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입문] 시즌3 1회차 후기

동화
2023-10-1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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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부터는 서양철학사에서 거칠게 배우고 지나쳤던 철학자들의 원전을 짧게나마 읽기로 했습니다. 세미나에 들어가기 전에 정군샘은 ‘철학책 읽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책에 나오는 ‘개념’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개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훈련하는 게 이번 원전 읽기의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이해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되는데, 이해하는 것과 개념을 다루는 훈련은 같이 엮여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표면적이고 감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독서법인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번 플라톤의 ‘크리톤’만 해도 그랬습니다. ‘소크라테스 이 양반,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참 답답하고 고지식한 사람일세. 원칙이라는 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은 멋지군. 어라, 이 양반 법이 실존하는 신인 듯 빙의해서 말하네.’ 등등. 이런 저의 얄팍한 감상문과는 달리 ‘크리톤’은 플라톤의 초기 저작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텍스트라고 합니다.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로고스’ 즉 ‘정의와 법’의 관점에서 변증술로 크리톤의 권유를 논파하는데요. 이러한 내용은 법철학에 관련하여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밖에 ‘크리톤’은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극작가 지망생이었던 플라톤은 이야기의 도입 부분부터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판을 깔았다고 합니다. ‘변론’에서의 소크라테스는 공공의 장소에서 대낮에 여러 대중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에 반해 ‘크리톤’에서는 이른 새벽에 친구와 단둘이 감옥이라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이렇게 상충되는 장소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동일한 맥락에서 일관성 있는 발언을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입각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항상 ‘로고스(정의)’라는 것을 플라톤은 보여주고 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살펴보면 ‘크리톤’의 소크라테스가 좀 더 철저한 ‘법률의 옹호자’로 드러나고, ‘변론’의 소크라테스는 대중이 뭐라든 자신의 인간됨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디오게네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진짜 소크라테스일까요? 후세 해석자들의 평가는 목격자가 많았던 ‘변론’에서의 소크라테스가 진짜에 가까울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톤’에서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라는 해석이 강하고요. 하지만 감옥이라는 사적 장소에서 죽마고우와 이야기한다는 장치는 더 진실처럼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탁월한 글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로고스(정의)’인데요. 시대에 따라 ‘로고스’의 의미는 변화했습니다. 신화적 세계관에서 자연철학적 세계관으로 이행하면서 로고스는 ‘조화롭고 질서 잡혀 있는 우주’라는 관념으로 자리 잡았고, 인간은 우주를 있게 하는 세계 너머의 ‘원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플라톤은 ‘로고스’를 자연 중심(피시스)에서 인간과 사회 중심(노모스)으로 확대하고 통합하는데요. ‘법(국가공동체의 규칙)’은 ‘로고스’의 현현으로서 둘은 같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법’은 인간이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초월적인 ‘자연법’인 거죠. 그렇다고 ‘법’은 곧 ‘정의’니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썼다면 플라톤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았겠지요. 플라톤은 ‘법’이 먼저 불의를 저질렀기 때문에 대중이 대항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을 미리 가정하면서, 대중들이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고 반론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고 살았다는 것은 ‘법’을 인정하고 동의한 것 아니냐는 거지요. 플라톤은 마치 ‘법’이 대중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말합니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보수성과 불균형이 드러나는데요. 대중의 합의에 기댄 ‘법’과 초월적 권위를 가진 ‘법’이 다르지 않다는 듯 어물쩍 넘어간다는 겁니다. 두 개의 ‘법’이 왜 같은 것처럼 말하는지에 대한 증명 없이 말이죠. 이런 구조는 초기 플라톤 철학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중에 나오는 ‘이데아론’과 ‘철인정치’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법’과 ‘현실적인 법’이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근거로서 이야기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정의나 불의, 해코지 같은 개념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평면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덜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만 후기 플라톤은 정의란 무엇인가, 불의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을 깊이 파고들어 어느 순간 둘의 구분이 안되는 지점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글을 남기죠. 이러한 점이 플라톤을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번 후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생각보다 플라톤 철학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네요. 허술한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1학기 때 제대로 공부를 안 한 탓이겠죠? 반성합니다~

 

댓글 4
  • 2023-10-12 10:12

    동화샘, 이리도 정리를 잘 하시고 반성이라뇨~...
    제 몽롱한 아침을 밝혀 주셨구만요^^ 덕분에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3-10-12 22:35

    감성적 독법에 공감합니다ㅎ 저도 사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만든 가상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읽었거든요~ㅎ
    그 독법을 반성하는듯한 정리를 보니 후기를 쓰는 과정이 샘께 공부가 많이 되었을 것 같네요! 저도 지지않고 열심히 해봐야겠습니다ㅎㅎ..

  • 2023-10-13 08:33

    전 슈퍼스타 소크라테스는 < 변론>에서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네요^^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인거죠. 정작 정의가 무엇인지 속시원히 말 안해줘서 더 궁금하게 만드는데 후기 플라톤으로 가면 알 수 있다는거죠? 계속 공부하라고 하시네요, 이 분께서^^

    전 세미나 내내 플라톤의 글솜씨에 감탄하던 튜터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샘도 이런식의 글 쓰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화이팅 입니다!! ㅎㅎ

  • 2023-10-14 11:55

    지난 시간 내내 플라톤의 글솜씨에 감탄하던 저는 ㅎㅎㅎ 플라톤 대화편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다른 것보다 아직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는 <법률>을 읽어보고 싶었고요.
    우리가 '철학사'의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대, 중세의 철학들이 사실은 현재에 모두 접혀진 상태로 공존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걸 느끼고 나면 한층 더 공부가 흥미롭고 그렇습니다. 모쪼록 이번 시즌 내내 그 감각을 유지하면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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