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형이상학 논고] 3주차 23-끝 질문들

정군
2023-11-15 20:05
286

여기에 정오까지 댓글 본문으로 달아주세요!

 

 

댓글 11
  • 2023-11-15 21:15

    23절부터 ‘관념’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 합니다.

    P.106에 와서, “우리가 그들을 파악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 영혼 안에 있는 내용들은 ‘관념’이라고 불리고, 우리가 파악하거나 형성하는 것들은 ‘개념’이라”고 부릅니다. 나아가서 “우리의 모든 개념들이 우리가 외적 감관이라고 부르는 감관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오류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며, “내가 나 자신이나 나의 사상에 관하여, 따라서 존재, 실체, 행위, 동일성 및 다른 많은 사물들에 관하여 가지는 개념들은 내적 경험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이라고 P.107에서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내적 경험’이 무엇인가요? 그 뒤, 28절부터 말하는 신으로부터 온 영향, 신이 유일한 외적 근거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단지 우리에 대한 신의 끊임없는 작용을 통해서만 모든 사물들에 대한 관념을 우리 안에 갖게 된다“. 그것은 감관의 문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문제이고, 본유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적 경험’이라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 ‘내적 경험’(본유관념)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즉, 신과는 어떻게 연결(경험)되나요? ”우리가 태양이나 별을 볼 때 우리에게 그들의 관념을 주고 우리 안에 그 관념들을 보존하며, 우리의 감관들이 ‘신이 정한 법칙’에 근거하여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 대하여 생각하려 할 때 그들에 대하여 실제로 생각하도록 그의 통상적인 협력을 통하여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신이다.(p.108)“라고 합니다.
    수학자로서 미분개념을 만든 정치한(精緻한) 그가, 형이상학에서는 애매하게 ‘신’에서 시작하여 ‘신’으로 끝나는 듯 합니다. 라이프니츠 철학을 관념,개념,인식 측면에서 ‘신’을 도입하는 논리 구조를 정리해보았으면 합니다. 공감되기도 안되기도, 알듯 말듯 해서요.....

  • 2023-11-15 21:35

    1. 115쪽 30절 주석 140 "선(善)은 완전성 또는 실재성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최고선에 비하여 부족한 부분이 결핍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그의 피조물에게 완전성 또는 실재성만을 정도에 따라 부여할 뿐 결핍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빈 용기에 물을 절반 정도 채울 경우, 우리가 용기에 부여한 것은 절반 정도의 물이지, 나머지 절반의 결핍은 원래 용기의 근원적 결핍이라는 것이다."

    질문 1) 주석 140에서 악의 뿌리가 '선의 결핍'이라고 설명하면서 결핍의 원인과 관련해 빈 용기에 물을 절반 정도 채울 경우 나머지 '절반의 결핍'은 물을 완전히 채우지 않은 자에게 귀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석자의 개인 생각인지 아니면 라이프니츠의 논리라면 수긍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116쪽 31절 "신은 단지 믿음과 사랑을 예견한 사람들만 선택하였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신은 왜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어떤 사람들에게 믿음과 선한 작품의 은총을 더 많이 부여하는가 하는 동일한 질문이 제기된다."

    질문 2) 신(神)의 은총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총애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은 왜 그 사람을 특별히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그 사람이 믿음과 사랑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신은 왜 그에게 믿음과 사랑을 더 부여했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라이프니츠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라이프니츠의 딜레마'로 봐야 할까요?

    3. 118쪽 "특별한 은총들의 모든 결과와 그밖의 모든 사건들이 그들의 배경과 함께 포함되어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인물이 존재해야 하고, 동등하게 가능한 무수히 많은 인물들 중에서 그들을 실제적 존재로 선택한 것이 신의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다고 믿는다."

    질문 3) 모든 가능한 인물들 중에서 신이 요한과 베드로를 선택한 것과 관련해 왜 신의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에선 '상세한 것을 인식하는 건 우리 능력을 넘어선다' 또는 '유한한 인간은 알 수 없다'식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것 또한 라이프니츠의 답변이 비논리적이면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또한 라이프니츠식 '변신론'의 한계로 봐야 할까요?

  • 2023-11-15 22:50

    1. 23절과 24절에서는 관념과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이 아니라, 라이프니츠가 왜 이런 항목을 넣어야 했을까를 질문하고 싶습니다. 24절의 내용은 2년전에 썼다고 하는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대한 성찰>에서도 이미 개진한 바 있는데요. 그곳에서는 '명석 판명한 관념은 참'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이지요. 23절은 참인 관념과 거짓인 관념을 구별하는 것은 '가능성' 여부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신존재증명은 불완전한 증명이 됩니다. 24절은 판명한 인식에도 등급이 있다. 즉 충전적 인식과 비충전적 인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가능성을 포함하는 실질적 정의도 인과적이고 선험적이고 본질적일 때만 완전한 정의가 된다고 말함으로써 참/거짓을 넘어서는 조건들을 제시한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이 스피노자에게서는 적합한 관념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면, 라이프니츠에 이르러서는 명제와 정의에서 훨씬 더 엄밀한 논리적 요구가 제기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라이프니츠의 특이성으로 보아도 좋을까요?

