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삶은 처분될 수 없다

경덕
2023-11-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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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삶은 처분될 수 없다
 
 
 
9월 26일 저녁, 활동가 S는 어느 동물권 단톡방에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살처분 관련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요."
 
강원 화천군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다음 날이었다. 그날 언론에는 100건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다.
 
'강원 화천서 야생맷돼지 ASF 발생…농장 주변 차단방역 총력'(데일리안)
'강원 화천 양돈장서 ASF 발생…긴급 살처분 실시'(농민신문)
'강원 화천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1500여마리 살처분'(news1).
 
 
언론에서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밀검사에선 하남면 원천리에 소재한 A 발생농장(사육규모 1569마리) 21마리의 검사 시료 중 4마리에서 양성 개체가 발견됐다...(농민신문). 중수본은 “ASF가 확산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신속한 살처분, 정밀검사, 집중소독 등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양돈농가는 농장 내·외부 소독, 방역복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데일리안)"
 
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언급한 지시사항은 '신속한 살처분'이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지침이 신속한 '죽임'와 '처분'인 것이다. S는 이어서 말했다.
 
"(살처분 관련) 여러 소식으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집회든 아웃리치든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계획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그리고 활동가 H가 응답했다.
 
"저요!! 뭔가 할 수 있으면 참여할 마음 있어요!"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활동가들은 살처분을 공론화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살처분에 대해 공부하고, 그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하며 반대 운동을 기획하는 모임이었다. 
 
"9월 26일, 강원도 화천 지역에 발생한 돼지열병으로 1500명의 돼지가 살처분 당해 땅에 묻혔습니다. ‘축산동물’로 분류되는 동물들은 전염병에 걸릴 시, 인간에게 직접적인 전염 가능성이 없더라도 살처분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발생지 근거리에 있으면 예비 숙주로 판단되어 죽임당하는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합니다. '예방적 살처분'의 거리범위가 축소되면서 살처분되는 동물의 명수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이는 여전히 철저한 경제논리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동물권의 시각으로, 살처분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하고 공론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먼저 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다. 관련 다큐와 논문, 책,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작성한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 시행령, 방역노동자 실태조사 등의 자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노션에 기록해서 참여하지 못한 사람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공부가 진행되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이어졌다. 인간은 병에 걸렸다고 죽이지 않는데, 왜 동물은 죽여야 될까? 왜 어떤 존재는 죽이고 어떤 존재는 죽임을 당할까? 감염 여부로 살처분의 타당성을 결정해도 괜찮을까? 동물에게 백신을 맞혀서 철저하게 관리하면 괜찮을까? 동물보호의 기준이 쾌고감수능력으로 충분할까? 그것과 상관없이 존엄을 이야기할 수 없나? '가축화'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지 않나? 공급 과잉으로 가축 동물을 죽이는 경우는? 병 걸렸다고 도태시키는 문제는? 농장동물, 실험동물, 반려동물, 야생동물의 안락사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동물착취 산업 전반의 문제라면? 살처분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고통은 어떻게 다뤄져야 할까? 동물권과 노동자 인권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소리가 잘 전해지려면 어떤 정치가 필요할까? 선거방식을 바꾸야 할까? 단계적 변화를 위해 중간 목표를 정하는 게 좋을까? 중간 목표로 배제되는 동물들은 어떡하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어떤 액션이 필요할까?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충분할까? 예술적 퍼포먼스는 어떨까?
 
그리고 10월 20일. 또 다른 전염병과 살처분 소식이 들려왔다. 
 
 
[살처분 반대 모임 인스타그램]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럼피스킨병은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소나 물소 피부에 혹 덩어리가 생기는 악성 피부병이지만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에 걸린 소는 고열과 눈, 코에서 분비물이 많아지고 피부 등에 많은 작은 혹 덩어리가 생겨 생산성 저하, 유량 감소, 불임, 가죽 손실 등을 유발한다. (...) 주변 방역대(10㎞)에는 180여 농가, 7800여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어 지역 축산 농가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시는 곧바로 해당 농장 출입을 통제하고 해당 농가 전체 소에 대해 살처분 전문 업체를 불러 살처분에 들어갈 예정이다." - '[단독] 국내 최초 럼피스킨병 발생... 축산 농가 비상'(충청투데이)
 
활동가들은 공부모임과 더불어 <살처분 반대 액션 -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현재 소 농가에서는 ‘럼피스킨’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번에도 살처분이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도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이 묵인되는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소들이 땅에 묻힐 때 ‘한우와 원유 수급 영향’을 염려하는 구조가 폭력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처분반대모임에서는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액션을 계획하였습니다.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는 살처분되는 모습을 재현하며 살처분이 틀렸음을 알리고자 합니다. 다양한 역할로 참여하실 수 있으니 함께 해요!"
 
