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한서>>라는 역사책>후기-한나라의 겨울

자작나무
2022-01-29 13:24
250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을,

자연계의 현상이 아닌 인간계의 사건으로 본다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이럴 때, 역사라는 것은 가능할까? 

사실 이런 의문을 갖고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3번의 세미나를 통해서 인간사의 봄-여름-가을을 거쳐서 드디어 겨울에 왔다. 어쩌면 인간사에서 혹은 한 나라의 국사나 한 개인의 인생사에 있어서 겨울은 무엇일까.

 

나에게 겨울은 뭐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인생사 희노애락의 기복과 컨대션의 기복, 행운과 불행의 파도는 있다. 그래서 바닥은 항상 안 좋거나 소진했거나 혹은 불행의 가장 저점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자연계에서 겨울은 엄혹하지만 다음해 봄을 위해 씨를 저장하는 시기다. 씨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어쩌면 나무의 나이테에 한 줄을 더 긋는 작업인 셈이다. 결코 사라짐이거나 어둠이 아니다. 휴~

이렇게 역사를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목적론적 사관이 아니라 자연계의 순환사관으로 봤을 때 

기존에 생각지도 못한 어떤 깨달음을 받는다. 인생에 이런 때도 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 

이렇게 역사를 보는 시각과 서술이 달라지니까, 이전에는 나라를 망쳐버린 자들이나 현상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가령 전한의 마지막은 왕망의  등장으로 말해진다.

인정받든 어쨌든 그가 '신'이라는 나라는 세웠기에, 고조 유방이 만든 한나라는 망했다.

물론 그 뒤 얼마되지 않아 광무제 유수가 등장해 한을 다시 세웠기에, 망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해도 또한 전한의 망함을 왕망 일신에게 다 뒤집어씌었다. 이른바 '난세'였고 '말세'이고 어둠이었다고.

그런데 왕망의 등장을 음양오행이나 계절의 순환으로 보면,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한서>>의 반고는 왕망을 '윤달'로 본다.  "정색이나 정음이 아니며 세월의 여분이 보인 윤달과 같은 정통이 아니었다." 

윤달이라니!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정식 달이 될 수 없는 운명. 그런 운명임을 알았기에 왕망은 더 발버둥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랴, 이미 날은 기울고 달은 차서 겨울이다. 그는 뭔짓을 해도 뻘짓이다. 물론 그의 한 일들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즉 자연의 질서에 반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일들이었기에.

 

나는 여기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그가 한 나쁜 인간이었다고 해도 그의 존재의의-_-를 어쨌든둥 한 자리 차지하게끔 만들어주는 역사가의 아량이 눈에 띠었다. 한 인간으로 한 역사에서 그 평가가 안 좋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덧붙여 역사를 살다간 한 인간을, 그 개인의 도덕성이나 능력 등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겨울날에는 누구나 1도 정도는 체온이 떨어지게 만드는 배치와 때와 더불어 보고 판단한다는 점이 좋았다. 왕망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무제 이후에 스러져가는 이후의 왕들, 특히 평제나 애제 등등까지도 시선을 주고 있다. 물론 이들의 인성의 문제도 문제였겠지만, 그를 둘러싼 배경에 주목하는 것이 신선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말세든 바닥이든 간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가 행하는 일은 다 나름 다르다. 누군가는 바닥임을 저주하고 누군가는 바닥임을 인정하고 바닥을 치기 위해 더 하강한다. 발버둥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이것도 이른바 '겨울살이'인게 아닐까. '어떤' 겨울을 보내고 있는게 아니라, 겨울을 '어떻게' 나는 보내고 있을까. 

잠시 반성과 명상과 잡생각을^^;; 역쉬 역사책의 묘미는 지금의 나, 우리, 사회 등등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있다. bb

 

함튼 세미나는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를 훅 던진다. 기쁜 충격이었다.

특히 여러 사람들, 다양한 시간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서 너무 좋았다.

특히 처음으로 같이 세미나를 해본 가마솥샘이나 윤경샘(제자백가셈나)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동양고전을 계속 하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꼭 만나요~

 

 

 

 

댓글 3
  • 2022-01-29 14:30

    오, 한나라의 겨울에 봄바람과 같은 후기를.... 자자샘과 세미나 해서 좋았어요~

    곧 다시 만나기를^^

  • 2022-01-30 20:57

    왕망에게는 그 시절이 겨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ㅎ

    15년 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도 아니고 (통일진나라 만큼의 시간?) 한나라 역사 400년으로 연장해보면 잠시 윤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의미없는 조각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한서> 언젠가는 읽을 날이 있겠지요? ㅋㅋㅋ

    단순삶님 반가왔습니다~~^^ 

  • 2022-01-31 09:08

    튜울립,수선화,무스카리 등등 알뿌리를 심어 보면 알아요.

    늦은 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난 놈들이 봄에 튼실한 꽃을 피웁니다. 봄에 심은 알뿌리보다.......

    겨울이 그냥 겨울이 아니고 겨울내내 봄맞이 힘을 기르는 것이겠죠.

     '윤달'을 넣고 역사를 봄여름가을겨울의 운행의 시각으로 기술한 것은 반고의 탁원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왕망으로 한나라가 망했으나 다시 후한으로 태어난 것을 연결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다시 봄이 되어 싹틔울 알뿌리가 있어야 할텐데,

    전한말에 황제의 권력강화를 위해서 왕족들을 변방에 보냈던 것이나 혹은 외척을 피해서 숨어 살던 왕족(유씨)들이 '한'나라의 꽃을 다시 피울 수 있는 알뿌리였다는 '사실(史實)' 에서 세상에 의미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事實)'을 생각해 봅니다.

     

    4번의 만남이었지만 함께 공부해서 잼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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