    2. (29절, 30절) 내 영혼 안에 있는 본유관념들은 신이 원인이지만(따라서 전적으로 결정되어 잇는 수동적 가능성), 나의 사유는 신의 관념을 원인으로 하지 않고, 나의 관념을 원인으로 한다(따라서 그 능력을 영혼의 본성에 항상 존재하도록 하는 능동적 가능성)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사유의 능력(라이프니츠의 표현에 따르면 영혼의 전 범위와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영혼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라이프니츠는 '우리의 의지는 평형상태에 있다(30절)'라고도 말합니다. 스피노자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던 뷔리당의 당나귀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라이프니츠의 윤리학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신이 결정해 놓았건 아니건 그건 신의 일로 맡기고, 너는 너의 의무를 다하라!! 따라서 라이프니츠의 윤리학은 원죄있으나 자유로운 인간의 의무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3.(33절) 파도소리가 수많은 물방울들이 내는 소리의 합이며, 그것은 우리의 지각들이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호한 형태로 지각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에 나오는군요. 반가웠습니다.^^

  • 2023-11-15 22:52

    P125, 34절> 원전 시작 전 세미나에서...시저, 아렘이 모나드인가 그러니까 시저,아렘은 하나의 모나드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정군샘은 하나의 모나드란 입장이었고 저는 시저, 아렘은 모나드들의 집합체여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읽으며 묘한 문장을 만나서 엉망진창이 되거나 아니면 라이프니츠 치트키인 '실제적 관행과 조화시키기 위해' 에 더불어 '일상적인 어법속에서(P105에 등장합니다)' 란 말을 고려해 좀 봐줘야 하는지 또 미궁에 빠졌습니다. 34절 첫 문장입니다. '인간과 같이 그 자체로서 단일성을 형성하는 물체들이 실체이고, 그들은 실체적 형상을 가지고 있고, 동물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란 문장입니다. 34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영혼 불멸이지만 그게 관심은 아니니 패스하고... 이 문장으로 말미암아 ' 정군샘 당신 틀렸어요'란 말을 단정적으로 하지는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군샘/시저/아렘의 모나드가 없다고 말하기는 뭐하게 되어버린것이지요... 있다고 하기도 웃긴 문장입니다. 아무튼 모나드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모나드가 된다? 더군다나 아렘의 모나드로 있다가, 나중에 아렘의 육체를 떠나 다른 모나드로 산개하다가 2500년 쯤 문탁앞의 화분 속 흙 모나드로 나타나야 하는데 이것들을 다 접고 있다고 치면... 생각했던 것 보다 모나드가 많이 안필요해서 신이 창조란 걸 할 때 덜 피곤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렘이라는 실제적 관행차원에서 보는 모나드는 형이상학적으로 엄밀히 보면 다른 모나드들을 접고 있다? 모나드들 끼리도 접고 접히는 다중적/다층적이다? 제 결론은 따지지 말자... 탁월한 생각도 어떤 구석에 가면 헛소리가 될 수도 있다로 여기거나 여기 <형이상학논고>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 정도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 2023-11-15 22:54

    32절 P120 “또한 신만이 실체들의 연합 또는 결합을 가능하도록 하며, 그를 통해서 한 실체의 현상이 다른 실체들의 현상들과 일치하고 조화되며, 그 결과로 우리의 지각 안에 어떤 실재적인 것이 존재하게 된다.”
    질문 1. 실체들의 현상이라면 모나드의 집적에 의한 물체, 즉 그저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해되는데요. 이 현상에 불과한 것들의 조화의 결과가 어떻게 실재성을 가질까요?
    질문 2. 우리의 지각은 신의 지각을 모방한 것이기에 사실상 이미 그 자체로 실재성을 갖고있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실체들의 현상들과 일치하고 조화된 후에 그 결과로 우리의 지각안에 실재적인 것이 비로소 존재한다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2023-11-16 09:05

    데카르트 제일철학의 원리에 대해서 라이프니츠는 보충을 합니다. 즉 명석판명한 관념에 대해서 그것이 가능한지 우선 따져봐야 한다는 것인데요. 가능한 것만이 실재성을 갖고 있는 관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지적이 그의 형이상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책을 서신으로 잘못 가져와서 페이지를 모르겠네요ㅜ)

