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 16회차 후기 : 길흉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

토용
2023-10-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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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에 걸쳐 읽은 희공 15년이 드디어 끝났다. 이 해의 주된 사건은 진秦과 진晉의 한원전쟁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유독 이 전쟁을 자세히 다룬 것은 아마도 강대국끼리의 전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거기다가 이 사건 이후 진晉은 춘추 5패 중의 하나인 문공의 시대에 들어서고, 진秦도 목공 이후 나라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다. 혹자는 목공도 춘추 5패 중 하나로 거론하기도 하니, 한원전쟁의 주인공인 목공의 얘기가 긴 것도 이해가 간다.

 

어쨌든 이야기는 혜공을 사로잡아 전쟁에서 승리한 진秦이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로 흘러간다. 진晉 내부에서도 친진秦파, 반진秦파로 나뉘어 정쟁을 벌인다. 결과적으로 친진파가 힘을 얻어 혜공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동안 혜공에게 충직하게 간언을 했던 경정은 죽게 된다. 진秦은 진晉 하동河東에 관리를 두고 세금을 받는 것으로 전쟁은 마무리된다.

 

한원전쟁의 스토리를 보면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봄날샘이 ‘독한 여자’라고 표현한 목희의 출가 전 스토리도 나온다. 주역점과 함께. 헌공이 시초점을 쳤는데 귀매괘가 규괘로 변한 점괘가 나왔다. 복가 사소는 ‘사내가 양을 잡아도 피가 보이지 않고 여자가 광주리를 들고 있어도 줄 물건이 없다.’며 불길한 점괘라고 해석한다. 사소는 덧붙여 영씨(秦)가 희씨(晉)를 패배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조카가 고모에게 의지하다가 6년 뒤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 그 다음해 죽는다고 말한다. 사소가 풀이한 점괘는 그대로 실제 일어난 일이 된다. 그렇지만 주역점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예조차 후대 사람들이 사건에 맞게 덧붙여놓은 서술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좌전을 읽으면서 몇 번의 주역점을 친 것을 봤다. 제사, 전쟁, 혼례 그 밖에 크고 작은 변고들에 점을 치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다. 이런 과정은 통치술의 일종이며 의례이다.

 

어쨌든 진나라에 잡혀있던 혜공은 자기 아버지 헌공이 점괘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을 토로한다. 이에 신하 한간은 점괘를 따랐더라도 무익했을 것이라 말하며 이런 일은 점을 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재앙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러한 시각은 희공 16년에 일어난 일에서도 보인다. 송나라에 운석이 떨어지고 큰 새가 뒤로 날아갔을 때, 송 양공은 이 현상에 대해 어떤 조짐이고 길흉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숙흥은 왕 앞에서는 노나라에 상喪이 많고, 제나라에 난이 일어날 징조라고 말하지만, 물러나서는 단지 이 현상은 음양의 일이지 길흉 때문이 아니며, 길흉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주역점을 치는 목적은 사전에 예측하여 조짐을 알아 재앙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데에 있다. 예측은 관계의 해석이다. 여섯효의 관계에서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이 관계 속에서 길흉화복의 조짐을 읽어내야 한다. 따라서 드러난 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문제이고, 점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길흉이 사람 때문에 생긴다고 하는 숙흥의 말은 당연하다. 우린 매주 좌전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욕망과 어리석음 때문에 생기는 온갖 일들을 목도하고 있다.

댓글 1
  • 2023-10-16 08:52

    제가 그래서 유가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아요.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걸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우리가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많은 것이 또 바뀌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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