부정적인 사건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쌓여 갈테고, 이는 나이가 들면 우울은 조금씩이라도 점점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은 노인이 되어서 특별히 더 많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고 누구라도 쉽게 또는 대부분 느끼게 되는 마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울 또는 우울증에 대해 파악하고 나니 우울 또는 우울증은 조금씩 시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불안증은 또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말이 나온 김에 불안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이 많아져서 생기는 잘못된 예측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불편한 감정 상태를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이 되고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살면 부정적 사건이 많아져 우울과 불안이 많아지겠지요.단지 무엇을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어느 만큼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등 마음상태가 사람마다 달라 우울과 불안의 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석공1 - 석공님은 석공님의 우울과 불안이 석공님의 직업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석공2 - 당연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의사,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모든 환자의 불편한 점을 파악하면서 불평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니 스트레스가 당연히 많을 터이고,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부정적인 사건은 당연히 많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사건이 계속 쌓이면 우울과 불안도 당연히 쌓여 갈 겁니다. 특히 하루에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 사람들과는 생각의 차이에 의해 서로가 원치 않는 갈등을 느끼기도 하고, 또 이 때문에 부정적인 사건은 더욱 더 많아 지겠지요.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특별한 마음의 병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쌓이는 삶의 노폐물처럼 느껴지니 때때로 잘 버리면 되지 않나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라는 게 이론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니 정말 어려울 때도 있지요. 그때는 계속 되뇌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석공1 -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이 좋았던 적은 없었나요?

석공2 - 내가 나의 나이듦이 좋았다고 한다면 착각이거나 필요에 의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도 나이듦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꾸미기 위한 말이거나 격려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이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나이탓이야, 기죽지 마’라고 격려할 때는 나이듦이 좋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나이듦을 관대함의 증가, 또는 이해의 지평이 넓어짐으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겨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의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나이든 사람을 대할 때 가끔 느끼는 생각이니까요.

 

석공1 - 아,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실만한 삶의 형식 또는 양식을 갖고 계신 가요?

석공2 - 예. 내가 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는 시간들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을 살아갈 때는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젊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여 여행에 관심, 시간과 돈 등 많은 것을 투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해외여행허가제’라는 것이 있던 그 시절, 일천구백팔십일년부터 해외의료봉사활동의 기회가 있어서 의료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그나라에서 짧게나마 여행을 즐길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이후 여행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여행은 삶이 주는 의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지금도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 여행하는 순간, 여행을 반추하는 순간에는 삶의 희열을 느끼기에 나이듦이라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 중에는 서로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문화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여행에 맞추어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은퇴하면 선정해 두고 있는 세계 24개 곳으로 가서 한달살기를 2년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당분간 그곳에 정착해 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그 2년동안 새로운 삶의 형태도 열심히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찾아 진다면 제 2의 인생도 살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이 봉사 등 아웃풋이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바램이겠지요. 이렇게 은퇴계획을 해외 위주로 짜다 보니 좀 사치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물가가 보통이 아니기에, 이런 은퇴계획에서 어차피 필요한 생활비에 특별하게 더 필요한 비용을 걱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렇게 공개적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얘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어감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 정말 가까워져야 그때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그 실체가 아직 느껴지지 않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냥 헛돌 뿐입니다. 예를 들어 장 아메리의 죽음에 대한 글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자신의 죽음은 현실감은 없어 보입니다. 대신 자신의 죽음보다 타인, 또는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단 하나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보다 못한 삶 또는 무의미한 삶이 닥칠 때에 대비하여 자유죽음에 대해 생각만은 많이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적으로 자유죽음을 더 길게 얘기하는 것은 사회관습적으로 아직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석공1 - 석공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석공2 -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난 뒤에 붙이는 말들은 화룡점정보다 화사첨족이기 십상이지요. 자, 다음에 언젠가 어디에선가 또 뵙도록 하지요. 저도 석공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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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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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기린
2024.02.05 | 조회 29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2024.01.30 | 조회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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