액션을 함께할 참여자도 모집했다. 살처분 당하는 동물, 방역복 입은 인간, 기록 활동가, 피켓 드는 사람, 사운드 담당 등의 역할이 필요했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도 나는 선뜻 참여하지 못 한 채 망설였다. 여러 사안들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살처분 문제가 너무 거대해 보였고, 공부 모임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분명하게 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축산업을 '근절'하는 게 가능할까? '반대'를 외친다고 나아질까? 그러다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이 들었다. 확실한 답이 있을 때만 행동할 수 있을까?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함께할 수 있나? 뭐라도 하는 중에 대안이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
 
그렇게 머뭇거리는데 단톡방에 퍼포머가 부족하다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그때서야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피살처분 역할로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퍼포머로 신청한 사람들은 리허설을 위해 미리 연습실에 모였다. 우리는 퍼포먼스를 기획한 활동가들과 세부적인 연출을 함께 고민하며 리허설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2023년 11월 11일. 우리는 서울역 앞에서 다시 모였다.
 
 
[살처분 반대 모임 인스타그램]
 
 
 
살처분 반대 액션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앞.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전염병 발병으로 인해 반경 500m이내 즉각 살처분, 3km이내 예방적 살처분을 시행합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Due to the epidemic, immediate culling is carried out within a 500m. Preventive culling is carried out within a 3km. Please cooperate for everyone's safety."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동물들을 강제로 끌고 온다. 비닐이 덮여진 구덩이에 동물들을 묻는다. 동물들이 쓰러지고 널부러진다. 고통스러운 몸부림, 비명소리가 이어진다.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비닐로 동물들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쏟는다.
 
"정부는 현재 전염병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경제적 손실이 없도록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he government is now effectively controlling the epidemic. We will do our best, such as paying compensation for the culling so that there is no economic loss to our people."
 
 
 
 
사회자 : 9월 20일, 이탈리아 경찰이 생추어리에 침입해, 그 곳의 거주민은 돼지들을 살해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여 ‘살처분’을 시행한 것입니다. 현재 소 농가에서는 ‘럼피스킨병’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살처분이라는 방법을 택했으며, ‘한우와 원유 수급 영향’을 염려합니다. 몇 일 전, AI, 즉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국가는 수많은 조류들을 살처분했습니다. 살처분은 육상동물부터 수생동물까지, 축산동물부터 수산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동물원에 감금당한 동물들까지, 모든 비인간동물을 대상으로 시행됩니다. 생매장(매몰), 가스 살해, 독살, 폭행으로 인한 살해, 전기 도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됩니다.
 
 

[다 같이 구호]

 
인간이 아니라서 / 죽였다
약하다고 / 죽였다
아프다고 / 죽였다
병에 걸렸다고 / 죽였다
장애가 있다고 / 죽였다
자본을 아끼려고 / 죽였다
생명을 도구화하는 시스템이 / 죽였다
죽음이 이윤이 되는 구조가 / 죽였다
살해를 외주화하며 / 죽였다
비국민과 용역에게 떠넘기며 / 죽였다
우리가 살아갈 땅도 / 죽였다
 
 
 

 

 

 

[성명서 낭독]

 

국가의 살처분에 대한 살처분 반대 모임의 입장입니다.

 

하나, 우리는 병의 특징, 질병의 인간종에게의 전염 여부, 질병의 치사율, 비인간동물 당사자의 질병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살처분에 반대합니다. ‘예방적’ 살처분이어서, ‘과도한’ 대처이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에 걸린 존재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존재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쾌고감수능력과 무관하게,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모든 동물에 대한 착취에 반대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지 여부도 인간중심적인 시각으로 임의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죽이거나 착취해도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는 ‘보호’하고, 부합하지 않는 존재는 배제하는 권력을 경계합니다. 타자의 고통도 자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기에, 죽는게 낫다고 판단하는 권력을 경계합니다.

