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50대! /김지영

문탁
2023-12-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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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실패한 걸까?

 

10대까지는 스무살이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그 때가 되면 나를 옭아맨 숱한 규제들이 한 방에 펑하고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스물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자유와 같은 말로 이해되었다. 구체적인 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맹목적으로 스무살을 갈망했다. 막상 20대가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대학을 왜 갔는지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방황하던 눈길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회를 만났다.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와 인쇄소,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론, 부모의 걱정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2년을 학생운동조직에서 일했다. 확신보다는 대의에 대한 당위로 선택한 길이었다. 거기서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결혼을 부모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길로 생각했다. 삶을 직시하지 않은 비겁함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로 숨겨졌다. 결혼을 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건 막 서른이 됐을 때였다. 아들이 만 세살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늘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아들의 돌봄 뿐 아니라 내 한 몸 사는데 필요한 가사까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탁하며, 구애없이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면 젊음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젊었고,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나는 30대가 좋았다. 크고 작은 부침들이 있었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세상 속에서 맺는 관계, 일, 나의 역할은 확장되었다. 역량을 인정받는 것 같았다. 가족부양의 부담이 늘 어깨를 짓눌렀는데, 사회생활이 안정돼 갈수록 그 문제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 점점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세상의 잣대에 신경쓰지 않고 내 기준으로 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지위나 연봉 따위를 좇으며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 웬만한 풍파는 견뎌낼 사람이 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세상이 내게 쥐어주는 보상 같았다. 관성으로 살아도 평균은 유지할 것 같은 확신이 들 즈음, 문제는 찾아왔다.

 

 

 

오십에는 문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다리를 번쩍 들고 들어서야 했는데, 평소대로 걷다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다. 툴툴 털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쉰 살의 내 인생이 엎어진 땅은 낯선 세계였다. 이제 나는 ‘시간을 앞에 둔 젊은이의 세계’에서 후퇴해 ‘살아진 시간, 이미 살아 생기를 잃어버린 시간’을 등 뒤에 둔 노인의 길로 방향을 튼 것일까? 지금껏 활보하던 세계에서 쫓겨나, 들여다 볼 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밖에 없는 곳으로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살아온 길이 온통 후회로 가득 찼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실패했다는 감정이 밑도끝도 없이 밀려왔다. 나는 빈털터리가 됐다는 절망감에 빠져 들었다.

 

 

2. 잘가라, 확신의 시절!

 

20세기 문턱을 넘어가는 시기, 세계 과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뉴튼 역학과 전자기 현상을 다루는 맥스웰 방정식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자신하던 때였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단위인 원자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원자와 같이 작은 물질은 때론 입자의 특징을, 때론 파동의 특징을 보이는 실험 결과들이 계속 나왔다. 이는 물질과 파동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기존의 지식을 뒤흔들었다. 뉴튼역학의 핵심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미래에 어디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인과론의 세계이다. 그러나 미시세계로 오면 ‘관측대상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아인슈타인도 끝까지 양자역학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의 과학과 사고의 토대가 된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진짜 신대륙으로 발을 디디려면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구조를 변화시켜야 하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은 사고 구조까지 바꿀 마음은 없거나, 아니면 바꿀 능력이 없는 것 같다.”(『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 지음, 122쪽)

 

내가 마주한 혼란이 겹쳐진다. 내 삶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느낌, 그로 인해 앞날도 무작정 막막해지는 심정이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지금껏 살아온 세계의 문법으로는 그 상황이 해석되지 않았다. 삶의 맷집도 그 시점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거시세계에서는 완벽하게 들어맞던 운동 법칙이 미시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들어선 곳이 신대륙이기 때문일까? 기존 사고로 해석되지 않고,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고구조를 바꿔야’ 하는 다른 세계. 여긴 어디일까? 추측하자면, 나는 확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더 많이 바라보아야 하는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차분히 나를 설득해본다. 나는 망해서 빚을 지지도 않았고, 실직을 하지도 않았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목표 따위는 없지 않았는가? 실패의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실패’였다고 치자. 그 실패 때문에 나의 미래도 이미 망한 인생일까? 그건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실패한 과거와 막막한 미래’라는 생각에 갇혀 나의 현재가 질식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제 근본없는 실패감에서 빠져나오자. 과거는 내가 살아온대로 확정되었다. 그 때는 그저 그렇게 산 것일 뿐, 낱낱이 평가해 승패를 가를 대상이 아니다. 세상에 나가 확신을 품고 산 그 시절을 나는 이제 놓아줄 것이다.

