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학교] 에세이데이!! 부제 모든 길은 칸트로 통한다?

정군
2023-12-18 19:34
494

지난 토요일(12.16) 철학학교 에세이데이가 있었습니다. 

올해 철학학교에서는 17세기 대륙 이성주의 철학(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을 공부했는데요. 

놀랍게도 작성된 에세이의 80%쯤은 모두 '라이프니츠'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조금 미화하자면) 그만큼 '라이프니츠'라는 철학자가 '문제적'이라는 의미입니다(조금 심한 미환가...). 어쨌든, 시즌4에 참여한 튜터 포함 12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에세이를 작성해서 모였습니다.

다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아쉽게도 올해 철학학교 전교1등의 영예를 안은 세븐샘께서 회사일로 불참하셨습니다 ㅠㅠ 

(다문화가정배드민턴 대회는 잘 치루셨나요?)

그리하여 '그 철학학교 거기서는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나' 궁금하셨던 갤러리 분들까지 해서 무려 20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에세이데이를 진행하였습니다. 

 

첫 세션은 정군, 아렘, 호수의 발표였습니다. 정군과 아렘샘은 올해 공부한 17세기 철학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인 '사유의 평면'과 '17세기 철학과 신'을 주제로 에세이를 작성하였고, 호수샘은 '내적 세계와 믿음의 근거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과 연관짓는 에세이를 써주셨습니다. 첫 세션에 발표하기에 가장 적절한 주제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가마솥, 여울아, 진달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각각 '돌봄과 모나드와 이성주의', '임계점을 사고하는 철학으로서 라이프니츠의 사유', '17세기 철학자들과 실체 개념'에 관한 주제로 에세이를 발표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이미 17세기 철학 안에서도 문제가 되는 '필연성'과 '결정론', '목적론'과 '기계론'의 대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스피노자를 '결정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오고갔고요. 당연하게도 이는 여전히 매우 뜨거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현실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특정한 사각이 발생하게 마련이니까요. 약간 엉뚱하게도 저는 이 지점에서 브루노 라투르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습니다. 라투르가 경력 초창기에 썼던 「비환원」이라는 논문의 주제 '어느 것도 다른 어느 것으로 그냥 환원되지 않는다'가 개념적으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감이 왔거든요. 세미나도 그렇지만 에세이데이도 이와 같은 이질적인 '앎'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소임에 분명합니다.

 

 

3세션에서는 요요, 세션, 봄날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우주를 비추는 거울로서 '모나드'와 불교의 '인드라망'을 엮어서 쓴 요요샘의 에세이, 오로라(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심상과 생물학적 세계관을 '모나드' 개념과 잇는 세션샘의 에세이, 주역의 세계관과 라이프니츠의 사고방식이 가진 공통점과 차이에 관해 써주셨던 봄날샘의 에세이까지, 제 나름대로는 비교적 '응용'과 '비교'에 가까운 에세이들을 3세션에 배치하였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기계론'과 '목적론',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좁은 길을 나아가며 양자를 최대한 '조화'시키려는 라이프니츠의 기획을 고려하며 생각할 때, 이와 같은 형식의 에세이들이 쓰기에 가장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개념을 자칫 잘못 적용하면 라이프니츠가 가진 특유의 변별점이 사라지고 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에세이들이 라이프니츠가 그려놓은 개념적 영역을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면서 에세이 고유의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망의 4세션에서는 재선, 스르륵, 세븐 샘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각각 '왜 라이프니츠를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제, '꽃인 듯 눈물인 듯 이야기인 듯' 김춘수 시인의 시어를 따라가며 라이프니츠의 철학과 결정장애 문제라는 주제, 언뜻 자승자박처럼 보이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딜레마'라는 주제를 집어주셨습니다. 아마도 모든 세션을 통틀어서 라이프니츠 사유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준 세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러번 순서를 바꾸는 중에 차라리 이 팀을 마지막에 모는 게 효과가 좋겠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나님' 칭찬합니다. ㅋㅋㅋ

 

세미나를 진행해 가는 동안에는 그렇게나 힘들수가 없습니다. 특히 올해까지 철학학교는 항상 '온라인 세미나'를 해왔기 때문에 '기가 빨린다'는 느낌만 두고 생각해 볼 때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기도 했고요. 내년부터 오프라인 세미나로 전환하는데, 오프라인에서는 또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세미나'란, '공부'란 근본적으로 따지고 볼 때 '일부러 구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년 철학학교에서는 공지(바로가기)에 나간대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완독하는 걸 목표로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에세이데이 내내 문제가 되었던 [필연성의 세계와 자유의 세계]의 연관? 조화? 조응?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는 철학자가 칸트라는 점에서 올해와 일정정도 연속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칸트는 호수(호수샘 아닙니다) 같은 철학자입니다. 이전의 모든 철학이 칸트로 모이고, 이후의 모든 철학이 칸트를 통과해 성립하니까요. 그래서 철학에 관심있는, 되도록 많은 분들과 함께 세미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 칸트 세미나를 한번 하고 나면.... 최소 5년은 다시 칸트로 돌아오기가 어려우니까요(네, 매우 간곡한 광고입니다. ^^;) 

여하튼 이렇게 2023 철학학교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세미나에 직접 참가하시지는 않더라도 게시판을 예의주의하셨던 분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미나에 참가했던 멤버들, 장외 서포터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연말 보내시길~~~~

댓글 15
  • 2023-12-18 19:46

    긍게, 칸트가 데스라에서 문제된 필연성과 자유를 녹여낸다는 것이지요? 마솥님처럼.....ㅎㅎ 기대만방!입니다.
    머리를 쥐어짜면서 읽는 철학 내용이 알게 모르게 내 몸속에서 펼쳐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행운입니다.
    함께 한 학인들 모두 감사드리고요, 새해에도 녹여 보자구요.