 

하나, 살처분이 폐지되기 위해서는 동물산업이 철폐돼야 합니다. 축산업, 어업, 동물실험을 시행하는 산업, 야생동물 납치 살해 및 거래 산업, 비인간동물 전시 및 감금 산업 등을 비롯한 동물산업의 철폐 없는 살처분 폐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축산업, 어업, 동물실험, 동물원 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물복지 농장, 동물산업의 존속을 위한 백신 등은, 인간의 자본 축적을 위해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전제 아래에서의 ‘대안’입니다. 인간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는 이상, 동물복지는 없습니다. 살처분의 폐지는, 비인간동물을 착취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처분을 "동물복지"의 문제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전환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 우리는 살처분이 일어나도록 하는 착취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살처분을 시행하는 주체는 공무원에서 비국민 노동자와 용역으로 바뀌었습니다. 내몰려있는 비인간동물을 살해하는 것에 반대하듯, 내몰려 있는 이들에게 살해를 외주 주는 구조에 반대합니다. 살처분은, 축산업 등 동물산업의 피해를 줄이려고 개인의 재산을 국가가 처분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구분이, 가축과 가축이 아닌 동물에 대한 구분이 위계를 만듭니다. 현재의 ‘가축’은 인간에 의해 강제로 개변된, 취약하고 장애화된 신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축'을, 건강하지 못하다는 근거로, 질병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죽입니다. 농장동물의 재생산 능력이나 장애가 있는 동물들이나 생산력이 떨어지는 동물에 대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에 대한 ‘선제적 도태’도 살처분입니다. 출생부터 질병의 감염, 살처분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대로 굴러갑니다. 감염된 사체와 폐기물을 값싸게 처리하기 위해, 사료로 만들거나 땅으로, 수로로 버립니다. 그 경로로 또 다른 동물들이 감염되게 되고, 그들은 다시 살처분됩니다.

 

하나, 우리는 누군가의 몸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구조에 반대합니다. 사유재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살처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취지 자체가 불평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특정 비인간동물을 '가축'으로, '가축'을 '식량'으로, ‘식량’을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공급가격을 조정합니다. 비인간동물, 그리고 식량은 사유재산이어서는 안 됩니다.어떤 존재가 어떤 존재를 죽여도 되는 대상으로 정하는 사회에 저항하고자 합니다. 동물착취가 자본주의내에서 산업으로 번역되는 한 살처분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처분이 존재하는 이유는, 생명을 도구화하고 피해자의 피해가 가해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도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이 묵인되는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불가피하다'는 말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살처분반대모임은 인간을 위해, 경제성을 위해 비인간 동물을 죽여도 된다는, 비인간동물을 '처분'할 자격이 인간동물에게 있다는 전제 자체를 재고하기를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1월 11일
살처분반대모임.

 

 

 
 
그리고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나도 준비한 발언문을 낭독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살처분 반대 액션에서 살처분 당하는 동물로 참여한 인간 동물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방역복 입은 인간에게 끌려가서 비닐이 덮여진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제 몸 위로 흙이 마구 쏟아졌고 저는 숨이 막혀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액션을 통해 땅 속에 묻힌 동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곳은 실제 살처분 현장이 아니라 집회 신고를 마친 서울역 광장이고, 저는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보호 받고 있는 인간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치면 치료를 받을 것이고, 죽으면 애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는 그들의 죽음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럼피스킨 병으로 이미 살처분되었거나 살처분 예정인 동물이 총 5766명이라고 합니다. 왜 누군가의 죽음은 애도되지 못하고 처분되어야 할까요? 왜 누군가의 죽음은 부고란에 이름이 실리지 못하고 5766이라는 익명의 숫자로 처리되어야 할까요? 왜 누군가의 질병은 끝까지 치료하려 하지 않을까요. 왜 누군가는 '예방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살해되어야 할까요. 왜 그들의 죽음은 기억되지 않고 땅 속에 파묻힐까요. 
 
저는 그들의 죽음이 나의 생존과 분리될 수 없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동물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세상에 죽여도 되는 동물은 없기에, 땅 속에 처분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저는 가축 동물들의 살처분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분의 관심과 행동을 촉구합니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살처분 반대 액션>을 마치고 우리들은 소품으로 활용한 흙을 조금씩 나누어 가져갔다. 누구는 화분에 뭘 심어보겠다고 했고, 누구는 퍼포먼스를 다시 한다면 그때 가져올 거라고 했다. 나도 포대 하나에 흙을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누굴 죽이는 흙이 아니라, 살리는 흙으로 다시 쓰고 싶어서. 쓰러진 몸 위로 쏟아진 흙을 기억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을 스스로에게 촉구하고 싶어서.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머뭇거리고, 망설일지라도.
 
