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대소 7일차> 나는 은연중 진화론자였다

관리쟈
2022-03-1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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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에서 공부하는 시간 동안 가장 나를 변모시킨 것은 진화론에 대한 생각의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진화론도 정의하기 나름이니 무작정 부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저는 시간적 순서에 따른 진화, 인간 문명의 진보성, 고대에 대한 현대의 우월성 등은

재고하게 되었고 내 머리에서 지워진 줄 알았거든요.

과학과 미신을 대립시키는 남편과 엄청 대립각을 세우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소창을 서치하다가 문득 문득 깨닫는게 있는데,  내 공부가 참 멀구나하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지난번에 제가 어릴적 목화밭 대신에 견직공장이 생각났다고 했었는데, 그래서일까요? 

저는 비단이 무명보다 더 나중에 사용하기 시작한줄 알았어요. 비단이 더 나은 기술, 진보된 섬유로 생각했나봐요.

깊은 생각을 한건 아니니까 그냥 은연중에 그런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거지요.

무명보다는 비단이 비싸고 고급지니까 더 문명적인 후대의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 고전텍스트에 나오는 뽕나무와 양잠은 알면서 저는 어째서 이런 감각을 지니고 있는걸까요?

 

목화씨를 고려말에..붓뚜껑..그 스토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꽤 늦게 들어온게 맞습니다. 

그런데 목화솜에서 실을 만들고 그걸로 옷감을 짠다는 건 꽤 어려운 일입니다.

목화에 비하면 털이나, 누에고치는 실을 다 주는 편이지요.

목화는 그 열매솜에서 씨를 빼내고 압축해서 가는 실을 뽑아낸 뒤 베틀에 걸어서

씨실 날씰을 교차시켜 옷감을 만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후공정도 만만찮지요. 

날실을 여러 줄 길게 걸어놓고 그 사이 사이를 씨실을 교차시키는데,

씨실 교차기가 몇번씩 왔다갔다해야 하니 마찰로 실이 끊어지기 쉽겠지요.

그래서 날실에 풀을 잔뜩 먹여서 마찰을 줄이는 공정이 꼭 들어간다네요.

옷감을 완성하면 이 풀을 빼주어야 합니다. 

거꾸로 옷을 입다가 빨 때는 또 풀을 먹여야 합니다. 예전에는 쌀풀을 먹이고 다듬이질로 다리는 일도 만만찮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면섬유는 인류의 보편적 삶의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비슷한 공정으로 면섬유로 옷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면화의 제국>이란 책에서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세계화를 시켰는가에 대해

산업혁명이 아니라 바로 이 면섬유의 보편사용때문이라고 합니다. 

상업자본이 세계를 네트워크화할 훌륭한 소재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토착민을 노동자나 노예로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요.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창작능력으로 탄생한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어쨋든 이래저래 손대기 시작한 소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화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었던 통큰 선물이었겠다,

큰 힘 안들여도 잘자라는 목화를 마주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옷감 짜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옛사람들은 

아마도 그 선물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제가 은연중에 진화론자였던 것과는 반대로 말입니다. 

 

밤늦게 쓰다보니 아주 감성적이 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런 저런 이유로 소창이 소중해지고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지난번 마스크 만들고 남았던 짜투리들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솜대용으로 썼습니다. 

뜨거운 냄비 들을 때 쓰는 주방장갑을 고깔모양으로 만든걸 보니 편하겠더라구요.

레시피에 접착솜이 들어가는데, 그걸 대신하기 위해 자투리들을 안입는 옷천 안에 넣고

마구 박아서 두텁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또 안입는 옷들로 안감 겉감을 대서 요렇게 만들었네요.

마니님들 앞으로 소창 조각들 버리지 말고 모아주세요~~

오늘 넘기기 5분전이라 요기까지..

그런데 아직 소창을 삶아야 하는가는 답이 아직 안나왔네요.

직조과정에서 먹인 풀을 빼는데는 그냥 물에 담가놓았다 빨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직 심층취재 시간이 남아있어서 더 알아보겠습니다. 

 

 

댓글 7
  • 2022-03-17 07:48

    날실에 풀을 먹여야 씨실이 왔다갔다할때 잘 끊어지지 않는다`

    새롭게 알았네요. ㅋㅋ

    소창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면 소창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겠어요.

  • 2022-03-17 08:25

    그런데 말입니다ㅋㅋ 이렇게 이야기가 이어져가는군요~

    갑자가 내 안에 자리잡은 수많이 생각들이 언제 생겼던 것일까 구체적으로 궁금해네요..

    그레고 주방장갑 용기내가게에 비치해둬도 좋을듯^^ 앞으로 자투리들 잘 모아둘게요. 

  • 2022-03-17 08:26

    소창심층취재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네요.

    소창과 목화와 자연의 선물에다 곡진한 노동, 방직기술과 자본주의까지…

    하루치 정보량초과 

    다음번엔 삶아야하느냐 그냥 빨기만해도 되나 알려주시나요 ㅋㅋ

  • 2022-03-17 09:51

    우와~ 처음엔 오랜만에 읽는 자누리샘의 이야기가 반가웠는데, 점점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 2022-03-17 13:05

    맹자에도 노인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기 위해서 뽕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비단을 만드는게 샘 말씀처럼 그렇게 어려운 공정은 아니었나봐요.

    그런데  목화에서 실을 뽑아내어 옷감을 만드는게 그렇게 지난한 과정인데 왜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까요?

    누에 키우기보다 목화 키우기가 더 쉬워서였을까요?  아니면 가성비가 좋아서? ㅋㅋ

    목화가 왜 통큰 선물이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심층취재 기대할게요^^

  • 2022-03-17 15:52

    은연중 진화론자... ㅎㅎㅎ 소창에서 진화론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ㅋㅋ 책이며 자료 수집에 열성을 다하시는 샘 덕분에 소창 르포 잘 보고 갑니당~ 그리고 꼬깔 장갑은 넘 귀엽네요! 제 자투리도 잘 모아볼께요

  • 2022-03-17 16:13

    십년넘게 사용해서 많이 헤졌지만 여전히 애용중 이예요.

    용기네가게에서 고깔모양 집개 만들어 판매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