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차 후기: 권력무상, 관중과 환공의 죽음

봄날
2023-10-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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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 17년, 봄부터 제나라가 영씨국을 정벌했는데, 이 영씨국은 초나라와 화친한 나라인데 이전에 누림(婁林)전투에 초나라와  함께 참여했다는 구실로 친 것이다. 아니 싸움은 초나라와 해놓고, 치는 건 쬐그만 영씨국이라니....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약소국은 동네북이었다....

여름에는 진(晉)의 태자어(圉)가 진(秦)에 인질로 잡혀있었는데, 秦은 하동으로 돌려보내고 사위로 삼았다. 태자어는 그의 아버지 진(晉)혜공이 양땅에 있을 때 양땅의 양백을 부인으로 맞았다. 양땅의 점사가 점을 쳤는데 "장차 1남1녀를 낳을 것인데, 남자는 인신(人臣)이 되고 여자는 인첩(人妾)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인신이나 인첩은 거의 노비에 가까웠는데...그래서 이름은 남자는 어(圉)로, 여자는 첩(妾)으로 지었다니 참나....웃픈 일이다. 점괘에 따라 노예나 첩으로 이름을 삼다니.

한편 희공은 나라밖에 있는 동안 항(項)나라를 정벌했는데, 제나라는 이것을 막으려 희공을 붙잡아두었다. 그런데 전은 단순히 '지(止)'라고 기록했다. 제나라가  억류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ㅎㅎ

그러자 가을에 희공의 부인 성강이 제나라 제후를 만나러 가서 희공을 데려왔다.  성강이 누구인가. 희공의 부인이며 제나라 환공의 딸이 아닌가. 결국 마누라의 정치력으로 희공은 억류된 몸이 풀려난 셈인데, 그것을 좌전은  '공이 회수의 회합으로부터 돌아왔다(公至自會)'고 썼으니 이렇게 군주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좌전의 표현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제 제나라 환공의 이야기이다. 환공에게는 정실부인이 세명이나 되는데 하나같이 아들을 못낳았다. 제후는 여자를 참으로 좋아해서 여섯명의 후궁을 뒀는데 그 여섯명이 골고루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이니, 혼인이 정략적으로 이용됐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장위희는 무생을 낳았고, 소위희(위희가 두명이어서 장소(長少)로 구분했다고)는 혜공을 낳았다. 갈영은 소공을 낳았고, 밀희는 의공을 낳았으며 송화자는 공자옹을 낳았다.  후첩의 아들들은 장래 분란의 불씨가 됐다. 환공과 관중은 송양공에게 효공을 부탁하고 태자로 삼았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장위희가 자기 아들 무맹을 옹립하기 위해 환공의 총애를 받는 옹무를 시켜서 환관 초를 통해 진귀한 요리를 바쳐 환공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 환공이 무맹을 태자로 삼는 것을 허용했다. 

 

일찌기 관중은 옹무(역아), 수조, 당무, 공자개방 네 사람을 멀리하라고 환공에게 간언했다."역아는 군께서 삶은 아기고기를 먹어보지 못하셨다고 하자 자기 아이를 삶아 바쳤습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 또 수조는 여자를 좋아해서 스스로 환관이 되어 궁내의 여자들을 관리했으니,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데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 공자개방은 자기 나라 임금을 섬기느라 15년 동안 자신의 부모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제나라와 위나라는 별로 멀지도 않는데, 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 꾸밈과 은폐하는 거짓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관중이 죽자 환공은 그의 말을 들어 네 사람을 내쫒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네 사람을 쫒아내고 나니 역아의 음식에 익숙했던 입맛이 돌지 않고, 수조가 없는 내실은 관리가 엉망이 됐다. 당무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환공은 일종의 정신착란증에 허덕였다. 공자개방이 없으니 조정도 시끄러워졌다. 환공은 근심이 깊어졌다. "아, 천하의 성인도 패착이 있구나!" 결국 환공은 네 사람을 복직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이었다. 관중이 죽자 효공을 제외한 다섯공자가 서로 자기가 군주가 되겠다고 나섰다. 와중에 환공도 죽었다. 그러자 역아가 들어와 사인초와 함께 환공이 총애하던 모든 관리를 죽이고 공자 무맹을 옹립했다. 

 

환공은 47년동안 제위하면서 관중과 함께 패권국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권력은 뜬 구름 같은 것. 관중의 죽음은 좌전에는 아예 기록되지도 않았고  환공은 죽고 난후, 시체가 침상위에  67일동안 방치됐다. 시체에서 벌레가 나와 문밖으로 기어나올 정도였다. 그 사이 조정은 위에서 관중이 꺼렸던 네 명이 저마다 자리다툼을 하느라 장례 따위는 안전에도 없었다. 효공은 송나라로 몸을 피했고, 결국 죽은지 67일이 지나서 부고를 냈다. 더구나 밤에 염을 했다니 이것도 정상적인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 이후 제나라는 다시는 전국시대 패권국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대개 전국시대는 정치 시스템이 아니라 한명 또는 두명의 정치천재에 의해 권력이 작동했다. 그러니 그들이 죽으면 곧바로 나라는 완전히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위나라가 전국시대 초기 무소불위의 패권을 휘둘렀으나 군주와 가신이 죽자 곧바로 패망하게 된다. 유일하게 진(秦)나라 만이 효공과 상앙이 죽은 후에도 그 변법 시스템이 오래 유지되면서 결국 전국을 통일시킨 주인공이 된 것이다. 

댓글 1
  • 2023-10-21 17:18

    점괘에 따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상서롭지못한 기운을 억누르려고 일부러 그런 이름을 지은 것 같아요.
    옛날 귀한 자식한테 개똥이라고 부른 것처럼요. 실제 이름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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