 
 
 
 
 
** 퍼포먼스 사진은 살처분 반대 모임 참여자가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살처분 반대 액션> 퍼포먼스 영상 
댓글 6
  • 2023-11-23 10:08

    머뭇거리고, 망설일지라도
    경덕님이 걷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11-23 11:50

    경덕님 몸 위에 쏟아졌던 그 흙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검은 포클레인이 들이닥치고/ 죽여! 죽여! 할 새도 없이/ 알전구에 똥칠한 벽에 피 튀길 새도 없이/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가죽이 벗겨져 알록달록 싸구려 구두가 될 새도 없이/새파란 얼굴에 검은 안경을 쓴 취조관이 불어! 불어! 할 새도 없이/이 고문에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한 공포의 줄넘기를 할 새도 없이/옆방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뺨에 내리치는 손바닥을 깨무는 듯/내 입안의 살을 물어뜯을 새도 없이/손발을 묶고 고개를 젖혀 물을 먹일 새도 없이/엄마 용서하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할 새도 없이/얼굴에 수건을 놓고 주전자 물을 부을 새도 없이/포승줄도 수갑도 없이(김혜순, '피어라 돼지' 일부 인용)

  • 2023-11-23 17:06

    뭘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래도 뭘 하는 사람들이 있네.

  • 2023-11-23 17:29

    쌤이 던진 많은 질문들에 머뭇머뭇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3-11-23 21:13

    망설이며 머뭇거리면서도 경덕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걷는 그 길, 저두 응원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2023-11-24 14:13