  • 2023-11-16 09:40

    34, 35절에서의 영혼, 정신, 불멸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의하면, 식물 영혼(섭생)/동물 영혼(이동)/인간 영혼(사고)으로 영혼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식물은 영양분을 섭취하지만 이동할 수 없고, 동물은 이동하지만 사고할 수 없고, 인간의 영혼만이 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데카르트는 "동물은 영혼 없는 기계"라고 하며, 영혼과 정신을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했던 것 같고, 스피노자는 돌멩이도 영혼이 있다고 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광물(돌멩이 같은)은 영혼이 없다고 했던 점과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니츠에게 영혼이란 어떠한 것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주석60번에서는 물체를 구성하는 영혼과 이성을 가진 영혼으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는 동물의 영혼과 지성적인 영혼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이 둘간의 차이점은 자신을 인식하고 반성할 수 있는지 여부, 보편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 여부 등 한마디로 "자기의식(나)"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영혼불멸이 실체를 존속시키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기억을 보존하는 정신적인 행위(도덕성)로 간주함으로써 환생(ex중국왕)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35절 이후에 나오는 정신과는 영혼이 어떻게 구별되고 있을까요?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말하는 라이프니츠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동물적인 영혼과 인간적인 영혼으로 구별하고, 인간 영혼에는 이성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정신은 신의 인도를 받으며 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것(정신)으로 신에게 무한히 접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유한한 정신은 신에게 무한하게 접근함으로써 무한한 정신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정신은 신체성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요?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듯이 라이프니츠의 정신은 신체와 결합된 것일까요? 아니면 데카르트처럼 정신과 신체는 분리된 것으로 보는 걸까요? 라이프니츠에게는 적어도 영혼과 정신은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닌 것 같고, "진리를 인식할 수 없는 동물"에게는 (동물적인)영혼은 있지만 (신적인)정신은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심신이원론일까요? 데카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 2023-11-16 11:21

    26절에서 라이프니츠는 플라톤의 상기설을 가져오며 영혼은 이미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27절에서 우리가 그것들을 파악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내용들은 관념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관념(idée)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 앞에서 라이프니츠는 '참인 관념'과 '거짓인 관념'(23절, 96쪽)을 말한 바 있어요. 그리고 둘을 가르는 기준을 가능성으로 언급합니다. 하지만 25절(100쪽)을 보면 불가능한 개념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념도 갖지 않는다고 했으니 애초에 '거짓인 관념'은 우리가 가질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관념은 무조건 참인 것이고, 라이프니츠가 예로 든 '가장 빠른 것'이나 또는 말하자면 '둥근 사각형'은 그저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보면 될까요.

    라이프니츠는 자유의지 문제를 여러번 정성들여 다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31절에서 라이프니츠는 베드로나 요한이라는 인물은 "동등하게 가능한 무수히 많은 인물들" 중에서 실제적 존재로 선택된 인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이를테면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은 베드로가 "동등하게 가능한 무수히 많은 인물들" 중 한 명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 번 부인한 베드로'(=그냥 베드로= '세 번 부인하는 것'을 내포한 개체적 개념으로서의 베드로라는 인물)과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베드로'가 애초에 다른 인물들이라면 어떻게 부인할지 말지에 대한 자유의지가 베드로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지난 시간에 얘기 나온 '표현'의 원어를 불어 원문을 떠듬떠듬 확인해보니 exprimer(영어의 express)네요. expliquer(영어 explicate)는 '설명'으로 옮겨졌고요. (https://fr.wikisource.org/wiki/Discours_de_m%C3%A9taphysique)

  • 2023-11-16 11:55

    36절의 첫 문장, '사실 정신들은 최고의 정도로 완전화가 가능한 실체이다.'에 대한 주석은 '이성을 가진 모나드인 정신들의 완전성은 창조시점에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 된 후에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도덕성의 실현을 통하여 끊임없이 증대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유다는 자신이 노력하였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거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나요? 그렇다면 소우주인 창 없는 모나드 개념과는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도덕성의 실현을 통하여 끊임없이 증대된다는 완전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2023-11-16 13:39

    31절에서 166쪽 "그러나 다시금 신은 왜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어떤 사람들에게 믿음과 선한 작품의 은총을 더 많이 부여하는가하는 동일한 질문이 제기 된다."의 '선한 작품'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요?

    33절의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 관념이 있기 때문에 육체가 있다는 말처럼 보이는 데요, 124쪽의 내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고 특별한 시간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한 다른 육체의 관계에 따라 우주의 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본질과 결부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우리에게 속하게 되는지를 알게 한다."

  • 2023-11-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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