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입문 7회차 후기

우현
2023-11-22 18:10
158

 

 이번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었죠. 악명 높은 칸트의 저작이어서 다들 바짝 쫄았습니다. 저도 물론 어려웠지만 여태까지 읽은 원전 중에 가장 읽기는 편했어요. 고대 그리스 저작부터 데카르트의 근대 텍스트까지만 해도 문장 길이가 너무 길고 문체가 읽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어떤 문장이고 편하게 넘어갈 수 없어서 스트레스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칸트의 문장은 비교적 현대적 문장에 가까웠죠. 비교적 간결하고 문체도 깔끔해서 편하긴 했습니다. 다만 내용이 어렵다보니 정말 ‘글자’만 읽기 편했다는 정도입니다. 저희는 서론만 읽기에 그나마 편했지만... 풀로 다 읽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네요ㅎ

 아무튼 칸트는 플라톤부터 내려오던 형이상학을 비판합니다. 사상을 건물에 비유하면서 ‘토대가 견고하지 못한 건축물’이라고까지 표현하죠. 그 근거는 ‘경험’의 토대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지성이 감성적 감각이라는 원재료를 가공해서 산출해 낸 최초의 산물이다. 바로 그렇기에 경험은 최초의 일러줌이며, 또한 경험이 진전해 감에 따라 새로운 가르침은 끝이 없어서, 계속되는 미래의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이 바탕 위에서 모아질 수 있는 새로운 지식에 아무런 결어도 갖지 않을 정도이다.”

『순수이성비판』 A판 서론 중

 

 ‘경험’은 우리의 인식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인데, 플라톤의 ‘이데아’를 비롯한 형이상학들은 ‘경험’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데아는 실존하는지 검증할 수 없고, 참된 보편성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도 참된 보편성을 제공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이 현존하며 그렇지 않은가를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며 다르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지는 않기(203) 때문이죠. 이는 흄이 이야기하는 회의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사실 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경험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경험만 가지고는 불변하고 객관적인 ‘법칙’을 세울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칸트는 형이상학과 회의주의의 중간에 서려고 합니다. ‘경험’을 활용하여 형이상학으로 나아가지도 않으면서, 모든 ‘경험’은 주관적이라며 회의주의로 빠지지도 않는 ‘법칙’을 세우려는 것이지요. 그것이 ‘순수 이성’이고, 칸트는 ‘선험적 종합 판단’으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럼 ‘선험적’인 것은 뭐고 ‘종합 판단’은 뭘까요? ‘선험’은 말그대로 경험에 앞서있는, 경험을 기반하지 않더라도 보편성을 갖는 인식입니다. ‘종합 판단’이 좀 어려운데요, 칸트는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분석 판단’은 술어 B가 주어 개념 A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것으로서 주어 A에 속하는 것(207)입니다. 반면 ‘종합 판단’은 술어 B가 A개념과 연결은 되어 있지만, 전적으로 A개념 밖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광어는 어류다.” 라는 문장은 분석적일까요? 종합적일까요? 세미나때 정군샘이 예로 든 질문인데요, 이 질문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죠ㅎㅎ. 정답은 분석적입니다. ‘광어’라는 개념에는 이미 ‘물고기 어’자가 들어가있기 때문이죠. 광어라는 표현 자체에 어류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분석적인 문장이 됩니다. 반대로 종합적인 문장은 “우현이는 바보다”(정군샘이 세미나때 예로 드신 겁니다.)가 있겠죠. ‘우현’이라는 표현을 아무리 분석해도 ‘바보’라는 개념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종합 판단이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뜻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이를테면 “독서대는 유용하다” 라는 문장을 봅시다. 이 문장은 종합 판단으로 읽을 수 있죠. 독서대에 유용하다는 개념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 문장이 ‘참’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아마 대부분이 그렇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독서대를 사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이렇듯 종합 판단에서 주어와 술어가 연결되는 근거는 ‘경험’에 있습니다. 하지만 독서대를 써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 문장이 ‘참’이라고 느낄까요? 아마 그들은 써본적이 없어도, ‘독서대’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면 있다면 그렇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선험적 종합 판단’입니다.(사실 독서대 문장이 적합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더 적합한 문장을 떠올리지 못해 살짝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게 ‘순수 이성’이지요.

 『순수이성비판』의 서론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느낌입니다. 본론에서는 ‘순수 이성’과 ‘선험적 종합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풀겠지요? 복습하면서 정리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서론의 내용은 간단한 것 같아서 좀 재밌었네요.(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ㅎ 댓글로 수정해주세요) 그렇다고 본론이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다음 시간에는 B판을 강독합니다! A판과 B판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면서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댓글 2
  • 2023-11-25 15:48

    <방법서설>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여서 진짜 철학책을 읽는 것 같았지만, 전 왠지 <방법서설>이 인간미가 느껴져서 더 좋네요^^
    다만 흄의 경험주의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론을 읽고 순수이성에 급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궁금하게 쓰지 않았나요? ㅋㅋ 언젠가 칸트의 세 비판서를 읽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 2023-11-26 14:34

    와 드디어 세미나 마지막 시간이군요. 어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게다가 마무리로 <순수이성비판> 서설을 읽기 시작한 건 잘 한 일인 듯 합니다. 토용샘 말씀대로 이게 '진짜 철학책' 느낌을 아주 잘 드러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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