  • 2023-12-18 22:24

    에세이 데이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회사 행사 땜에 불참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정군샘의 후기를 보니 제가 참여한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군샘이 좋게 봐주신 '전교 1등'은 영원한 가마솥샘입니다.
    저는 스피노자 세미나부터 참여한 게 너무 행복했고, 그것으로 위안이 됩니다.
    내년 칸트 세미나도 많이 기대됩니다.
    정군샘 말처럼 칸트는 '중앙 호수'인 것 같아요.
    물줄기가 시작되고 그 물이 끊임없이 유출되는 그곳.
    신유물론 겨울 강좌는 부득이 참여 못하지만 칸트 예습하는 것으로
    나름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합니다.
    내년 칸트 세미나 때 뵙겠습니다.

  • 2023-12-18 23:01

    에세이데이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죄송했어요. 그날 이동하면서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곰곰 생각해보고 글에 담아내지 못했던 것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았습니다. 올해 함께 공부한 모든 선생님들, 에세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내년이란 것이 있어서 참 좋네요 🙂 샘들 내년에 또 봐요~~

  • 2023-12-19 06:41

    난 에세이를 쓰고 발표하신 분들보다 그날 더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ㅋㅋ
    마치... 단서가 몇개 없는 지도를 들고 보물찾기에 나서는 사람 같았어요. ㅎㅎ
    그래도 여러분들 덕분에 17세의 라이프니츠가 어디쯤 숨어 있었는지....약간 감을 잡았습니다. (곧 잊어버리겠지만^^)

    전 들으면서 라이프니츠도 궁금했지만, 계속 동양의 형이상학을 떠올렸습니다.
    공자의 어떤 점에서는 소박한 정치적 아젠다를 전국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형이상학적 사유로 발전시키지요.(백가제명^^)
    그리고 심, 성, 기 같은 개념들이 출현합니다.
    이건 또 송대 성리학을 통해 아주 정밀하게 발전되지요.

    전 개인적으로 기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동양식 신유물론이라고 할까요? 그 비조인 장자에 대한 공부라고나 할까요? 존재론으로부터 윤리학으로 나아가는 구성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장재나 주돈이의 기학( 태극/무극 블라블라)부터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동양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철학의 기원(이), 12세기"입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에세이 쓰고 나눠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2023-12-19 11:19

    에세이 쓰느라 많이 괴로웠는데 덕분에 나무와 이야기는 좀 한 듯 ㅋ 근데 샘들 에세이 듣는 건 재밌더라구요. 오랜만에 뵌 청량리샘, 자누리샘, 문탁샘 등등 샘들 너무 반가웠고, 로이! 만나서 재밌었고 엄청 웃겼어ㅋㅋ 음... 철학학교, 잘 생각해보니 내년에도 들어갔다 나갔다 할지도 모르겠 ... 계속 탕아 모드더라도 걍 그런갑다 하시길 ㅎ

  • 2023-12-19 13:22

    정군샘의 순발력에 매번 감탄합니다~ 올해 문탁에 방문하는 날이면 이번 철학학교는 어땠는지 질문을 받았는데요.
    한 해 동안 재밌었고 훌륭한 샘들 덕분에 유익했습니다^^ 내년에도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여건이 되면 한 시즌만이라도 신청하겠습니다!

  • 2023-12-19 17:35

    중간에 사라져서 결국 돌아가지 못한 여울아입니다~ 고백하건대 제 원고는 심지어 최종이 아니었습니다 ㅠㅠ 수정한 원고를 올렸는데 어찌 이런 일이(가끔 제 노트북 업로드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쉬는시간에야 발견해서 어찌할 수가 없었답니다.. 뭐 내용은 큰 차이 없고 앞뒤 내용이 좀 바뀌고 윤문한 정도라 다시 올려야 하나 고민을 좀 했지만 그냥 넣어두는 걸로 ^^

    올 한해 함께 공부해서 즐거웠습니다. 평생 철학은 제 관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드뎌 제가 서양물도 먹게되었습니다 ㅎㅎ 철학학교에서 텍스트를 읽고 수업시간에 얘기를 주고 받으며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었더라면 제 일상은 엄청 삭막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 2023-12-19 20:01

    에세이는 엉망이었지만 저도 라이프니츠를 보는 내내 <근사록>의 '도체' 부분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선진 유학과 12세기 유학이 확연히 분리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구요.
    느리지만 한 발 자국씩 나가고 있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2023-12-20 07:05

    정군님은 기가 다 빨리는 듯했다고 하시지만.. ㅠㅠ
    바로 그렇게 뿜어내신 정군샘과 여러 샘들의 기운에 힘입어 데스라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모든 길은 칸트로 통한다! 후기의 부제가 왜 이리 커보이는지요?ㅎㅎ
    저는 내년에 칸트 3비판서를 다 읽으실 분들이 벌써부터 부럽습니다.^^

    • 2023-12-20 09:20

      ㅠㅠ

    • 2023-12-20 21:55

      비보군요

      • 2023-12-20 22:10

        모두 이토록 슬퍼하니 방법을 찾으셔야겠는데요? ㅜ

        • 2023-12-20 22:22

          세션샘이 오실거니 뭐…

  • 2023-12-20 09:01

    철교세미나 1년 동안 공지에 올라오는 멋진사진(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튜터님 여러모로 애많이쓰셨어요!

  • 2023-12-20 21:55

    쉼없이 달려오다가 내일은 모처럼 세미나가 없는 목요일이네요... 지난 일년 여러 샘들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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