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이 도달한 곳 / 윔뱃

문탁
2023-11-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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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는 아빠와 함께 여동생의 교회에 출석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이제껏 종교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 갑작스런 결정에 나는 아무 의견도 내지 못했지만, 잔상이 내내 떠올랐다.

 

나는 여동생의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동생은 결혼 후 미얀마 선교 중이다. 벌써 9년이 되어간다. 선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여동생의 교회 교리에 의아한 지점이 있었다. 하와가 선악과를 필연적으로 먹었어야 했다거나 중국과 미국의 각주가 독립 분리해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 게 될 거라는 설교 등. 그 교회의 목사님의 성경 해석은 너무 편파적이라는 인상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동생이 그렇게 오래 믿고 있다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했다.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건, 부모님의 마음속에 죽음을 해석하는 문제, 신체적으로 약해지는 노년을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으며 ‘알 수 없다’는 것. 아마도 그 ‘알 수 없음’이 부모님에게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부모님의 종교에 대한 변화된 생각은 나의 종교도 떠올리게 했다. 나도 이제 중년에 들어섰다. 나이듦에서 어떤 종교관을 가지느냐는 어떤 인생의 지도를 가지고 있느냐와 같다. 죽음과 늙어감 속에 자잘한 선택의 문제는 어떤 종교관을 가졌느냐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에세이를 통해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강박증이 만든 텅 빈 공간

 

한때 교회를 다녔었다. 나에게도 텅 빈 공간이 있었다. 영적인 텅 빈 느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텅 빈 공간이란 신에게 의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선, 처음 교회를 출석하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나는 스스로 교회에 갔다. 신에게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혼자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 생겼다. 어느 날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었다. 비논리적이고 원인도 없이 찾아온 생각은 스스로 멈춰지지 않았다. ‘그 생각 자체가 났다는 것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어났고 나는 일상에서 잘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가서 신에게 기도했다. 머릿속에 침투한 생각을 멈추게 해달라고. 그렇게 그것을 멈추게 하려고 특정 행동인 눈물과 기도를 반복했다.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활했지만 한번 ‘멈출 수 없는 생각’이 찾아오면, 정말 힘들었다. 마치 머릿속에 벌레가 갑작스레 나타나 특정 부분을 건드리는 거 같았다.

 

당연히 정신과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어린 탓에 잘 의사를 전달하지 못했던 것인지 엄마는 정신과는 안 된다고 했다. 정신과에 가면 기록이 남겨진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뭔지도 모르는 이것과 같이 살아갔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아지는 거 같다, 가도 혹시 이상한 생각의 침투가 올까 봐 내심 두려웠다. 그래서 항상 피난처로 신과 가까이 있었다.

 

 

 

 

나의 증상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된 건, 삼십 대 중반. 이 증상의 이름은 강박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이었다. 강박증은 오염 공포로 손을 반복적으로 씻는다거나 문을 잠갔는지 지나치게 확인하는 등 대게 강박적 행동을 동반하며 나타난다. 강박증의 핵심 정의는 뇌에 침투한 ‘어떤 특정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안 좋은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생각 자체가 불쾌감과 죄책감을 불러왔고, 신을 찾게 된다, 로 연결되었다. 많은 경우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상태가 강박증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한다. 이 자체를 타인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점은 강박 상태에서 활성화된 뇌의 에너지가 소모적으로 정신을 질질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강박증에 대해 알아가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거였다. 또한, 강박증에 빠진 뇌를 가진 사람은, ‘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본 적 없다’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에 침투한 생각을 제발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고. 그래서 강박증을 가진 사람은 많은 비율로 미신과 종교를 믿는다고 보고 되어 있다.

 

내가 나를 오래 괴롭혔던, 그래서 신과 나를 연결했던 계기가 강박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날, 축의 시대의 저자 카렌 암스트롱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빛과 혼절의 경험을 신의 체험이라 보고 수녀의 삶을 선택했는데 뒤늦게 성인이 되어서야 그 경험을 일으킨 것은 측두엽간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도가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놀라운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밝히며 수녀의 길을 멈춘다. 나는 그 일화가 온전히 이해되었다.

 

나의 ‘텅 빈 공간’은 강박증으로 인한 죄책감, 불쾌감,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신에게서 서서히 정서적 의존을 떨어트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침투한 생각이 찾아와도 강박증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텅 빈 공간 소속감

 

