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형이상학 논고] 2주차 12-22 질문들

정군
2023-11-08 18:20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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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 2023-11-08 19:02

    1. 58쪽 12절 "(실체의 본질에 관하여 숙고하는 사람들은) 물체의 모든 본질이 단지 연장, 즉 크기, 형태 그리고 운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거기에서 영혼과 관련이 있고, 사람들이 흔히 실체적 형상이라 부르는 다른 어떤 것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주석 56) "물체의 본질적인 규정들인 크기, 형태, 운동들은 모든 존재자의 근저에 있는 비물질적인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질문 1) 라이프니츠는 물체의 본질과 관련해 연장뿐만 아니라 영혼 또는 실체적 형상과의 관련성을 강조합니다.
    또 이 책에 언급된 '라이프니츠가 아르노에게 보낸 편지'에선 물체의 실체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물체를 '단순실체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 같은 데, 흔히 '물체적 실체'라고 부르는 물체의 실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2. 69쪽 14절 "모든 실체는 그 자체로 신을 제외한 모든 다른 사물들로부터 독립적인 하나의 세계를 말했는데, 이것은 방금 언급한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주석 75) "모든 개체적 실체가 독립적이라는 것은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73쪽 15절 "그러므로 우리는 실체들이 서로 방해하거나 한정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말하자면 자신을 서로에게 순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질문 2) 독립적인 개체적 실체 간에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으면서도 15절에서는 '상호작용' 뉘앙스를 보여 배치되는 듯한 모습입니다. 15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3. 74쪽 15절 "나는 그 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다 큰 정도의 완전성 또는 보다 완전한 표현으로 이행하는 실체들은 그들의 힘을 발휘하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보다 작은 정도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실체들은 그들의 약함을 인식하도록 하며 수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질문 3) 라이프니츠가 '능동적'과 '수동적'을 설명하는 내용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의 기쁨과 슬픔을 규정한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라이프니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스피노자의 개념을 재활용한 듯한 느낌인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 2023-11-08 21:32

    20절, 플라톤의 『파이돈』 구절, 유물론에 반대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한 질문입니다.
    16절부터는 신의 일반질서보다 하위질서인 자연법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17절-19절에서 연장으로서 공간에서의 크기,형태,위치로 설명할 수 없는 ‘힘’(=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을 들어서 데카르트의 물리학(운동량보존의 법칙)의 한계를 증명합니다. 즉, 자연법칙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당시 물리학 너머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고려를 하여야 제대로 실체를 알 수 있다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니츠가 인용하는 20절 플라톤의 『파이돈』 구절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제들과 문답했던 ‘영혼의 불멸성’을 가져 오려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맞는지요? 읽어 보신 분이 간략 설명을 .......

  • 2023-11-08 21:34

    데카르트의 운동량보존의 법칙은 오류이다 라는 설명을 수식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 2023-11-08 21:55

    실체는 신의 관점의 표현이다.(14)
    모든 실체들의 지각들 또는 표현들이 서로 상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참이다.(14)
    비록 모두가 동일한 것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표현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14)
    개체적 실체가 모든 것을 표현하는 한, 그의 지각이 무한히 멀리 미치는 한 실체는 그의 표현이 보다 더 완전한가 덜 완전한가에 따라 한계지어 진다.(15)
    실체의 지각은 모든 것에 미친다. 그는 실제로 항상 자신의 원인을 표현하고 신은 실체의 진정한 원인이다.(16)
    우리는 우리가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을 우리의 본질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본질은 신과 우리의 결합을 표현하기 때문에,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그것을 넘어서지 않는다.(16)

    1, 14, 15,16절은 가히 라이프니츠와 표현의 문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개체적 실체가 신의 표현이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절을 읽는 동안은 개체적 실체는 신의 창조물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연속적으로) 개체적 실체들이 신으로부터 유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작자로서의 신을 떠올리기보다는 모든 측면에서 우주를 살피는 신의 시선을 표현한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적 실체의 개념이 개념일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왜냐하면 개체적 실체 각각은 신의 오성 안에 있는 개념이고, 이 개념은 신이 생각하는 가능성 중에서 최선의 것이 표현되는 것이니까요. 라이프니츠의 실체적 개체 개념을 이렇게 이해해도 좋을까요?

