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1] 6주차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먼
2024-03-24 20:51
186

낮에 꽤나 따뜻해지는 계절입니다. 지난 세미나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커다란 물음에 대한 따뜻한 대화였던 듯합니다.

 

그러한 따스한 기억을 특히 대변하는 것은, 칸트의 비인간성에 대한 봄날 샘과 세븐 샘의 물음이었습니다. “판단력은 천부적 재능의 특수한 것으로, 그것의 결여는 어떤 학교 교육도 메울 수 없는 것이다.”라는 칸트의 주장은, 여러 분들의 분노를 낳았습니다. 결국 우리도 칸트가 요구하는 판단력을 가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또한 이것은 일말의 휴머니즘을 갖고 있는 사람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행스럽게도 제 내면에 담지돼 있는 휴머니즘에 동의하는 동시에, 한 켠에서 칸트의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서, 가장 인간적이기를 갈망하며, 나는 이러한 호소를 여러분께 한다. 여러분은 충분히 훌륭한 인간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칸트의 간절한 호소에 마지못한 듯 귀 기울이자, 칸트는 지난 세미나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윤곽을 그려주려고 엄청난 고심과 함께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줄곧 우리에게, 인식의 재료들을 마련해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어쨌든 감성과 지성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애썼고, 순수 지성개념들에 대한 연역을 통해, 그러한 우리의 능력을 의심치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미나에서 이르러 그는, 우리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을 확정짓듯, 우리에게 판단력이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그 확실한 근거로 그는, 확실한 순수지성개념을 더욱 확실케 해주는 감성적 조건으로서의 도식기능과, 다음 시간까지 이어지겠지만 우리에게 있는 종합 판단 능력의 증거 즉 모순율에 입각한 죽은 분석을 분명히 넘는 '살아있는 종합적 판단능력의 증거가 되는 필연적 원칙들을 보여주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그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남아있는 힘으로 그의 핏기어린 목소리를 토해낼 때에, 저는 그가 엄청난 지성을 갖고 있음 외에 그를 이길 마지막 무기였던 휴머니스트 경쟁에서도 그의 손을 들어주는 데에 전혀 거리낌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너는 할 수 있다를 외치는 나에 대한 그의 사랑, 그리고 더욱 개인적으로는 신이 있다면 천부적 판단력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그의 확신 어린 응원에 부응해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제 머리까지 온전히 잠식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처럼, ‘비인간적이라는 모멸에 찬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적이려 노력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의 오롯이 인간적인 호소를 완전히 비인간적인 손가락질로 손쉽게 짓밟으려 하는 저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러한 아픔보다 아니 그러한 아픔으로만 가질 수 있는 값진 것들을 풍성히 얻을 수 있음에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러한 장을 마련해주신 여러분께도 이 글을 빌려서나마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바입니다.

댓글 10
  • 2024-03-25 14:01

    아, 휴먼샘은 그날 '따스'하셨군요 ㅎㅎㅎ 저는 어쩐 일인지 지난 세미나 시간에 너무 피곤해서 세미나 후반에는 거의 반쯤 정신을 놓고 세미나를 했었습니다.
    말씀대로 칸트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휴머니스트'인건 분명합니다. 칸트의 문제의식이 이미 '인간의 능력'을 정초하려는 '인간학'적 방향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럴 겁니다. 다만, 그런 칸트를 읽는 각자는 서로 다른 문제의식 속에 있겠지요? 누군가는 극한에 다다른 인간주의의 기원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할테고, 누구는 점점 사라져가는 '휴머니즘'의 복원을 생각하며 칸트를 읽을 겁니다. 그런 극단 전체를 하나의 장 안에서 포괄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칸트가 얼마나 굉장한 철학자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여하간, 저도 휴먼샘이 저희 세미나에 오셔서 몹시 좋습니다! 뭐랄까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금 극단적이고, 뭔가... 반사회적인 이 모임을 좀 중화시키는... 역 (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도 같군요ㅎㅎㅎ)할을 휴먼샘이 해주시는 느낌이랄까요 ^^

