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50대! /김지영
문탁
2023-12-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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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실패한 걸까?
10대까지는 스무살이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때가 되면 나를 옭아맨 숱한 규제들이 한 방에 펑하고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스물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자유와 같은 말로 이해되었다. 구체적인 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맹목적으로 스무살을 갈망했다. 막상 20대가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대학을 왜 갔는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방황하던 눈길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회를 만났다.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와 인쇄소,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론, 부모의 걱정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2년을 학생운동조직에서 일했다. 확신보다는 대의에 대한 당위로 선택한 길이었다. 거기서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결혼을 부모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길로 생각했다. 삶을 직시하지 않은 비겁함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로 숨겨졌다. 결혼을 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건 막 서른이 됐을 때였다. 아들이 만 세살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늘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아들의 돌봄 뿐 아니라 내 한 몸 사는데 필요한 가사까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탁하며, 구애없이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면 젊음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젊었고,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나는 30대가 좋았다. 크고 작은 부침들이 있었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세상 속에서 맺는 관계, 일, 나의 역할은 확장되었다. 역량을 인정받는 것 같았다. 가족부양의 부담이 늘 어깨를 짓눌렀는데, 사회생활이 안정돼 갈수록 그 문제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 점점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세상의 잣대에 신경쓰지 않고 내 기준으로 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지위나 연봉 따위를 좇으며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 웬만한 풍파는 견뎌낼 사람이 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세상이 내게 쥐어주는 보상 같았다. 관성으로 살아도 평균은 유지할 것 같은 확신이 들 즈음, 문제는 찾아왔다.
오십에는 문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다리를 번쩍 들고 들어서야 했는데, 평소대로 걷다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다. 툴툴 털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쉰 살의 내 인생이 엎어진 땅은 낯선 세계였다. 이제 나는 ‘시간을 앞에 둔 젊은이의 세계’에서 후퇴해 ‘살아진 시간, 이미 살아 생기를 잃어버린 시간’을 등 뒤에 둔 노인의 길로 방향을 튼 것일까? 지금껏 활보하던 세계에서 쫓겨나, 들여다 볼 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밖에 없는 곳으로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살아온 길이 온통 후회로 가득 찼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실패했다는 감정이 밑도끝도 없이 밀려왔다. 나는 빈털터리가 됐다는 절망감에 빠져 들었다.
2. 잘가라, 확신의 시절!
20세기 문턱을 넘어가는 시기, 세계 과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뉴튼 역학과 전자기 현상을 다루는 맥스웰 방정식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자신하던 때였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단위인 원자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원자와 같이 작은 물질은 때론 입자의 특징을, 때론 파동의 특징을 보이는 실험 결과들이 계속 나왔다. 이는 물질과 파동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기존의 지식을 뒤흔들었다. 뉴튼역학의 핵심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미래에 어디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인과론의 세계이다. 그러나 미시세계로 오면 ‘관측대상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아인슈타인도 끝까지 양자역학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의 과학과 사고의 토대가 된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진짜 신대륙으로 발을 디디려면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구조를 변화시켜야 하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은 사고 구조까지 바꿀 마음은 없거나, 아니면 바꿀 능력이 없는 것 같다.”(『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 지음, 122쪽)
내가 마주한 혼란이 겹쳐진다. 내 삶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느낌, 그로 인해 앞날도 무작정 막막해지는 심정이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지금껏 살아온 세계의 문법으로는 그 상황이 해석되지 않았다. 삶의 맷집도 그 시점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거시세계에서는 완벽하게 들어맞던 운동 법칙이 미시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들어선 곳이 신대륙이기 때문일까? 기존 사고로 해석되지 않고,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고구조를 바꿔야’ 하는 다른 세계. 여긴 어디일까? 추측하자면, 나는 확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더 많이 바라보아야 하는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차분히 나를 설득해본다. 나는 망해서 빚을 지지도 않았고, 실직을 하지도 않았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목표 따위는 없지 않았는가? 실패의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실패’였다고 치자. 그 실패 때문에 나의 미래도 이미 망한 인생일까? 그건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실패한 과거와 막막한 미래’라는 생각에 갇혀 나의 현재가 질식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제 근본없는 실패감에서 빠져나오자. 과거는 내가 살아온대로 확정되었다. 그 때는 그저 그렇게 산 것일 뿐, 낱낱이 평가해 승패를 가를 대상이 아니다. 세상에 나가 확신을 품고 산 그 시절을 나는 이제 놓아줄 것이다.
