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 봄의 문탁

동천동 해리슨
2010-03-30 14:07
4257

DSC_0010.jpg

 

한국의 마을은 판박이입니다.
재래식 낮은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납작 엎드려 살다가
어느 순간 중심부에 10여 층짜리 키다리 괴물 같은 아파트가 불쑥 솟아오릅니다.
그 주변에 상가가 들어섭니다.
그 아파트의 편리함을 다들 선망하다가 재개발 재건축에 슬슬 젖어듭니다.
실적을 챙기는 관청은 인허가 도장을 쾅쾅 찍어 줍니다.
대단지가 생깁니다. 길이 새로 나고 상가가 개업합니다.
치킨집 부동산중개소 실내포장마차 중국집 편의점 학원 동네슈퍼가 잇달아 생깁니다.

어느덧 대한민국 마을은 엇비슷해지고 동천동도 이런 판박이의 하나입니다.
키우는 애들도 비슷해집니다.
같은 교실에~ 같은 교육 프로그램에~ 같은 관념의 선생님들에 ~

그리곤 12년 동안 판에 박힌 성적 지상주의 경쟁 코스 뜀박질을 합니다.

 

동천동에 특별한 곳이 생겼습니다.
문탁.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문탁이 생긴 동천동은 이젠 판박이 마을이 아닙니다.

뿔뿔이 형해화된 사상누각의 아파트 성채가 아니라 풋풋한 지혜와 지성이 흐르는 마을이 되어갑니다.

문탁은 그 단초가 됩니다.

그러고보면 동천동은 참 행운이 깃든 마을입니다.

광교산 게릴라같은 공부꾼들이  곳곳에 암약하고 마을지킴이를 하고 있으니....

서로가 성심을 다해 도와주고 끌어주면 문탁은 굳어가는 저의 중년 시절 이마를  문! 탁! 칠 것같습니다.

문탁 공간의 슬로건. 절감합니다
“친구와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경구를 떠올립니다.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참 두려운 말입니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존재가 굳어버린다는 경고.
그렇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서 실천하고 뭔가 궁리질하라는 ... !

그러던 차에 ‘절차탁마’ 문탁이 화들짝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요.
저는 같은 이우학교 고3 학부모이신 ‘캔디공주’님의 강추로 토요일 오전 논어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5명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문탁 강의실에 모여 공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춘추시대 난세를 겪으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제자들과 고민하던 공자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저를 뒤돌아봅니다.
때로 울림이 깊은 명문과 좌우명을 얻고 되새김질 해봅니다.
함께 고문을 낭송하고 훈독하는 것은 얼마만에 만끽하는 배움의 기쁨인가요.
동천동 문탁의 탄생은 생활공동체로 나가는 거대한 발자국의 출발입니다.
2010년 봄. 그 대열에 함께하는 춘흥.  기분 좋습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으로 단련하지 않으면 미망에 빠지고
생각만 하고 배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 .....논어 위정편

댓글 5
  • 2010-03-30 17:01

    하하...드뎌...

    해리슨님을 문탁 홈피에서도 만나뵙는군요^^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 (논어, 옹야)

    제 식으로 해석하면..."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입니다.

    문탁의 길에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3-30 22:27

    때로 울림이 깊은 명문과 좌우명을 얻고 되새김질 해보며....

    함께 고문을 낭송하고 훈독하는 것은 얼마 만에 만끽하는 앎의 기쁨인지.....

    2010년 봄, 그 대열에 함께하는 춘흥에 저, 초록등대도 기분 좋네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봄의 문턱, 봄의 문탁' 제목도 너무 멋지네요.

    (작은 목소리로) 근데요~ 캔디공주님, 벌써 고3 학부모님이세요?  아직 첫사랑에 가슴 설레는 숙녀 같으신데..... 

     

  • 2010-03-31 18:46

    옛 직장동료(?)였던 해리슨님... 얼굴도 잘 모를 때 직장인트라넷에서 그의 글을 접하고 나혼자 괜히 '괜찮은 사람'이라 점찍었더랬죠.

    아마 해리슨님은 잘 몰랐겠지만...ㅋㅋㅋ

    어찌 이리저리 해서 동네에 살게되니 오히려 참모습을 알게되어 흐뭇하고 이리 함께 하니 더더욱 좋구먼요...

    바쁘지만 자주 봅시다요

  • 2010-04-02 15:50

    저는 나선배께 고마움뿐입니다.

    이렇게 동천동 살이 뿌리내리게 살펴주셔서...

    더구나 와보니 이렇게 선각자들이

    마을을 위해서 배움을 위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고심고심 족적을 풀어주시니...

    그 발자국 되밟고 따라가는 것도 광영입니다.

    열시미, 공부할께요,  고3처럼,,, ㅋㅋㅋㅋ

    열시미, 퍼마실께요,  고2처럼,,,, ㅎㅎㅎㅎ

  • 2010-04-04 18:37

    해리슨님!

    함께 공부 하니 좋습니다.

    여기서 글을 접하니 더욱 반갑습니다.

    고 2처럼 마시면 

    고 3처럼 공부하는데 

    지장있어요.

     

    초록등대님!

    ㄱ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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