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2부 후기

호수
2023-12-28 21:25
211

어제 동은샘, 요요샘, 진달래샘, 티니맘샘, 르꾸샘, 효주샘, 그리고 저까지 일곱 명이 모두 모여 <세계 끝의 버섯> 2부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요요샘은 일산에서 줌으로 접속하셨지만 마치 두 좌석을 차지하신 듯 (아이패드 화면을 통해 참석하시는 비디오석, 자바라 스피커를 통해 참여하시는 오디오석) 가까이 느껴졌어요. 르꾸샘과 효주샘은 첫 시간에 못 오셨다가 이번 주 오셨습니다. 르꾸샘은 지지난 겨울 세미나에서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같이 읽은 뒤 나중에 꼭 같이 더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넘 반가웠어요. (송이버섯 선물 안 주셔도 이미 오래전에 저의 환심을 사셨습니다 ㅎㅎ) 따뜻하고 다정한 인상에 목소리도 소곤소곤하신 효주샘도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티니맘샘 뵈어 기쁘고요.

 

1부를 지나 2부를 읽으니 그래, 과연 이 책의 주인공은 버섯이냐, 자본주의냐 라는 쉽지 않은 질문이 본격적으로 떠오릅니다. ㅎ 칭은 “단기간 동안에만 존재하는 배치와 다방향성을 띠는 역사를 강조하는 이론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따지려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말로 2부의 첫 장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칭은 버섯으로 배치와 다방향성을 띠는 역사를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자본주의에 대해서 따지고 싶어합니다.

 

세미나의 전반부는 이 목표의 중심에 있는 ‘구제 축적(salvage accumulation)’의 의미를 이야기하다 대부분의 시간이 지나갔어요. 사실 혼자 2부를 읽을 때도 가장 궁금했던 개념이었습니다. 칭은 ‘구제’를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120)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정의 자체로나 그가 든 예시에서나 착취나 강탈이 연상되는 이 개념에 어째서 긍정적 의미도 담긴 ‘구제’라는 단어를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요요샘께서 몇 가지 해석을 주셨는데 무엇보다 salvage와 savage가 닮은 단어라는 점에 주목하셨어요. 먼저 1) savage와 생김새가 비슷한 단어인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로 보이고(칭은 직접 야만savage와 구제salvage는 종종 쌍둥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2) 또 savage가 본연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 책에서는 ‘본원적 축적’)이라는 개념과의 유사점과 대비점을 동시에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지적이었어요. 말씀대로 시초 축적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에서 필요한 어떤 것이었다면(애나 칭도 각주에서 본원적 축적은 구제 축적과 달리 완결적이라고 말합니다. 찾아보니 이런 견해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오해라는 의견도 있긴 하던데, 어쨌든요), 생태적 관점이 도입된 구제 축적은 지속적인 성격을 띱니다. 칭은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옛일만도 아니라고 말하고요.

 

세미나가 끝나고 이 개념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들어서 사전도 좀 더 뒤지고 애나 칭의 다른 글도 읽어봤는데, salvage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생각보다 모호하네요. 의미상으로도 기본적으로 save이지만 conversion의 의미도 있어요. 애나 칭은 이 칼럼에서 자본주의 특유의 생식력과 실행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기 위해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자리들’을 탐색했다고 말합니다. 그곳은 비자본주의적 형태의 가치들이 끊임없이 자본주의적 가치로 전환되는 곳이고, 우리는 여기서 “인간과 비인간이 맺는 다양한 사회적 배열들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salvage는 “다른 사회적 관계의 역사를 지닌 것들을 자본주의적 부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salvage here refers to the conversion of stuff with other histories of social relations (human and not human) into capitalist wealth”). 그러니까 salvage는 ‘구제’ 또는 ‘구조’이되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환’의 의미가 중요해 보입니다.

 

여기서 ‘가장자리’ 또는 ‘주변’은 애나 칭이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곳은 “인간과 비인간이 맺는 다양한 사회적 배열들”이 목격되는 장소이자, salvage가 일어나는 그러니까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의 다른 형식이 만나 전환되는 “주변자본주의적” 장소입니다. 애나 칭은 이곳을 자본주의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라고 말함으로써 이전의 자본주의 분석과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경제적 다양성은 앞으로 다가올 진보, 즉 ‘후기자본주의’를 예고하는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며(깁슨-그레이엄 비판), 자본주의 제국의 바깥에는 어떠한 공간도 없고 모든 것이 단일한 자본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하트와 네그리 비판)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어딘가에서 비자본주의적 요소들에 의존해왔다고요. 칭이 말하는 비자본주의적 형식들의 중심에는 인간과 비인간이 맺는 사회적 관계, 얽힘이 있습니다. 요즘 신유물론 세미나를 준비하며 책을 읽고 있다는 요요샘이나 해러웨이의 책을 읽으며 칭을 궁금해하셨다는 르꾸샘은 칭의 이러한 주장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신유물론적 바탕이나 반려종 이야기에서 주로 동물이 등장했던 데 이어 버섯이 전면에 등장하는 흐름이 인상 깊다고 감탄하기도 하셨어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세미나가 끝나고 문탁에서 점심을 먹었는데요, 아마도 대체로들 모르시겠지만 저도 예전에 딱 두 번 밥 당번을 해봤는데 ㅎㅎ 코로나가 지나간 다음에는 처음으로 문탁 점심을 먹었어요. 밥을 먹으며 잠시나마 동은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또 문탁의 여러 샘들 직접 만나뵈어서 좋았습니다.

