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3주차 질문들

정군
2024-02-28 11:31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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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2024-02-28 19:39

    1. 274쪽 "표상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면, 이에 반해 표상들을 스스로 산출하는 능력, 바꿔 말해 인식의 자발성은 '지성'(知性.Verstand)이다...감성적 직관의 대상을 사고하는 능력이 지성이다. 감성이 없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대상도 주어지지 않을 터이고, 지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사고되지 않을 터이다.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

    질문 1) 칸트는 인식의 두 줄기를 감성과 지성으로 분류했는데, 지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원칙들의 원천'(393쪽), '규칙들의 능력'(340쪽), '개념들의 능력'(394쪽). 얼핏 보면 '이성'의 수식어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칸트에게 넓은 의미의 이성(理性.Vernunft)은 감성, 지성, 이성을 아우르는 개념인 반면 좁은 의미에서는 '사고하는 능력'인 지성만을 지칭하기도 한다는데, 지성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2. 274쪽 "저(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은 요소(기본) 논리학, 반면에 이(특수 지성 사용의) 논리학은 이런 저런 학문의 '기관'(機關)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
    275쪽 "순수 논리학은 그러므로 순정한 선험적 원리들만을 취급하는 것이고, 이성과 지성의 '규준'(規準)이다.

    281쪽 "한낱 평가를 위한 '규준'인 저 일반 논리학이 객관적 주장들을 실제로 산출하기 위한, 적어도, 객관적 주장들의 환영(幻影)을 위한 '기관'으로 사용되었고, 그러니까 실제로 그렇게 오용되었다. 그래서 기관으로 잘못 생각된 일반 논리학은 변증학(법)으로 일컬어진다."

    질문 2) 위 단락에서는 기관과 규준이 대비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두 단어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애매한 것 같습니다. 번역어를 포함해 두 단어의 개념과 위 문장이 담고 있는 일반논리학의 '오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3. 298쪽 "우리는 이 개념들을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범주들이라 부르고자 한다...그것은 광상곡처럼 산출된 것, 곧 순수한 개념들을 운에 맡겨 탐색한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귀납적으로만 추리된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것들이 완전히 망라되었음을 결코 확신할 수 없고, 그뿐만 아니라 또한 이런 방식에 의거해서는 결코 순수 지성에는 왜 다른 개념들이 아닌 바로 이 개념들만이 내재하고 있는가를 통찰할 수 없다. 이러한 기초개념들을 탐색하는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명민한 사람에게 합당한 기도(企圖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원리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개념들을 부딪치는 대로 긁어모아 우선 10개를 헤아려 범주들(主述語들)이라고 불렀다."

    질문 3) 칸트는 자신의 범주론을 설명하면서 사실상 '범주의 창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허술함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칸트 스스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광상곡' '부딪치는 대로 긁어모아' 등의 수식어를 이용한 비판이 점잖아 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칸트의 범주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을 수 있고, 꼭 12개여야 하느냐는 논란의 지점이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칸트의 범주표가 지나치게 자신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것인지 그리고 칸트의 이런 비판이 적합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 2024-02-28 20:26

    칸트의 ‘초월적’이란 단어를 경험에 그리고 그 통각(자기 의식)에 붙여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질문의 좀 거대합니다. 이 질문은 아마도 올해 내내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올해 나머지 질문은 면제?)

    P. 277) 선험적인 모든 인식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에 의해 어떤 표상들이 (직관이든 개념이든) 오로지 선험적으로 적용된다거나 또는 선험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를 우리가 인식하는, 그런 선험적 인식을 초월적 (다시 말해, 인식을 가능하게 함 내지는 인식을 선험적으로 사용함)이라고 일컬어야 한다는 것이다. (P233 복습) 나는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방식을 이것이 선험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한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모든 인식을 초월적이라 부른다.

    우리 바깥의 대상을 인식하는 작업에서 종합/통일이 칸트에게는 필연적일 겁니다. (이번 진도에서 그런 냄새를 강하게 풍길 것이고, 앞으로 계속 나올테니 그건 차차 따라가기로 하고). 언젠가 세미나 시간에 말씀 드린 것 같은데, ‘나’를 대상화해 보시지요. 이리하면 시간적으로 조각조각 잘려진 무한한 나의 잡다들이 있을 겁니다. 이것을 종합/통일하는 것이 칸트에게는 필연적일 것이고 이것이 초월적 통각(자기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겁니다.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체)’ 역시 종합/통일은 선험적으로 필연적입니다.