그런데도 약간 남아 있는 결핍의 공간이 있었다. 완전히 종교를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 소속감의 문제였다. 나의 사회생활은 대게 실업도 고용도 아닌 애매한 노동 형태, 프리랜서였다. 불완전한 돈벌이보다 더 어려운 건 사람에 대한 연결 부족이었다. 그런 나에게 가장 빨리 접속할 수 있었던 공동체는 교회였다. 정서적 나약함(강박증으로 인한, 그리고 강박증을 스스로 정의할 수 없었던 때에)이 있었기에 더 교회에 끌렸다. 그래서 여러 교회를 전전했다. 그런데 가장 진지하게 오래 다녔던 마지막 교회에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흐려졌다. 그 교회는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며 물질주의의 기복신앙을 경계했고 무차별적인 유일신 신앙은 비판했다. 타 종교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함께 가는 방향성도 옳았다. 하지만 교회가 가는 방향성에 모두 동의하지만, 점점 유일신을 믿을 이유는 없어졌다.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 꼭 하나님이어야 하는가? 세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는데, 왜 굳이 하나님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점점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는 쪽으로 기울었다. 점점 더 유일신을 믿는다는 거 자체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렵다고 생각됐다. 마침 내가 출석하던 청년 모임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분열되었다. (이 민주적인 교회는 싸움이 잦았다) 그 일을 계기로 교회를 떠났다. 그 후로는 어떤 교회도 가지 않았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교회(이를테면 대형 교회)는 사회에 배타적이었고, 유일신에 대한 믿음보다 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가진 교회는 내부 분쟁이 너무 잦았다. 인간은 폭력적일 만큼 강한 중심이 없으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어떤 교회에서도 온전한 소속감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공부 공동체와 접속하게 되면서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과 연결될 방법을 알게 되었다. 유연하고 개방적이면서 같은 공부를 한다는 연결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가 중심이 아닌 공부를 중심으로 한 느슨하고 자유로운 소속감이었다.

 

 

매 순간 새로운 신을 만드는 것

 

지금 나는 인생에 그 어느 때보다 신에게서(그리고 교회에서) 멀어진 상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텅 빈 마음’은 뭔가로 채워져 있다. 나의 ‘텅 빈 마음’이 뭔지를 알게 된 안도감, 논리적 이해가 채워졌다. 그리고 이제 고정된 신에 대한 믿음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회의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티마이오스> 대화편에 빠져 들어갔고, 물질의 최소 단위를 논한 부분에 이르렀다. (중략) 거기서는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은 직각삼각형으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이 정삼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합쳐진 뒤, 입체기하학의 정다면체,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를 이룬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플라톤이 어떤 사고 과정을 통해 입체기하학의 정다면체를 물질의 최소 단위로 보게 된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20p)

 

<부분과 전체>의 1장에서 하이젠베르크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으며 원자에 대해 사색한다. 플라톤은 물질의 최소 단위는 네 개의 정다면체들이 각각 흙, 불, 공기, 물이라는 네 원소의 기본 단위로, 물질을 최소 단위로 쪼개고 쪼개면 수학적 형태에 이른다고 보았다. 즉, 플라톤은 원자가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고정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신 자체가 없다, 는 완전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고정된 것이 없다는 건 현재로선 확실한 거 같다.)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전자는 입자도 되고 파동도 된다. 즉,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관찰 대상에 의해 입자가 될지 파동이 될지 달라진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같다고 말한다. 순간순간 결정된 것이 없고, 결정자도 없는 상태.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고 그 때문에 서로 모순’(부분과 전체, 338p)이다. 플라톤의 원자론과는 다르게 고정된 실체가 없는 세계다.

 

이 사이에 신이 작동하는 공간은 없다. 아니, 없어도 돼 보인다. 즉 나는 이 공간에, 여러 조건과 관계 속에서 중첩돼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매 순간의 마주침이 매번 새롭게 창조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정화스님의 말씀을 붙이자면, 우리는 모두 부족함이 없는 개별적 존재이고, 각자 하나의 완전한 소우주이다. 개인이 소중하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하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라는 것은 ‘신’의 개입 없이도 그렇다는 거다. 즉, 도달해야만 할 곳은 없고 이 순간만이 전부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며 유일한 기회다.

 

다시 부모님이 여동생의 교회에 출석하기로 했다는 말씀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부모님의 마음의 ‘텅 빈 공간’을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텅 빈 공간’은 개인마다 각기 다른 색깔 띠고 있으며, 각기 다른 두려움이다. 엄마와 아빠도 다를 수 있다. 한 번도 묻지 못했다. 문득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의 두려움에 대해서, 비어 있는 결핍에 대해서. 그리고 정말 들어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 1
  • 2023-12-01 18:04

    잘 읽었습니다.

