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강독 세미나에서 <전습록>을 읽기 전에 <대학>과 <중용>을 읽기로 했다.

<전습록>이 주자의 성리학과 대결하는 책이니만큼 그 배틀을 관전하려면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대학>을 펴서 읽으니 오래전 땀을 뻘뻘 흘리며 한문문장을 읽던 시절이 생각난다. 

마흔이 넘어서 불교공부를 시작했을 때 처음 읽은 불교경전이 <잡아함경>이었다.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는데 한자로 된 <아함경>을 떠듬떠듬 강독하면서 나름 불경 읽기에 재미를 붙여갔다.

그러면서 불교공부를 계속하려면 한문문장을 좀 읽을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어야 했는데!! 그때는 진짜 뭘 몰랐다.ㅠㅠ)

어떻게 한문공부를 해야 하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다가 인사동에서 한문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에서 아흔이 넘은 노유학자를 만났는데, <대학>부터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주자가 정한 유가경전 공부하는 순서가 <대학>-<논어>-<맹자>-<중용>이어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거였다.

예습을 해가면 선생님이 토를 붙여 원문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해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두어달이나 다녔는지 모르겠다.

애들 키우고, 불교공부하고, 대안학교 만든다고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통 유학자를 통해 제대로 한학에 입문할 좋은 기회였는데, 시절인연이 맞지 않아 중도작파하고 말았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대학>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번에 한문강독세미나에서 오랜만에 <대학>을 펼쳐 보니, 유가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성리학의 온갖 개념어들이 쏟아지니 뭔 말인지 어렵긴 예나 지금이나 매일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심샘이 주신 참고서가 있어서 읽다가 헷갈리는 부분이 나오면 참고할 수가 있다.

조선후기 재야학자인 김간(1646~1732)의 <대학> 공부노트 번역원고다. 

이분이 쓴 <차기 대학>에는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의 <대학> 해석이 많이 인용되어 있고,

율곡과 퇴계의 해석 차이도 종종 언급되고 있어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공부가 어떠했는지 엿보는 깨알 재미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세세해도 너무 세세해서 혀를 내두르고 있다.

밥먹고 유가경전만 파던 분의 공부노트니 오죽하겠는가?

<중용>도 이분의 <차기중용>을 끼고 세미나를 하게 될 예정이다.

성백효 선생님의 해석과 김간의 <차기>와 문장해석에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 깐깐한 예심샘이 있으니,

이번에도 제대로 공부할 환경이 차고 넘치게 마련되어 있건만, 아직도 나는 띄엄띄엄 결석하면서 헉헉대며 따라가고 있다.

이러다 <전습록>은 제대로 따라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