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모나드론] 2주차 후기

호수
2023-12-01 12:45
362

많이 추워진 11월의 마지막 날, 전원이 모여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31절에서 59절까지 읽었습니다. (읽기는 60절까지 읽었지만 다음주에 60절부터 다시 읽기로 했어요.) 합리론 철학자 세 명의 주저 읽기 프로젝트의 끝이 보이네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런 어려운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에게 종종 물어가며 결국 막바지까지 왔는데 대체로 그러기를 잘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의외로 라이프니츠가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어서요. 데카르트의 경우, 대체로 제 이해가 짧은 탓이었겠지만, 읽을수록 뭐가 앞뒤가 안 맞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결국 그러려니 하다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는데, 라이프니츠는 간혹 앞뒤가 안 맞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야 했던 이유가 ‘절실히’ 이해되고—아니, 진짜로, 어째서 무가 아니고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를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또 세미나에서 샘들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어찌어찌 (음, ‘정치하게’..까지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말이 된다 싶을 때가 많거든요. 게다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열을 올리며 옥신각신 말을 주고받는 샘들을 지켜보는 것이 뭔가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러다 마치 남 얘기하듯, 저러는 샘들 참 웃겨요, 하는 세션샘의 추임새도 안 보면 허전할 것 같고요. 네, ‘미궁 해석의 대가’가 남 얘기하듯 이러고 있네요.

 

라이프니츠는 진리를 떠받치는 두 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하나는 모순율이고 다른 하나는 충족이유율입니다. ‘갑은 갑’이라는 동어 반복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것은 동일률입니다. 모순율은 동일률의 짝꿍으로 ‘갑은 갑이 아니다’라는 것은 모순이고 거짓이라는 원칙입니다. 우리는 이 모순율에 근거해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면 가장 단순한 관념들, 애초에 증명될 수 없고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 근원적인 원리들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들은 추론 진리입니다. 그런데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며 이 계열을 무제한적으로 좇아간다고 해도 도저히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연적인 것이 포함된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우연한 사건이라고 해서 거기에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 원인을 분석을 통해 찾을 수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좇아가야 하는 계열이 하나인지 무수히 많은지, 아니면 무수히 많은 계열이되 결국은 하나의 계열로 고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우연적인 사실에도 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현실에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연적인 ‘진리’이자 사실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충분한 이유를 사물들의 계열 내부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내부에 없다면 (봄날샘이 보기에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꽤 당연하게도) 외부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 모든 사물의 최종 근거가 놓여 있는 저 바깥은 신의 안이어야 합니다. ‘이 신은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신은 도처에 연결된 모든 것들에 대한 충분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신은 가능한 한 많은 실재성을 가지며 절대적으로 완전합니다.

 

우연한 것들의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 그러니까 피조물들은 본성적으로 불완전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를 통해 신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ㅋㅋ 저는 여기가 너무 웃겼어요. 더러 화가 난 분들 때문에 더욱더 ㅋㅋ) 간혹 원문이 저 역시 궁금한데 친절히 번호가 달려 있어 찾기는 쉽지만 프랑스어를 잘 모르니 찾아봐야 해소는 잘 안 됩니다. 쨌든 “왜냐하면”은 원문에서 car입니다. 저는 parce que는 많이 본 기억이 있는데 car는 낯설어요. 하지만 둘이 거의 비슷하다네요. 영어의 because와 거의 같습니다. 신은 피조물들의 존재의 근원이고 본질의 근원입니다. 가능하다고 해서 다 실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것만으로 현실적이 되는 필연적인 존재, 신이 있어야 우리의 근거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라이프니츠는 말합니다. 반박 가능? 불가능하지? 이렇게 우리는 신의 존재를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요.

 

중간쯤 등장하는 47번은 논란의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혼자 원문을 보긴 했지만 이건 단어 수준이 아니라 문장 수준에서 문제가 되는 거라 세미나 시간에 별 힌트를 얻을 수 없었어요. ㅠㅠ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어 하시는 분 도움 좀...

 

47. Ainsi Dieu seul est l’unité primitive, ou la substance simple originaire, dont toutes les Monades créées ou dérivatives sont des productions et naissent, pour ainsi dire(말하자면), par des Fulgurations continuelles de la Divinité de moment en moment, bornées par la réceptivité de la créature, à laquelle il est essentiel d’être limitée (§ 382-391, 398, 395).

