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차 후기

자작나무
2023-11-09 00:46
126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그의 장황함이 또 한편으로는 그의 자신만만함이 느껴진다. 그의 글은 왜 이런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글을 쓰고 활동했던 시기와 환경의 문제였지 않았을까 싶다. 왠지 근대의 밝은 광명 아래서 글을 쓰고 실험을 했을 건만 같은 그지만, 그의 발밑은 여전히 짙었다. 그가 학문을 시작했던 대학을 인정하면서도 강단의 스콜라학파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깐다. 그렇게 그는 '방법적 회의'라는 새로운 진리 탐구의 자세에 대해서 자부심 '뿜뿜'이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고 활동에 제약을 입은 일 등등에 민감했던 걸까, 조심성이 묻어나는 표현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신을 대하는 자세는 신앙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모든 것을 나누고 회의하고 종합하는 그의 방법론에서 신의 존재는 뭘까. 

 

앞선 4부에서 그는 스콜라철학에서 하는 방식으로 신존재를 증명해냈다. 나는 데카르트가 해나간 신존재증명이 스콜라철학의 그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정군쌤은, 그게 그렇게 특이하지도 않다고 한다. 우, 이럴수가! 스콜라철학을 모르는, 중세를 모르는 우리가 잘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존재증명이 가지는 의의는 뭘까. "결과적으로 이 완전한 존재인 신이 존재하거나 현존한다는 것은 기하학의 어떤 증명이 확실할 수 있는 만큼이나 최소한 확실하다."(4부, 59쪽) 이러한 신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자연과학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그저 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증명했던 스콜라철학과는 달리, 신이 존재하고 신이 만든 이치에 따른 자연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은 딴지 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법의 차이이자, 시선의 차이일까. 

 

"...그 결과 신은 그려낼 수 있는 만큼 혼란스러운 혼돈을 그것에서 형성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신은 자연에 자신의 통상적인 협력을 제공하고, 그가 확고한 법칙들에 따라 자연이 움직이게 내버려 둘 뿐이었다."(5부, 68쪽)

"그 결과 태초에 신이 세계에 혼돈의 형상 외에 다른 형상을 전혀 부여하지 않았을지라도, 신이 자연의 법칙을 세웠으며, 신이 자연이 습관처럼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에 자신의 협력을 제공한 이상, 사람들은 창조의 기적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단지 그것에 의해서만 순전히 물질적이기만 한 모든 사물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현재 그것들을 보고 있는 그대로 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5부, 71쪽)

 

주류 신학과 자연과학을 둘 다 포섭할 수 있도록 그는 신과 기계론적 해석을 합쳐서 자신의 형이상학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자신의 과학 탐구, 가령 심장과 동맥들의 운동에 관하여 이 '방법서설'  이후의 본문에 해당하는 굴절광학과 기상학 등의 설명은 ...으흠,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황당하다. 하지만 그에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행한 구체적 과학 탐구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이 어찌됐든 간에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의 과학적인 철학 '방법'/정신, 그것을 수립한 데에 있지 않을까.

 

 

댓글 3
  • 2023-11-11 14:10

    <방법서설>을 읽지 않았다면 데카르트도 그저 서양철학사 속의 한 챕터로 남아있었을텐데 덕분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자연과학 탐구에 형이상학적 토대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한 데카르트, 훌륭한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인상적이었어요.
    어려워도 원전을 읽는 이유가 이런데 있는 것 같습니다.

  • 2023-11-11 14:47

    누군가가 말했다죠. 데카르트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방법서설>을 읽으니 수긍이 갑니다^^

  • 2023-11-11 16:57

    마지막 중세인이긴 한데 그래도 중세의 신과 데카르트의 신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원전을 통해 깊이 공부하니 이런 미묘하게 다른 지점도 알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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