    1. 흄은 이것이 관념의 다발일 뿐이고, 이것을 합치는 것은 습관입니다. (필연이 아닌 우연쯤으로 하시지요…흄을 읽어보질 않아서)
    2. 흄의 생각을 ‘나(주체)’ 에 적용해보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나(주체)’는 관념 다발의 습관적 통일에서 나올 겁니다. (순전히 뇌피셜)  나(주체)의 발생이 훨씬 급진적이 되어버립니다.
    3. 칸트의 생각은 위에 간략하게 정리한 것 참조. (종합 강박에 따른 어설픈 봉합처럼 보입니다. 읽으면서 위의 제 생각이 맞는지 유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4. 마지막으로 들뢰즈의 ‘주체’를 넣어보겠습니다. 추측컨데 칸트적이라기보다는 흄적일 것입니다. 그의 첫 저작이 흄에 관한 ‘경험주의와 주체성’임을 감안하면 이 추측이 아마도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 기억에 딱히 들뢰즈가 칸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주체’라고 할만한게 없다 정도만 기억이 날뿐 뭔가 급진적인 면은 없었습니다. (이미 급진적인지 오래돼서 급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짧은 기억이 웬수)

    요약을 해보면…이런 지평일 것 같은데….채워야 할 빈곳이 너무 많습니다.
    1. 흄: 경험이면 충분해..뻘짓하지마
    2. 칸트: 웃기지마…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선험적 지평이 있어야 해
    3. 들뢰즈: 실재적인 것은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이야….

    이래놓고 보니 숙제가 잔뜩 생긴 기분입니다.

    1. 아 흄을 읽어봐야겠구나…칸트의 의도적인 오독이 있었겠구나…(물론 그래서 철학이 풍부해지겠지만…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흄은 흄의 아주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
    2. 칸트를 읽으며 이 질문을 계속 가지고 좀 꼼꼼하게 살펴야겠구나
    3. 들뢰즈를 살살 다시 읽어야겠구나

    내년 독해는 헤겔이 될지도 모른다는 튜터의 말씀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혼자 골방에서 흄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제를 하기 전에 여러 샘들의 생각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

  • 2024-02-28 23:03

    (295~7) 지난 시간에 읽은 부분까지 정리해보면 순수 직관을 통해 대상들의 표상을 얻은 후 이 표상들로부터 인식을 얻으려면 지성이 개념들로 인식 작용을 해야 한다, 정도로 프로세스가 잡히는 듯했으나 별안간 이 사이에 상상력의 종합이 끼어듭니다. “우리 사고의 자발성은, 잡다로부터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잡다가 먼저 일정한 방식으로 통관되고 수득되어 결합되기를 요구한다. 이 활동을 나는 종합이라고 일컫는다.” “종합이란 것은 ... 영혼의 맹목적인, 그럼에도 불가결한 한 기능인, 그러나 우리가 드물게 어쩌다 한 번 의식할 뿐인, 상상력의 순전한 작용결과이다. 그러나 이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도무지 아무런 인식도 가지지 못할 터이다.” 개념이 개입되지 않은 잡다들의 결합이란 것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잘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이러한 중간 단계가 추가되는 것인지도 잘 이해되지 않고요.

  • 2024-02-29 10:05

    (질문 1)
    지난 시간에는 감성적 직관에 대해서 읽었다. 이번 시간에는 개념적 지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제 “이 양자가 통일됨으로써만, 인식은 생길 수 있다”(B76, p.274)고 한다. 어떻게 통일되나? 한참 논리학을 이야기하다가 드디어 “잡다의 종합이 비로소 한 인식을 산출한다”(B103, p.296)면서, “종합이라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듯이, 영혼의 맹목적인, 그럼에도 불가결한 기능인, 그러나 우리가 드물게 어쩌다 한번 의식할 뿐인, 상상력의 순전한 작용결과이다.”라고 말한다. 상상력이 감성과 자성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Q1.) 그렇다면, 상상력은 감성과 지성처럼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는 별로 언급된 것이 없다. 앞으로 전개되나요? (왜 어쩌다 한번 의식하나?)
    Q2.) 들뢰즈를 읽을 때, 이 상상력이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칸트식으로 답을 예상한다면, 상상력은 선험적인 영역이고 이미지는 경험적인 영역이어서 그런가요?
    Q3.) 칸트는 ‘종합’ 이야기를 “잡다로부터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잡다가 먼저 일정한 방식으로 통관되고 수득되어 결합하기를 요구한다. 이 활동을 나는 종합이라고 일컫는다(A77,p.296)”라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잡다가 먼저 요구하나요? 지성이 먼저 요구할 수도 있지 않나요? 예를들면, 어떤 물건을 찾을 때 그 모양을 상상하고 찾게 되는데, 이 때 상상한 양태와 비슷하면 쉽게 찾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주 애를 먹어요. (나만 그런가요?)

