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이사열전> 후기

곰곰
2023-09-10 23:55
676

이번 시간에는 <이사열전>을 읽었다.

 

이사(李斯, 미상~기원전 208년)는 초나라 상채 사람으로,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공부했다. 훗날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천하를 다스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진시황 때는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사마천은 이 편에서 ‘이사’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적에 관한 고찰을 통해 진나라가 흥하고 망한 한 단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사의 여러 에피소드와 다른 인물들(호해 조고 등) 이야기까지 상당히 공들여 쓴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이사가 네 차례 탄식한 일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이로써 그의 성격 및 세계관이 드러난다.

 

첫 번째 탄식 - 사람이 잘 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이사가 젊은 시절, 변소의 쥐들은 더러운 것들을 먹으며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치지만, 창고에 사는 쥐들은 배부르게 먹으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칠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 “사람의 어질고 못남은 비유하자면 쥐와 같다. 어디에 처하는가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하며 탄식했다. 사람이 훌륭한가 그렇지 못한가는 그 사람이 처해있는 곳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라고 깨달은 이사는 순자에게 제왕학을 배웠다. 그리고 비천한 자리,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선비가 아니라며 순자와 작별하고 진나라로 간다. 그가 얼마나 출세지향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사는 진나라에서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고 능력을 인정 받는다. 결국 진시황의 측근이 되었고 여러 공적을 쌓아 객경이 이른다. 

 

하지만 잘 나가던 이사에게도 위기가 왔다. 한나라 정국의 술책이 밝혀지면서, 진나라 출신 왕족과 대신들이 타국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을 내쫓을 것을 건의한 것이다. 그 배제 명단에 이사도 포함되었다. 이때 이사가 진시황에게 올린 축객서(逐客書)는 천하의 명문장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과거 중국 왕조로부터 타국의 능력있는 인물들을 유입해 왕국이 부흥한 역사를 열거하고, 중국의 자원과 보물도 모두 진나라 것만이 아니라는 것, 음악조차도 서로 좋은 것은 어느 나라의 음악인지에 관련없이 좋으면 받아들이는 이치를 설명한다. 그리고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결국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조목조목 밝혀 왕을 설득한다. 결국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후 20년 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두 번째 탄식 - 군현제 실시와 분서갱유

진나라 통일 이전에는 봉건제였다. 이때는 제후들이 자치를 하며 중앙국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후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중앙국가를 위협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이사의 건의로 지방관리를 중앙정부에서 직접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했다. 더이상 지방에 제후국이 세워지지 않고 권력도 세습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나라의 고대 봉건제를 이상으로 여기는 유학자들이 이 급격한 개혁에 찬성할 리 없었다. 새 체제에 불만과 비판의 소리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사는 봉건제가 옳지 못하며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정책과 규정을 비판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며 의약, 점복, 농사 등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태워 없애야 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시황제가 받아들여 실행에 옮겨졌다.

<하버드 중국사>에서는 사실 분서가 파괴보다는 통일을 위한 정책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사는 개인들의 수중에 있던 <시경>,<상서>, 기타 제사서를 모조리 몰수하여 황궁의 서고에 보관하고, 정부가 지명한 학자들만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실용서적들은 압수되지 않았다. 통일 제국에는 통일된 신념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기에, 경전에 접근할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정치사상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책들을 체계적으로 없애버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큰 피해는 기원전 206년 항우가 진의 수도를 약탈하면서 황가의 장서를 불태웠을 때 발생했다. 

 

어쨌든 진시황과 이사의 협업으로 진나라는 법률과 제도를 만들고 문자를 통일하고 국력을 날로 강해졌다. 이사의 큰 아들은 태수가 되었고 아들들은 모두 진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딸은 진나라 왕자들에게 시집을 갔다. 아들인 이유가 휴가 차 함양의 이사를 방문하여 잔치를 열었는데 나라의 고위관리들이 대거 나오는 바람에 그들이 타고 온 말과 수레가 수천 대나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사는 스승으로부터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을 상기하며 자신이 평민, 시골 출신으로 황제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과 부귀가 극에 달한 것을 느끼고 ‘만물이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며 탄식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사가… 괜찮았다. 

