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 7회차 후기 : 허나라 군주의 면박함벽

토용
2023-07-09 23:52
99

희공 6년(BC654년) 여름에 제후국들이 연합하여 정나라 신성을 포위하였다. 정나라가 수지의 맹약에서 도망갔기 때문이다. 수지 맹약은 주나라 혜왕이 태자 정을 폐하고 다른 왕자인 대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자 태자 정과 함께 왕실의 안정을 위해 제후국들이 모인 회합이었다. 그런데 정나라는 혜왕이 晉나라와 楚나라로 하여금 정나라를 돕게 하겠다고 하자 그 말을 듣고 제나라가 주도한 맹약을 배반했다. 당시 제나라는 제후들의 패자였지만, 晉나라의 국력도 만만치 않았고, 초나라도 주변의 소국을 합병하면서 국력을 키우고 있었다. 동쪽의 제나라, 서쪽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보던 정나라는 초나라에 붙는다. 강국에 의지해야 겨우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제후국들이 정나라 신성을 포위했다는 소식에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제나라의 우방국인 허나라를 포위한다. 당연히 제나라는 제후국들과 연합해서 허나라를 구원하러 온다. 그러자 초나라는 포위를 풀고 회군한다.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채나라가 허나라 희공을 데리고 초나라에 항복을 하러 간 것이다. 초나라와 제나라 싸움에 휘말려 들어간 허나라는 초나라를 먼저 침공하지도 않았고, 전쟁에서 진 것도 아니었는데 초나라에 항복을 하러 갔다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혹시 제나라를 등지고 초나라에 붙겠다는 의미였을까? 제나라가 구원하러 와주었는데 굳이 왜? 만약 실제 허나라가 초나라에 항복을 했다면 제나라가 허나라를 가만 두었을까? 실제 다음해 제나라는 정나라를 토벌하지만 허나라를 토벌했다는 말은 없다. 어쨌든 강대국 사이에 새우등 터지는건 약소국이다.

 

허나라 군주는 항복의 의미로 손을 뒤로 묶고 입에 옥벽을 물었으며(면박함벽 面縛銜璧), 대부는 상복을 입고 사(士)는 관을 들고 따랐다.

초나라 군주 성왕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봉백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옛날에 무왕이 은나라를 이겼을 적에 미자계가 이와 같이 하였는데, 무왕은 손수 그 결박을 풀어 주고 그 입에 물었던 구슬을 받아서 불(祓)하고, 그 관을 불사르고 예로 대우하고서 명을 내려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초나라 군주는 봉백의 말에 따른다.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

 

댓글 1
  • 2023-07-10 08:35

    생각보면 무왕과 은나라의 미자계 사이의 일을 초나라와 허나라가 차용한 것도 좀 웃픈일인 듯합니다.
    초나라는 봉국도 아니고(그 질서에 빠져 있는 / 매번 형땅이라고 무시하는) 허나라도 뭐 이렇게 할 것까지야 싶은 작은 나라 인 듯한데....

    오늘 삼경 세미나에서 면박이 나왔어요. 원래 천자나 제후가 하는 거지만 후대에는 항복의 뜻으로 그냥 쓰였나봐요. 그리고 면박에서 포인트는 손을 뒤로 묶어서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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