3. 현재를 살아갈 단서
양자의 세계를 수학의 언어인 행렬역학으로 표현하고, 그것의 물리학적 의미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리할 때 하이젠베르크는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만을 고려했다. 당시에 생각한 원자모형은 중심에 원자핵이 있고, 그로부터 일정 거리의 궤도에 전자가 있는 형태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안개상자 속 전자궤도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를 연구하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쉽게 말한 ‘안개상자 속 전자궤도’는 실제 전자궤도가 아닐 것이라는데 생각이 이르고, 궤도의 개념을 채택하지 않는다.
내가 걸린 문턱은 아마 ‘나이듦’이었을 것이다. ‘나이듦의 자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나이듦으로 관측된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값이 보일까? 그 값들이 50대의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것은 공허함이다. 어릴 때부터 ‘인간은 왜 사는가?’, ‘인생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다. 어른이 돼서도 그 질문은 문장을 바꿔 계속 내 안에서 올라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도대체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뭐지?’. 심지어 일에 재미와 자신감이 붙었을 때조차도 그 물음은 찾아왔고 나를 공허함에 빠뜨렸다. 그 질문들이 어딘가에 모여서 작당하고 있었을까? 엎어진 나에게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 질문에 나는 제대로 응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질문을 튕겨버리려고 애썼다. ‘이만하면 잘 살아온 거 아니냐’고, ‘갈 길이 바쁜데 왜 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 하느냐’고 스스로를 타박하면서 말이다.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소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가 들어야 할 내면의 부름의 소리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일러 주는 진리와 가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마지못해 따르는 삶의 기준이 아니라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준 말이다.”(『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19쪽). 내 안에서 계속해서 올라온 그 질문은 피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이었을까?
또 하나의 측정값은 ‘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미나이다. 지난해 이 세미나에 처음 참여할 때 나는 절박했다. 그 때 나를 덮친 우울감과 무기력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강도였다. 이러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내향형 인간인 내가 일면식도 없는 문탁네트워크를 찾아온 걸 보면, 내가 그 때 급하긴 급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다. 세미나는 나에게 동아줄이 돼 주었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마음상태였는데, 책은 읽혔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얘기를 들으면 내 사고가 그만큼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배움이 좋았다. ‘오래된 질문과 새로운 배움’, 이 두 가지 측정값을 단서 삼아 나는 더 나아가 볼 수 있을까?
4. 나는 성장하고 싶다
꿈이 없었다. 그럴 듯하고 폼나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어떤 모습으로 실현시킬지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거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꿈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웠다. “꿈이 없다”라고 말하는 내가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성인이 되어, 나처럼 꿈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소박한 사람이다. 욕심도 없는 편이라고 자평한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투지를 불사른 적도, 꼭 이루고 싶은 무엇도 뚜렷하게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거기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나름의 성장을 해왔다. 어쩌면 더는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생각에 실패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미나에서 평소 잘 읽지 않던 분야의 책들을 접했다. 그것들은 내게 작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생명의 원리, 삶의 근원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점이 있는 주제들을 만나면 마음이 충만해졌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 이렇게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던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지적허영심이 있는 내게는 그 부끄러움조차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삶의 고비고비 집요하게 따라온 그 질문, ‘인생의 의미’를 이제야 더듬어보는 것 같아 벅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이어가며, 계속 성장하고 싶다. 문탁선생님께서 내년에 새로운 공부 과정을 개설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디서 공부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파릇파릇한 새싹일 때도 가져보지 못한 꿈을 쉰 살이 넘어 만난 기분이다. 나는 순발력이 좋다. 반면, 지구력은 꽝이다. 흥미가 생기는 것에 급하게 달려들었다가, 이내 지쳐 끝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 많다. 익히 아는 내 행동패턴 때문에 겨우 만난 꿈을 깨버리고 싶지 않다. 쓸모를 목표로 한 공부가 아니니,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말자고 나를 다스릴 참이다. 공부할 분야는 무궁무진해서 흥미를 잃을 틈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 콩 볶듯 마음이 시끄러웠으나, 그 증상도 점차 가라앉고 있다. 생계 걱정을 해야 할 처지가 되면, 공부는 뒷전으로 밀릴 것 아닌가? 슬기롭게 시간을 쓰면 될 일이지 사표가 답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퇴사 욕구가 많이 줄었다.
“우리가 닫힌 문 두드리기를 그만두고 돌아서기만 하면 뒤쪽에 있는 다른 문에 다다른다. 그러면 넓은 인생이 우리 영혼 앞에 활짝 열려 있다. 문이 닫히면 방 안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것이 곧 그 공간을 제외한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내 눈 앞에서 쾅 닫혀 버리는 문들 때문에 고민하던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세계가 활짝 열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내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107쪽). 배움(앎)을 통해 사유의 경계를 넓혀가는 시간이 쌓이면, 양자도약하듯 진입한 나이듦의 세계를 해석할 새로운 언어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새로운 언어로 삶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나를 만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나를 기대하며, 이제야 비로소 뒤늦은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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