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경 후기: 허브향기 나는 굴원

콩땅
2023-04-26 23:23
221

 굴원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굴원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굴원은 전국시대, BC 343~ BC277? 초나라 사람으로 초나라 회왕의 신임을 받고 26세에 삼려대부라는 관직을 맡았습니다. 이 시기에 두 가지 외교정책이 대립했는데, 아시다시피, 합종설과 연횡설입니다. 굴원은 진나라에 맞서 한, 위, 조, 연, 제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합종설을 주장하였지만, 진나라와 화친해야 한다는 연횡설을 주장하는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조정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때에 굴원이 이소(離騷)를 지었습니다. 이소는 근심을 만난다는 뜻으로, 우국충정과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는 심정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총 373구와 2,940자로 이루어진 굴원의 대표적인 서사시입니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가계도를 설명하며 자신이 훌륭한 집안의 자제임을 말하고, 이어서 역사상 인물, 신화, 전설, 초목, 조수 등을 비유로 자신의 청렴결백함을 표현하고, 그리고 간신들의 참소로 왕에게 버림받은 슬픔을 노래하며, 후반부에는 천상을 오르내리지만, 현자를 만나지 못하여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환상적이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게 노래합니다. 그래서 더 슬프게 느껴집니다.

 처음 이소경을 읽었을 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수많은 메타포가 떠올랐습니다. 아......중국 니체를 만난 느낌! 온갖 종류의 초목과 산과 동물이 나옵니다. 초목으로는 신초, 혜초, 강리, 벽지, 숙망, 도꼬마리풀, 조개풀 등과 동물로는 옥룡, 난새, 멧비둘기, 짐새, 봉황, 두견새 등과 산이름으로는 창모산, 엄자산, 낭풍산, 궁석산, 곤륜산 등등......... 이 각각의 자연물들은 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굴원은 자신의 감정, 사상, 상상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림을 그리 듯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석본 없이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해석에 연연하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기에 여러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제야 이소경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余旣滋蘭之九晼兮

내 이미 난초를 구원에 심었고

又樹蕙之百畝

또 다시 혜초를 백무에 심었노라

眭留夷與揭車兮

유이와 게거의 향초를 두둑에 심고

雜杜衡與芳芷

두형(족두리풀)과 향기로운 지초도 섞어 심었노라.

 

 여기서 굴원이 직접 향기 나는 풀을 심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에 백무를 심었다는 구절을 읽으며, 1무는 100평이니깐 100무면 10,000평의 향초를 심었다고 이해했었습니다. 혼자 읽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다음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중 굴원가생열전에서 『이소(離騷)』에 대한 평입니다.

그 글은 간결하고 그 문장은 미묘하며, 그 뜻은 고결하고 그 행동은 청렴하다. 그 문장은 사소한 것을 적었지만 담은 뜻은 매우 크며, 눈앞에 흔히 보이는 사물을 인용했지만 그 뜻은 높고 깊다. 그 뜻이 고결하므로 비유로 든 사물마다 향기를 뿜어내고, 그 행동이 청렴하므로 죽을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 내고, 먼저 쌓인 속세 밖으로 헤쳐 나와서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연꽃처럼 깨끗하여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

 

 간신배와 온갖 부정부패가 행해지는 그 당시의 조정에는 향기도 없고, 오히려 악취가 나는 악초 같은 인간들이 번져가지만, 굴원은 인의를 수행하며 스스로 깨끗이 꾸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다양한 향초를 심는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굴원의 청렴결백한 성품이 진한 향초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요즘 수제 블렌딩 향수가 유행인지라 저도 저만의 향수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던 참에 이소경 읽으면서 나는 어떤 향기가 나는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청초한 향기도 아니고, 사랑스러운 향기도 아니고, 음흉한 비린내도 아니고, 시원한 바다향도 아니고.......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심리테스트, 일명 <퍼스널 스멜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이 테스트는 MBTI를 바탕으로 개인의 특징을 그 이미지와 어울리는 냄새를 찾아줍니다. '칼 같은 원리 원칙주의자'는 빳빳한 새 지폐냄새로, '평화를 사랑하는 낙천주의자'는 초콜릿 컵케이크 냄새로 매칭을 해줍니다. 저처럼 ‘뒤끝 없는 자기애 끝판왕’은 불타는 장작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불타는 장작 냄새가 좋기는 하지만, 저의 향기로 받다들이기에는 거부감이 듭니다. 뭐랄까.......유쾌하고 진실성이 느껴지는 향기가 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향기가 나기를 원하십니까?

 

 

댓글 1
  • 2023-04-27 00:44

    우와! 굴원을 향기로 표현하다니. 역시 콩땅님은 신박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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