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 27회차 후기 : 춘추필법

진달래
2024-01-05 23:07
83

"이십오년 봄 왕정월 병오일에 위나라 제후 훼가 형나라를 멸하였다. (二十有五年春王正月 丙午 衛侯燬滅邢)"

 

이 나라 저 나라 서로 멸망 시키는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 위의 문장이 별 뜻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여기에는 <춘추>의 큰 뜻이 숨어 있다. 

그냥 위나라 제후, 위후라고 쓰면 될 걸 굳이 그의 이름인 훼를 밝혀 적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 전(傳)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정월 병오일에 위나라 제후 훼가 형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성이 같기 때문에 이름을 썼다.(正月丙午 衛侯燬滅邢 同姓也 故名)"

 

여기에 대한 주석은 이러하다. 

위나라와 형나라는 모두 희(姬)성의 나라로 주(周)나라와 종실 관계가 된다. 

때로 제후가 같은 성을 가진 나라를 멸망시킨 일이 있어도 제후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멸망 당하는 나라가 확실하게 죄가 있는 경우, 또 주 왕실의 성을 쓰지 않는 경우이다. 

이렇게 보면 춘추시대의 질서라는 것이 철저히 주나라 왕실과 관련하여 봉해 받은 나라 사이의 질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질서에 편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알 바 아니다. 뭐 이런 식인 듯하다. 

달리 보면, 서로 친척 간인 주 왕실과 봉국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돌봐줘야 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같은 식구끼리 이러면 안 되지!

그런데 주희와 모기령은 위후의 이름인 훼가 그냥 들어간 글자인 듯(羨文)하다고 했다는데 여기에 양백준 샘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니까 이 한 글자 '훼' 라는 제후의 이름을 써 줌으로써 그의 잘못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생에 의해 쫓겨난 주나라 양왕을 도와 다시 수도로 돌아가게 해 준 진(晉) 문공. 

이 분, 알다가도 모를 분인 듯

양왕이 진 문공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연 연회에서 자기를 천자 대우를 해달라고.... 청한다. 

물론 양왕의 대답은 "안 돼~" 였지만. 

아무리 저물어 가는 주나라이지만 천자에게 제후가 대 놓고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게... 

게다가 진 문공은 제 환공에 이은 패자였는데, 뭔가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드니 폼이 좀 안 나는 듯

알면 알수록 음흉한 구석이 있는 진 문공이다.

댓글 1
  • 2024-01-07 21:42

    <좌전>을 천천히 읽으니 춘추시대가 좀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동안 대충 춘추전국시대 500년 퉁쳐서 읽고 이해했는데, 서주시대와도 다르고 전국시대와도 다른 춘추시대만의 특징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진 문공이 천자의 예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를 당당하게 한다는 것부터 봉건 종법질서가 무너지는 현장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춘추5패가 종주를 모시기는 개뿔 ㅋㅋ <좌전>에 보이는 제 환공이나 진 문공이나 당최 패자스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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