(https://philo-labo.fr/fichiers/Leibniz%20-%20La%20monadologie.pdf)

 

지금 짧은 실력으로나마 다시 시도해보면 두 개의 동사구 “sont des productions et(그리고) naissent”의 공통 주어는 “toutes les Monades créées ou dérivatives”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아요. naissent는 naître(탄생하다)의 3인칭 복수형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된 또는 파생된 모나드들이 태어난다(번역문은 생성된다)로 보아야 할 듯해요. 직역하자면 ‘모든 창조된 또는 파생된 모나드는 신의 산출물이고 말하자면 신의 끊임없는 섬광에 의해 매순간 태어난다’로요. 이 해석이 맞다면 <형이상학 논고>에서도 나온 연속 재창조론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셈인데요, 지금까지 펴온 모나드론과 모순되는 지점들이 생깁니다. 세븐샘 말씀대로 창조 후 뒤편에 물러나 있는 신인지 끊임없이 변화를 일구어내는 신인지를 두고 라이프니츠가 고심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논리적 귀결과 당위적 귀결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심하는 라이프니츠가 보입니다.

 

‘미친 후기’ 2탄이 될 조짐이 보입니다만 (아마도 이미....) 능동성과 수동성에 관해 제가 건 시비를 간단히 쓰자면 모나드는 창이 없다고 했지만 라이프니츠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능동과 수동이 상호적이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샘들이 말씀하신 대로 이것은 “신의 매개를 통해서만 작용된다”고 하지요. 그러니 창이 없어도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만 모나드가 서로에게 스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 어느 모나드는 능동이고 어느 모나드는 수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를 가르는 기준은 각기 모나드의 지각이 얼마나 판명한가입니다.

 

혼자 읽을 때는 지나쳤는데 저는 세미나 시간에 59절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어요. 앞서 58절에서 무한히 많은 단순 실체들이 있어서 무한히 많은 관점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한 뒤 59절에서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가능한 최고의 질서를 갖는, 가능한 한 가장 큰 다양성을 얻게 된다. 즉 우리는 이와 같이 하여 가능한 한 가장 큰 완전성을 얻게 된다.”라고 씁니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최고의 질서와 가장 큰 완전성은 가장 큰 다양성과 함께 가네요.

 

급피곤을 느끼며 1교시를 마치던 정군샘의 상태를 겪게 되어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논란의 핵이 될 ‘복합체’가 이번 시간에는 안 나왔는데 다음 시간에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쟁점이 되어 화려한 피날레를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 주에 또 뵈어요.

댓글 8
  • 2023-12-01 13:44

    59절의 의미를 새롭게 읽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머리가 띵 할 때쯤 다 읽었다는 안도감으로 휘리릭 지나갔던 절이거든요. 후기 잘 보았습니다!

  • 2023-12-01 14:00

    여울아님에 이어 미친 후기 2탄인 것도 맞지만^^, 그보다 따끈따끈한 후기여서 어제 세미나를 복기해 보게 됩니다.
    47절과 관련해서 아렘샘은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과 비슷한 주장이라고 했지만, 기회원인론과 예정조화의 차이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연속 재창조와 예정조화가 어떻게 모순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 그것이 이번 세미나가 남긴 수수께끼인 것 같아요.
    혹시 이 문제 역시 필연적 진리나 추론적 진리가 아니라 우연적 진리 혹은 사실적 진리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요?(엉뚱한 데로 생각이 튀는군요.^^)

  • 2023-12-01 14:23

    이 긴 후기가 이렇게 순식간에 읽히다니 여러모로 쌤같은 분과 함께 공부했던 건(물론 다른 쌤들도 그렇고요) 제 주제에... 역시 수많았던 가능성의 세계 중 최선의 세계에 던져진 게 맞는것 같네요. 신의 선의를 믿고 싶어지는 후기입니다~

  • 2023-12-01 14:48

    그러게요. 미친 후기 아닌 걸요. 금새 읽혀요^^ 그리고 우리 수업에 재미를 더 해주는 세션샘!! 몇년전 들뢰즈 차이와 반복에서 전조 관련 부분이었는데, 이때도 계열이 하나냐 여러 계열이냐.. 질문을 똑같이 한다는 게 신기해요^^ 어제는 라이프니츠의 계열(지각의 수동/능동)는 결국 전체의 하나겠구나.. 등. 아직 뭔말인지 모르겠고 알쏭달쏭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 2023-12-01 16:11

    앗 하나 더. 모나드가 어쨌든 실체 잖아요. 단순하든 소박하기까지하든 아니면 고차원이든요. 호수샘 말대로 지각의 판명함에 따라서.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연장/사유실체와 스피노자의 부분이 모여 전체, 하나의 실체와 비교해볼 때. 라이프니츠는 실체를 지각수준에서 모나드 각각에 실체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실체를 명명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그는 무엇을 의도했던 걸까요??

  • 2023-12-01 18:18

    미친(美親) 후기 맞네요. ㅎㅎ. 길지만 아름다운...그리고 신속하게. 호수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12-01 23:26

    험한 한 주 보낸 월급쟁이에게 연속적인 미친 후기를 써주신 호수샘, 그리고 지난 주 여울아샘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호수샘/세션샘 두 분 정 많이 드셨습니다.

  • 2023-12-02 10:24

    친절한 강의 감사합니다~ 에세이를 호수샘 후기 정도로만 쓸 수 있어도 더할 나위 없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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