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멧돼지의 '출몰'과 새로운 '우리'

경덕
2024-03-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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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혈투로만 그려지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낯선 존재와의 ‘얽힘’을 ‘감염(병원성 미생물이 사람이나 동물, 식물의 조직, 체액, 표면에 정착하여 증식하는 일)’이라고만 명명하는 의학적 진단은 어딘가 불충분해 보였다."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박쥐와 낙타가 ‘나쁜 자연’을 전파한 용의자로 소환되었다. 우한 사람들과 동양인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박멸을 외쳤다.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격리 중에 식물들이 새롭게 보였다. 당시에 에코섹슈얼(자연을 관능적이고 섹시하게 바라보는 사람, 자연 사물과 성행위를 나누는 사람)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혹시 나도? 하는 호기심에 방 안에 있는 식물들을 가까이 응시했다. 잎을 만지고 입술을 대보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내가 사는 원룸에도 식물이 있다. 이사 오기 전부터 키운 몬스테라와 디시디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아비스, 동네 꽃집을 지날 때 사들고 온 작은 다육식물들과 아이비, 작은 올리브 나무. 나는 에코섹슈얼은 아니지만 잎과 흙을 만지고 냄새를 맡다 보면 무언가 오고 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 땐 식물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저들과 친족을 맺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나 코로나 시국은 잠잠해졌고 방에 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시들어 죽었다. (살아남은 몇몇은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어떤 존재의 '출몰'이 '방역', '백신', '격리', '박멸' 등의 제도화된 언어로 재구성되는 동안, 누군가의 '신체'는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들과 마주치는 '접촉면'으로 재조직되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피부 안팎을 훑고 지나갈 때 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안과 초조, 기쁨과 경의를 오가며 감정이 널뛰었다. 인간 몸과 비인간 자연들 사이의 상호연결, 상호교환, 그리고 이동을 탐구하는 스테이시 앨러이모는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와 인간 사이의 물질적 상호연결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특히 관심 또는 경이의 주체로서 사람 또는 사물과 관련되는 사물의 상황이나 상태"(옥스퍼드 영어 사전)라는 물질matter(또는 문제theh matter)의 관용적 정의에 잠복한 윤리학을 환기시킬 수 있다."[1]라고 썼다.
 
스테이시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사이의 접촉 지대에 주목한다.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와 맞물리는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이란 개념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궁극적으로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지점으로부터 강력한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이 부상한다고 말한다. 비인간 자연을 관심 또는 경이의 주체로 생각할 때 바이러스와 식물 각각은 인간과 어떻게 맞물릴까? 비인간 자연을 적대, 또는 호혜 관계로 규정하기 전에, 분리될 수 없는 '우리'로 전제하면 어떤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이 펼쳐질까?
   
   
동물의 행위력
   
바이러스와 식물이 인간 너머의 관계를, 그리고 새로운 '우리'를 상상하게 했다면, 비인간 세계로 나를 가차없이 끌어당긴 건 동물이었다.
 
구조된 동물들이 거주하는 새벽이생추어리에는 두 명의 돼지가 산다. 그들은 각각 '식용동물'로, '실험동물'로 태어났지만 탈출과 이주를 거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나는 구조된 동물을 돌보는 선량한 인간 봉사자로 그들을 만났지만, 돼지들은 '인간'과 '동물'로 구획된 범주를 가차 없이 찢고 흔들었다. 나는 300킬로그램이 넘고 엄니가 날카롭게 자란 돼지가 나를 향해 돌진해올 때 포식자에게 쫓겨 도망치는 동물이 되었다. 내가 돼지의 똥을 줍느라 진흙탕을 밟고 풀숲을 헤치는 동안, 돼지는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하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인간성과 동물성의 경계가 교란된 생추어리에는 '도망치고 풀숲을 헤치는 인간'과 '산책하고 사색하는 돼지'가 한데 공존했다.
 
