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명상 친구 만들기

요요
2024-01-10 17:19
430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더 강하다. 각묵스님은 ‘마음 챙김’으로 옮겼다. 새김 보다는 좀 더 직관적이다. 새김이나 마음 챙김이 사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마음 지킴, 주의집중, 알아차림 등으로 풀기도 한다.

 

그런데 사띠에 대해 가르치는 경전에서는 언제나 사띠 즉 정념(正念)은 언제나 정지(正知)와 함께 붙어있다. 정지는 팔리어 삼빠잔나(sampajāna)를 옮긴 것으로 분명하게 아는 것, 바르게 알아차리는 것을 뜻한다. 사띠가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둔 대상에 대해 선입견이나 판단과 해석의 필터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앎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바로 삼빠잔나다. 그러므로 명상 수행을 할 때 정념과 정지, 사띠와 삼빠잔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이 되는 것이다.

 

사띠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마음을 두고 바르게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숨을 길게 내 쉴 때는 길게 내 쉰다는 것을 알고, 짧게 내 쉴 때는 짧게 내 쉰다는 것을 안다.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면 즐겁다고 알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싫어한다고 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대로 바라볼 뿐, 좋다고 붙들려고 해서도 안 되고, 싫다고 밀어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분명히 보이게 되면 저절로 습관적으로 작동하는 마음의 패턴도 보이거니와,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이 그저 흐름과 변화일 뿐이라는 것도 지적인 앎이 아니라 직접적 앎으로 깨닫게 된다.

 

 

 

50일간의 명상입문

 

불교학교에서는 사띠 수행을 가르치는 경전과 해설서를 읽어 나가면서 직접 명상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개념을 아는 것은 책으로도 가능하지만, 명상의 맛을 알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기 전에는 잠시 좌선 실습을 하고, 먹은 후에는 경행을 했다. 좌선은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경행은 걸으며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좌선할 때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과 호흡을 관찰하는 명상법을 배웠다. 경행은 걸을 때 다리와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둔다. 발을 뗄 때는 발을 뗀다고 알아차리고, 발이 바닥에 닿을 때는 닿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텍스트 이해를 통해서는 명상의 개념과 원리를, 실습을 통해서는 방법을 익히는 한편, 매일 30분 명상을 과제로 삼고, 각자 명상일지를 올리며 어떻게 명상하고 있는지 공유했다. 처음에는 30분 동안의 좌선도 힘들어 못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다리가 아파 앉아있기가 힘들다, 앉아는 있는데 머리 속에서 정신적 수다가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하는게 망상인지 명상인지 잘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에 천천히 각자의 일상 속에 명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7주가 지난 뒤 명상센터에서 2박 3일의 집중 명상을 했다. 집중 명상에서는 묵언과 오후불식을 지키며, 지도 스님의 안내로 새벽부터 밤까지 1시간 좌선, 1시간 경행을 반복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각자 자신만의 느낌으로 명상의 맛을 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인터뷰를 통해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도 가졌다. 인터뷰 시간에 지도 스님은 그룹으로 온 우리를 격려하며 담마 사하야(법의 도반)이라는 모임명까지 지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50일의 명상 입문과정^^을 마쳤다.

 

 

 

담마 사하야, 법의 도반

 

공부도 수행도 좋은 벗(善友)이 있어야 서로에게 의지하며 갈 수 있다. 명상 커리큘럼은 마쳤지만 불교학교의 겨울 시즌에도 명상 일지는 계속 공유되었다. 명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친구가 올리는 명상 일지를 읽으면 다시 마음을 내게 된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친구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 힘이 된다.

 

만일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새김(사띠)을 확립하여 그와 함께 가라.(『숫타니파나』 「무소의 뿔의 경」)

 

우리는 왜 어려운 텍스트를 읽고 쓰는 공부를 하는가? 앎의 기쁨과 자신의 습속을 깨는 깨달음의 순간이 우리를 계속 공부하게 한다. 명상도 그렇다. 명상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까지 신체적인 고통도 피할 수 없고, 진전을 가로막는 정신적 장애물들도 적지 않다. 몸과 마음을 가라앉게 만드는 혼침과 해태, 반대로 몸과 마음을 동요시키는 탐심과 성냄, 들뜸과 산만함과 같은 것이 정신적 장애물이다. 그런데 신체적 고통을 비롯한 정신적 장애물들은 의지만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띠를 하며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희한하게도  애쓰지 않아도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기쁨과 희열, 고요와 평화를 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요와 평화가 명상 수행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명상에서 키운 집중과 통찰의 힘은 일상의 삶을 변화시킨다. 내 마음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를 향한 자비심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공부와 수행을 함께 하는 좋은 벗의 지지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상 명상> 릴레이 연재를 통해,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는 사띠와 알아차림의 장에 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댓글 11
  • 2024-01-10 21:33

    샘 글을 읽으며 지난 일 년간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조금씩 알게 모르게 우리 각자에게 새겨진 것들-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들-이 잘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기를...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잘 가꾸어갈 수 있기를 ~ ^^

  • 2024-01-10 23:38

    일상 명상 화이팅!!!

  • 2024-01-11 09:58

    마음에 새기고 마음을 챙기고 고요와 평화를 느끼고 습속을 깨닫고 일상을 바꾸고... 등등 몸소 체험하신 '명상의 맛'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니... 세 분의 명상 이야기 정말 기대됩니다.^^

  • 2024-01-11 11:07

    명상 친구!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 2024-01-13 11:08

    요즘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를 읽고 있는데, (참고로 이 책 강추입니다. 비교적 최근 정보가 잘 업데이트되어있고, 재밌고, 쉽고 아주 유용함. 생물책 사실 아주 싫어하는데 이 책은 매우매우 재밌었음) 그 책을 보니 '좋은 경험'은 필요한 단백질 생성을 위한 DNA 발현 과정에 거의 약물(?)과 동등한 수준의 효능을 발휘한다더군요. 근데 그 '좋은 경험'으로 저는 왠지 명상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거든요. 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명상, 혹은 명상에 관한 이야기에 좀 관심이 가네요...

    • 2024-01-18 09:29

      오! 추천한 책 보고 싶군요. 명상이 제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좋은 경험인 거 확실합니다! 명상모임 만들면 세션님도 오세요~

      • 2024-02-14 00:02

        명상모임 만드시면 저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 2024-01-26 01:14

      퍼가요.

  • 2024-01-22 13:42

    릴레이 연재라기에 얼결에 해보겠노라 했지만,
    어쩐지 올 해 지구가 여느 때보다 빨리 돌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
    그러나 쌤들 뒤꽁무니에서 함께 명상하다 보면 나자빠지지는 않겠지요.

  • 2024-01-26 01:15

    저도 은근 명상에 소질이 있지는 않을까 짐작하는 일인입니다. 조만간 혹은 조금 먼 미래를 기약하겠습니다. 그때 가르침 부탁드려요.

  • 2024-01-27 00:00

    방학기간동안 살짝 느슨하게 보냈더니 세미나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어렴풋 해지더라고요, 요요샘의 글을 읽으니 기억이 하나둘 올라옵니다^^ 매일같이 명상일지 올려주시는 일상명상 샘들 덕분에 저도 느리게 따라가고 있어요.
    올한해도 일상명상 화이튕이에요!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2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경덕
2024.04.02 | 조회 302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모로
2024.03.25 | 조회 33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3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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