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4주차 질문들

정군
2024-03-06 14:21
286

여기에 댓글 본문으로 목요일 오후2시까지 올려주세요!

그런데 웨 벌써 4주차인거죠?

댓글 10
  • 2024-03-06 14:58

    1. 315쪽 "선험적인 개념들은 경험을-경험에서 마주치는 직관이든 아니면 사고이든 간에-가능하게 하는 선험적인 조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개념들은 필수적이다."

    318쪽 "순수지성개념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경험의 가능성'이 그것에 달려있는 선험적 조건들이 무엇인가, 다시 말해 현상의 모든 경험적인 것을 도외시해도 경험의 기초에 놓여 있는 선험적인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탐구해야만 한다."

    318쪽 "한 개념이, 그 자신 '가능한 경험'의 개념에 속하지도 않고, 가능한 경험의 요소들로 성립돼 있지도 않으면서, 완전히 선험적으로 산출되어 한 대상과 관계 맺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모순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질문 1) 경험과 관련해 '경험의 가능성'과 '가능한 경험' 등 가능성 또는 가능한 등이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선 307쪽 주석 47에서 '개념의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개념의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재적 내지 실질적 가능성'을 뜻한다'와는 다른 의미로 가능성이 사용되는 것 같은데, 칸트가 사용하는 가능한, 가능성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2. 320쪽 "만약 내가 감각기능에 일람 작용을 부여하면, 이것에는 항상 종합작용에 대응하고, 수용성은 오로지 자발성과 결합해서만 인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 인식에서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세 겹의 종합의 근거이다. 곧 직관에서 마음의 변양인 표상들을 '포착'하는 종합, 그것들을 상상에서 '재생'하는 종합, 그리고 그것들을 개념에서 '인지'하는 종합의 근거이다."

    질문 2) 칸트는 세 종류의 종합을 설명하면서 '3개의 종합 대신 '세 겹의 종합'이라고 표현한 건 3개의 종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3개의 종합의 연결성은 포착→재생→인지' 순으로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직관-상상-개념이 상호 작용한다는 것인지 '세 겹'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3. 330쪽 "사람들이 사건들의 계열에서 모든 것은 결코 어떤 것도 그것이 항상 그에 뒤따르는 무엇인가가 선행하지 않고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규칙에 적절하게 종속한다고 말할 때, 일관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연합의 저 경험적 규칙이 자연의 법칙으로서 무엇에 의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체 이 연합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잡다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그것이 대상 안에 있는 한에서 잡다의 '근친성'이라 일컬어진다."

    337쪽 "상상력의 모든 경험적 법칙에 앞서 선험적으로 통찰되는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현상들의 모든 연합의 이 객관적 근거를 나는 현상들의 '근친성'이라 부른다."

    질문 3) 칸트는 근친성을 '모든 잡다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 근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근친성' 개념의 의미와 어떻게 근친성이 잡다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 2024-03-06 23:12

    (질문) 칸트가 로크와 흄을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칸트는 “대상들 일반에 대한 개념들은 선험적인 조건으로서 모든 경험인식의 기초에 놓여 있다. (중략) 그것(선험적 개념)에 의해서만 경험이 가능하다”(p.314. B126)고 합니다. 로크는 지성의 순수 개념들을 경험에서 찾으면서도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는 인식들을 얻으려는 ‘일관성없는’ 태도를 취했다고 비판합니다. 반면에, 데이비드 흄은 이 개념들이 선험적인 근원을 가져야 함을 인정하였지만, 경험에서 개념들을 도출하였다. 그는 지성안에 결합되어 있지 않은 개념들은 대상 안에 필연적으로 결합해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순수 수학과 일반 자연과학의 현실과 서로 맞지 않으며, 사실에 의해 반박된다(p.316)고 말합니다.