    2. (22절)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과 비물체적 본성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양자를 다 만족시키기 위해 목적인으로 이르는 길과 작용인으로 이르는 길을 화해시키려는 라이프니츠의 노력은 눈물겹게 느껴집니다. 이정우 선생님이 말한 종합의 노력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물체로 바라보는 것이고, 비물체적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개체적 실체(모나드)로 세계를 보는 것인데, 이 둘은 과연 소통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화해, 혹은 유용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좀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개체적 실체 개념으로는 물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은 물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2023-11-08 23:38

    15절 P72> "형이상학적 용어를 실제적 관행과 조화시키기 위해서" 란 말을 우리가 어디까지 해석해 볼 수 있느냐가 오늘의 제 질문입니다. 스피노자를 좀 불러보겠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선악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의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 인간 양태의 조건에서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선악(도덕)문제를 논하게 되는 지평이 열립니다. 어찌보면 좀 봐달라는 소리입니다. 아울러 스피노자에게 자유의지 뭐 이런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살게 된다는 신의 경지에 근접한다면 자유를 꿈꿔볼 수도 있습니다. 라이프니츠에게 모든 것은 신이 만든 개체적 실체(모나드)입니다. 그러니까 꼭 집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정신적인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육체/물체 이런거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 말 "형이상학적 용어를 실제적 관행과 조화시킨"다는 말 때문에 우리는 라이프니츠가 물체/사물/신체 이런 말을 써도 이 말들이 사용되는 맥락이 형이상학적 맥락인지 관행에 따른 사용인지를 좀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그러니까 라이프니츠를 좀 봐줘야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엉망진창의 늪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는 자유의지를 살려내려고 여러곳에서 오직 그의 믿음에 기반한 주장을 합니다. 크게 보면 신이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명명백백하게 자유의지는 형이상학적 맥락에도(그러니까 신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유효하고 실제적 관행(우리 인간 양태들)에서도 유효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의지는 우리의 실제적 관행과 조화시킬 필요조차 없이 두 곳(형이상학적 맥락, 실제적 관행 맥락)에 명명백백하게 있습니다. 철학을 하다보니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철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적어보았습니다. 어찌들 생각하시는지요?

  • 2023-11-09 08:19

    1.17절에서 라이프니츠는 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보존된다고 하면서, 데카르트가 물체세계를 증명하였지만 물체세계를 지배하는 운동법칙의 원리(근원적 힘, 형이상학적 힘, 근원력)를 설명하는 한계를 자신이 극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석100에서는 라이프니츠가 힘을 물체를 설명하는 근본 개념으로 삼음으로써 운동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하는데 해결이 된건가요?? 18절에서 운동량과 구분되는 힘은 형이상학적 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17절의 역학적 힘과 18절에서 형이상학적 힘의 관계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접힘과 펼쳐짐에서 설명한 네 가지 힘인가요?

    2.(지금 밖이라서 책이 없어 가물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실제적 개체들은 완전성이 펼쳐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그럼 처음부터 존재(인간도 포함)에 있어 어떤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고, 판명하고 완전한 지각으로의 자유로운 노력이 가능한건가요?

