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

김윤경~단순삶
2024-01-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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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본에 노동을 파는 방식이 아닌 공익을 위한 노동은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들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임금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사주에 ‘식신’(食神)이 세 개여서 그런지 직장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시 예전 했던 일로 직장을 구했다. 월급을 받고 돈이나 벌면서 그냥 적당히 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동안 병명도 모른 채 아픈 몸으로 지내다가 ‘류머티스 관절염’이라고 진단받았다. 병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나는 우연히 알게 된 감이당 대중지성 1년 과정에 과감히 등록하게 되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청소와 공부를 통해 달라지기

 

 

감이당 대중지성 2년 차에 나는 다시 직장을 그만두었다. 달콤한 월급이라는 꿀통을 발로 찼으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기에 하루 2~3시간 일하는 알바를 검색하던 중 청소어플을 발견했다. 의뢰인의 집에 가서 하루 몇 시간 청소를 제공해주는 식이었다. 일단 신청하고 첫 집에 가보았다. 남자 대학생들이 사는 쉐어하우스 아파트였다.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쓰레기에 놀랐고, 어린 남학생들 사이에서 청소하는 행위 자체도 살짝 굴욕적인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청소를 진행할수록 점점 깨끗해지는 집안을 보며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앗 이게 뭐지? 이것이 청소의 힘인가?’ 청소하는 일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수행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래서 출가하면 청소부터 시키는구나.^^)

 

 

 

얼마 후 공부하던 스터디카페에서 청소하는 일을 구하게 되었다. 하루 한 시간이지만 매일 하는 거라 용돈도 되고 무엇보다 스터디카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이 있어서 공부를 이어 나갈 나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다. 책상 위아래, 바닥 청소 그리고 휴게실 정리, 비품 채워 넣기,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까지가 나의 업무였다. 처음에는 남자 화장실에서 어린 학생들과 부딪힐 때 역시나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당당하게, 자유롭게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년 8개월을 수행하듯 청소를 이어 나갔다.

 

 

청소와 더불어 공부는 나의 삶을 변화시킨 도구였다. 갑자기 찾아온 병 덕분에 공부의 길에 들어섰던 나에게 공부란 삶의 문제를 푼 열쇠였다. 세미나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며 나의 문제들을 풀어갔다. 특히나 글쓰기는 나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엉뚱한 글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그동안 보지 않았던(못했던) 내 안의 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못된) 모습을 파헤치며 글을 써 나가야 하는 과정은 조금은 괴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서 학인들과 함께 나누면 이상스레 커다란 문제들이 쪼그라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쓰기로 난 나의 문제들을 청소했고, 군더더기를 덜어낸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나의 주변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힘을 가지게 되었다. 글쓰기와 청소는 나에게 다르게 살아갈 신체를 선물했다.

 

 

 

 

 

 

 

마을활동가를 꿈꾸다

 

 

그렇게 달라진 신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결론은 내가 체득하고 배워가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주변과 나누는 삶이었다. 그래서 작년(2023년) 1월, 지금 사는 금천마을의 문을 두드렸다. 주춤주춤 여기저기의 문을 두드리며, 조심히 들어가 많은 모임과 사람들을 만났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응모해 ‘금천, 나만의 사적인 지도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 사업으로 마을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미나게 놀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동네에서 만나, 동네에서 놀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참여자들도 모임을 기획한 나에게 만족함의 표시를 많이 해왔었다.^^

 

 

 

그러던 중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노랑식탁’이라는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노랑식탁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동네 이모’ 세 명이 장보고 요리하여 ‘집밥’처럼 밥상을 차려주는 컨셉이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화력이 약한 화기, 집구류의 부족, 익숙하지 않은 장소 등 요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 서로 다른 세 명이 합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참여하는 청년들의 만족한 모습을 보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정성을 다해 준비했던 밥상은 만족도가 매우 높아 올해(2024년)에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나는 주방일이 너무 힘들고 시간을 많이 빼앗겨 계속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동안 참여했던 청년들과 새롭게 독서 모임을 제안해 같이 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 청년들과 함께, 어떻게 엮어나갈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보통 활동가하면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전형적인 어떤 상(像)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굳이 소속을 말하자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한 문탁네트워크 인문약방팀? ^^;) 누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마을활동가를 붙인다면, 내가 공부로 깨달았던 것들을 나의 생활 현장에서 실험해 가는 무소속 마을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인문약방팀의 스텝으로도 참여하기로 했다. 또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은 성장형으로 공모를 할 예정이다. 청년들과의 독서 모임도 꾸려 나가야 하고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마음충전소’사업의 매칭매니저로도 활동한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일 년 일정이 이렇게 미리 정해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복작복작,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런 마을 활동들을 이렇게 연재까지 하게 되어 정말로 올해는, 나에게 특별하고도 중요한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발적 백수에서 소속 없는 마을활동가로 변신하려는 여정의 시작이 바로 이 글이다.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부족하고 성마른 저에게 부디 많은 사랑 주세요~)

