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형이상학 논고] 3주차 후기

세븐
2023-11-17 20:01
333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라이프니츠의 주저인 <형이상학논고>를 마무리하는 3주차 세미나(항목 23∼끝) 날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습니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던 시간.
라이프니츠 세미나원들은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관념'을 갖고 씨름해야 했습니다.
공교로운 건 4주차 질문을 가장 먼저 올린 자타공인 '전교 1등' 가마솥샘이 지각했다는 것입니다.

 

정군샘이 "전교 1등이 바뀌었다"며 가마솥샘에 대한 유쾌한 뒷담화를 하는 것으로 세미나가 시작됐습니다.
<형이상학논고> 세 번째 토론의 테이프를 끊은 건 세미나가 막 시작된 후 입장한 가마솥샘.
정군샘이 "후반부로 갈수록 라이프니츠의 힘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포문을 열었지만, 가마솥샘의 첫 질문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관념과 개념의 구분 그리고 난해한 '본유 관념'이 돌파해야 할 첫 관문입니다.

'개념이 없이는 관념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생각의 재료인 관념이 바탕이 되어야만 사유가 가능하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내용들은 '관념'(idea)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우리가 파악하거나 형성하는 것들은 '개념'(concept)이라 불릴 수 있을 것(106p)"이라는 문구가 둘을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설명일 듯합니다.

라이프니츠는 본유 관념을 문제화합니다.
"내가 내 자신이나 나의 사상에 관하여, 따라서 존재, 실체, 행위, 동일성 및 다른 많은 사물들에 관하여 가지는 개념들은 내적 경험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107p)이라며 모든 관념이 마음의 내적 원리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의 저작 <신인간지성론>은 본유 관념을 부정한 경험론의 대표 주자 존 로크의 <인간지성론>에 반박하기 위해 쓴 책입니다.
라이프니츠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백지(빈 칠판)와 같다는 로크의 주장을 거부하면서도 명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유 관념은 백지보다 헤라클레스 상이 새겨진 대리석에 비유합니다.

 

본유 관념 형성 과정에서의 신(神)의 관여 여부도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신의 끊임없는 작용을 통해서만 모든 사물들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107p)는 부분을 발췌한 가마솥샘은 "신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아렘샘은 "라이프니츠는 창조주인 신으로 마감하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면서 스피노자(무신론자), 데카르트(신이 없어도 가능한 기계론자)와 대비해 라이프니츠에게 '신학자'(?) 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반면 정군샘은 라이프니츠가 수시로 신을 도입하는 구조와 관련해 "'신으로 도망갔다'고 하는 것보다 헤겔이 절대정신을 끌어들인 것보다는 정직하다"며 옹호론을 폈습니다.

요요샘 역시 신의 활용이 "퉁치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시도하는 노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라이프니츠에게 딜레마인 악(惡), 은총의 문제와 자유의지, 영혼-육체의 관계도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신은 가능세계 중 최선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보는 라이프니츠로선 악이 낙관주의에 반박되지 않음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다른 스콜라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을 '선의 결핍'으로 봅니다.
그러나 '빈 용기에 채워진 절반의 물'과 관련한 설명(115p)에서 절반의 결핍의 원인을 '용기(容器)의 결핍'으로 해석한 주석자의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또 은총과 관련해선 '신은 왜 특별한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을 부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유한한 인간은 알 수 없다' '상세한 인식은 우리 능력을 넘어선다' 식으로 회피해 변신론(辯神論)의 한계를 보인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반면 정군샘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변신론이라는 차원에서는 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논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이 구조가 칸트에게 영향을 많이 줬을 수 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요청해야만 도덕적으로 살 수 있다는 논리 구도가 생겨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호수샘이 제기한 '라이프니츠적 자유의지'는 '절대적 결정론'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루비콘강을 건넌 시저와 건너지 않은 시저.
요요샘은 두 세계가 모두 가능하고, 강을 건넜다면 그게 신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정군샘은 "자유의지를 신의 시선에서 보면 최선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간단하다"면서도 "개체(인간) 수준에서는 '몰랐다'는 수준에 머무른다. 의지로 선택했다는 수준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며 신과 인간간 관점의 차이를 주목했습니다.

 

라이프니츠가 '인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신이 자유로운데 신이 만든 인간이 자유로울수 없겠는가"(아렘샘). "자유의지가 확실히 있고, 영혼은 자유롭다"(요요샘)며 긍정 쪽에 무게감이 실렸습니다.

