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번역등관열전> 후기

도라지
2023-11-08 10:47
583

번역등관열전은 번쾌, 역상, 등공, 하후영, 관영 네 사람의 합전이다. 네 사람의 특징은 모두 유방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운 장수들이였지만 신분이 미천하였다는 점. 진나라 말기 혼란한 틈에 큰공을 세우는 기회를 잘 잡았다는 점일 것이다. 번역등관열전은 이 네 사람의 공적과 그들의 후대가 어떻게 유지되고 사라졌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번쾌는 패현 출신으로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유방이 군사를 일으킬 때 무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다. 칼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사 출신이 아님에도 매번 전투의  선두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의문이긴 하다. 암튼 번쾌는 홍문연에서 유방을 항우에게서 극적으로 구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초한지- 천하대전)에서도 홍문연 때 번쾌는 제법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는 자기 손가락을 이빨로 끊어내는 장면이 나왔는데 열전에서는 항우가 준 돼지다리를 생으로 먹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도 이 장면을 영화로 재구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쾌는 이후 계속된 여러 반란도 평정한다.  무양후로 봉해졌다. 유방이 한나라를 접수한 것 같아도 그의 치세 내내 반란은 계속 되었다. 유방이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인지 땅 덩어리가 넓어서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동서지간으로 엮여 더 믿음직했을 고향친구 번쾌의 존재는 유방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잠깐 번쾌에 대한 오해로 그의 목을 날리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후가 정권을 휘두르는 동안에도 번쾌의 가통은 유지 된다. 여태후 죽고 잠시 주춤하지만 효문제 때 번쾌의 자손 번불인, 번타광도 무양후가 되었고 번타광에 이르러 봉국은 사라진다.

 

역상은 탕군 진류현 고양향 사람으로 역이기의 동생. 이세황제 때 진승과 오광이 봉기할 당시 수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있었는데 유방이 진류현에 있을 때 병사 4천여명을 이끌고 기현에서 유방에게 귀순했다. 역상은 유방이 장사를 공격할 때 성에 가장 먼저 올라간 공으로 신성군에 책봉되었다. 이후에도 유방을 따라 많은 군대를 격파하고 단독으로도 큰 공을 세우는데 순관을 공격하여 한중을 평정한다. 그는 우승상이 되어 고조를 따라 경포를 격파한다. 역상은 고조가 죽은 후에 효혜제와 고후를 섬겼으나 역상의 아들 역기가 여씨 일족인 여록을 죽이는데 가담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역기매우(友: 역기가 여록을 속여 죽게 만든 것을 말함 : 저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고 한다.

 

하우영(등공)은 패현 사람으로 서한 시기의 개국공신이라고 한다. 원래는 패현 관청의 사어(司御:마구간지기)인데 패현의 사상정을 지나다니다가 당시 정장으로 있던 유방과 친해진다. 진나라와 전투할 때 유방을 수레에 태우고 전차로 질주하면서 전투를 벌인 공로로 騰(등: 뛰다, 질주하다, 힘차게 달리다...)公의 작위를 받았다. 등령이 되어 유방의 수레를 몰았기에 등공이라고 호칭한 것이라고 한다. 유방을 따라 초한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고, 후에 여음후로 봉해졌으며 예제와 문제 때에도 태복(太僕: 궁중의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일)을 지냈다.
하우영의 일화에서 재밌던 것은 팽성에서 한왕이 항우의 군대에 대파하고 도망갈 때 한왕이 효혜와 노원 공주를 수레 밖으로 떨어뜨려 버리려 할 때마다 하후영이 수레 아래에서 이들을 받아서 수레에 다시 태우고 달렸다는 장면이다. 이때 유방이 진노하여 하후영을 10여 차례 참수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물론 후에 하우영은 이 일로 효 혜제와 고후의 신임을 얻게 된다. 또한 고후가 죽어서도 하후영은 문제 때도 태복으로 지낸다. 그의 시호는 문호였다.

 

관영은 전한 초기 수양 사람으로 젊어서는 비단 파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진나라 말기 유방의 시종관으로 남전(藍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공을 세워 집규의 작위에 오르고 창문군으로 불렸다. 낭중과 중알자 중대부 등을 지냈다. 장군으로 제를 평정했고 항우를 무찔러 고조 6년 영음후에 봉해졌다. 관영이 경포를 격파하고 귀국했을 때 고조가 죽었다. 관영은 혜제와 여태후를 섬겼다. 여후가 죽은 후 여씨 일족을 주살하는 일에 크게 가담했고 문제를 옹립한다. 문제 때 승상이 된다. 시호는 의후.

 

태사공은 패현의 풍읍에서 살아있는 노인들과 번쾌의 손자 번타광과 교류가 있던 사람에게 물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1000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그러게....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직업만 가지고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견디는 것은 어디 쉬었겠는가? ^^

댓글 1
  • 2023-11-08 21:37

    번쾌의 재발견
    위기 때마다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상황을 예리하게 판단해서 시기적절 한 때를 맞추고,
    여희의 동생인 여수와 혼인을 할 정도이면,
    유방못지 않게 훌륭한 인물인데.......
    백정이라는 틀에 매여 과소평가를 했네요.
    선비의 품격이라 하고 다양한 직업이라 하겠습니다.
    가족이면 문고리권력을 했을만 한대도
    문을 박차고 들어가 유방에게 호통을 친 그 기개는,
    역사에 기록 될 만 했네요.
    역시,난세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드는 군요.

    족발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맛이 있는 걸로......

    도라지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요즘은 조금 도라지로 들린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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