    (질문 2)
    12가지 지성의 범주들을 열거 합니다.(B106, p.298)
    Q1) 칸트에게는 지성의 판단과 관련된 이 범주들이 모두 열거된 것인가요? 아니면, 이런 형식이다라는 몇 가지 예시로 보아야 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는 문장을 보면, '이게 전부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Q2) 질(質)의 범주들 중에 제한성(~이지는 않음)은 실재성(~임)과 부정성(~아님)이 결합된 형태이긴 하지만, 근원적이 아닌 그 둘에서 파생된 것 아닌가요?
    Q2) 이 많은 범주들을 의미있게(통일성있게?) 작용하게 하려면 무언가 컨트롤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지난 시간에 읽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B68, p.269)”이라고 말한 통각?

  • 2024-02-29 10:17

    p291~292에 걸쳐 설명되고 있는 '무한판단'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p296 일반적으로 표상된 순수 종합이 순수 지성개념들을 제공한다.
    - '순수'가 경험을 제거한 것이라고 제가 이해했는데, '순수지성개념'이 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여기서 순수하다는 무슨 의미인가요?

  • 2024-02-29 12:39

    p.281
    ‘그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한낱 논리학만 가지고서'
    ‘한낱 평가를 위한 규준인 저 일반 논리학이’
    ‘논리학의 위치론을 모든 공허한 사칭을 변명하는 데 사용’
    ‘그의 계획적인 사기에다 진리의 외관을 입히는 궤변적인 기술’

    질문 :
    일반 논리학의 변증학 부분에서 칸트가 화가 많이 나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공허한 사칭이나, 계획적인 사기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논리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뻔히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가) 사기를 쳤다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예로 어떤 사례가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 2024-02-29 13:34

    p298 이 분류표는 한 공통의 원리, 곧 판단하는 능력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산출된 것이다.
    질문1) 기본적으로 판단표와 범주표의 관계가 잘 모르겠는데요, 판단표에서 범주표가 추출된다는 것이 철학사적으로 혹시 어떤 맥락같은 것이 있는 건지 아니면 칸트의 철학 방식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인식이라고 하면 대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다보니 어떤 명제 형태의 판단 종류들이 지성의 활동으로 먼저 나오는 것이 저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칸트의 인식 방식이 전통적인 인식과 달라지는 칸트 특유의 방식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p288 예컨대 "모든 물체는 가분적이다"라는 판단에서 가분성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여러 개념들과 관계 맺는 것이다.
    질문2)판단표와 범주표에 대한 선후 관계도 다시 한 번 묻고싶은데요. 그냥 말초적으로 생각할 떈 어떤 명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범주화된 개념이 먼저 존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위의 문장에서도 가분적이라는 판단을 하기 위해선 실재성이라는 범주가 이미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아님 그 범주가 판단으로부터 이미 만들어져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나요? 그럼 그 판단은 애초 무슨 기본요소들로부터 시작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뭔가 제가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일테니 좀 더 이야기해봤음 합니다.

  • 2024-02-29 13:57

    P 291~292
    칸트가 '무한판단'을 통해 이분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차원을 개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무한에 대한 불가지론'을 경유한 '무한의 열림 가능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P296~297
    주어진 잡다로부터 선험적 인식을 얻기 위한 필수적 과정인 '종합'이, 한편으로 상상력의 순전한 작용결과이고, 다른 한편으로 선험적인 종합적 통일의 근거의 의지하는 '개념들에 따르는 종합'임을 칸트가 주장함을 보았을 때, 칸트는 우리가 '단지 상상만 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가능성을 어쨌든 열어둠과 동시에, 인간이 그 대상을 지성의 개념을 통하여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여지를 두는 '신인협력론'을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까요?

  • 2024-02-29 15:44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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