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 <형이상학논고> 12~22절 후기

아렘
2023-11-13 22:30
367

후기가 늦었습니다. 세미나날은 피곤했고 그러다가 후기 담당인 것을 며칠 잊고 지냈습니다. 범위가 짧다고 세미나가 짧지는 않았고, 질문 진도를 잘 뽑았다고 여겼음에도 막판 스퍼트가 길어져 세미나는 10시 반에야 끝났습니다. 사정상 먼저 나가신 세븐샘이 복기하시기 피곤하시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가물가물한 세미나를 좀 돌아보겠습니다.

 

먼저 세븐샘 다행입니다.

항상 세미나 시간에 참조자료와 문헌을 예로 들면서 세미나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너무 한쪽에 치우칠 때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던 세븐샘께서 세미나 도중에 일찍 퇴장하셨습니다. 다행히 큰일은 없이 무사히 마무리가 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라이프니츠를 좀 봐주세요…

종합강박 라이프니츠는 아무튼 좀 바빴습니다. ‘12절 연장으로부터 생긴 개념들은 어떤 허구적인 것을 포함하며 물체의 실체를 구성할 수 없다.’ 로 시작해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물체적 본성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다 같이 만족시키기 위해서 목적인으로 이르는 길과 작용인으로 이르는 두 길의 화해’로 마쳤습니다.  이 사이에 나중에 모나드라고 불릴 개체적 개념, 실체를 섞어 가며 읽는 이를 긴장시킵니다. 뭔 말인지 맥락을 못잡고 냉탕온탕을 자꾸 넘나들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만능 치트키인 ‘가정으로부터’란 말과 ‘실제적 관행과 조화시키기 위해서’란 말을 추가하면 일견 모순적인 주장도 수긍을 하고 읽을 만하게 만드는 걸 보면 글이 살아 남은 이유는 분명히 있어보입니다.

 

신이 모나드를 한번에 만든거 아냐? 그런걸로 보이는데…

한번에 모나드를 설계한 것처럼 보였지만, 본인 스스로 ‘유출과 같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실체를 산출하는 신’이라고 하는 바람에 호수샘과 제게 공격을 좀 당했습니다. 너그러운 정군샘과 요요샘이 나름 방어를 좀 해주셨던 기억입니다. 제 눈에는 라이프니츠가 좀 헤메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만 뭐 그리 크게 욕먹을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철학자(라이프니츠) 사유의 통찰에 귀기울이는게 중하지 철지난 로직에 좀 허물이 있다고 지금와서 시비를 크게 걸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물체가 뭔데….

시간 내내 분명히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물체/신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나싶습니다. 결론은 물체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분명하게 말하기에는 애매하다가 잠정적 결론이었습니다. 찜찜함은 항상 티를 냅니다. 다른 주제/질문으로 넘어가서도 어느새 물체/신체로 돌아와 하던 얘기를 이어갔습니다.10시반까지 이어진 세미나의 주범은 물체였습니다. 

 

보다 큰 완전성, 보다 작은 완전성

스피노자 흉내(?)를 내며 쓰다가 진달래샘께 공격을 좀 당했습니다. 대체로 ‘저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로 요약되는 진달래샘 질문은 대체로 좀 묵직합니다. 정군샘이 당시 시대적 언어로 이해하고 안배를 그러니까 좀 봐주면서 읽자로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호수와 세션의 개념 관념 배틀

아주 쪼금 흥미진진했습니다. 이게 좀 길어졌으면 진짜 배틀이 될 수도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두 분다 저와는 달리 점잖은 분들이라 품위를 지키며 짧게 끝내시려는 배려와 노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묘한 긴장감을 느껴서 좀 짜릿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뜨거워지지 않아서 좀 실망스런 마무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기대가 큽니다. 이번 주 진도에 관념의 폭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지라… 개념과 관념으로 다시 한 번 놀아보아요… 점잖빼지 마시고 조심성은 내려놓으시고 날선 과장법으로 분명히 표현을 해주시면 몽매한 제가 두 분 말씀을 이해하는데 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념은 중립적인 성격이 강한 말이고, 관념은 레벨이 좀 나뉘는 말로 크게 퉁치며 읽고 있습니다.

 

표현의 향연

스피노자를 표현이란 단어로 퉁친 들뢰즈 덕분에 ‘표현’이란 말이 나오면 바로 반응이 나오는게 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요샘이 깨알같이 표현이 나온 문장들을 인용해 주셨습니다. ‘라이프니츠와 표현의 문제’라는 멋진 패러디를 선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거 진짜 불어 원어가 뭘까요? 불어에 문외한인 저는 이게 영어로 express 일지 explicate 일지 기분상 섞여 있는게 아닌가 뭐 이런 질문을 좀 보탰습니다.