    • 2024-03-28 12:43

      반사회적이라뇨?!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여러분들이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데 힘쓰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비록 고달프실지라도 힘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 2024-03-26 08:05

    판단력의 숙련 가능성이나 보행기 언급은 칸트에게 인간이라는 개념이 무엇이었는가를 또다시 얘기해보게 되는 계기였던 듯해요. 휴먼샘의 후기를 읽으면서 무엇무엇다움에서 나오는 긍지를 되찾고 싶은 열망을 느꼈는데요,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또는 규정하고 싶은가가 다를 수 있되 긍지에 대한 열망은 비슷한 것 같아요. 애초 그러한 열망에서 결국 많은 것이 나오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휴먼샘 후기를 읽으니 파란색 표지의 유령처럼 파란 칸트의 얼굴이 뜨겁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 정성 담긴 후기 감사합니다.

    • 2024-03-28 12:48

      제 조악한 글에서, 그래도 뭔가 좋은 것을 느껴가실 수 있음에 무척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 2024-03-26 09:16

    칸트가 판단력을 강조하면서 사용했던 '천치', '결함은 전혀 구제될 수 없다' 등 표현에 거부감이 있었을 뿐 칸트의 '비인간성'을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휴먼샘의 말씀대로 칸트에게서 조금씩 '인간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칸트의 다른 책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해제 내용에서도 휴머니즘적인 칸트의 면모가 부각되네요.
    "칸트는 <인간학>에서 '완전한' 또는 '완벽한' 인간의 상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다양한 면모, 수없이
    자기모순적인 인간, 그런 중에서도 자율적인 존재자로서 끊임없이 도덕적 개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인간을 보여준다.
    칸트의 인간지는 '개인'의 소묘에서 시작해 '인류'에 대한 기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중략)...
    칸트 <인간학>의 주제는 '순수한 영혼/마음/정신'이나 한낱 물체적인 몸/육체/신체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심리적-생리적 역량을 가진 시민적 인간, 요컨대 일상인의 관점에서 보고, 볼 수 있는 인간이고,
    <인간학>의 내용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앎이다."(같은 책 14쪽)

    <인간학> 뿐만 아니라 <순수이성비판>에서도 칸트의 천재성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느껴지고 있어 텍스트가 어렵지만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휴먼샘의 마음이 묻어나는 후기 감사합니다. ^ ^

    • 2024-03-28 13:11

      네, 그런 차원으로 말씀하셨군요. 항상 세븐 선생님의 깊이 있고 진중한 토론 모습에 감명 받고 있습니다. 답글을 통해 칸트의 인간학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3-26 14:52

    휴먼샘이 휴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Kant Being Kant & Human Being Human 입니다.

    • 2024-03-28 13:07

      감사합니다. 항상 자세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주시는 설명에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 2024-03-26 22:16

    휴먼 샘의 후기를 읽다 보니 문득 휴먼샘에게는 칸트가 인간적으로도, 또한 신이 전제되어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괜찮은 철학자로 느껴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정말 그렇다면, 그건 아무 상관없는 제게도 묘한 위안이 됩니다^^ 아마도 그건 저의 괴로웠던 셈나들에 대한 기억때문인 것 같아요. 그 괴로웠던 셈나의 시기에 제게 유일한 위안은 책이 마음에 든다는 것 하나였을 때가 꽤 많았었거든요. 어차피 모두 자기 관심사와 엮으며 읽는 것이니(제가 그렇거든요) 샘도 잘 엮으셔서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주셔요~

    • 2024-03-28 13:04

      즐겁게 토론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부러웠는데, 많이 괴로우셨군요... 그러나 그만큼 많은 것을 얻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세션 선생님의 답글이 제게도 위안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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