 

세 번째 탄식 - 시황제의 죽음

지방 순회 중 황제의 병이 갑자기 위독해졌다. 시황제는 조고에게 맏아들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도록 편지를 보내게 하지만, 이 편지가 사자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자 시황제의 편지와 옥새를 가진 환관 조고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권력에 눈이 먼 한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역사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조고는 교묘한 언변으로 호해와 이사를 끌어들였다. 이사도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 조고는 이사가 몽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따져묻고, 부소가 황제로 즉위하면 이사는 모든 지위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설득한다.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재앙이 자손에게까지 미치고 두려운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 겁박한다. 이에 이사는 “나 홀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어디에 내 목숨을 맡기랴?” 한탄하며 결국 조고의 의견을 따른다. 그렇게 진시황의 죽음은 숨겨지고 가짜 유서를 만들어 부소에게 거짓 죄를 덮어씌워 자결하게 만들었다.

 

네 번째 탄식 - 이사의 죽음

철저한 출세주의자로 권력지향적이었던 이사였지만, 환관 조고와의 권력 투쟁에서는 철저하게 패배하고 만다. 함양 시장 바닥에서 이사 자신은 허리가 잘리는 오형을, 다른 가족들은 참형을 당한다. 그때 이사는 형장에 끌려가면서 함께 죽게 된 아들을 돌아보며 탄식한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끌고 고향 동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이사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진나라에 큰 공을 세웠을지언정 자신은 오형을 받아 죽었고 집안 사람들까지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동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의 개인적인 비극보다 역사적인 비극이 더 참혹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이사가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통일하고 제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사가 능력과 지식을 모두 충분히 갖추었고 높은 지위에 올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왕에게는 아첨과 비위로 대하고 백성에는 가혹한 형벌로 다스렸으며 나라를 위해 마땅히 왕위 계승 자격이 있는 적자를 폐하고 부적격자를 제위에 올린 것을 지적한다. 이사가 그러한 일들을 행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통일과 통치에 크게 기여한 이사는 후대에 큰 명성을 남겼을 것이라고 하며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호해는 어리석고 무능했으며 조고는 음험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의 욕심은 이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사는 지식, 지위,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들과 같이 옳지 않은 일에 동참했고 일시적으로는 큰 보상을 받았으나 결국 조고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 호해도 조고에 의해 살해되고 마지막에는 조고조차도 살해된다. 이들의 잘못은 개인적인 비참한 종말을 넘어 결국은 국가 전체가 몰락하는 결말을 불러오게 되었다. 진나라는 호해 즉위 후 3년만에 중국 전역을 통일한지 불과 14년 만에 중국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다음 시간에는 <몽염열전>을 읽고 옵니당!

댓글 2
  • 2023-09-11 15:41

    이전에 읽었을 때는 몰랐던 이사의 모습을 본 듯합니다.
    세상에 출세하고 싶은 욕망만 있다고 하기에는 호해에게 간언하는 모습이 또 그렇고.
    자기 출세를 위해 뭐든 하는 장면에서는 좀 나쁜 놈인가 싶기도 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부귀 명예도 끝에 다다르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사는 왜 멈추지 못했을까요?
    흔히 말하듯이 말로 안다고 하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라더니... 그런 건지
    한비자를 죽였을 때를 생각하면 자기의 상소도 호해에게 가지 못할 것을 알았을텐데.요.

  • 2023-09-15 10:55

    세기의 천재인 이사는 중국역사상 첫 통일을 만들어낸 시황제를 보필했다.
    시황제의 목표의 장대함은 천하통일이었고,
    그 옆의 이사는 삼공(三公)으로 등용된 후에도 여전히 그의 정체성은 '쥐'였다.
    그의 정체성은 변소에서 곳간으로,
    기회를 틈 타서,
    딱 이 만큼만,이동을 했을 뿐이다.
    결국,집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그런면에서 사마천은 '이사편'에서 탄식을 유독 많이 넣지 않았을까!(탄식~~)
    살기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마천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이사는 작위와 녹봉이 귀해서, 아부하고, 구차하고, 영합하는 '곳간의 쥐'일 뿐이다.
    범부의 입장으로는,이사 또한 사람이니까 이사의 선택이 공감이 가고
    대부의 입장으로는, 사적인 욕심이 중대한 공적인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소인배적 정신이다..
    嗚呼哀哉

    곰곰선생님의 후기에는 이사의 탄식이 4번으로 쓰셨는데,
    나는 이사의 탄식이 5번으로 보였다.

    <조고가 이사의 죄목을 심문했다. 이사는 구속되어 묶인 채 감옥에 갇히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에게 무슨 계책을 말할 수 있으랴! 옛날 하 걸왕(夏桀王)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였고,,,,,,>

    이사는 육예(六藝)의 귀결을 알면서도 군주의 결점을 보완하는 공명정대한 정치에 힘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그는 승상으로서는 최고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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