 

진달래샘과 여울아샘이 영혼과 육체의 관계 그리고 둘의 결합에 관해 물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영혼은 비물질적 실체이고, 육체는 비물질적 단자들로 구성된 복합실체이며 둘간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모나드론>에서의 주도적 단자와 단자들의 집합 사이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관련해서도 "(라이프니츠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마치 동일한 곤충이 탈바꿈을 통해 다른 형태의 육체를 갖는 것과 유사하게 영혼은 그가 속하는 육체를 끊임없이 바꿀 뿐"이라며 다소 추상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밖에도 요요샘은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과 스피노자의 적합한 관념보다 더 엄밀하게 명제와 정의를 규정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아렘은 모나드인가'의 화두와 관련해 '모나드들의 집합체'라는 주장을 폈던 아렘샘은 '아렘의 모나드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됐다'며 달라진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또 '실체들의 현상 조화의 결과가 어떻게 실재성을 갖는지?'(세션샘)와 '관념은 무조건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호수샘)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날 세미나는 휴대전화 수리 때문에 막판에 합류한 재선샘의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보충과 관련한 질문을 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형이상학논고>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보다는 수월한 듯하면서도 신과 관련된 부분에선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군샘이 남긴 <형이상학논고>의 교훈.
"(피조물인 인간이)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상황에서 신이 나를 얼마나 총애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유한한 인간은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고 애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시 모나드를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봄날샘의 말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다음 세미나에선 <모나드론>을 처음부터 강독 형식으로 읽기로 했습니다.

 

댓글 5
  • 2023-11-17 23:34

    멋진 그림과 후기 감사합니다~ 막판에 합류해서 아직 세미나 녹화본도 제대로 못봤지만 짧은 댓글만 미리 남깁니다. 정군샘 표현처럼 예정되어 있지만 유한한 인간은 상자를 펼쳐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라이프니츠의 세계관이.. 묘하게 매력적인 것 같네요 ㅎㅎ

  • 2023-11-19 09:37

    세미나 하고 나면 한동안 저는 머릿속이 멍해집니다. 세븐샘의 일목요연 정리로 안개가 조금 걷힙니다.ㅎ 감사합니다!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도는 질문은 물체와 모나드의 관계, 단일실체와 모나드, 모나드와 신이라고 마음에 새겨봅니다.
    형이상학 논고의 완전개념, 실체로부터 비롯된 이 질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모나드군요.
    <형이상학논고>(1686)로부터 거의 28년 후의 저작인 <모나드론>(1714)에서 어떤 변화와 성숙, 단절을 읽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철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철학 내에서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나는 철학자도 있고 초기의 사유를 확장하고 심화해가는 철학자도 있는 것 같은데,
    라이프니츠는 과연 어느쪽일까요?^^

  • 2023-11-20 13:00

    요점을 차근차근 짚어주는 성실한 기록이네요. 감사합니다 세븐샘. 저는 데카르트부터 주욱 관념적인 사유의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 들고 이번이 가장 깊고 아득하게 느껴져요. 한편 우리가 강을 건널지 말지, 왜 배신하는지를 진심 치열하게 고민하고 설명하는 라이프니츠의 모습에 묘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렇네요.

  • 2023-11-20 14:30

    우리가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결국 신을 옹호한다는 거네', '결국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네'처럼 어느 철학자 자신의 생각과 결론을 토대로 그 사유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그런 경우가 많고요. 물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그 철학을 '시험'하기 위해 방법적으로 일부러 그러한 포지션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유의 의미는 모두들 아시는 바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복잡하죠. 요컨대 '의미'는 철학자 자신이 한 말보다 읽는 사람이 생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복잡성이 가중되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라이프니츠는 특유의, 노골적인 보수성에 비해서 '의미'의 수준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철학자라는 생각이 매주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우리가 세미나를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ㅋㅋㅋ 행복한 가운데, 의미도 있는 시즌4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ㅋㅋㅋㅋ

  • 2023-11-20 15:21

    관념이 본유적일 수 있느냐, 개념이 선험적일 수 있느냐... 이런 문제들을 앞에 놓고 두 대답에 모두 당근 yes 지라고 답하는 철학자들의 정치한 생각들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철학이라고, 좁혀서 합리론이라고 하는 철학들을 살펴보면서... 저는 그들의 독단론의 정치함에 한 번 젖어보는 맛이 올해 철학교의 소득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읽은적 있는 니체와 들뢰즈를 반대편 이쪽 저쪽 어줍잖게 위치시키면서 깜을 좀 넓혀보고 있습니다. 막바지에 이른 철학교...화이팅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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