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흉노열전> 후기

곰곰
2023-12-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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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전통적으로 자기 나라를 중심에 두고 사방에 접한 이웃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해서 오랑캐라 불렀다. 한 제국은 영토 확장 정책을 폈기 때문에 동서남북 이민족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사마천은 여러 편의 오랑캐전을 썼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사마천이 <흉노열전>에서 북방의 유목민족 생활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그러한 자국중심주의와는 조금 달라보였다. 그는 흉노의 모습을 폄훼하며 묘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흉노의 경우 노인들을 박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마천은 미개한 오랑캐의 풍습이라 일컫지 않는다.

 

억지로 흉노로 가게 되었지만, 그후 흉노의 편에 서서 한나라를 상대한 환관 중항열이 있다. 그의 항변을 들어보자. 

 

“흉노는 분명 전투를 일삼는 민족이오. 늙고 약한 사람이 싸울 수는 없소. 그래서 영양 많고 맛있고 음식을 건장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이오. 이렇게 해서 스스로를 지키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것이오. 이것을 두고 어떻게 흉노가 노인을 천대한다고 하겠소?”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이 지혜를 주고 장정이 사회적 노동을 담당했다. 그러나 목축과 사냥을 하는 흉노는 똑같은 문화를 가질 수 없었다. 사냥과 전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이상 강한 인물을 숭상할 수 밖에. 중항열은 다른 사회 경제적 조건이 다른 문화를 낳았다고 말한다. 

 

“흉노의 풍습에 사람은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젖을 마시며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소. 가축은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철마다 옮겨 다니오. 그래서 그들은 싸울 때를 위해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평상시에는 일 없는 것을 즐기고 있소. 그들의 약속은 간편하여 실행하기 쉽고,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간단하고 쉬워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몸인 듯하오. 아버지, 아들, 형, 동생이 죽으면 그들의 아내를 맞아들여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대가 끊길까 염려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흉노는 어지러워져도 한 핏줄의 종족을 세울 수 있는 것이오. 지금 중국에서는 드러내 놓고 자기 아버지와 형의 아내를 아내로 삼는 일은 없지만 친족 관계가 더욱 멀어져 서로 죽이기도 하고, 혁명이 일어나 천자의 성이 바뀌기도 하는데 모두 이런 데서 생기는 것이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예의만을 지키다 보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원망만 하게 되오. 궁실과 가옥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꾸미다 보면 생산할 힘을 다 쓰게 되오.” 

 

흉노에게는 흉노의 문화가 있고 중원에는 중원의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마천은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이들의 문화를 통해 중원의 문화를 상대화 시킨다. 중항열의 존재는 한나라와 흉노 사이의 문화 충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항열은 흉노의 풍속이 구체적인 삶의 토대와 방식에서 비롯된 그들 고유의 것이라고 해석해 설명했다. 명민하다. 한나라의 번문욕례(繁文縟禮)와 흉노의 간소하고 실용성 있는 문화를 대비시키는 것은 문명세계의 기준에 대한 반성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

 

중항열은 흉노의 독특한 문화를 잘 이해했다. 나아가 한나라와의 교역이 흉노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흉노 사람들은 한나라의 비단과 옷감을 좋아했는데 이를 두고 중항열은 비판했다. 

 

“흉노의 인구는 한나라 군 하나에도 못 미칩니다. 그러면서도 강한 것은 먹고 입는 것이 한나라와 달라 한나라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우께서 풍속을 바꿔 한나라의 물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흉노의 백성은 머지않아 모두 한나라에 귀속될 것입니다. 한나라의 비단과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말을 타니 풀이나 가시덤불을 달려보십시오. 모두 찢어져 못 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한나라의 옷이 털옷이나 가죽옷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보이십시오. 한나라의 먹거리를 얻으면 모두 버리고 그것이 젖과 유제품보다 편리하지도 않고 맛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보이십시오.”

 

후대의 역사는 중항열의 비판이 쓸데없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묵돌 선우 사후 흉노는 이전과 같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흉노열전>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은 묵돌이 아닐까. 흉노는 묵돌이 등장하면서 일변한다. 흉노의 우두머리를 선우라 하였는데, 묵돌 선우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두만 선우의 아들이었는데 일찍이 명적, 쏘면 날아가서 소리가 나는 화살을 만들어 자신을 따르는 기병들에게 나눠주고 이렇게 명한다. “내가 명적으로 쏘아 맞히는 곳에 모두 활을 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소리나는 화살, 명적)

처음에는 사냥에 나가 별안간 명적을 쏘아 자신을 따라 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었다.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베니 자연스레 자신의 명을 충직히 따르는 이만 남았다. 이후 그는 갑자기 자신이 아끼는 말을 쏘았다. 머뭇거리며 활을 쏘지 않는 이들은 베었다. 얼마뒤 애첩을 쏘았다. 두려워하며 감히 쏘지 못하는 자들이 있자 또 그들을 베었다. 그는 철저히 그리고 기민하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만들고 싶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병사를 솎아낸 것일까. 어느 날 사냥을 나간 묵돌은 명적으로 아버지 두만 선우의 명마를 쏘았고 모두 일제히 그 말을 쏘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사를 치른다. 아버지 두만 선우를 향해 명적을 쏘았고 뒤 따르는 병사들이 그를 쏘았다. 묵돌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를 잔인하다는 말로만 재단할 수 있을까. 묵돌은 영특했다. 길게 보는 안목을 가졌으며 인내할 줄 안다. 집요한 성격을 지녔으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사용할 줄 안다. 목표가 정확하고 집중력을 발휘한다. 술수에 뛰어나고 남이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하며 상벌을 정확하게 적용해 신하를 통제한다. 사마천은 적국 사람인 묵돌을 상세하게 묘사할 필요 없이 무서운 놈으로 이러저런 일이 있었노라 설명만 하고 지나가도 상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묵돌의 에피소드들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은 그들 세계의 논리를 이해해보려 한 것은 아닐까. 앞서, 그들의 풍습에서는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으면 달려가 예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명인의 감각으로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을까. 사마천의 통해 보는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댓글 1
  • 2023-12-07 09:17

    흉노열전을 읽으니 유목민에 대한 세미나를 하고 싶네요.

    20231207_02301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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