 

각기 다른 역사와 역동성을 갖는 것들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 칭이 3부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정치를 만들 수 있는지 말하겠다고 하네요. 내일 가족여행을 가지만 어떻게든 다 읽어오겠습니다. ㅎㅎ

 

모두들 묵은해 잘 보내시고 새해에 뵈어요!

댓글 6
  • 2023-12-29 09:56

    오! 호수샘이 연결해 준 두 편의 글을 꼭 읽어보겠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지는 탐구에 감동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 구제축적 외에도 '자유'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요.
    저는 자유를 경계물로 보는 애나칭의 접근방법이 자유를 단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것, 혹은 이데올로기 같은 것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맥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의 구체적 행위, 수행적 실천으로 엮어내는 서술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자유와 유령을 연결시키는 것에서, 당혹과 경이를 동시에 느꼈답니다.^^
    구제축적, 공급사슬과 같은 개념을 등장시켜 21세기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양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자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가뿐히 넘어가며 혼란에 빠뜨리는 애나칭의 분석과 서술방법이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 2023-12-31 08:17

      네, 구제 축적 쓰다가 길어져서 다른 이야기는 못 썼어요. 자유를 말하는 방식이 정말이지 독특하고 그게 또 시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놀랐어요.

  • 2023-12-29 11:31

    번역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2부의 핵심인 구제축적의 '구제'라는 번역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3부의 '풍경'도 너무 범박한 용어여서 애나칭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풍경이 나올때마다 작은 따옴표를 치고 싶다는...ㅋㅋㅋ)

    제가 구제 땜시 출판사에 이멜을 넣어 왜 번역을 이렇게 했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salvage teraphy(구제요법)의 救濟라고, 답이 왔습니다. 전 진짜 이상했습니다. ㅋ

    그리고 나서 제가 좀 더 찾아봤는데 인류학에 Salvage anthropology 라는 게 있더라구요.
    그렇다고 애나칭이 여기에서 salvage를 가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맥락상, 아닌 것 같거든요^^

    아무튼 제가 선호하는 번역은 '수집자본축적' 혹은 좀 더 뉘앙스를 살리려면 '채굴자본축적'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음차하여 그대로 "サルベージ アキュムレーション" 라고 쓰더군요^^

    • 2023-12-31 08:32

      아, 출판사에 문의까지.. 👍🏻 salvage therapy에서 왔다는 설명까지 들으니 정말 고민이 많았다 싶네요. 저는 이 말 들으니 (번역어가) 좀 더 설득되는데요 ㅎㅎ (인간의 눈에 비친) ‘재난’ 현장에도 여전히 각자의 ‘가치’를 지닌 존재들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일이 칭이 묘사하는 오리건주 숲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단 생각도 해봤어요. 물론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행위의 주체들(버섯, 채집인, 자본가, 관찰자까지..)이 이상하게 뒤섞여서 불편하고 조심스럽고 그랬지만요.

      딱 떨어지는 대응어가 (자주 그렇듯이) 없을 때 본래 단어와 최대한 비슷한 의미역을 갖는 단어를 찾거나, 음역을 하거나, 해석이 담은 새로운 단어를 쓰는 방법이 있을 텐데, 이 모든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참으로 문제적인 단어네요 ㅎㅎ

      • 2023-12-31 13:12

        아참 제가 불어본, 독어본도 찾아봤었거든요.
        불어본은,
        2부 부제가 l'accumulation par captation..입니다. 그러니까 "captation(포획?)에 의한 축적^^" (이건 맘에 들어요 ㅋ)
        독어본은
        2부 부제가 Verwertung sakkumulation..입니다. 직역하면 재활용축적? ㅋㅋ

  • 2023-12-31 18:35

    정갈한 발제와 핵심적인 문제제기로 세미나를 풍성하게 하시더니
    이렇게 후속 공부까지 제안해주시면서
    또 한번 저희를 '구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시는 호수샘~
    호수처럼 잔잔한 울림을 계속해서 던져 주시네요:)

    대개 하이브리드 세미나가 중간에 뭔가 꼭 삐긋거리는데
    요요샘의 낭랑한 목소리와 표정이 옆에 계실 때보다 더 생생해
    집중력이 상승했습니다ㅎ

    전 애나 씽?(칭??)의 '버섯' 책을 한글로 읽을 수 있어 완전 조아여^^
    글로벌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렇게나 쉬운 언어로 술술 써 나가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도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그녀의 글쓰기에 매료됐어요.
    읽는 이의 마음을 그야말로 '구제, 포획'하네요!:)

    가족여행으로 3주차에 참석 못해 느.무. 아쉽네요. 캐리어에 '버섯 책' 넣어갑니다.
    마음은 '유령'이 되어 세미나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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