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윤아
2023.06.07 | 조회 272
인문약방 에세이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꿈틀이
2023.06.07 | 조회 322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어머니, 온실 화분들에 물을 주어야겠는데요?” “.......”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화분이 말라가는데 그냥 그렇게 둔다. 하루 종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만 본다. 아니, 거의 주무신다. 식사는 항상 많다고 덜어 낸다. 말씀도 거의 안한다.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은 뒤로 말씀이 매우 짧다. 얼마 전만 해도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두어 시간 동안, 내용의 반절은 매번 다르게 창작하며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치매가 더 진행된 듯이 보인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고기동 집은 1층에 장인·장모님을 모시려고 설계하였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부터 졸랐지만, “내가 밥해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딸네 집에 가서 산다냐!” 하시며, 결국 당신들도 마곡동에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화분핑계, 친구들 핑계 등등을 대면서 혼자 사시겠다고 했다. 하기야 변호사를 불러서 상속문제 등의 행정 처리도 스스로 하고, 우리 가족 ‘톡’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며 글을 올리는 것은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해서 들으실 수 있으시니 충분히 혼자 사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인이 계시지 않으니...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어머니, 온실 화분들에 물을 주어야겠는데요?” “.......”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화분이 말라가는데 그냥 그렇게 둔다. 하루 종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만 본다. 아니, 거의 주무신다. 식사는 항상 많다고 덜어 낸다. 말씀도 거의 안한다.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은 뒤로 말씀이 매우 짧다. 얼마 전만 해도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두어 시간 동안, 내용의 반절은 매번 다르게 창작하며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치매가 더 진행된 듯이 보인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고기동 집은 1층에 장인·장모님을 모시려고 설계하였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부터 졸랐지만, “내가 밥해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딸네 집에 가서 산다냐!” 하시며, 결국 당신들도 마곡동에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화분핑계, 친구들 핑계 등등을 대면서 혼자 사시겠다고 했다. 하기야 변호사를 불러서 상속문제 등의 행정 처리도 스스로 하고, 우리 가족 ‘톡’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며 글을 올리는 것은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해서 들으실 수 있으시니 충분히 혼자 사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인이 계시지 않으니...
가마솥
2023.06.06 | 조회 497
기린의 걷다보면
'전전긍긍' 하는 마음을 만나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꽃구경 가는 마음으로       5월, 걷기도 좋은 날씨에 만발하는 꽃들에 눈까지 즐거운 철이다. 동네에도 야산에도 눈길이 가는 곳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꽃 보는 즐거움까지 누리며 걷기 좋은 길을 찾다가 경기옛길 평해길 3코스로 정했다. 이 코스는 남한강 자전거길과도 겹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팔당역에서 시작해 운길산역이 종점이라 교통도 편리하다. 이번에는 운길산역에서 시작해 팔당역으로 걷기로 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운길산역에 내리니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를 바라볼 수 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다. 역 주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평해 3길은 ‘정약용길’이기도 했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의 생가와 마재 성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였다. 자연 경관에 유적지까지 탐방할 수 있다니 걷기의 품격도 한뼘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으쓱해졌다. 일단 남한강 자전거길로 접근할 수 있는 표지판을 따라 길을 나섰다.      근처에 지금은 폐선이 된 북한강 철교가 있다고 해서 안내판을 따라 갔다. 레일 위로 나무 데크를 깔아 놓은 철교를 건너면서, 오래된 철교의 구조물이 주는 운치를 포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전전긍긍' 하는 마음을 만나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꽃구경 가는 마음으로       5월, 걷기도 좋은 날씨에 만발하는 꽃들에 눈까지 즐거운 철이다. 동네에도 야산에도 눈길이 가는 곳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꽃 보는 즐거움까지 누리며 걷기 좋은 길을 찾다가 경기옛길 평해길 3코스로 정했다. 이 코스는 남한강 자전거길과도 겹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팔당역에서 시작해 운길산역이 종점이라 교통도 편리하다. 이번에는 운길산역에서 시작해 팔당역으로 걷기로 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운길산역에 내리니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를 바라볼 수 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다. 역 주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평해 3길은 ‘정약용길’이기도 했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의 생가와 마재 성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였다. 자연 경관에 유적지까지 탐방할 수 있다니 걷기의 품격도 한뼘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으쓱해졌다. 일단 남한강 자전거길로 접근할 수 있는 표지판을 따라 길을 나섰다.      근처에 지금은 폐선이 된 북한강 철교가 있다고 해서 안내판을 따라 갔다. 레일 위로 나무 데크를 깔아 놓은 철교를 건너면서, 오래된 철교의 구조물이 주는 운치를 포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기린
2023.06.05 | 조회 410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6.02 | 조회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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