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원론> 두번째 후기

곰곰
2023-08-07 00:08
228

탈레스, 피타고라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학자는 모두 기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유클리드에 이르러 그리스 수학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유클리드는 당시 모든 수학서적을 다시 수정하고 고증한 후 이러한 개별적인 수학 지식을 하나의 엄밀한 체계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이와 같이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의 가치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여러 수학 내용을 모아서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완벽한 틀을 갖추어 재정리했다는 데에 있다. 이번 책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 프로클루스(AD 412-485)는 유클리드가 그의 책에 에우독소스(BC408-BC355)의 많은 정리들을 모아놓았고 테아이테토스(BC417-BC369)의 정리들을 완벽하게 했으며 그 이전에 허술하게 증명되었던 것들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증명했다고 적어놓았다. 유클리드는 이처럼 방대한 대사업을 어떻게 완성했을까?

 

 

당연한 것에 대한 약속 

유클리드는 먼저 일부 익숙한 기하학적 대상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어떤 기하학적 대상이든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만 각기 다르게 해석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이 해당 전문 용어를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하학에서 정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읽기 시작한 <원론>의 제1권은 다음과 같은 23개의 ‘정의’로 시작된다. 

 

1 - 점은 쪼갤 수 없는 것이다.

2 - 선은 폭이 없이 길이만 있는 것이다. 

3 - 선의 양 끝은 점들이다. 

4 - 직선은 점들이 쭉 곧게 있는 것이다. 

5 - 면은 길이와 폭만 있는 것이다.

6 - 면의 끝은 선들이다.

7 - 평면은 직선들이 쭉 곧게 있는 것이다.

8 - 평면에 있는 두 선이 서로 만나고, 그들이 한 직선에 놓여 있지 않을 때, 그들이 서로 기운 정도를 각이라 부른다.

     …

23 - 평행선이란 같은 평면에 있는 직선들로서, 양쪽으로 아무리 길게 늘이더라도 양쪽 어디에서도 만나지 않는 직선들을 말한다. 

 

‘정의’는 알다시피 뜻을 명확하게 정하는것이다. 애매한 개념을 허용하지 않고 분명하게, 꼭 필요한 말로 정하는 작업이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처럼 누구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로부터 논증을 시작하고 있다는 데에서 유클리드의 특별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의 ‘정의’에는 모자라는 말이나 남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정의가 있어야 가장 기본적인 몇몇 명제를 ‘원시 명제’로 사용할 수 있다. 원시 명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정확하며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공리(axiom)’ 또는 ‘공준(postulate)’라고도 한다. 이들 정의와 공리, 공준에서 출발하여 논리적 추론과 연역을 통해 전체 기하학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런 사고에 기초하여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의 편찬 작업을 시작했고, 편찬에 성공했다. 

 

<기하학 원론>이 아직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기하학 원론의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유클리드가 완전히 창의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의 많은, 저명한 수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모아서 새롭게 재구성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기하학 원론>이 유럽에서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라 할 정도로 널리 읽히고, ‘기하학’하면 곧 <원론>을 생각할만큼 기하학의 교과서로서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그 내용의 참신함이나 우수성보다는 <기하학 원론>만이 가지고 있는 구성상의 특징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클리드 이후의 수많은 학자들이 책을 쓸 때 종종 <원론>의 구성형식을 본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등은 <기하학 원론>의 뒤를 이은 것으로, 구성 형식 및 내용의 표현방식을 따라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원론의 구성방식을 따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공리에서 출발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번에 세미나를 시작하게 되면서 <기하학 원론>에 대해 좀 찾아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면서 학습 욕구를 불태웠다는 내용들이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은 “만약 여러분이 어렸을 때 유클리드를 읽고 학구열이 솟구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타고난 과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년 시절에 겪은 두가지 경험이 자신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하는데, 하나는 다섯 살 때 나침반을 선물받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열두 살때 유클리드 기하학 교과서를 얻게 된 일이라고 한다. 책 내용은 모두 확인된 명제뿐이었지만, 이에 대한 증명은 누가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 없이 명쾌해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에 조예가 깊었던 버드런드 러셀은 자서전에서 “나는 열한 살 때 형에게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웠다. 이는 내 일생일대의 대사건이었다. 나는 마치 첫사랑을 하듯 여기에 빠져들었다. 당시 나는 세상에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젊은 변호사 시절 매일 밤 촛불을 켜고 <기하학 원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 6권에 수록된 모든 명제를 증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을 때, 유클리드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제자가 있었다는 얘기를 발견했다. “복잡한 정리를 배워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앞서 <원론>의 특징들을 살짝 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질문이기도 해서 말이다. 이에 대해 유클리드의 반응은 까칠하기 그지 없다.  “이 자는 배움으로 이익을 얻고자 하니 몇 푼 베풀어 주거라!”

 

유클리드 기하학이 매력적이고 의욕을 불태우게 하는 원동력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세미나에서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찾아봐야 할 숙제다. 

댓글 2
  • 2023-08-07 09:45

    해설서를 읽는 것도 곤욕이네요. 같은 증명을 수학자마다 다르게 하거나 혹은 같은 수학자가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시도하는 것을 흥미롭게 따라가는 게 무지 인내를 요구합니다...

  • 2023-08-08 20:22

    스피노자 에티카를 처음 마주하고 허걱 했는데, 이제야 그 모든것의 시작이 유클리드 였다는 사실에 또 놀랍습니다. 정의에서 공리, 공준으로. 정리,명제,법칙으로 가기위한 보조정리의 개념까지. 오~ 놀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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