  • 2023-11-09 10:54

    1. 13절 : 우연에 의해 필연적인 것, 즉 확실한 것은 반대는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참 절묘하다고 생각됩니다. (반면 필연적인 것은 반대가 모순을 포함)
    신은 자유의지가 있는데, 이 의지를 완전한 방향으로 행할 것이 자명하다고 하는데요. 스콜라 철학의 실재성 개념도 그렇고, 서양인들은 왜이렇게 관념적인 '완전함'에 대해 집착하는 걸까요?
    2. 14절 : 라이프니츠의 '실체'개념이 궁금합니다. 유기체, 무기물(?)을 실체로 이해하면 될까요? (데카르트 - 연장실체/사유실체, 스피노자 - 신)
    3. 22절 93쪽 입사각/반사각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81쪽 운동량 부분도 좀 미진한)

  • 2023-11-09 11:03

    13장 (62~63p)
    1) 절대적 필연은 그 반대가 모순을 포함하고, 2) 우연적 필연은 그 반대가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명제의 반대에 모순여부가 필연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주석65번에서는 모순되지 않더라도 자유(우연)가 아닌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 2023-11-09 11:29

    1. 14절 68쪽 라이프니츠는 "우선 창조된 실체들은 그들을 유지하고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사유를 산출하듯이, 유출과 같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산출하는 신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명백하다."고 쓰는데 역주71번을 보면 그가 "존재의 유지를 최초의 창조와 동일한 행위로 간주하는 스콜라 철학자들의 연속적 창조론을 견지"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대목만 본다면 라이프니츠의 신은 최초의 어느 순간에 한번에 설계를 마친 프로그래머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어 그는 "신이 그의 생각을 실현하여 이 실체를 창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될 경우에 우주를 이러한 조망과 일치하여 표현하는 실체"라고도 하네요.

    2. 13절에서 확실한 진리 중에 반대가 가능한 것이 있고 그것은 우연적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인과율과 필연성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배치되네요. 16절에서 신의 특별한 협력(기적)이라는 말로 자연법칙을 하위원칙으로 만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기본적으로 스피노자는 연장과 사유를 하나의 질서로 설명한 데 반해 라이프니츠는 이를 애초에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점에서는 데카르트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 2023-11-09 12:09

    74쪽
    실체들이 그들의 힘으로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그들의 약함에 따라 수동적이라고 말한다고 하고, 실체의 모든 능동은 쾌락이고 모든 수동은 고통을 초래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의 문장 "그렇지만 현재의 이익이 결과에 있어서의 더 큰 악으로 인하여 파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행위하거나 힘을 발휘하고 그러면서 쾌락을 느낄 때, 죄악을 범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실체의 능동으로 생기는 쾌락은 선(善)이고, 수동에 의한 고통은 악(惡)이라는 가치규정이 있어야 가능한 표현 아닐까요? 즉 쾌락인데도 악일 수 있다.....라이프니츠는 이걸 말하려고 하는 걸까요?

  • 2023-11-09 13:13

    74쪽
    위의 봄날샘 질문에 있는 그 문장부터 "보다 큰 정도의 완전성 또는 완전한 표현으로 이행하는 실체들은 그들의 힘을 발휘하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보다 작은 정도의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실체들은 그들의 약함을 인식하도록 하며 수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에서 실체의 능동성과 수동성에 대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2023-11-09 13:17

    질문들입니다.

  • 2023-11-09 13:32

    13절 p61 "개체적 실체의 개념은 그 실체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번에 포함하고 있고, 우리가 이 개념을 숙고하면, 원의 본질로부터 그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모든 성질들을 인식하 수 있듯이, 그 개념으로부터 그 실체에 관하여 실제로 진술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 대목은 완전 개체 개념의 시작부분인 8절에서 이야기했던 실질적 규정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8절에서는 이 실질적 규정을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라이프니츠가 일단 받아들였다고 알려져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목적 정의에서 그 주어+술어가 충분하지 않고 명목적 설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밝히죠. 그러면서 하나의 예로 알렉산더 대왕에게 귀속되는 왕이라는 속성에 대해 주어에 '모든 것'을 귀속시킬 수 없기에 '우유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주어 개념에 대해 모든 것을 귀속시킬 수 없다면 왜 우유적일까요? 우유의 개념이 그렇다고 써있기는 하지만, 보통 우유라고 하면 13절의 위 대목에 써있듯 본질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막(?)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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