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 <모나드론> 4주차 후기-모나드가 수학적 점이 아닌 이유

여울아
2023-11-26 12:51
290

말로만 듣던 모나드 모나드 모나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이제 시작입니다. 

17세기 후기 저작물들 중 제가 아는 한 스피노자의 에티카,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과 같이 공리체계에 따라 기술된 책들입니다. 이들은 책 머리에 정의, 공리들을 나열하고 이들에 근거하여 자신의 명제들을 논증합니다. 그러니까 정의와 공리 같은 것들은 별도의 논증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기초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좀 묘한 모양새입니다. 어디에도 정의, 공리, 명제와 같은 체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은 기하학원론 정의 1번과 유사합니다. 

 

1. 단순하다 함은 다시 말하면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는 복합체 안에 단순 실체이며, 부분이 없다고 합니다. 유클리드는 '점은 부분이 없다'고 <기하학원론>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왜 부분이 없냐? 연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하학원론에 따르면 점이 모여서 선(직선/곡선)이 될 수 없습니다. 대신 선에는 무한히 점들이 포진할 수 있습니다. 왜냐? 부분(넓이와 길이)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하학에서 이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기하학은 무한원리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니츠는 왜 뭣땀시, 단순 실체는 부분이 없다는 문장에서 시작했을까요? 모나드든 복합체든 비물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것을 주석에서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물체란 현상이며 관념이라고 합니다. 이후로 현상계와 가지계를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주석자(번역자)는 구분하여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이 주석들이 얼마나 초보자의 읽기를 방해하던지...  주석을 읽으면 오히려 더 모르겠더라구요... 그 깊은 뜻을 못알아 들으니 말이죠. 이 주석이 그렇습니다. 61절 이후에 나올 개체적 사물이 복합체에 준한다는 내용 같은데... 그렇다면 복합체에 대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봅니다... ㅎㅎ

 

2. 복합체는 단순한 것들의 무더기 또는 집적체이다.  

 

그러나 왠 걸. 복합체를 그냥 넘어갈 순 없더군요. 왜냐하면 단순 실체는 부분이 없지만, 복합체가 존재하듯 단순 실체도 역시 존재하며, 이것들을 모아모아 복합체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하학에서 점들은 모여서 선을 만들 수 없지만, 라이프니츠의 단순 실체들은 모여서 복합체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모나드가 수학적 점과 다른 이유입니다. 

 

3. 모나드들은 자연의 진정한 원자이고, 사물들의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합체일지라도 단순 실체 , "부분이 없다"는 정의에 따라 복합체든 단순 실체든 연장도 형태도 없고 더 이상 분할도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라이프니츠는 그냥 원자가 아니라 "진정한 원자"라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분이 없다"는 문장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해석하거나 최근 수학계는 "위치만 있다"고 해석합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원자론을 연상시키지만, 주석자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부정한다고 설명합니다. 왜냐? 라이프니츠에게 "진정한 원자"란 비물질이기 때문입니다. 

 

6. 모나드들은 한번에 생성되거나 소멸되 수 있다. 즉 창조를 통해서만 생성되고 파괴를 통해서만 소멸된다.

 

이 문장을 보면서 이 당시 발생생물학이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창조론을 위협할 정도였는지 말입니다. 1670년 경 현미경으로 로버트 훅이 세포를 발견했다고...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논쟁은 지금여전한데, 이 당시 닭이 난자로부터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7. 모나드들은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명한 문장입니다. 왜 이렇게 꽉막힌 생각을 했을까? 처음엔 의아했는데, 나름대로 그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철학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창조론을 설명하기 위한. 

 

8. 모나드들은 그 어떤 성질들을 소유해야만 한다. 

 

모나드들은 외부의 변화도 그에 따른 우유성(우연)도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각각의 모나드들은 구별될 수 있지? 혹은 변화할 수 있지? 아마도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이들의 성질, 질적인 차별성을 얘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9. 각각의 모나드들은 모든 다른 모나드들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신의 자존심입니다. 그의 전능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은 절대로 인간과 똑같은 실수를 할리 없기 때문입니다. 

 

10~11. 모나드의 변화는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내적인 원리를 따른다.  

22. 현재는 미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다. 

 

모나드라는 말을 DNA나 유전자라고 대체해도 말이 되는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제서야 앞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모나드는 유전자의 프로그래밍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ㅎㅎ 주석자는 모나드가 내적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욕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후로는 창문이 없지만 어떻게 내적 원리에 따라 모나드들이 변화하는지를 설명합니다. 

 

13. 변화하는 것의 세부 내용은 필연적으로 단일성 또는 단순성 속에 다수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세션님이 모나드의 특수성으로 왜 보편성을 설명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저는 그냥 그렇지... 하고 넘겼습니다. 이런 다수성들은 지각에 의해 촉발되기 때문입니다. 

 

14. 지각은 통각 또는 의식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각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했는데, 이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동물의 영혼과 엔텔레키(혼미한 지각)의 존재도 인정합니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그외 합리주의자들이 "이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에 열성을 다한데 비해 그는 "지각" 수준으로 내려와서 존재를 설명합니다.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답습니다만. 지금까지 그의 직접적인 언급은 동물까지만. 