 

 

3. 현재를 살아갈 단서

 

양자의 세계를 수학의 언어인 행렬역학으로 표현하고, 그것의 물리학적 의미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리할 때 하이젠베르크는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만을 고려했다. 당시에 생각한 원자모형은 중심에 원자핵이 있고, 그로부터 일정 거리의 궤도에 전자가 있는 형태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안개상자 속 전자궤도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를 연구하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쉽게 말한 ‘안개상자 속 전자궤도’는 실제 전자궤도가 아닐 것이라는데 생각이 이르고, 궤도의 개념을 채택하지 않는다.

 

내가 걸린 문턱은 아마 ‘나이듦’이었을 것이다. ‘나이듦의 자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나이듦으로 관측된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값이 보일까? 그 값들이 50대의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것은 공허함이다. 어릴 때부터 ‘인간은 왜 사는가?’, ‘인생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다. 어른이 돼서도 그 질문은 문장을 바꿔 계속 내 안에서 올라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도대체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뭐지?’. 심지어 일에 재미와 자신감이 붙었을 때조차도 그 물음은 찾아왔고 나를 공허함에 빠뜨렸다. 그 질문들이 어딘가에 모여서 작당하고 있었을까? 엎어진 나에게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 질문에 나는 제대로 응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질문을 튕겨버리려고 애썼다. ‘이만하면 잘 살아온 거 아니냐’고, ‘갈 길이 바쁜데 왜 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 하느냐’고 스스로를 타박하면서 말이다.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소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가 들어야 할 내면의 부름의 소리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일러 주는 진리와 가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마지못해 따르는 삶의 기준이 아니라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준 말이다.”(『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19쪽). 내 안에서 계속해서 올라온 그 질문은 피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이었을까?

 

또 하나의 측정값은 ‘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미나이다. 지난해 이 세미나에 처음 참여할 때 나는 절박했다. 그 때 나를 덮친 우울감과 무기력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강도였다. 이러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내향형 인간인 내가 일면식도 없는 문탁네트워크를 찾아온 걸 보면, 내가 그 때 급하긴 급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다. 세미나는 나에게 동아줄이 돼 주었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마음상태였는데, 책은 읽혔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얘기를 들으면 내 사고가 그만큼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배움이 좋았다. ‘오래된 질문과 새로운 배움’, 이 두 가지 측정값을 단서 삼아 나는 더 나아가 볼 수 있을까?

 

 

 

 

4. 나는 성장하고 싶

 

꿈이 없었다. 그럴 듯하고 폼나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어떤 모습으로 실현시킬지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거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꿈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웠다. “꿈이 없다”라고 말하는 내가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성인이 되어, 나처럼 꿈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소박한 사람이다. 욕심도 없는 편이라고 자평한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투지를 불사른 적도, 꼭 이루고 싶은 무엇도 뚜렷하게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거기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나름의 성장을 해왔다. 어쩌면 더는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생각에 실패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미나에서 평소 잘 읽지 않던 분야의 책들을 접했다. 그것들은 내게 작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생명의 원리, 삶의 근원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점이 있는 주제들을 만나면 마음이 충만해졌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 이렇게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던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지적허영심이 있는 내게는 그 부끄러움조차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삶의 고비고비 집요하게 따라온 그 질문, ‘인생의 의미’를 이제야 더듬어보는 것 같아 벅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이어가며, 계속 성장하고 싶다. 문탁선생님께서 내년에 새로운 공부 과정을 개설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디서 공부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파릇파릇한 새싹일 때도 가져보지 못한 꿈을 쉰 살이 넘어 만난 기분이다. 나는 순발력이 좋다. 반면, 지구력은 꽝이다. 흥미가 생기는 것에 급하게 달려들었다가, 이내 지쳐 끝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 많다. 익히 아는 내 행동패턴 때문에 겨우 만난 꿈을 깨버리고 싶지 않다. 쓸모를 목표로 한 공부가 아니니,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말자고 나를 다스릴 참이다. 공부할 분야는 무궁무진해서 흥미를 잃을 틈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 콩 볶듯 마음이 시끄러웠으나, 그 증상도 점차 가라앉고 있다. 생계 걱정을 해야 할 처지가 되면, 공부는 뒷전으로 밀릴 것 아닌가? 슬기롭게 시간을 쓰면 될 일이지 사표가 답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퇴사 욕구가 많이 줄었다.

