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18회차 후기 : 송양공의 시대를 열다

진달래
2023-10-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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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시대를 연 제 환공, 이후에 이른바 '춘추오패'가 등장한다.

춘추오패는 제 환공과 진(晉) 문공, 초 장왕과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말하나 제 환공과 진 문공을 제외하고는 진(秦) 목공, 송 양공, 오왕 부차를 꼽기도 한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춘추시대 패자의 노릇을 했던 것은 제 환공과 진 문공이었으며, 이들 이외에는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른 이들이 불려 나오기도 했다. 

 

제 환공의 죽음과 함께 제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제 환공의 아들들이 모두 군주의 자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태자 소는 송나라로 도망을 하고 환공의 승계자로 승낙 받았던 무휴가 즉위했다. 

그러나 송나라 양공이 태자 소를 제나라로 돌려 보내려 하였고 이에 제나라 사람들이 무휴를 죽였다. 

송 양공이 태자 소를 옹립하고자 하니 제 환공의 나머지 네 아들들(사공자의 무리)이 태자를 공격했다. 

태자 소는 다시 송나라로 도망쳤고, 송 양공이 제나라와 싸움을 해서 사공자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태자를 즉위시켰다. 

바로 효공(孝公)이다.  효공이 즉위한 후 제나라는 안정되었을까? 

제 환공의 아들들은 사실상 모두 군주가 되었다. 

 

무휴는 즉위했으나 시호가 없었고, 효공이 즉위한 지 10년만에 죽자 동생인 반이 효공의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여 소공(昭公)이 되었다. 19년 뒤 소공이 죽고 그의 아들인 사가 즉위했는데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아 상인이 사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다. 상인은 환공의 아들이며 의공(懿公)이다.  의공은 즉위 4년 만에 죽었는데 제나라 사람들이 또 그의 아들을 버리고 위(衛)나라에 있던 환공의 아들인 공자 원을 맞아 옹립했다. 그가 바로 혜공(惠公)이다.   

혜공 이후에도 제나라의 혼란은 대부들의 세력 다툼으로 이어졌다. 

 

제 환공이 죽고 이렇게 군주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사이에 송 양공과 진 문공이 패자의 자리에 올랐다.

 

"송(宋)은 주왕의 배다른 형인 미자가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남쪽에 본붕 받은 나라로, 옛문화를 지녀 주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양공은 이러한 입장을 이용하면서 제 환공 대신에 동방의 제후들을 모아 패자가 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조(曺), 주(邾) 등의 제후와 회맹하였지만, 기원전 638년 남방의 초와 벌인 싸움에서 대패하였다. 이듬해 양공 자신도 그때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였으므로 결국 패자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 <중국의 역사, 선진시대>, 가이즈카 시케기  

 

송 양공은 제나라의 내란을 정리하고 여러 제후들과 회맹을 맺으므로써 패자가 되고 싶어었다. 그러나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그 지위를 잃고 오히려 "송양(宋襄)의 인(仁)"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 이 일은 좀 더 뒤에 일어날 일이다. 

어쨌든 오랑캐 취급을 받던 초나라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송나라가 패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희공 18년에 정나라 군주가 초나라에 처음으로 조회를 갔다고 한다. (鄭伯始朝于楚)

제나라 환공이 죽자마자 정나라의 군주가 초나라에 조회를 갔다는 것은 정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들이 더 이상 제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이후 부상하게 될 진(晉)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초나라의 힘이 커졌다는 뜻일게다. 

또 초나라의 부상은 중원의 확대로 이어졌다. 황하유역으로 한정되어 있던 중국의 역사는 이제 양자강 유역까지 확장되었다. 

 

자, 그 사이 우리는 송 양공의 활약을 볼 것이다. 

그보다 먼저 희공 19년에 기록은 우리를 조금 놀라게 했는데, 송 양공이 주(邾) 문공으로 하여금 증(鄫)나라 군주를 잡아서 차수(次睢)의 제사에 희생으로 삼도록 했다는 것이다.  

물론 <춘추좌전>의 기록에는 신하인 사마자어가 이를 말리는 내용의 글이 나오지만, "송양(宋襄)의 인(仁)"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송 양공이 인신공양을 하도록 했다는 것을 보아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런 송 양공의 태도에 대해 사마자어는 말했다. "장차 패자의 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죽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將以求覇 不亦難乎 得死爲幸)

 

 

 

댓글 1
  • 2023-10-31 01:17

    조금이 아니라 많이 놀랐죠. ㅋㅋ
    순장의 풍습도 있고 인신공양이 있는 것도 알았지만, 아무리 소국이라도 노비도 아니고 한 나라의 군주를 희생으로 만든다는 것이 놀라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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