    Q1) 흄은 칸트와 마찬가지로 개념의 선험성을 인정하였고, 그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밝히고자 경험(습관)에서 이를 도출합니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칸트는 개념의 선험성이 경험을 가능케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고, 그것은 필연적인 필요성과 기능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칸트의 선험적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나요? 그냥 주어진 것인가요? 아님, 선험적 개념의 필연성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인가요?

  • 2024-03-07 01:09

    (P316~317) 이에 앞서 나는 간략하게나마 범주들에 대한 설명을 미리 해두고자 한다. 범주들이란 대상 일반에 대한 개념들로서, 이에 의해 대상 일반에 대한 직관이 판단을 위한 논리적 기능들의 하나와 관련하여 규정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모든 물체는 가분적이다’라는 정언 판단의 기능은 주어의 술어에 대한 관계 기능이었다. 그러나 지성의 한낱 논리적 사용의 관점에서만 보면, 두 개념 중 어느 것에 주어의 기능을, 그리고 어느 것에 술어의 기능을 부여해야 할지는 미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약간의 가분적인 것은 물체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체 범주에 의해 내가 물체의 개념을 실체 범주 아래 대입할 때, 그것의 경험적 직관은 경험에서 항상 오직 주어로서만 – 그러니까 결코 술어로서가 아니라-고찰되어야 한다고 정해진다. 그리고 여타의 모든 범주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질문: 가마솥샘 질문 부분 바로 다음 문단의 내용에서 질문합니다. 문장해석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단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앞의 문장들과 어떻게 이어붙어야 할 지 감을 잡기 어렵네요. 우선…P298의 표에 나오는 범주들의 표를 보면 거기에 ‘실체’라는 범주는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순수지성개념=범주의 범주(칸트의 범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실체 범주에 의해 내가 물체의 개념을 실체 범주 아래 대입할 때’라는 문구로 보아 범주는 칸트의 용어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범주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주라는 말을 사용할 때 반드시 그 범주는 술어가 아닌 주어로 고찰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그럭저럭 그러려니 해석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데 이 용법이 말그대로 칸트의 범주표의 범주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할텐데요…. 이걸 같이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해석을 좀 부탁드려요.

  • 2024-03-07 08:23

    338. “(순수 통각인) 항존 불변의 ‘나’는 우리의 모든 표상들—그것들이 의식될 수 있는 한에서—의 상관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식이 일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순수 통각에 귀속하는 것은 표상으로서의 모든 감성적 직관이 하나의 순수한 내적 직관, 곧 시간에 귀속하는 이치와 같다.” 순수 통각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나’라는 표상이 항존 불변하는 하나의 형식으로서 이야기되는 것이 무척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개념 중에 칸트의 순수 통각과 연결성이 있는 개념이 있을까요?

    저는 오늘 불참할지도 모르겠습니다ㅠㅠ

  • 2024-03-07 11:44

    326쪽
    초월적 통각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내적 지각에서 우리의 상태의 규정들에 따른 자기에 대한 의식은 한낱 경험적이고, 항상 전변적(가변적?)이다. 이러한 내적인 현상들의 흐름속에서는 지속적이고 항존적인 '자기'는 있을 수 없고 그것은 보통 내감, 경험적 통각이라 불린다."

    1. 이때 내적인 현상들의 흐름속에서는 '지속적이고 항존적인 자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얼 가리키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이것은 초월적 통각과 대비되는 무엇인데 저는 초월적 통각을 선험적인식의 통일작용이라고 읽고 있습니다만....

    2. 이번 진도의 맨 마지막에서 칸트는 "우리 범주들의 연역은 이로써 수행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었다는 말일까요? 연역이라는 것이 권리증명인데 그렇다면 1)우리 인식은 현상들하고만 관계하는데, 그 현상의 가능성은 우리 안에 있고, 2)그것의 연결과 통일도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여기까지는 선험적 인식과정이 되구요, 3)모든 경험에 선행하여, 이 경험을 형식적으로 경험이게 하기 때문에 ---이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증명됐다고 보는 걸까요? 뭐 증명이 되는 건가요?