돼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고양이가 종종 보였다. 눈이 마주치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의 행동을 주시했다. 크게 경계하지 않는 것 같으면 서서히 자세를 낮췄다. 그럼 고양이 또한 나를 유심히 살폈다. 어느날 한 명의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와 한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를 보았다 다른 곳을 보다가 했다. 신경을 쓰는 둥 마는 둥, 그러다 슬쩍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찰칵! 촬영 버튼을 눌렀다. 그때 찍은 사진을 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였고 서로의 언어도 몰랐지만 무언가를 함께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는 인간과 포즈를 취하는 고양이'라는 작품(상호응답)을 공동 창작했다!
 
 
 
 
비인간과의 만남이 호혜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론 적대하고 공격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돼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다가가면 몸통 박치기로 크게 다칠 수 있다. 고양이의 심기를 잘 살피지 않으면 냥냥 펀치를 맞거나 손등에 발톱 자국이 남을 수 있다. (물론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인류학자 전의령은 이렇게 썼다.
   
"인류학과 여타 사회과학에서 행위력이라는 개념은 행위자actor가 행사하는 능력 또는 힘으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비인간은 오랫동안 행위자로 간주되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기술, 의료, 환경, 동물, 심지어 기업과 시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최근의 인문사회 연구는 비인간의 행위력을 진지하게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이성과 의도,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근대 인간주의적humanist 행위자, 행위력 개념에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전의령, 동물 너머, 22쪽』
    
전의령은 인간의 질서 속에서 순응하는 존재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 동물의 행위력에 주목한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행위자로서 동물들을 재조명한다. ‘영리한 한스’Kluger Hans[2]를 인간과 동물의 상호학습으로 재해석한 벵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 "암컷 쥐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넓은 우리를 설치해 짝짓기에 능동적인 수컷과 수동적인 암컷이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린 마사 맥클린톡Matha McClintock, 22마리 양에게 매일 23그릇의 밥을 제공함으로써 양들도 정치적 협상을 벌이는 존재임을 보여준 델마 로웰Thelma Rowell의 연구,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상호 이해를 구축한 동물행동학자 이렌느 페퍼버그Irene Pepperberg와 앵무새 알렉스Alex의 대화 등”은 “주체-대상을 넘어서는 인간-동물 관계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3]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식물과 접촉하고, 돼지와 고양이의 행위력을 실감하면서 "종 안에 갖혀 사는 근대적 인간의 곤경"에 대해 생각했다. "이성과 의도,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인간 행위자", 그리고 진보와 성장, 복지로 완성되는 유럽 중심의 선형적 인간 서사는 기후 위기와 펜데믹 등 각종 재난 상황들에 의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비인간 타자들에 의해 붕괴하고 있다. '성장 담론'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어떤 이들은 잘 가꾸어진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도래한 '세계의 끝'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회피하거나 초월하는 대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고안한다. 누군가는 세상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4], 누군가는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위한 서사를 기획한다.[5] 스스로를 전문 부랑자, 히치하이커, 사회 부적응자로 소개하는 누군가는 폭력이 난무하고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회에 적응하길 거부한다.[6] ‘탈인간 선언’을 외치는 누군가는 인간 종 중심주의를 넘어 새로운 우리를 발명하고자 한다.[7] 그리고 누군가는 탈출과 이주를 감행한 돼지와 함께 다종의 돌봄 공동체를 개척한다.[8] 

   
    
새로운 ‘우리’
    
이 글을 쓰며 멧돼지 소식이 궁금해 기사를 찾아보았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 검색창에 '도봉구 멧돼지'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런 뉴스를 발견했다.
   
“도봉구청은 엽사 등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인근을 배회하던 멧돼지 6마리를 3시간여에 걸쳐 차례로 포획한 뒤 사살했습니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인명피해는 없다"면서 "사살한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검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 도봉구 놀이터에 멧돼지 출몰…6마리 사살, MBC뉴스, 2024-02-16>
   
안전안내문자와 뉴스에서 포착된 동물은 ‘주민의 안전을 해치고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위험한 몸'으로만 재현된다. 사진 속에 나란히 누워있는 돼지 시체들이 보였다. 이런 물음들이 이어졌다.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연결, 경이의 주체로서 멧돼지를 재현할 수 있을까? 동물의 삶과 죽음을 관리하는 생명정치(죽음정치)의 작동 방식을 포착할 수 있을까? 포획과 사살,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사로 이어지는 관료적 절차를 교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서든 '출몰'하는 동물들과의 접촉면에서, 인간-동물 ‘얽힘’의 현장 속에서 강력한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멧돼지를 인간 너머의 친족으로, 새로운 ‘우리’로 상상할 수 있을까? 
 