    불가피함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 모든 발언문들이 언제나 우리의 전제를 재고하고 촉구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 깊이 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조치나 정답이나 반성이 아니라 머뭇거림과 고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문약방 에세이
    1.몸은 흐른다 _노년과 장애   요즘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장애를 만드는 사회구조’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이동할 때 겪는 불편함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평균’이라는 몸을 기준으로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정한 특정한 속도에 대해서 질문하는 조사이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신호 변경이 자신의 보폭에 적당하지, 지하철이나 버스 승차시의 단차에서는 어떤지 등을 묻는다. 한 번은 동네 공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계신 노인 분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였다. 80대의 한 할머니께서는 우리의 질문을 듣고는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빨리 바뀐다’, ‘안내판의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기가 힘들다’고 맞장구를 치셨다. 또 이런 조사를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며, 사탕까지 주고 가셨다.   설문조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쉽게 특정 연령층의 사람들로부터 ‘무릎이 아파서 오래 걷기 힘들다, 핸드폰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안 들린다’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이것이 각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장애와 무관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시력도 저하되고, 귀도 어두워지고, 무릎도 아프게 된다. 말하자면 누구나 장애를 갖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평균 몸의 속도’를 기준으로 구축된 사회에서는 노년층이 스스로를 ‘정상신체’에서 배제된 몸으로 살게 만든다. 나이 듦은 우리 모두가 맞이할 존재 상태이다. 우리의 질문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은 노년의 존재 상태가 어떻게 배제되고, 비가시화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노년의 존재 상태는 장애와도 교차한다. ‘전국장애인투쟁보고서_버스를타자’(2002) 다큐를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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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04 | 조회 204
인문약방 에세이
      1. 나는 실패한 걸까?   10대까지는 스무살이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때가 되면 나를 옭아맨 숱한 규제들이 한 방에 펑하고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스물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자유와 같은 말로 이해되었다. 구체적인 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맹목적으로 스무살을 갈망했다. 막상 20대가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대학을 왜 갔는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방황하던 눈길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회를 만났다.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와 인쇄소,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론, 부모의 걱정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2년을 학생운동조직에서 일했다. 확신보다는 대의에 대한 당위로 선택한 길이었다. 거기서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결혼을 부모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길로 생각했다. 삶을 직시하지 않은 비겁함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로 숨겨졌다. 결혼을 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건 막 서른이 됐을 때였다. 아들이 만 세살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늘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아들의 돌봄 뿐 아니라 내 한 몸 사는데 필요한 가사까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탁하며, 구애없이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면 젊음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젊었고,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나는 30대가...
      1. 나는 실패한 걸까?   10대까지는 스무살이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때가 되면 나를 옭아맨 숱한 규제들이 한 방에 펑하고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스물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자유와 같은 말로 이해되었다. 구체적인 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맹목적으로 스무살을 갈망했다. 막상 20대가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대학을 왜 갔는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방황하던 눈길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회를 만났다.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와 인쇄소,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론, 부모의 걱정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2년을 학생운동조직에서 일했다. 확신보다는 대의에 대한 당위로 선택한 길이었다. 거기서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결혼을 부모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길로 생각했다. 삶을 직시하지 않은 비겁함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로 숨겨졌다. 결혼을 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건 막 서른이 됐을 때였다. 아들이 만 세살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늘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아들의 돌봄 뿐 아니라 내 한 몸 사는데 필요한 가사까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탁하며, 구애없이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면 젊음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젊었고,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나는 30대가...
문탁
2023.12.04 | 조회 115
인문약방 에세이
      1. 나의 방황이 시작되다   2020년 여름이 찾아올 무렵, 나는 번아웃에 빠졌다. 2007년 입사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회사는 그동안의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이 내가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자발적인 야근도 모자라 집에 가서도 다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오곤 했다. 일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재미있기만 했고, 하나씩 업무를 완수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달콤했으며, 직장동료들로부터 나의 업무능력을 인정받기라도 하면 난 지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회사 내 대표적인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일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꼈던 보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게 조직에 대해 내가 느끼는 회의감은 점차 커져 갔다.         조직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것은 나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일만 열심히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직에 충성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삶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라 애써 위안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성공, 능력, 인정, 승진과 같은 것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타인이 정한 기준과 평가에 맞춰서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인생의 방향은커녕 난 ‘내가 어떤...
      1. 나의 방황이 시작되다   2020년 여름이 찾아올 무렵, 나는 번아웃에 빠졌다. 2007년 입사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회사는 그동안의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이 내가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자발적인 야근도 모자라 집에 가서도 다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오곤 했다. 일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재미있기만 했고, 하나씩 업무를 완수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달콤했으며, 직장동료들로부터 나의 업무능력을 인정받기라도 하면 난 지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회사 내 대표적인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일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꼈던 보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게 조직에 대해 내가 느끼는 회의감은 점차 커져 갔다.         조직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것은 나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일만 열심히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직에 충성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삶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라 애써 위안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성공, 능력, 인정, 승진과 같은 것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타인이 정한 기준과 평가에 맞춰서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인생의 방향은커녕 난 ‘내가 어떤...
문탁
2023.12.04 | 조회 72
인문약방 에세이
    1.과학적 세계관으로 삶을 해석하기   이 소설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중 하나이다. 테드 창은 쓰는 작품 마다 SF계의 유명한 상은 다 휩쓸어 버리는,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평가 받는 작가이다. 그가 쓰는 글은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이 정교하게 잘 짜여진 세계관 안에서 펼쳐져,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선 작가가 연결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하드 SF’ 소설 중에서도 더욱 하드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중 친화적인 익숙한 장르적 요소 또한 갖춰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감도 녹여 넣는, 넘사벽 소설가이다.   나 역시 이 여덟 개의 소설 중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좀 익숙한 소재이다 싶으면 상상만으론 따라가기 어려운 설정이 나오고,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가 결합된 단계들이 필요해 나무위키와 유투브의 영상들을 PC창에 여러 개를 띄어두고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의 소설은 SF 장르이지만 판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거나, 판타지 장르다 싶으면 SF적 요소를 덧붙여 전개한 것들이 나와서 상상력과 과학적 논리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공통된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한)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주는 기계와도 같은 것이라 과학을 통해 그것을 탐구하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
    1.과학적 세계관으로 삶을 해석하기   이 소설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중 하나이다. 테드 창은 쓰는 작품 마다 SF계의 유명한 상은 다 휩쓸어 버리는,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평가 받는 작가이다. 그가 쓰는 글은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이 정교하게 잘 짜여진 세계관 안에서 펼쳐져,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선 작가가 연결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하드 SF’ 소설 중에서도 더욱 하드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중 친화적인 익숙한 장르적 요소 또한 갖춰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감도 녹여 넣는, 넘사벽 소설가이다.   나 역시 이 여덟 개의 소설 중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좀 익숙한 소재이다 싶으면 상상만으론 따라가기 어려운 설정이 나오고,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가 결합된 단계들이 필요해 나무위키와 유투브의 영상들을 PC창에 여러 개를 띄어두고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의 소설은 SF 장르이지만 판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거나, 판타지 장르다 싶으면 SF적 요소를 덧붙여 전개한 것들이 나와서 상상력과 과학적 논리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공통된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한)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주는 기계와도 같은 것이라 과학을 통해 그것을 탐구하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
문탁
2023.12.04 | 조회 146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루틴
2023.11.30 | 조회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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