  • 2024-03-07 13:09

    p320-321, p334-335 포착의 종합 부분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의 단답형 질문들이지만 좀 헷갈리고, 해설서 찾아볼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확인차 올립니다.
    p321에서 '그렇기에 이 집다에서 직관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잡다를 일별하고 다음에 그것을 통괄함이 필요하다. 이 작용을 나는 포착의 종합이라고 부른다.' 고 했죠.
    질문1) 그렇다면 포착 따로 종합 따로가 아니라 포착자체가 종합이라는 거지요? 뒤에 나오는 재생이나 인지도 그 자체로 종합작용이고요?
    p334 '지각들은 이 결합을 감각기능 자체내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이 잡다를 종합하는 능동적 힘이 있고, 이 힘을 우리는 상상력이라 부르며, 이것이 지각들에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작용을 나는 포착이라 부르는 바이다. 상상력은 말하자면 직관의 잡다를 하나의 상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상상력은 그 전에 인상들을 자기활동 안으로 받아들여야, 다시 말해 포착해야 한다.
    질문2) 이 때의 포착은 현상 안의 잡다와 지각의 결합을 이야기 하면서 나오는데요, 그렇다 해도 잡다를 종합한다는 의미에서 앞의 321p의 직관에서의 포착과 같은 의미의 포착인가요?
    질문3)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은 상상력이 하는 건가요? 아니면 상상력의 종합과 관계 맺고 있는 통각의 통일 기능인 순수 지성(p335)이 하는 건가요?

  • 2024-03-07 13:28

    333쪽 "그런데 모든 지각의 기초에는 순수직관(표상들로서 지각과 관련해서는 내적 직관의 형식인 시간)이 선험적으로 놓여 있으며, 연합의 기초에는 상상력의 순수 종합이, 그리고 경험적 의식의 기초에는 순수 통각, 곧 모든 가능한 표상들에서 자기 자신의 일관된 동일성이 선험적으로 놓여 있다"
    335쪽 "상상력의 종합과 관계 맺고 있는 통각의 통일[기능]이 지성이고 그러니까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과 관계하는 통각의 통일[기능]이 순수 지성이다.

    - 종합에서 상상력과 통각의 차이를 좀 더 알고 싶습니다.

  • 2024-03-07 13:59

    P326, 327
    326쪽 밑에서 다섯째 줄에 '수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표상되어야 할 것'은, 통각에 의해 불특정 다수였다가 한정된 갯수로 확정된 표상을 의미하고, 327쪽 여섯번째 줄에 '통각의 수적인 통일성'은, 통각이 나에 대한 의식으로서 오직 단 하나로 통일됨을 의미하는 것이 맞는지요?

    P341
    '우리의 인식이 다루는 대상들이 사물들 자체라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선험적 개념을 가질 수 없을 터이다'와 같은 문장들을 통해 볼 때, 궁극적으로 칸트는 '선험적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아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반대로 인간의 능력에 관한 겸손함을 요청하는 것일까요?

  • 2024-03-07 14:00

    p.319
    모든 선험적인 인식들을 위한 요소들은,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허구들의 요소들까지도,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ㅡ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선험적인 인식들이 아닐 터이다ㅡ그러나 그것들을 항상 가능한 경험의, 그리고 이 경험의 대상의 선험적인 순수한 조건들을 함유함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이것들에 의해서는 아무런 것도 생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 자체도 주어지는 것 없이는 결코 사고 속에서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Q1. 칸트는 개념이라는 것은 직관으로 주어지는 것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신이나 정령이라는 개념들도 직관으로 주어지는 것에 의해 생겨났다는 말이고, 대상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대상X는 신을 말하는 것인가요?

    Q2. 위처럼 허구적인 것들에 대한 개념을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특히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신뢰를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칸트가 얘기하는 연결성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일까요?

  • 2024-03-07 14:43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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