 

 
[1] 스테이시 앨러이모,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정의』, 그린비, 18쪽

[2] 영리한 한스 (독일어 : der Kluge Hans ; c. 1895 – c. 1916)는 산술 및 기타 지적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되는 말이다. 1907년 공식적인 조사 후 심리학자 오스카 풍스트(Oskar Pfungst)는 말이 실제로 이러한 정신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련사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데스프레는 ‘인간이 동물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에 기초한 풍스트의 해석을 ‘인간과 동물의 상호학습’으로 재해석한다.

[3] 전의령, 『동물 너머』, 돌베개, 46쪽

[4] 루아이우통 크레나키, 박이대승·박수경 옮김,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오월의봄

[5] 손희정,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메멘토

[6] 이하루, 『사회적응 거부선언』, 온다프레스

[7] 김한민, 『탈인간 선언』, 한겨레출판

[8] 향기·은영·섬나리, 『훔치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호밀밭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댓글 6
  • 2024-03-03 09:55

    오늘 아침 도라지의 인스타에서
    우리도 영상으로 함께 봤던, 도라지 양양집에 출몰하기도 했던, 고라니들이 굶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뭔가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어요. 손도 짧은 동안 살짝 떨렸구요.

    비인간생명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에요. 가장 핫한 정치적 화두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오늘은, 멧돼지와 고라니를 위해 명복을 비는 하루가 되어볼래요.

    • 2024-03-03 22:34

      도라지샘 인스타 보고 저도 가슴이 쿵...
      죽고, 죽임 당하는 동물들의 명복을 빕니다.

  • 2024-03-04 10:27

    하, 숨가쁘게 읽었어요. 익숙하고 안전한 인식의 틀에 때로는 둔탁하게 퉁, 때로는 거슬리는 고음의 깡! 하며 돌멩이들이 튕기는 느낌이었어요. 그 반향, 파동을 찬찬히 음미해볼게요~

    • 2024-03-04 23:32

      둔탁하고 거슬리는 반향과 파동을 음미해주셔서 감사해요. (퉁! 깡!)

  • 2024-03-04 23:59

    고라니들이 그들의 마지막을 저희에게 맡겨준 것에 감사했습니다.
    직접 마주친 적은 몇 번 없었지만 아마도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며 살았을 테니까요.

    도시半 산골半 둘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다보니.
    제 사고와 신체가 점점 유연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비인간 동물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겠죠.
    때로는 그들과 먹이를 두고 타협해야 하고,
    때로는 산 속에서 서로의 영역을 명확히 하기 위해 머리도 써야합니다.
    (멧돼지와 마주치면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암튼 비인간 동물과 같은 공간에서 사는 것에 깊숙하게 연루되어 있어 그럴 겁니다.

    산 속에서 멧돼지는 경이로운 생명체입니다.
    저는 저희 텃밭에서 굴삭기처럼 땅을 파곤 그 안에서 개운하게 목욕하고 가는 멧돼지를 이웃으로 두고 있습니다.
    '개울 건너에 돼지감자를 잔뜩 심어야지!'
    녀석들이 또랑 건너 돼지감자에 넋이 나가 저희집을 더이상 목욕탕내지 식당으로 삼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궁리중.

    경덕님의 글을 통해 계속해서 많은 비인간 동물들을 만나게 되겠군요!
    저는 계속해서 그들과 지혜롭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볼게요. ^^

  • 2024-03-06 09:39

    이번 겨울 강원도의 폭설로 야생동물들이 힘겨웠단 소식을 들었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또 종종 들리는 목장이나 우리에서 탈출한 동물들의 소식에도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모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우울해요.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야죠. 할 일을 해야죠.
    또 공부하고 글을 써야죠.
    우리 경덕님 글 잘 읽었어요.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15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35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재개발 구역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경덕
2024.04.02 | 조회 327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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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343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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