 

작용인이 목적인과 들러붙고, 정신/영혼이 육체와 들러붙고, 형이상학적 법칙(?)이 물리법칙(?)의 일반이고

아마도 이런 말들에 대한 본격적인 해명이 다음 시간 진도일 것 같습니다. 상호작용은 안하는데, 상응은 해야하고, 그러면서 조화를 이야기해야하고 그래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저는 덜 철학적인 ‘들러붙고’라는 말로 표현을 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잘 들어붙어 보아요.

댓글 6
  • 2023-11-14 07:16

    아렘샘의 디테일한 주제별 쟁점요약으로 지난 주 세미나를 복기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라이프니츠의 개념과 관념, 지난 주 세미나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는데..
    이번주에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군요.
    이번에는 애매 모호에서 명석 판명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3-11-14 08:56

    아 물체를 현상이라고 하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이러다 라이프니츠... 현상학의 창시자는 아녀도 새싹으로 거론되는 거 아닐런지. 물체의 운동에서 힘을 계산해낸 건 대단하게 보여도 그 힘의 근원을 신의 지혜라고 읽어낸 점은 근대적이지 못했는데... 그 전근대성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펼쳐낼 수 있다니.. 반전입니다..

  • 2023-11-14 16:24

    제가 원래 후기 쓸 차례였는데, 아내의 복통 증세로 급히 귀가하는 바람에 아렘샘이 자리를 대신 메워줘 감사합니다.
    영상 기록물에 이어 아렘샘 후기까지 읽으니 함께하지 못했던 후반부도 제가 세미나에 참여한 느낌입니다.
    아렘샘의 과도한 칭찬에 닭살이 조금 돋긴 했지만요. ㅎㅎ
    저는 가마솥샘의 <파이돈> 관련 부분에 대한 생각을 올리는 것으로 댓글을 대신하겠습니다.

    <파이돈>은 70세의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고 한 달 동안 감옥살이 끝에 독약을 마시기로 한 날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어떻게 보냈는지를 다룹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파이돈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고, 정군샘의 말처럼 이 책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영혼불멸설'을 믿는 소크라테스는 법칙과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약을 마시기 직전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데는 이런 굳건한 믿음이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 라이프니츠가 <형이상학논고> 22절에서 <파이돈>의 부분(97c-99b)을 왜 번역해 첨부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제 뇌피셜이지만 기계학 법칙에 매몰된 유물론적 철학자들에 대항해 물리 운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걸 정신(영혼)으로 설명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라이프니츠가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아마도 "아낙사고라스가 지은 것이라는 책의 구절을 읽는 것을 들었는데, 그건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것이 원인으로 되는 것은 결국 정신(지성.nous.누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네"일 듯합니다.
    우주적 지성인 정신(nous)이 세계 질서를 부여하는 원인이라는 것. 라이프니츠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정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낙사고라스는 당시 자연철학자 대부분이 물질적 원소(물, 불, 흙, 공기 등)를 우주의 근본 원소로 부르던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신적인 누스를 강조한 인물입니다.
    정군샘이 "철학사적으로 피지스에서 노모스로 이행하는 사태"를 언급한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끝내 이 부분을 첨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실망감을 맛봤기 때문일 듯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여보게! 정말이지 이 굉장한 기대에서 나는 내침을 당했네. 그건 책을 읽어 나감에 따라 그 사람이 정신(누스)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또한 사물들에 대한 질서 부여와 관련된 어떤 원인들을 그것에는 돌리지 않고 공기와 에테르, 물 그리고 그밖의 여러 가지 이상한 것들을 원인으로 주장하는 걸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네."라고 하소연합니다.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를 정신으로 주장한 아낙사고라스가 정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다른 물질적 원소들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니츠의 생각도 소크라테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스는 여러 특성 중에 '질서를 부여하고 운동을 일으키며,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다. 어떤 것에도 섞이지 않으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등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누스 개념을 가져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를 거의 언급하지 않으니 라이프니츠도 굳이 인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듯합니다.
    지금까지 <파이돈> 미첨부 사건과 관련한 제 뇌피셜이었습니다.

    • 2023-11-15 11:53

      그랬군요. 파이돈의 첨부 이야기..... 정신줄 놓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가보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2023-11-14 23:53

    제 경우 점잖아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그런 것이고 세션샘은 짧은 말로 충분했기 때문일 듯합니다 ㅎㅎ 공격이니 배틀이니 저로서는 의지도 재주도 없는 이야기고요. 늘 공부가 되는 후기 남겨주시는 아렘샘 감사합니다.

  • 2023-11-15 20:02

    저는 읽을수록 라이프니츠가 흥미롭습니다. 뭐랄까요. 얼핏보면 모순 같은데,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다 수긍하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까딱하면 폭발하는 기계를 절묘하게 컨트롤하고 있는 기술자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릅니다. 더불어서, 사유의 근저에 놓인 ‘세계관’은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아이디어’ 수준에서 굉장히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다는 느낌도 받고요. 언젠가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라이프니츠가 아니라 ‘라이프니츠’ 자체를 좀 꼼꼼하게 보는 세미나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를테면, ‘철학 안의 신학’같은 주제로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를 반년씩 본다거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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