 

 

댓글 23
  • 2024-01-20 11:01

    마을활동가 윤경님의 활기찬 출발과 변신을 응원합니다.
    열정적인 활동으로 확장해가는 윤경님의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 지 흥미롭게 지켜볼게요~

    • 2024-01-20 11:41

      첫글의 첫댓글 감사합니다 ~~
      오영님의 응원 잊지않을께요.

  • 2024-01-20 11:56

    어떤 변곡점이 될까 무지 궁금해지네요~~ 멋진 변곡점이 되길!

    • 2024-01-20 12:01

      응원합니다~~~^^

  • 2024-01-20 12:12

    2024년 1월에 보는 윤경샘의 일상이 소박한건가요? 단단히 재미와 흥미가 장착되어 있는데요. 글로 소개해주신다니 기대됩니다. 올해도 행복하시길.

  • 2024-01-20 13:32

    소중한 인연 윤경님의 기대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올 한해를 응원합니다!!

  • 2024-01-20 16:38

    마을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윤경 마을활동가님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

  • 2024-01-20 16:53

    고전읽기로 처음 만난 단순삶님.
    변신을 응원힙니다!

  • 2024-01-20 17:47

    앗! 윤경님 팬들이 댓글을 많이 다셨네요!
    저도 빨리 달었어야 했는데. ^^

    금천에는 저도 살짝 인연이 있어요.
    앞으로 윤경님 글 기대할게요.
    성실한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 2024-01-20 18:05

    우왕 넘 좋네요! 프로필 사진부터 빵 터지고 시작했습니다ㅋㅋㅋ
    올 한 해 '윤경이'의 '조증적 열광' 아낌없이 보여주세요!!!

  • 2024-01-20 20:15

    처음 법가를 같이 공부한 이후로 한번도 못뵈었네요^^ 건강과 분투를 기원합니다!

  • 2024-01-22 09:30

    와~ 멋지셔요!
    오며 가며 뵈었던 윤경님. 이렇게 멋진 분인 걸 알게 되서 기쁘고요.
    단순하지만 강력한 삶을 응원합니다~

  • 2024-01-22 09:37

    1년전 인문약방엠티에서 만나고 같이 양생프로젝트도 했는데, 윤경샘의 삶의 궤적을 이렇게 읽게 되니 또 새롭게 느껴지네요~^^
    무소속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이야기 기대됩니다~^^

  • 2024-01-22 10:22

    쌤의 첫글 응원합니다! 함께 일 년 재미나게 연재해봐요! 😁

  • 2024-01-24 19:01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에너지는 다 어디서 오는지.... 존경합니다.

  • 2024-01-25 14:29

    윤경님의 조증적 열광적 사랑에 감염되고 싶습니다.^^

  • 2024-01-25 22:59

    홧팅!!! ^^

  • 2024-01-27 00:10

    프로필 사진의 매력만큼이나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대단하세요^^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2024-01-30 11:01

    자발적 백수..부러습니다. ㅎ 윤경샘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2024-01-30 14:33

    무소속 마을활동기 윤경샘 응원해요~ 앞으로 나눠주실 흥미로운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2024-01-30 17:57

    에너자이저 윤경샘. 저도 노랑식탁 후속모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몹시 궁금하네요. 우당탕탕 좌충우돌일 것 같지만 은근 세심한 윤경샘의 마을 이야기 기다려집니다.

  • 2024-01-30 19:03

    윤경샘
    화이팅!!!
    첫글에서부터 활발발 기운이 느껴져요.
    연재 기대됩니다^^

  • 2024-02-14 17:50

    고모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삶을 새로이 채워줄 수 있는 훌륭한 변곡점이 되기를 기도해!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에 존경을 담아♥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2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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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4.04.02 | 조회 301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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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2024.03.25 | 조회 33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3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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