 

“우리가 닫힌 문 두드리기를 그만두고 돌아서기만 하면 뒤쪽에 있는 다른 문에 다다른다. 그러면 넓은 인생이 우리 영혼 앞에 활짝 열려 있다. 문이 닫히면 방 안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것이 곧 그 공간을 제외한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내 눈 앞에서 쾅 닫혀 버리는 문들 때문에 고민하던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세계가 활짝 열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내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107쪽). 배움(앎)을 통해 사유의 경계를 넓혀가는 시간이 쌓이면, 양자도약하듯 진입한 나이듦의 세계를 해석할 새로운 언어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새로운 언어로 삶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나를 만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나를 기대하며, 이제야 비로소 뒤늦은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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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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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11 | 조회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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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1 -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2 - 네.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1 - 저는 나이듦연구소의 일일기자 앙코르석공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주제로 에세이쓰기 시즌3를 진행하고 있으며, 앙코르석공님의 에세이쓰기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앙코르석공님과 나이듦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대해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이제부터는 앙코르석공님을 그냥 석공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냥 석공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석공님, 거짓이나 왜곡만 없다면 과장이나 미화 정도는 인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석공2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아무리 거짓이 없이 말하려고 하여도 본의 아니게 좋게만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었는데, 이제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석공1 - 우선 석공님께서는 언제쯤부터 나이듦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나요? 석공2 - 내가 그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쉰아홉 살 때부터 나이듦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순 살이 되는 게 싫어서, 우스갯소리로 6학년이 되는 게 싫어서 그해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도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나이를 모르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몇 년간 계속 쉰아홉이라고 대답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플러스알파라고 덧붙였습니다. 아, 이제는 그것도 낯간지러워서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곳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에 관해 특히 인문학을 중심으로 많이 사유하게 됩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석공2 - 저는 살아오는 동안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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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물들이 고통 앞에서 취한 태도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소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주인공 닐의 생애를 보여준다. 닐은 다리에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그는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됐지만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장애 때문에 생기는 갈등 상황에도 꽤 잘 대응하며 살아내는 인물이다. 자신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는 천사의 강림이라는 사건으로 아내(사라)를 잃는다.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림’은 마치 자연재해와 비슷하다. 불시에 일어나고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차이점이라면 기적도 있다는 것이다. ‘강림’으로 불치병이 치유되거나 장애가 사라지거나 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라의 영혼은 천국으로 갔다. 닐은 아내가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었고 그녀와의 재회를 위해 천국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맨다.   아내를 잃고 좌절한 닐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강림’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감과 위로로 아픔을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연대의 방법을 통해 신에 대한 사랑을 성취하면 천국으로 가서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닐을 설득했지만, 닐은 그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은 삶을 그 가능성 하나에 걸어야 하는데다가 도대체가 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다. ‘강림’ 때 새어 나오는 천상의 빛을 보고 천국에 간 범죄자의 사례를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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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 조회 164
인문약방 에세이
      1.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   나이듦과 자기서사의 세 번째 시즌, 마지막 교재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 여섯 살의 신경외과 7년차 레지던트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22개월 후인 2015년 3월 9일에 죽기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릴 때 뉴욕 북동부에 살다가 열 살에 사막도시인 애리조나의 킹맨으로 이사를 간다. 폴은 사막의 자유를 사랑했고 친구들과 사막을 탐험했다. 의사인 아버지가 늘 바쁜걸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을 문학으로 여겼다. 폴은 문학을 전공하면서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월트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했다. 하지만 학위논문을 마치면서 문학공부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고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을 찾게 되었다. 폴은 의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의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폴은 의과 대학원에서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한다. 신경외과의 특성상 완벽을 추구하고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준다는 것이 폴이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후에 폴은 암 진단을 받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이 죽음을 맞았으니 선물이 아닌가라고.     2. 사명감으로 신경외과의로 복직   신경외과의는 폴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다. 병으로 레지던트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폴은 정체성을 잃었다. 환자복을 입은 폴은 주어에서 직접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폴은 죽음을 이해하고...
      1.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   나이듦과 자기서사의 세 번째 시즌, 마지막 교재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 여섯 살의 신경외과 7년차 레지던트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22개월 후인 2015년 3월 9일에 죽기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릴 때 뉴욕 북동부에 살다가 열 살에 사막도시인 애리조나의 킹맨으로 이사를 간다. 폴은 사막의 자유를 사랑했고 친구들과 사막을 탐험했다. 의사인 아버지가 늘 바쁜걸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을 문학으로 여겼다. 폴은 문학을 전공하면서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월트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했다. 하지만 학위논문을 마치면서 문학공부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고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을 찾게 되었다. 폴은 의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의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폴은 의과 대학원에서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한다. 신경외과의 특성상 완벽을 추구하고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준다는 것이 폴이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후에 폴은 암 진단을 받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이 죽음을 맞았으니 선물이 아닌가라고.     2. 사명감으로 신경외과의로 복직   신경외과의는 폴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다. 병으로 레지던트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폴은 정체성을 잃었다. 환자복을 입은 폴은 주어에서 직접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폴은 죽음을 이해하고...
문탁
2023.12.11 | 조회 8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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