 

15. 변화 또는 내부 원리의 작용은 욕구라고 불린다. 

17. 지각은 기계론적인 근거를 통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라이프니츠는 지각이 모나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복합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굳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

 

18. 모든 단순한 실체들 또는 창조된 모나드들에게는 엔텔레키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19. 영혼이란 명칭은 지각이 판명하고 기억에 의해 동반되는 모나드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영혼은 동물에서부터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했지만, 라이프니츠는 기억에 따른 행동이 가능한 동물까지를 주로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0. 영혼은 단순한 모나드보다 더 많은 어떤 것이다. 

 

기절을 하거나 깊은 잠에 빠졌을 때처럼 기억이나 지각이 혼미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영혼은 단순한 모나드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깐일 뿐 영혼은 단순한 모나드 그 이상이라는 것. 

 

21. 그렇다고 단순한 실체(모나드)가 어떤 지각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아주 많은 미세한 지각들)

22. 단순한 실체들의 현 상태는 그들의 앞선 상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23. 의식이 없을 때조차 우리는 지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24. 지각이 혼미할 때 아주 소박한 모나드들의 상태이다.  

26. 기억은 영혼에게 일종의 추리(연관)를 제공한다. 

28. 사람들이 전적으로 기억의 원리를 통하여 그들의 지각으로 추론을 하는 한 인간은 동물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전체 행동의 4분의 3의 경우에는 순수한 경험론자처럼 행동한다. 단지 천문학자만이 이에 대해 이성적 근거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기억이란 철저히 경험에 근거한 것으로 오늘 아침 태양이 떳으니 내일 태양이 뜬다는 주장을 동물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국의 경험론자들을 저격한 것이겠지요^^ 이에 반해 천문학자들은 내일 아침 태양이 뜨는 것을 이성에 근거해 판단한다고. ㅎㅎㅎ 

 

29.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이성적 영혼 또는 정신이라고 부른다. 

30.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사유함으로써 우리들은 동시에 존재와, 단순한 것이든 복합적인 것이든 실체, 비물질적인 것, 그리고 우리 안에서 제한되어 있는 것이 그의 안에서는 무제한한다는 것을 파악함으로써 신 자체에로 우리의 생각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라이프니츠에게 반성적인 행위란 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성적인 추리가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17세기초 갈릴레이가 지동설 관련?? 책을 냈다가 30년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데 비해 17세기 후반은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지동설을 인정되는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는 왜 천문학자들만이 이성적이라고 말했을 까요? 지동설조차 신의 무한함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아니었을까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가 수학적 점이 아닌 이유는 기하학과 물리학 그리고 물질로서, 인간과 그에 준하는 영혼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 시간은 60절 정도까지 읽습니다. 

댓글 7
  • 2023-11-26 13:15

    어우 뭔 후기를 이렇게까지…미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11-26 14:37

    아이고 세미나도 내내 어질어질 했는데, 다시 보니까 여전히 어질어질 하군요 ㅎㅎㅎ
    보면 볼수록, <변신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만, 그래서 책상 한쪽에 놓여있는 책을 슬쩍 보고 있기는 한데...
    두께를 보면 도무지 펼칠 수가 없습니다 ㅎㅎㅎ. 라이프니츠를 다른 맥락에서 읽는 세미나를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다만, 개체-복합체 문제는 라이프니츠가 아니더라도 17세기에나, 현재 시점에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 2023-11-26 17:19

    아! 이번에 시작부터 부딪친 것이 복합체였네요.
    형이상학적 접근과 일상적인 어법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라이프니츠 읽기입니다.
    세미나를 하면 궁금한 게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주석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답은 없지만.. 서로 질문하는 가운데 라이프니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ㅎㅎ

  • 2023-11-27 07:50

    신의 관점과 개체의 관점 둘 다를 아울러야 하는 요구가 여러 난제를 일으킨단 생각이 들어요. 신적 관점은 오늘날에도 종종 등장하기도 하니 오래되었지만 절대로 구식이 된 문제가 아니네요. 라이프니츠를 처음 기대했던 것에 비해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여울아샘 후기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2023-11-27 20:33

    여울아샘의 후기로 완벽하게 복습을 하게 되네요. 긴 후기 감사합니다.
    17절에서 언급된 "지각을 단순 실체 안에서 찾아야 하고, 복합된 것이나 기계 안에서 찾아서는 안된다"와 관련해 라이프니츠는 복합 실체(복합된 것) 안에서는 지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요.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예를 들어 풍차) 안에 들어가더라도 그 안에서 지각을 발견할 수 없는 것처럼요.
    지각은 모나드(단순 실체) 안에 내재해(접혀져) 있는 '주름'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예요.
    모나드를 구성하는 게 지각들이기 때문에 "단순 실체 안에서는 이것, 즉 지각들과 그들의 변화 외에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 2023-11-28 09:40

    여울아샘이 알려주시는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부분이 흥미롭네요!

  • 2023-11-29 10:34

    여울아샘 핵심강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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