인문약방 에세이
    1.몸은 흐른다 _노년과 장애   요즘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장애를 만드는 사회구조’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이동할 때 겪는 불편함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평균’이라는 몸을 기준으로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정한 특정한 속도에 대해서 질문하는 조사이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신호 변경이 자신의 보폭에 적당하지, 지하철이나 버스 승차시의 단차에서는 어떤지 등을 묻는다. 한 번은 동네 공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계신 노인 분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였다. 80대의 한 할머니께서는 우리의 질문을 듣고는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빨리 바뀐다’, ‘안내판의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기가 힘들다’고 맞장구를 치셨다. 또 이런 조사를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며, 사탕까지 주고 가셨다.   설문조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쉽게 특정 연령층의 사람들로부터 ‘무릎이 아파서 오래 걷기 힘들다, 핸드폰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안 들린다’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이것이 각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장애와 무관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시력도 저하되고, 귀도 어두워지고, 무릎도 아프게 된다. 말하자면 누구나 장애를 갖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평균 몸의 속도’를 기준으로 구축된 사회에서는 노년층이 스스로를 ‘정상신체’에서 배제된 몸으로 살게 만든다. 나이 듦은 우리 모두가 맞이할 존재 상태이다. 우리의 질문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은 노년의 존재 상태가 어떻게 배제되고, 비가시화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노년의 존재 상태는 장애와도 교차한다. ‘전국장애인투쟁보고서_버스를타자’(2002) 다큐를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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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04 | 조회 204
인문약방 에세이
      1. 나는 실패한 걸까?   10대까지는 스무살이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때가 되면 나를 옭아맨 숱한 규제들이 한 방에 펑하고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스물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자유와 같은 말로 이해되었다. 구체적인 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맹목적으로 스무살을 갈망했다. 막상 20대가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대학을 왜 갔는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방황하던 눈길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회를 만났다.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와 인쇄소,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론, 부모의 걱정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2년을 학생운동조직에서 일했다. 확신보다는 대의에 대한 당위로 선택한 길이었다. 거기서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결혼을 부모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길로 생각했다. 삶을 직시하지 않은 비겁함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로 숨겨졌다. 결혼을 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건 막 서른이 됐을 때였다. 아들이 만 세살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늘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아들의 돌봄 뿐 아니라 내 한 몸 사는데 필요한 가사까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탁하며, 구애없이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면 젊음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젊었고,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나는 30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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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04 | 조회 115
인문약방 에세이
      1. 나의 방황이 시작되다   2020년 여름이 찾아올 무렵, 나는 번아웃에 빠졌다. 2007년 입사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회사는 그동안의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이 내가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자발적인 야근도 모자라 집에 가서도 다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오곤 했다. 일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재미있기만 했고, 하나씩 업무를 완수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달콤했으며, 직장동료들로부터 나의 업무능력을 인정받기라도 하면 난 지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회사 내 대표적인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일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꼈던 보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게 조직에 대해 내가 느끼는 회의감은 점차 커져 갔다.         조직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것은 나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일만 열심히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직에 충성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삶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라 애써 위안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성공, 능력, 인정, 승진과 같은 것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타인이 정한 기준과 평가에 맞춰서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인생의 방향은커녕 난 ‘내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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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04 | 조회 72
인문약방 에세이
    1.과학적 세계관으로 삶을 해석하기   이 소설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중 하나이다. 테드 창은 쓰는 작품 마다 SF계의 유명한 상은 다 휩쓸어 버리는,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평가 받는 작가이다. 그가 쓰는 글은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이 정교하게 잘 짜여진 세계관 안에서 펼쳐져,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선 작가가 연결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하드 SF’ 소설 중에서도 더욱 하드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중 친화적인 익숙한 장르적 요소 또한 갖춰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감도 녹여 넣는, 넘사벽 소설가이다.   나 역시 이 여덟 개의 소설 중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좀 익숙한 소재이다 싶으면 상상만으론 따라가기 어려운 설정이 나오고,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가 결합된 단계들이 필요해 나무위키와 유투브의 영상들을 PC창에 여러 개를 띄어두고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의 소설은 SF 장르이지만 판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거나, 판타지 장르다 싶으면 SF적 요소를 덧붙여 전개한 것들이 나와서 상상력과 과학적 논리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공통된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한)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주는 기계와도 같은 것이라 과학을 통해 그것을 탐구하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
    1.과학적 세계관으로 삶을 해석하기   이 소설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중 하나이다. 테드 창은 쓰는 작품 마다 SF계의 유명한 상은 다 휩쓸어 버리는,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평가 받는 작가이다. 그가 쓰는 글은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이 정교하게 잘 짜여진 세계관 안에서 펼쳐져,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선 작가가 연결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하드 SF’ 소설 중에서도 더욱 하드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중 친화적인 익숙한 장르적 요소 또한 갖춰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감도 녹여 넣는, 넘사벽 소설가이다.   나 역시 이 여덟 개의 소설 중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좀 익숙한 소재이다 싶으면 상상만으론 따라가기 어려운 설정이 나오고,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가 결합된 단계들이 필요해 나무위키와 유투브의 영상들을 PC창에 여러 개를 띄어두고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의 소설은 SF 장르이지만 판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거나, 판타지 장르다 싶으면 SF적 요소를 덧붙여 전개한 것들이 나와서 상상력과 과학적 논리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공통된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한)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주는 기계와도 같은 것이라 과학을 통해 그것을 탐구하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
문탁
2023.12.04 | 조회 146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루틴
2023.11.30 | 조회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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